처서(處暑)인 23일은 말 그대로 ‘더위가 멈춘다(물러난다)’라는 의미다. 24절기 중 14번째 절기인 처서 땐 한여름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선선한 기운이 감돌아 가을이 왔음을 느끼게 한다. 식물들도 겨울 준비를 위해 생육을 멈추고 누런빛을 띠며 시들어 간다.옷 속까지 파고들던 극성스러운 모기도 이맘때쯤이면 맥을 못 춘다.
매년 4~5월 출몰하는 우리나라 모기는 7월부터 증가해 8월 최고 정점을 찍은 후 9월 하순께 거의 사라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도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활동을 줄이는 모기의 습성을 희화화한 것이다. “추운 곳에서 자면 입이 비뚤어진다(또는 돌아간다)”라는 관용적 표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올여름 27도 이상의 높은 기온이 지속되면서 모기의 기승은 9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란을 앞두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암컷 모기의 무차별적 공격은 지독한 가려움과 함께 온밤을 하얗게 지새우게 한다. 한 공간에서도 유독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러는 걸까. 신진대사가 활발하며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많고 높은 체온과 땀 등 체취가 강한 경우 모기에 물릴 확률이 높다.
노인보다는 젊고 어린아이, 몸집이 큰 어른, 그리고 임산부 등이 잘 물리는 이유다. 후각기관이 잘 발달한 모기는 이산화탄소는 10m, 젖산 냄새는 20m 밖에서도 맡을 수 있다. 또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모기는 검정 등 짙은 색의 옷을 착용할 때 더 잘 문다고 한다. 무엇보다 모기의 습격에서 벗어나려면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니 장롱 속으로의 모기장 철수 계획은 당분간 접어야 할 듯싶다.
그런데 무엇보다 농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처서 날씨다. 배추, 무 등을 파종한 이후 비가 내리면 땅이 굳어져 공기 유통을 방해해 뿌리 활착이 어려워져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쌀이 준다’, ‘처서에 비가 오면 천 가지 곡식이 해롭다’ 등 부정적인 속담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농부들의 마음에 피멍이 든다는 처서비(處暑雨)는 올해도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