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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살수(懸崖撒手)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는 뜻으로, 손을 놓으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손을 놓는 용기나, 결단을 말한다.
懸 : 매달 현(心/16)
崖 : 벼랑 애(山/8)
撒 : 뿌릴 살(扌/12)
手 : 손 수(水/0)
출전 : 야부도천(冶父道川)의 게송(偈頌)
이 성어는 송(宋)나라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사의 게송(偈頌)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得樹攀枝未足奇
나뭇가지 잡는 것쯤 기이할 것 없으니
懸崖撒手丈夫兒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
水寒夜冷魚難覓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留得空船載月歸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스무살 때, 안중근 의사 아버지 안태훈의 집에 머물렀었다. 이 때 50살 된 고능선 선생이 백범에게 사람은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가르쳐 준 글이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에게 위의 선시를 인용해 내려놓음의 결단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야보도천(冶父道川)은 송(宋)나라 사람으로 성은 적(狄)이고,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다. 군의 궁수(執方職)로 근무하다 재동(齊東)의 도겸(道謙)선사에게 발심하여 호를 받았는데 스님이 그때 이름을 바로 세워 바꿔주었다.
이제까지 너는 적삼(狄三)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다. 지금부터 등뼈를 곧추세워 정진한다면 그 도(道)가 시냇물(川)처럼 불어날 것이다.
후에 임제선의 일맥인 정인계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손이 된다.
고향 재동에 돌아와 ‘금강경야보송’을 지었다. 금강경 해설을 시로 표현함이 독특하며 간결해 한 번에 내리치는 듯한 그의 활구(活句)가 백미다. 그의 나머지 삶은 베일에 싸여있다.
현애살수(懸崖撒手)
한국 선가(禪家)에 내려오는 3단계 공부 방법을 소개하면 이렇다. 처음 10년은 경전(經典) 공부이다. 우선 경전을 보아야만 공부의 큰 가닥을 파악한다. 그다음 10년은 여행이다. 이를 ‘만행’(萬行)이라고 표현한다. 마지막 10년은 참선(參禪) 공부이다.
30년 공부가 끝나면 50대 중반이 된다. 보통 대학 졸업할 무렵인 20대 중반부터 공부에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30대 중반까지는 수많은 경전과 책을 보는 기간이다.
40대 중반까지는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해야만 한다. 지리산 피아골에서도 살아보고, 뉴욕 맨해튼 5번가도 왔다 갔다 해보고,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도 한 열흘 있어보고, 인도의 라자스탄에서 점성술 공부도 해보고, 모세의 시나이 산에도 올라가 본다.
여행 도중에 밥도 얻어먹고, 병도 걸려보고, 마구간에서 도둑잠을 자다가 두들겨 맞아보기도 해야만 인생의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나서 명상으로 들어간다. 밖을 둘러보아야만 안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10년 여행의 묘미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여행의 초창기에는 장엄한 경치를 구경하는 데에 정신이 팔리지만, 그 다음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필자가 인도여행 도중에 만났던 석송(石松)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이야기해 주었던 현애살수(懸崖撒手; 절벽에서 손을 놓아라)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던 도중에 다행히 나무뿌리를 잡았다. 사력을 다해 두 손으로 그 나무뿌리를 잡고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두 손을 놓아라!” 이때 신앙심이 깊은 상근기(上根機)는 두 손을 놓는다. 그러나 신앙심이 약한 사람은 절대로 손을 놓지 않는다. 떨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끝까지 절벽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사실은 매달려 있는 지점이 지상에서 1m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이 사람은 아래를 쳐다보지 못하므로 수십m 높이에 매달려 있는 줄만 안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이때 자비로운 스승이 나타났다. 스승은 가죽채찍으로 사정없이 그 사람의 손등을 내리쳤다. 두들겨 맞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놓게 된다. 삶의 비밀이 현애살수(懸崖撒手) 이야기에 담겨 있다.
현애살수(懸崖撒手)
낭떠러지에서 매달린 손을 놓으라는 뜻으로, 뜻을 실천할 때는 과감하게 실행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출전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이 성어는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의 야보(冶父) 송(頌)에 나오는 시이다.
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건 기특할 게 못되니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깎아지른 절벽에서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네.
水寒夜冷魚難覓(수한야냉어난멱)
싸늘한 밤, 물도 찬데 고기는 낚이지 않아
留得空船載月歸(유득공선재월귀)
빈 배에 달빛만 담아 싣고 돌아오누나.
깊은 선리(禪理)가 숨어 있는 시로 마음이 부처라 하지만 마음도 부처도 없어야 한다는 법문이 설해져 있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위험천만의 모습으로 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격장부라면 그냥 손을 놓아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뜻이다.
한 때 마곡사에서 승려생활을 한 백범(白凡) 김구(金九)가 이 구절을 좋아했다고 백범일지(白凡日誌)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현애철수(懸崖撤手)라고 사용하나, 원전을 살펴볼 때, 현애살수(懸崖撒手)가 옳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懸崖撤手)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5년 광복이 되고 12월6일에 중국 상해에서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경교장(京橋莊)에 모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 앞줄 가운데에 키가 훤칠한 백범 김구(金九)의 모습이 있습니다.
김구는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썼습니다. 김구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몰라 본국에 있던 두 아들에게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 백범일지입니다.
또 하권에는 모든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회를 알리려고 쓴 유서 성격의 일지입니다. 일지(逸志)의 사전적 의미는 세속을 초월한 훌륭하고 높은 뜻을 말합니다.
김구는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 개구쟁이짓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웃 동네에 놀러갔다가 또래 아이들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은 일, 그 일로 식칼을 빼앗긴 일, 아버지의 성한 숟가락을 구부려 엿을 사먹은 일, 엽전 스무 냥 꾸러미를 꺼내어 떡을 사먹으러 간 일 등으로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며 컸습니다.
김구는 14세에 과거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글공부를 한댔자 발천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거시험의 폐단을 뼈저리게 느낀 김구는 마의상서(麻衣相書)를 공부합니다.
얼굴의 관상 좋음이 풍채 좋음만 못하고(相好不如身好), 풍채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身好不如心好)는 구절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 좋음은 곧 덕성이기도 합니다.
김구는 20세가 되어서 스승 고능선(高能善)을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의 집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때 고능선은 김구의 결단력이 부족함을 알고 그에게 평생의 좌우명이 될 만한 글을 가르치게 됩니다.
得樹攀枝不足奇(득수반지부족기)
懸崖撤手丈夫兒(현애철수장부아)
나무에 오를 때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이상할 것 없다. 그러나 낭떠러지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그래야 대장부니라.
백범은 현애철수(懸崖撤手)의 장면을 잊지 않으려고, 낭떠러지에 매달린 원숭이를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그림을 쳐다보면서 ‘원숭이야 매달린 손을 놓아라’고 되뇌곤 하였다고 합니다. 실행할 과단성을 키워 ‘진정한 대장부가 되리라’고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스승 고능선은 ‘예로부터 천하에 흥해보지 않은 나라가 없고, 망해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그와 달리 백성이 갈라져서 동포끼리 싸움만 하다가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라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손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료(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걸리는 시간이 0.001초에 불과한 5세대 이동통신(5G)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성교육이 더욱 필요합니다.
김구가 백범일지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하는 것은 인성의 형성과정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일깨우는 자득지묘가 중요합니다.
"절벽에 매달린…그 손을 놓아라"
내가 여섯 살 때다. 남동생까지 낳은 뒤 분가한 아버지는 산을 개간(開墾)해 밭을 일구셨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녘까지 몇 날을 땀 흘려 일하신 부모님은 우리 다섯 식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큰 밭을 마련했다. 분가한 뒤 태어난 돌 지난 여동생을 업고 점심으로 감자를 삶아 밭에 갔던 기억이 새롭다. 동생과 돌멩이를 골라 밖에 내다 버리며 개간 일을 도운 기억도 또렷하다.
일이 거의 끝날 무렵, 무슨 일 때문에 아버지가 화가 몹시 났는지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다만 아버지가 뒤에서 내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들어 올려 큰 나뭇가지를 잡으라고 한 기억은 생생하다. 내려다보니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높았다. 아버지는 나무에 매달린 나를 두고 말리는 어머니를 끌다시피 산을 내려가 버렸다. 땅과 부모님을 번갈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울었다.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는 무서워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울음이 더는 소용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뭇가지 잡은 팔을 힘껏 당겨 다리를 나무에 걸쳤다. 그렇게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밀어 나무를 내려왔다. 집에 돌아온 나를 본 어머니는 울기만 했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곤한 잠을 자다 잠결에 누군가 내 팔다리를 만진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때 맡은 아버지 담배 핀 입 냄새는 지금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절벽을 잡은 손을 놓는다’라는 뜻의 ‘현애살수(懸崖撒手)’ 고사성어를 자주 쓰셨다. 그때마다 어릴 적 나뭇가지에 매달리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아버지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외울 수 있을 만큼 여러 번 설명했다.
“여러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손 떼면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절벽에서 미끄러지다 간신히 움켜쥔 나뭇가지에 연연하면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성어는 여러 곳에 나온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국 송(宋)나라 선사 야부도천(冶父道川)의 금강경(金剛經) 해설을 시로 표현한 ‘게송(偈頌)‘이다. “나뭇가지 붙잡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결단력이 부족함을 일깨우려고 알려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가 특히 강조하신 말씀이다.
“살면서 닥치는 위기는 수없이 많다. 걱정이나 근심만 하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궁리해라. 그래야 살길이 보인다. 무언가 잡고 있으면 의지하게 마련이다. 집착하기만 하고 더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가는 가진 것마저 잃는다.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보다 못하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한 말이다. 주저하지 마라.”
그날 나뭇가지 잡은 팔을 당겨 다리를 나무에 걸칠 걸 생각한 것은 지금 되돌이켜 봐도 신통하다. 팔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다리를 걸칠 의지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무릇 자신감은 간절함과 끈기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에서 결단의 용기와 상황을 돌파할 힘이 나온다. 그런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큰 인성이 신중성이다. 행동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숙고하는 경향인 신중함은 매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성실성의 원천이다. 손주에게도 무엇보다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인성이다. 현애살수는 신중성을 되뇌게 해줘 내 삶을 이끈 고사성어다.
▶️ 懸(매달 현)은 ❶형성문자로 县(현)의 본자(本字), 悬(현)은 통자(通字), 悬(현)은 간자(簡字), 縣(현)은 고자(古字)이다. 心(심; 마음)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걸다의 뜻을 가지는 縣(현)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에 걸리다의 뜻으로 본디 縣(현)과 똑같이 쓰이다가 나중에 縣(현)이 군(郡)이나 현(縣)의 뜻으로 사용되자 오로지 걸다의 뜻만 나타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懸자는 ‘매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懸자는 縣(고을 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縣자는 나무에 머리를 매달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금문 나온 縣자를 보면 나무에 눈이 매달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금문과 소전에서는 縣자가 ‘매달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縣자가 ‘고을’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해서에서는 여기에 心자를 더한 懸자가 ‘매달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懸(현)은 ①달다, 매달다, 달아매다 ②매달리다, 늘어지다 ③(상을)걸다 ④현격하다 ⑤멀다 ⑥멀리 떨어지다, 동떨어지다 ⑦헛되다 ⑧빚 ⑨헛되이 ⑩멀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해결이 안 되어 걸려 있는 안건을 현안(懸案), 어떤 목적을 위하여 상금을 걸고 찾거나 모집함을 현상(懸賞), 글자나 그림을 새기어서 문 위에 다는 널조각을 현판(懸板), 사물의 차이가 뚜렷하거나 두드러진 상태를 현격(懸隔), 한문에 토를 다는 일을 현토(懸吐), 죄인을 죽여 높이 걸어 놓은 머리를 현수(懸首), 장부 따위 문서에 적혀 있음을 현재(懸在), 아래로 꼿꼿하게 달려 드리워짐을 현수(懸垂), 현상으로 내건 돈을 현금(懸金), 하늘에 있는 여러 물상으로 해와 달과 별 따위를 현상(懸象), 성벽의 군데군데에 위에서 아래로 낸 흠을 현안(懸眼), 매달아 놓은 북을 현고(懸鼓), 물이 곧장 쏟아져 내리는 높은 절벽을 현수(懸水), 죄인을 죽여 높이 걸어 놓은 머리를 현수(懸首),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널조각 따위의 밑을 받치어 놓은 것을 현반(懸盤), 아주 두드러지게 다름을 현절(懸絶), 두 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질러 매달아 놓은 다리를 현교(懸橋), 마음에 두고 늘 생각함을 현념(懸念), 등을 높이 닮 또는 그 등을 현등(懸燈), 아래위로 여닫게 되어 있는 문을 현문(懸門), 보증인을 세움을 현보(懸保), 이름이 높이 드러난 조상을 현조(懸祖), 사고로 참여하지 못한 그 까닭을 적음을 현탈(懸頉), 도도히 흐르는 물과 같은 변설이라는 뜻으로 거침없고 유창한 말주변을 이르는 말을 현하지변(懸河之辯), 상투를 천장에 달아매고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찔러서 잠을 깨운다는 뜻으로 학업에 매우 힘씀을 이르는 말을 현두자고(懸頭刺股), 적진으로 깊이 들어가서 후방의 본진과 연락도 없고 후원군도 없이 외롭게 싸운다는 말을 현군고투(懸軍孤鬪),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는 뜻으로 사리에 밝거나 판결이 공정함을 일컫는 말을 명경고현(明鏡高懸),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함을 이르는 말을 좌신현담(坐薪懸膽), 허벅다리를 찌르고 머리털을 대들보에 묶는다는 뜻으로 분발하여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자고현량(刺股懸梁) 등에 쓰인다.
▶️ 崖(벼랑 애)는 형성문자로 崕(애)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뫼 산(山; 산봉우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낭떠러지의 뜻을 가지는 厓(애)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崖(애)는 산가의 낭떠러지의 뜻으로 ①언덕 ②벼랑, 낭떠러지 ③모, 모서리(물체의 모가 진 가장자리) ④끝, 경계(境界), 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⑤물가(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기슭, 물기슭 ⑥눈초리 ⑦모나다(사물의 모습이나 일에 드러난 표가 있다) ⑧(눈을)흘기다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원(原), 언덕 판(坂),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언덕 안(岸), 언덕 강(崗),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릉(陵), 언덕 고(皐), 언덕 부(阜)이다. 용례로는 절벽 위에 있는 길을 애로(崖路), 낭떠러지 아래 끝진 부분을 애각(崖脚), 절벽의 밑을 애하(崖下), 낭떠러지에 있는 동굴이나 바위의 그늘을 이용하여 만든 무덤을 애묘(崖墓), 자연적인 암벽의 면을 갈아서 비문을 새긴 비를 애비(崖碑), 가파른 산이나 높고 험한 산을 애음(崖崟), 높은 벼랑이나 절벽을 고애(高崖),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를 단애(斷崖), 아주 높은 절벽을 창애(蒼崖), 석벽을 쪼아 갈아서 글자나 그림을 새김을 마애(磨崖), 바위로 된 벼랑을 암애(巖崖), 햇빛이 잘 비치지 않는 언덕을 음애(陰崖), 산의 험악하게 된 언덕을 봉애(峯崖), 바위가 층층이 쌓인 언덕을 층애(層崖), 가파른 낭떠러지를 초애(峭崖),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는 뜻으로 손을 놓으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손을 놓는 용기나 결단을 이르는 말을 현애살수(懸崖撒水), 천 길이나 되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르는 말을 천인단애(千仞斷崖) 등에 쓰인다.
▶️ 撒(뿌릴 살)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散(산, 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撒(살)은 ①뿌리다, 흩뜨리다 ②흩어져 떨어지다 ③놓다, 놓아주다 ④펼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액체나 기체 상태의 물질이나 약품을 공중으로 뿜어서 뿌리는 것을 살포(撒布), 물을 흩어서 뿌림을 살수(撒水), 비료를 뿌림을 살비(撒肥), 모래를 흩어 뿌림을 살사(撒砂), 벼랑에 매달려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는 뜻으로 손을 놓으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손을 놓는 용기나 결단을 이르는 말을 현애살수(懸崖撒水) 등에 쓰인다.
▶️ 手(손 수)는 ❶상형문자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마찬가지로 손의 모양에서 생긴 글자는 又(우; 또), 寸(촌; 치) 따위가 있다. 手(수)는 投(투; 던지다), 招(초; 부르다) 따위 다른 글자의 부분이 되면 재방변(扌=手; 손)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手자는 '손'이나 '재주', '수단',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본래 '손'을 뜻하는 글자로는 又(또 우)자가 있었지만, 후에 뜻이 바뀌면서 금문에서는 手자가 '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손의 기능이나 역할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재주나 솜씨, 수단 등과 같이 손과 관련된 기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手자는 운전수(運轉手)나 가수(歌手)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手(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두는 기술의 뜻으로 ①손 ②재주, 솜씨 ③수단(手段), 방법(方法), 계략(計略) ④사람 ⑤힘, 도움이 될 힘이나 행위 ⑥필적(筆跡) ⑦권한(權限), 권능(權能) ⑧가락, 곡조(曲調) ⑨바둑돌이나 장기 말을 한 번씩 두는 번수 ⑩손수, 스스로 ⑪쥐다, 손으로 잡다 ⑫속박하다, 묶어 두다 ⑬손바닥으로 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발 족(足)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손목에 걸쳐 채우는 수갑(手匣), 손으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手動),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 방도를 수단(手段),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공책을 수첩(手帖),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정해진 급료 이외에 경우에 따라 덧붙여 주는 보수를 수당(手當), 손과 발 또는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망을 폄을 수배(手配),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손아래나 부하를 수하(手下), 일을 꾸미고 치러 나가는 재간을 수완(手腕),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적은 기록을 수기(手記), 어떤 일에 손을 대어 시작함을 착수(着手), 잘못하여 그르침 또는 그 짓을 실수(失手), 기쁨과 찬성과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할 때 두 손뼉을 마주 두드림을 박수(拍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운동이나 기술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을 선수(選手), 얼굴을 씻음을 세수(洗手),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손에 들어옴 또는 손에 넣음을 입수(入手),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를 공수(拱手), 손에 땀을 쥔다는 뜻으로 위험한 광경이나 사건의 추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됨을 이르는 말을 수악한(手握汗),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형제간의 우애를 일컫는 말을 수족지애(手足之愛),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사 또는 자기의 수족과 같이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수하친병(手下親兵),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을 일컫는 말을 수무족도(手舞足蹈),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속수무책(束手無策),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녹사수수(鹿死誰手),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수가결(唾手可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