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벧후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마지막 때가 될수록 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그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나의 연약하고 비천한 이 몸으로는 할 수 없음도 아오니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행하게 하소서.
그것은 오직 주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 곧 깨끗한 세마포임을 믿습니다.
이 옷이 바로 주님이 인정하시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이 옷 말고는 어떠한 옷도 더럽고 추하며 거짓된 것이오니 나의 행위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할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 하루도 십자가 아래 거하오니 나는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게 있는 성한 몸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불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잘 하는 자 되어 인정과 칭찬을 받기보다 오히려 영적 하루살이가 되어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오늘도 죽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19:11-21
제목 :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7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 나의 묵상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40일 밤낮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여전히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그 이유는 엘리야 자신은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을 내었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다 죽고 자기 홀로 남았다는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한편 하나님은 그에게 이 굴에서 나가 내 앞에 서라고 하신다.
그러시더니 그 앞을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부수고 바위를 부수었지만 그 바람 가운데나 지진 그리고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엘리야에게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굴 입구에 나와 섰다.
그러자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야는 앞에서와 똑같이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광야 길로 다메섹으로 가라고 지시하신다.
그곳에 이르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으로 삼으라고 하신다.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라고 하신다.
다음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신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이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가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7천 명을 남길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에 엘리야는 호렙을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쌍의 소에 멍에를 지워 밭을 가는 중이었다.
그는 열두 번째 겨리의 소를 부리고 있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로 가서 겉옷을 그에게 입혀주었다.
이는 선지자 직분을 위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사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가서 자신이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한 후에 엘리야를 따르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엘리야가 그에게 허락하면서 내가 어떻게 너의 작별 인사를 막겠느냐고 한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집으로 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고기를 삶은 후에 그것을 이웃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다.
그 후에 그는 엘리야에게로 가서 그를 따르며 수종을 들었다.
엘리야는 자기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을 보고 진단하였다.
그것은 아합 왕을 필두로 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이 그의 눈에 너무나 거슬렸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게다가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이제 거의 없고 아합과 이세벨이 거의 죽여서 오직 자기 혼자만 남은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세벨의 위협은 살기를 느끼게 하였으며 영적 공황 상태에 이르게 하였다.
동료 선지자들이 아무도 없는 자리가 바로 로뎀 나무 아래였으며 또한 호렙의 동굴 안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물음에 오직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산과 바위를 부술 정도의 강력한 바람과 땅을 가르는 지진, 그 후에 불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이것은 이적을 동반한 자신의 사역에도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세벨의 살기를 느낄 정도의 목숨에 대한 위협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떠한 능력이나 이적으로 그들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심이다.
오직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12b)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무엇보다 엘리야의 눈으로 보고 진단한 것은 결코 완전한 판단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 판단만이 진짜이다.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다 죽고 오직 자신만 남았다고 한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남기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것이 엘리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다.
모세는 자기가 장성하여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의 형제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다(출 2:11).
이에 자기가 꿈에도 그리던 애굽에서의 해방을 실현시키고자 거사를 거행하였다.
물론 자기에게는 그런 일을 할 만한 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거사에 실패한 그는 바로의 눈을 피하여 미디안으로 도망하였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하나님이 보신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나아가 그들의 근심을 아신다.
이렇게 모세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아픔을 보고 듣고 아셨다(출 3:7).
출애굽이라는 거사는 분명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들어 있다.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힘이 있을 때 그 계획을 이루고자 거사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거사를 막으신다.
그 이유는 이를 그의 힘과 능력으로 행할 때 그가 곧 하나님처럼 행하는 죄인 자기 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막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행하시되 모세를 통하여 일하게 하신다.
그렇게 되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시도 때로 없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무언가 일을 잘해서 그 결과를 내려고 무진 애를 쓴 자였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결과를 내면 내 안에 드는 마음이 ‘내가 했는데’라는 자기주장의지이다.
한 마디로 내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처럼’이라는 자기 의의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죄의 결과는 환난과 곤고이다.
(롬 2:9a)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어떠한 큰 사역을 수행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이 환난과 곤고이다.
무언가 이루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허무감과 공허이다.
그 자부심이라는 것이 곧 나를 드러내는 자기 의의 죄이며 그와 함께 오는 것이 허무함과 공허인데 이것이 곧 환난과 곤고이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이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고난 후에는 나를 만족하게 하는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나도 알지 못하는 허무함과 공허감이 나를 지배한다.
그것이 주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은 알지도 못한 채 그러하였다.
이제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할지라도 나의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일이 끝나면 나는 숨기에 바쁘다.
호렙의 동굴에 들어가서 자기 연민에 빠진 엘리야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행한 이적들이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한 영적 갈등이 있었으며 그것이 그를 슬프게 하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맞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을 판단하여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면 그조차 나의 교만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부르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를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원합니다.
나와 같은 목사들은 설교 하나를 해도 끝난 후에 ‘은혜받았습니다’ 하는 반응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죄 중에 가장 큰 죄인 줄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설교를 했을지라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하신 것임을 인정하며 나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물론 홈런을 치는 설교가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목사는 설교가 주요한 일입니다.
하여 설교를 하되 결코 내가 하나님처럼 나를 주장하는 자리에 서지 않기를 원합니다.
설교를 잘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여 듣는 이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생명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는 것이 목사의 본무입니다.
이 일에 나를 사용하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에 온전히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