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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리버트 호텔이요!”
“예.”
다행히 운전수 아저씨는 아는 곳인지 되묻지 않았고, 택시는 차량이 많지 않은 한적한 도로를 차분하게 통과해 나갔다. 서울과는 다르게 가로등 불빛의 밝기는 밝기 않아서 도시 전체가 어두워보였다. 난 서서히 낯선 곳이 주는 두려움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밤에, 낯선 곳에서 내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두려움과 함께 드는 생각은 오빠에 대한 약한 원망이었다.
‘왜 데리러 나오지 않은 거야? 일도 끝났다는 거 같던데. 먼 길을 온 사람을 말이야.’
두려움이 원망으로 바뀌는 것은 두려움을 잊기 위한 자기 방어적 태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이 커져가는 만큼 그에 대한 원망도 커져 가고 있었다.
“오빠, 도착했어!”
“그래? 일단 올라와라. 여기 706호야.”
‘올라오라니? 날 호텔방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거길 왜 올라가? 그냥 오빠가 내려와. 왠지 호텔방으로 들어가는 거 별로 안 내켜. 같이 일하는 사람들 묵는 호텔 아니야?”
“그렇지.”
“그럼 내려와. 사람들 마주칠 일 있어? 서울 간다고는 말한 거지?”
“너무 피곤해서 그래. 촬영이 조금 전 끝났는데 눈이 막 감길 지경이야. 안 그래도 너 전화오기 전에 잠깐 졸았다고. 이 상태로 올라가다가는 사고나. 좀 만 쉬었다 가자.”
“몰라. 일단 오빠가 내려와. 나 여기서 기다린다. 끊을게.”
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무슨 속셈을 갖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설사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조금의 빌미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약 3분쯤 지났을까? 핸드폰이 오빠의 지정 벨소리로 울어댔다.
“왜 안내려오고?”
“네가 잠깐만 올라와라. 딱 1시간만 자고 가자. 네가 깨워주면 되잖아.”
“싫어! 내려오라는 말 못 들었어? 난 오빠 보러 먼 길 온 사람이야! 터미널까지 마중은 못 나올망정 나더러 올라오라고? 그래 피곤해서 한 시간 자야 한다고 치자. 그래도 내려와서 같이 올라가자는 성의는 있어야지. 이게 뭐야, 대체? 전화로 올라오라니, 그 정도로 피곤해? 피곤하면 자! 난 서울 올라갈 테니까!”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화로 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낯선 곳에 방치 해두고 있는 점이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모든 말이 지독히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려는 이기심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이러면 나중에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거야? 안 봐도 뻔해. 앞으로는 집에도 데려다 주지 않겠군.’
“알았어! 알았다고!”
“왜 오빠가 소리를 쳐?”
“소리는 네가 먼저 쳤잖아.”
“그거야 오빠가 화가 나게 하니까 그렇지! 이러려고 불렀어? 피곤할 것 같으면 오지 말라고 말했어야지!”
“알았다고! 지금 내려갈 테니 기다려!”
“얼마나 걸리는데?”
“좀만 기다려!”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야 기다리지!”
“5분! 됐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난 먼 길을 왔고, 자신을 보기 위해 온 사람을 환대해야 하는 저편의 몫이었다. 그는 네게 고마움을 표해야했고, 지금은 그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서울에 오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내가 추운 호텔 앞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 온 윤섭 오빠는 내게 타란 말도 없이 차에 올랐다.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화내라면 내라지. 내가 잘 못한 게 있어야 사과도 하는 거지, 사과할 생각 없다고! 난 사과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화를 내며 싸우고 싶지도 않았기에 태연히 행동하기로 했다.
“오빠, 밥은 먹었어?”
“아니.”
“나도 못 먹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음. 화났다 이거지. 내가 참자, 참아.
“배고프다. 밥 먹고 가자.”
심드렁하게 뱉은 내 말에 이번에는 대답대신 차를 급하게 유턴을 해버렸다.
“어머!”
차가 없는 도로였지만 아찔한 불법 뉴턴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깜작 놀랐잖아! 뭐하는 거야?”
“밥 먹자며? 지금 밥 먹으러 가잖아.”
“아까부터 왜 그래?”
“내가 뭘?”
“말도 안하지 않나 밥 먹잔다고 갑자기 차를 돌리지 않나 어린 애처럼 왜 그러냐고?”
“너도 아무 말 안했잖아. 왜 나한테 그러니? 말하고 싶으면 해.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보고. 대답해 줄게. 피곤하다고 했던 사람 말 안한다고 몰아붙이는 게 어디에 있어?”
“성격 진짜 이상하다. 꼭 어린애같이 구는 것도 유치해!”
“문희!”
“왜?”
“너 사람 그렇게 못 믿냐? 나 정말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그런데 꼭 너 잡아먹을 사람처럼 취급할 필요 있었어?”
“내가 어쨌다고 이러는 건데? 오빠가 나 오면 서울 간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호텔방으로 오라고 해? 그거 가지고 말하는 거지, 내가 오빠가 날 잡아 먹는다고 했어? 몰라! 나 밥 안먹어. 당장 서울 가!”
“너 진짜 밥 안 먹는다고 했지?”
“그래!”
차는 급하게 도로에 정차했다.
“나 좀 잔다. 설마 차 안에서 눈 붙이는 거 가지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밀어 기대고는 고개를 저편으로 돌려버렸다.
‘진짜! 사람 성질 테스트 하는 거야?’
화가 났지만 잠도 못 자게 만들었다는 얘기는 듣기 싫어 일단은 가만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씩씩거리고 있던 단 몇 분 만에 큰 숨소리가 들렸다.
‘정말 자는 거야? 쇼 하는 게 아니라? 많이 피곤했었나?’
가까이 가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자는 척이 아니라 진짜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정말 피곤해서 쉬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가 운전을 시킨 거였어?’
천천히 생각해보자니 나는 도착 전부터 은근히 화가 있던 상태여서 피곤하다는 그의 말에 귀를 귀울어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까지 했던 것이다.
‘화 낼만 했네.’
쌔근거리며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난히 추운 날이라 차 안에 히터가 나오고 있었지만 차 안은 쉽게 따뜻해지지 않았다. 얼었던 발도 녹여주지 못할 만큼이었다.
‘춥다! 이런데서 자면 좋지 않을 텐데.’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면서도 단정함을 잊지 않는 모습.
‘결혼 후에는 늘 내 옆에서 저런 모습으로 잠을 자겠지.’
그는 내게 결혼을 얘기했던 사람이었다. 연애가 아닌 결혼. 속궁합은 맞춰봐야 한다는 건 기본이고, 결혼 후 1년간은 혼인 신고도 하지 말라는 요즘 같은 때 설혹 음흉한 의도로 날 방으로 불렀다고 한들 그리 큰 잘못일까 점점 그의 편을 들게 되었다. 마음 좁은 문희! 이젠 좀 마음 좀 넓히고 넉넉히 살자고!
“오빠, 자?”
“······.”
“오빠, 자냐구? 나 추운데.”
“히터 더 키워줘?”
“아니. 그런 거 아니구.”
‘이 정도 하면 알아들을 것이지. 꼭 내 입으로 말을 해야 아냐고!’
“그럼?”
“오빠 자는 거 보니까 나도 졸려.”
아까보다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하자 그제서야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돈다. 지금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하는 거지, 하는 당혹감도.
“어, 흠. 그럼 말이야, 호텔로 돌아가서 너도 좀 잘래?”
“그래도 되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성공했는지 그는 나를 달래여 들었다.
“그럼. 안에는 따뜻할 거야. 너 여기 있어서 몸이 얼었구나.”
오빠의 손이 내 팔과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도 거기는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그럼 다른 곳으로 갈까?”
오빠는 내색하려하지는 않았지만 꽤 좋아하는 빛이 내비쳐졌다. 역시 음흉한 생각을 하는 것이리라. 잠만 편하게 잘 수 있다고 해서 저렇게 좋아할 수는 없다.
“좋아. 가는데 대신 손대기 없기야! 알았어?”
“손을 대긴 누가 댄다고?”
“정말 아무 일 없기 약속해줄 수 있는 거지?”
“문희야! 나 지금 똑바로 설 힘도 없거든. 정말 잠이 자고 싶어.”
“진짜지? 진짜?”
나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다짐을 받아냈다.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한 다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음. 조명이 이렇구나. 서양식이네. 영화에서만 봤어.”
늘 방에는 형광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스탠드만이 방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실제 부담을 느꼈던 것은 더블 침대였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건만 같은 침대에 누워 있을 생각이 하니 적잖은 긴장이 되어 괜히 스탠드에 관심을 보이는 척 말을 돌린 것이었다.
“호텔 처음 오는 거야?”
“음. 놀라가도 콘도만 다녔어. 콘도에는 형광등이 있잖아. 너무 어두워서 좀 불편하다.”
“자기에는 좋을 거야. 먼저 잘래? 난 좀 씻고 싶다.”
‘씻어? 잠깐 잔다는 사람이 씻기까지?’
“응. 그러든가.”
오빠가 욕실로 들어간 후에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에 누워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잠이 와 줄 것 같지 않았고,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폭신한 침대의 쿠션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긴장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오고 있을 때였다.
덜컥!
욕실의 문이 열리고 수건만 달랑 허리춤에 감싼 반라의 윤섭오빠가 성큼 걸어 나왔다.
‘뭐야? 저건···? 어쩌자는 건데? 벗고 나오다니! 이런, 저런 꼴로 나오다니!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거야? 아악!’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비명이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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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가가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은 상태라 완결편까지 인터넷에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하네요... 이것외에 한편으로 인터넷에 올리는건 마무리가 된다고 합니다 ㅡ.ㅡ (진작 알았으면 완결난 다른 소설을 올리는 것인데.... 죄송합니당^^)
놀리냐........지금...
머냐...머냐...머냐..... 우띠.... 자주 좀 올려라 할려했는데..끝이라니..안돼안돼안돼...너가 지어서라도 올려~~
아쉽다....출간되면 서점가서 담부터 봐야겠다 ㅎㅎㅎ.........아님 금이가 한권사서 스캔해서 올려라^^
완결난 다른 소설을 올리는걸로 용서해주시면 안될까요? 인터넷에 못올리는 분량이 약 10편정도 되는데 문희가 윤섭이 몰래 스키장가서 다른남자와 데이트하는 내용과 결혼전까지의 갈등을 다룰거라네요,, 상상력을 발휘해보심이.....헤~~~
그러지말고, 금님, 우리가 돌아가며 완결을 해 봅시다. 이번 건은 금이 언니가 써요.. 다음 것은 내가 써 볼께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