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미움 사이
배영주
딸랑딸랑, 딸랑딸랑. 두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조심스럽게 컴퓨
터를 켜자, 마치 새벽 시간의 단잠을 사정없이 깨우려 하는 시계
의 알람처럼 이-메일 도착 신호음이 온 방 안을 깨운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조카녀석들 일찍 재운 새언니가 수다나 떨자고
또 메일을 보내왔나? 꽉 찬 나이에 애인하나 없는 후배 녀석, 장
가가고 싶다는 푸념이 날아왔나? 서둘러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
런데 아니, 세상에.. 누구지? 이 사람.. 이 사람은... 메일의 제목
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혹시,
정○○를 아는 그 때 그 꼬맹이 아닌가요?”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내게 있어 유일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우연히 저녁 예배시간 중
등부 성가대 지휘 선생님을 한 번 본 이후로, 나는 토요일 오후
면 어김없이 중등부 예배실 담장 아래서 뭔가를 기다렸다. 중학
생 남자 오빠들의 징그러운(?) 변성기 소리를 견뎌가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염없이 뭔가를 기다렸다. 좋은 놀이터 놔두고
왜 하필이면 차 지나다니는 교회 옆길에서 노느냐는 친구들의 입
을 쭈쭈바로 막으면서까지 교회 담장 밑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
며 다방구, 얼음땡을 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성가 연습이
끝날 때를, 그의 모습이 바깥에 나타나기를...
그 사람 역시 나를 귀여워해준 것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
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던 것이었을까? 바깥에 나온 그 사람은 샐
룩해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나의 머리를 늘 쓰다듬어 주었다. 오
늘은 치마가 예쁘구나, 머리띠가 예쁘구나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나의 그런 행동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성가연습을 하는 담
장 바로 밑에서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성가대의 노랫소리
와 경쟁을 하듯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가 예뻤을 리 없다.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2년 동안 매 번. 그 선생님은 나에게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눈치를 준 적 없이 그렇게 나의 관심을
받아주었다.
드디어 중등부에 올라가게 되었다. 신났다. 이젠 더 이상 친구
들에게 먹을 것 사주고 비위맞춰주면서 바깥에서 서성거릴 이유
가 없다. 직접 예배실 안에서 그를 보면 되니까... 자진해서 성가
대에 들어갔다. 매주 토요일 연습 시간이 그렇게 좋고 황홀할 수
가 없었다. 부끄러워 선생님의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
고 악보만 내려보면서도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멋지
게 지휘봉을 휘두르는 선생님의 하얀 손가락, 자상한 인상과 세
련된 옷차림, 경상도 사투리가 약간 섞인 절제된 음성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잘 따라가지도 못하는 노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했지만, 성가대 연습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저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 있다
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황홀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선생님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처
음엔 단순히 선생님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인지 선생님의 지휘하는 손가락이 미워 보였고, 굽슬 거리는 뒷
머리가 징그럽게 보였다. 웃을 때 찡긋거리는 눈썹이 바람둥이처
럼 보였고, 사투리를 약간 섞는 말소리도 거슬렸다. 심지어는 우
연히 옆자리에 앉아 간식을 먹는 선생님의 숨소리가 참을 수 없
을 정도로 듣기 싫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럴까? 나 역시 당황했지
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르고 선생님을 좋
아했던 내가, 이번에는 왜 그러는지 이유도 없이 선생님이 미워
졌다. 선생님의 모습이, 선생님의 행동이, 선생님의 숨소리가 견
딜 수 없을 정도로 미웠다. 극단의 것들은 서로 통하게 마련인
가? 늘 선생님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계셨지만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사랑은 견딜 수 없는 미움으로 바뀌었다. 결국 나
는 교회를 옮기게 되었고 그 선생님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감
정은 세월과 함께 묻혔다.
바로 그 분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려 메일을 열
기가 두렵다. 선생님에 대한 이유 없는 나의 미움을 선생님이 아
시고 계셨던 건 아닐까? 죄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그냥 삭제해
버릴까? 그러면 선생님도 내가 선생님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
니구나 생각하실 것이고 나도 괜히 혼자 미워했던 죄스러운 마음
을 다시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삭제’라고 쓰여진 곳으로
마우스를 옮긴다. 그런데 그 순간, 아무래도 메일의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 혹 그 분과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 보낸
것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뭐라고 써 있
는지 열어봐야 할 것 같다. 그 선생님이 보낸 것일까? 선생님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결혼은 하셨겠지? 무슨 일을 하시면서 살고
계실까? 건강하시긴 하겠지? 이 순간, 다시 선생님에 대한 애틋
한 관심이 스멀스멀 내 가슴에 파고든다.
사랑과 미움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사랑하는 순간과 미
워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애절하고 참기 어렵다가도 어느 순간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닮은 모습으로 서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 사랑과 미움을 시
작되고, 그것에서 우리는 울고 웃는다. 왜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
라하면서 남을 용서하고 보다듬으면서 사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면서 남을 허용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
면서 사는 것일까?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다.
2002. 12집
첫댓글 사랑과 미움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사랑하는 순간과 미
워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애절하고 참기 어렵다가도 어느 순간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닮은 모습으로 서 있다.
사랑과 미움을 시
작되고, 그것에서 우리는 울고 웃는다. 왜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
라하면서 남을 용서하고 보다듬으면서 사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면서 남을 허용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
면서 사는 것일까?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랑과 미움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보다. 사랑하는 순간과 미
워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애절하고 참기 어렵다가도 어느 순간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닮은 모습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