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uJaAjwyPqw?si=_1xae1VrkSNOi3nQ
질문: 불성이 있다는 말이 진실이냐? 방편이냐?
불성이 있으면 불성도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답변---
불성이 존재하느냐고 할때,
우리는 이 책상 위에 대나무 죽비다 있다고 전제하고 사람들한테 죽비가 있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죽비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죽비가 뭔지를 안다는 전제에서 그런 질문이 성립하는 것이다.
근데, 죽비가 뭔지를 아무도 모르고, 대나무가 뭔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모르는 사람들 100명을 앉혀 놓고 여기에 죽비가 있냐고 물어보면,
예 아니오로 대답하겠는가?
죽비가 뭡니까? 하고 할 것이다.
불성이 실제로 있습니까? 할때,
불성이 뭔가? 알고 물어보는 것인가?
우리는 불성이라고 하면,
우리가 무시이래로 가지고 있는,
깨달을 수 있는 씨앗.종자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일체중생 준동함영 개유불성 이라고 하셨다.
준동함영, 꿈틀거리는 조그만 미물, 요구르트 속에 사는 그런 아메바 세균 같은 벌레 이상,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세균 이상의 모든 중생들은, 꿈틀거리는 영을 가진 모든 중생은
개유불성, 모두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불성이란 무엇인가?
불성이란, 식입니까? 식이 아닙니까?
불성이란 것은 뭐냐?
모든 중생들이 다 갖고 있다.
그러면 식이냐?
식이 아니고,
우리 중생들은 크게 몸과 마음으로 나뉘어져 있다.
마음을 식이라고 볼때, 식이 불성이 아니고, 식자체 라던가,
일체의 법이 의존해서 존재하므로 , 거기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을수가 없다.
즉,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바의 공함.
그래서 이 세속에는 윤회하는 세속이 있고, 윤회를 벗어나는 세상이 있는데,
윤회를 하든 안하든,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이를테면 생각하는 나 마저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바의 없음, 공함. 그것이 공하기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공하지 않다면 자성이 있다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자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도 선인으로 변할 가능성이 0.1%라도 있다. 악인이 영원한 악인은 아니다.
그것은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나쁜 환경과 나쁜 친구를 만나고, 너무 고통을 많이 받고,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잘못 되어가지고 연쇄살인을 일으키고 그런다. 그냥 길가다가 무차별 묻지마 대량학살을 하는 이유는,
사람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고, 전생의 업으로 인해서 좋은 부모를 못만나고, 좋은 친구를 못만나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만 만나니까 화가 나가지고, 아이 그냥 다 죽여버리자 해가지고 다 죽이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람도 감옥에서 10년 썩으면서 이를테면 좋은 강의를 듣고 나서, 자기가 잘못했구나 하면서 뉘우칠수가 있는 것이다.
뉘우칠수가 있다는 것은, 본래 악한 것이 아니고, 공자께서도 한말이 있다.
인불학불성기, 그릇도 잘 만들고 쇠도 닦아야 하듯이, 사람도 배워야 그릇을 이룬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착한 것을 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저절로 착한 사람은 없다.
생이지지가 있지 않느냐?한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전생에 100겁이상을 착하게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금생에 착하게 태어난 것이다.
원인이 없이 무조건 생이지지, 이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성자였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이미 전생에 성자가 된 사람이다.
어떤 원인 없이 그냥 착한 사람, 그냥 악한 사람, 그냥 성인, 그냥 영원한 악인, 그냥 지옥 중생 이런건 없다.
일체법은 인과에 의존하고,
연기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불성이라는 것은 일체법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의존한다는 사실. 무자성, 그것이 불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할수 있다.
어제까지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미칠수도 있고, 지금까지 앙굴리마라처럼 사람을 99명을 죽였는데, 대참회하고 아라한이 될수도 있다.
우리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무자성을 불성이라고 하고, 모든 인간과 중생은 무자성이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무자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면 불성과 연기, 연기임으로 무자성이고, 무자성이 불성이니까,
의존함으로 불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성마저도 연기이므로 불성인 것이다. 연기에 의존해서 불성이 있는 것이다.
의존함으로 불성이 있는 것이다.
용수보살의 보리심석에 보면 자성이 없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다.
자성이 없으므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외도들은 자성이 있으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면 용수보살은 자성이 없으므로 부처도 될 수있고, 일체법이 성립한다고 거꾸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정말 이것을 깊이 음미해보면,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는게, 이런 이야기, 이런 중론의 이야기, 보리심석의 이야기, 용수보살의 이야기는 한국에 500년이상 전달 안된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마 제 법문을 안들어본 분은 저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이것은 정말 특이한 이야기이다.
올바른 견해가 뭐냐? 올바른 정견이 뭐냐? 올바른 정견에 의해서 어떻게 해탈하느냐?
일체가 끊어진 그 자리를 바탕으로 해탈 할 수가 있느냐? 할때 부처님께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께서 안된다고 하신 사실을 잘 말안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변에서 다 그렇게 말하고, 유투브에서도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것이다.
의심하지 않는것은 죄가 된다. 다른 종교에서는 의심하면 죄가 되는데, 불교에서는 의심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왜? 무명을 타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문답을 통해서 화두를 깨트린다. 의심을 통해서 화두를 깨트린다.
그런데 의심이 그냥 생각을 끊고 이뭐꼬 해서 터지는 것은 상키아 이론의 근본자리 밖에는 터질데도 없고, 다른것은 터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생각을 안하니까, 생각이 차단된 깊은 삼매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자리는 성품자리도 아니고 불성자리도 아니고, 그것 자체는 무엇에 의존하는지도 알수가 없다.그래서 그 자리는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성을 재대로 알려면은, 그냥 이뭐꼬 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왜 나라는 것이 무아인가를 알려면은, 오온에 의존해서 내가 있는가? 식이 나인가? 아니면 식이 나가 아닌가? 나와 식이 별개로 식이 따로 있는가? 이런것들을 정확히 알아서 지혜로 관찰해서만이 알 수 밖에 없고,
왜그러냐 하는 것은 또 질문하면 말씀드리겠지만, 현존하는 모든 법이, 시계도 마찬가지다. 시계가 독립적으로 보인다. 모든 범부들의 눈에는 이것이 독립적으로 현현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것의 무자성, 의존성을 추출할 수가 없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도 눈으로 보고 믿는 것으로서,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 통일장 원리, 같은것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양자역학 같은것이 나온다. 관찰하는 주체에 의존해서 실험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희안한 일들이 자꾸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과학도 지금은 조금씩 유식학파라던가 이런것을 향해서 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서 양자역학을 통해서 앞으로 과학문명은 무한하게 발달 할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더 가게 되면, 수행을 하게 되면, 초지보살만 되어도, 여기서 태양계 밖에 있는 어떤 은하라도 힘쎈 장사가 팔을 구부렸다가 펴는 순간에 도달하듯이 한찰나에 어떤 우주밖에 있는 세계도 한찰나에 갈 수 있는 그런것이 초지보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그런 능력이 없으면, 아 나는 초지보살은 절대 아니구나 하고 알고 있으면 된다.
질문: 분별지와 무분별지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답변--
우리가 공성을 깨칠때는 무분별지를 깨치는 것이다.그래서 우리가 사량분별이 차단된, 끊어진 언어도단, 심행처면의 자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맞냐 틀리냐? 맞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걸 무분별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분별지에 도달하려면 생각을 끊어야하나? 생각을 일으켜야하나?
제가 티벳에 가보니까 무분별지를 얻는 방법이 인도의 전통 방법은,
무분별에 의해서 무분별로 가는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치는 소리인가. 기가 막한 소리다.
무본별지에 가려면
무분별로서 무분별지에 가는 것이지,
분별로서 무분별지에 간다는 것은 들은적도 없고, 만약 간다면 어떻게 생각으로 생각이 없는 자리로 간다는 것은 일단 논리적으로 안맞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선지식이 생각을 끊고, 그자리를 깨치라고 했는데, 어디서 못생긴 빨간옷입고 나타나가지고, 지혜로운 관찰, 비파사라를 통해서 무분별지를 간다고 하면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전부터 나온 용수보살의 법맥에서 나오는 정확한 이야기이다.
쫑카파 존자의 요의와 불요의의 선절장구라는 책을 보면은,
어떤사람들 특히 중국의 이런 사람들은 무분별지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무분별을 통해서 간다고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고 딱 나와있다.
그것만 들어가지고는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이 요의와 불요의의 선설장구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