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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15:1-12
"1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7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8 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9 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1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내용분해 : A. 4년여에 이르는 압살롬의 반역 준비(1-6절)
1. 이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명을 세워 위용을 과시함(1절)
2.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에 나아가 재판을 청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
왕이 그들의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을 세우지 않았다고 거짓으로 한탄함(2-3절)
3. 그러면서 그들을 향해 자신이 그 땅의 재판관이 된다면
누구든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함(4절)
4. 또 누가 앞에 와서 절하려고 하면 압살롬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입을 맞추어 줌으로써
인심을 얻어냄(5절)
5. 압살롬이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마다 이렇게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 둠(6절)
B. 반란 봉기를 위한 압살롬의 헤브론 도착(7-9절)
1. 4년이 지나 압살롬이 왕께 고하기를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으니 헤브론으로 가서
그 서원을 지키게 해달라고 함(7절)
2. 자신이 그술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자신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면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서원하였다고 함(8절)
3. 왕이 허락하므로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감(9절)
C. 스스로 왕임을 참칭한 압살롬의 반란과 초기 세력 확장(10-12절)
1.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온 지파에 정탐들을 보내어, 나팔을 불때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외치게 함(10절)
2.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갈 때 압살롬에게 청함을 받은 이백명이 반란 거사 음모를 모른채
그를 따라감(11절)
3. 제사를 드릴때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청하여 옴(12a절)
4.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면서 반란 세력이 급속히 커져 감(12b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근본이 되어주시며, 우리의 할수 없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승리하기 보다는, 승리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순응해,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오늘도 넉넉히 이겨,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십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사무엘하 15:1-12절 말씀으로 압살롬의 반역 준비와 헤브론에서의 봉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무엘하 제15-18장에서는 다윗 통치 시대에 있었던 최대의 대내적 위기인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다루는데, 세부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5:1-12은 4년여에 이르는 압살롬의 반역 준비외 헤브론(Hebron)에서의 반란 봉기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요압의 주선을 통해, 다윗과 화해한 압살롬은 왕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되찾게 되자, 은밀히 반란을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즉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또 호위병을 두어 반역을 위한 기초적인 장비와 병력을 갖추는가 하면, 4년여에 걸쳐 다윗에게 향하여 있던 민심을 자신에게로 돌려 놓은 것입니다(1-6절).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치자 그는 마침내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었던 헤브론으로 가서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든 것입니다(7-12절).
그런데 이러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다윗의 우유부단함 및 압살롬의 회개할 줄 모르는 패역함과 탐욕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사건으로서 아비에 대한 자식의 패륜과 배반으로만 볼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이 반역에는 많은 유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담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 반역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의 통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과연 신정 왕국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이 사울의 때와 같이 인본주의 왕정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그를 통하여 신정을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실패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의 죄와 그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하여 부득불 일어나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게 됩니다.
15:13-23은 압살롬의 반역 소식을 접한 다윗의 황급한 도피와 가드 출신의 장군 잇대의 충성스런 수종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리자, 열명의 후궁만을 남겨 궁을 지키게 하고, 가족과 신하들을 이끌고 급히 도피길에 올랐으며(13-18절), 그 길을 용병들을 지휘하던 가드 출시의 장군 잇대가 옹위하였습니다(19-23절).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의 소식을 접하고 도피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성은 쉽게 정복하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였을 뿐만 아니라, 다윗 자신이 비록 늙었다고는 하나,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였고, 그에게는 여전히 충성스런 부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황급한 되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여겨, 거기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전화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황급히 도피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15:24-37은 다윗과 사독 및 후새 사이의 약정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제사장 사독은 다른 제사장인 아비아달과 더불어 언약궤를 메고 성 밖으로 나와 기다리다가 다윗이 나오자, 그 뒤를 좇으려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의 친구이자 모사였던 후새도 감람산의 마루턱에서 다윗을 만나 좇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며 그들과 약정을 맺었습니다. 먼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는 언약궤를 다시 메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의 정황을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24-28절). 그리고 후새에게는 역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압살롬에게 거짓 충성을 맹세한 후에 압살롬의 모반에 가담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고 합니다(30-36절). 이렇게하여 세 사람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29,37절).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상징이었고, 승리의 보장물처럼 여겨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할 때, 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언약궤는 그가 두번의 시도끝에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것으로 신정 왕국을 구현하려 한 다윗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러한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범죄의 결과 도피의 길을 떠나게 된 자신과 함께 유랑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언약궤를 돌려보낸 것입니다. 아울러 다윗은 언약궤의 유무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실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미치기만 한다면 자신은 다시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앙으로 연약궤를 돌려 보낸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비록 범죄하여 압살롬의 반역과 그로 인한 도피의 징계를 당하고는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의 신앙이 한 단계 성숙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과 후새의 만남에 대해서입니다. 다윗은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모반에 가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그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여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31절). 그런데 그 기도 직후에 후새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신 결과입니다. 즉 하나님은 다윗의 다급한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하사, 다윗에게 후새를 보내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끔 하신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비록 징계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16:1-4은 다윗의 도피길에서 있었던 일로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사환인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다윗으로부터, 그의 재산권을 넘겨받은 사실을 보도합니다. 이러한 본문은 다른 사람의 여러움가지도 자기의 이기적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이용하는 인간의 부패한 면을 잘 보여줍니다. 16:5-14은 시므이의 다윗 저주와 그에 대한 다윗의 겸허한 응대 사실을 보도합니다.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의 집안 사람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라는 자가 나오서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다윗을 사울의 왕위를 찬탈하고 아브넬과 이스보셋 등을 죽인 살인자로 매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였습니다(5-8절). 그러나 시므이의 다윗에 대한 그러한 저주는 순전히 혈통과 지연에 사로잡힌 자의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무고이자,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훗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다윗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음에도(19:16-20)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왕상2:36-46). 한편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받고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의 일환으로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즉 다윗은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 시므이를 처단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아비새를 만류하며, 시므이의 저주 역시도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으로 여긴 것입니다(9-13절). 이 모든 것은 다윗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결과로서, 그의 보다 성숙해진 신앙의 일면을 다시 보여줍니다.
16:15-23은 압살롬을 향한 후새의 거짓 충성 다짐과 압살롬의 다윗 후궁들과의 동침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 후새가 거짓으로 충성을 다짐하자, 그를 자기곁에 두어 모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의 모략에 따라 궁에 남아 있던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왕위 찬탈자들이 왕위 장악 표식의 하나로 전왕의 처접을 취하였던 당시 근동의 관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이 행위는 기본적 인륜을 파괴하고 하나님이 엄히 금하신 근친 상간의 율법(레18:7,8)을 정면으로 범한 중대한 범죄 행위로서 후새를 모사로 삼은 것과 함께, 그의 정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몰락할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이 행위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이 다윗의 처첩을 취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예언(12:11)이 성취된 것이기도 합니다.
17:1-23의 두 문단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일대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서 다윗을 죽이기 위한 아히도벨의 모략과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하기 위한, 후새의 역모략에서 후새가 승리한 사실을 보도합니다. 여기서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아히도벨이 베푼 모략은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중을 기하고자 했던 압살롬이 후새의 모략을 채택함으로써, 아히도벨의 모략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며(1-14절), 다윗은 후새가 보낸 밀사의 보고를 듣고 피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15-22절). 그리고 아히도벨은 자신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하자, 이번 반역이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임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살하게 됩니다(23절).
17:24-29은 압살롬의 다윗 추격과 요단 동편 세 사람의 다윗 선대에 대하여 보도합니다. 다윗은 후새의 첩보 제공으로 말미암아 일단 급박한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압살롬의 추격으로 또다시 위기를 맞아야 했습니다. 당시 다윗 진영은 압살롬이 이끈는 이스라엘군에 대항하여 싸우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일행은 황급한 도피로 인하여 당시 매우지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먹고 쓸 만한 물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에게 도움의 손길이 미치게 됩니다. 즉 암몬 족속으로 랍바 사람인 소비와 로데발 사람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다윗과 그 일행이 먹고 쓸 수 있는 물자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하여 왔으며, 또 어떻게 세 사람이 함께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왔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도피 중에 있는 다윗에게 여러 사람을 보내어 돕게 하시고, 이번에도 세 사람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 다윗 일행은 이들의 도움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압살롬의 이스라엘 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압살롬의 반역을 종식시킬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18:1-33의 세 문단은 다윗군이 압살롬의 반란군과의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마침내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사실을 보도합니다. 먼저 1-8절은 다윗군이 압살롬의 반란군과의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보도합니다. 여기에 보면, 다윗의 군대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다윗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싸울 것을 결의하는 등 하나로 단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당백으로 압살롬의 군대와 맞서 싸웠고, 마침내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9-18절은 압살롬의 비극적 최후에 대하여 보도하는데, 여기에 보면 압살롬이 죽음에 이른 데에는 그의 자랑거리였던 그의 긴 머리털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즉 압살롬은 전투에서 패하여 노새를 타고 도망를 하다가 그의 긴 머리털이 상수리 나무에 걸림으로써 노새만 빠져나가고, 그는 상수리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요압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특별히 압살롬이 나무에 달려 죽은 것은 그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을 상징하며(민16:29,30), 그 사싱이 구덩이에 던져지고 또 그 위에 돌무더기가 쌓인 것은 그가 반역자요,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였음을 상징하는 것으로써(수7:26 ; 8:29), 그의 죽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는지를 잘 나타내 줍니다. 마지막으로 19-33절은 다윗에게 발란군 토벌 소식이 전하여졌음을 보도합니다.
이상 제15-18장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던 다윗조차도 완전한 통치자가 되는 데 싶패하여 그 개인과 가문, 그리고 왕국에 시련을 초래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완전한 평화와 행복은 오직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복종하시고 만왕의 왕으로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통치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즈음하여 자신에게 닥친 모든 시련이 근본적으로는 신정 왕국의 왕으로서 신실치 못한 자신의 과거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식하고 참음으로써, 한 단계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시련이나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귀한 모범이 됩니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시련이 찾아올 때,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보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에 의한 것이라면, 회개하는 가운데 인내함으로써 한 단계 진일보하는 신앙 성숙의 계기로 삼아야 할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반역자 압살롬이 절대적으로 승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언약에 따라 다시금 회개하는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시고, 압살롬의 반역을 파하시려는 섭리를 진행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백성이 범죄하면 징계하시면서도, 회개하는 자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과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욕의 도구로 삼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7절과 8절을 보면, 압살롬이 얼마나 간교한 인물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는 자신의 사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까지 서슴없이 도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전에 암논을 살해할 때도 그러했듯이(13:20-29), 이번에도 4년 동안 은밀하게 반역을 준비하여 왔습니다. 특히 그는 이 기간 동안에 다윗에게 향해 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려 놓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모든 반역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반역을 위하여 헤브론으로 가고자 여호와의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다윗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반역을 위해 헤브론으로 가면서 그 구실을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위해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 한 것을 지키고자 한다고 하면, 다윗이 자신의 헤브론행 요청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압살롬의 음모를 까맣게 모르고 있던 다윗은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가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여 주었습니다(9절).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압살롬의 행동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라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까지 서슴지 않고 도용하는 사단의 모습(마4:6)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이 너무나 거룩하여 감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대신 '나의 주'라는 의미의 '아도나이'로 고쳐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압살롬은 자신의 음모를 은폐하고 하나님이 친히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자 자신의 부친인 다윗에 대하여 반역하기 위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사단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의의 수단으로 삼았던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사욕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다면, 그것ㄷ은 사단적인 행위입니다. 여러분,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성도라 이름하는 자들 중에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는 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하면서도 자신의 신실성을 보인다며,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교회에서의 자신의 고위 직분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과거 소위 '옷 로비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에서도 익히 본 바입니다. 당시 옷 로비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두 사람은 모두 어느 이름 있는 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모두 자신의 신실성을 입증한답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였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분명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조롱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하면 형사상 무거운 형벌을 받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그 이름을 더럽히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출20:7)? 그들은 압살롬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음은 물론, 성도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더욱 주의하며 삼가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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