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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과 전후에 있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단하면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위시한 바벨론 땅 바사 왕국의 포로되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 특히 그 나라의 수도였던 수산 도성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3일 동안 금식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말씀대로 바다까지 가르시기도 하신 등과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 그대로 믿으며 금식까지 하면서 목숨을 걸고 의지하며 간구한 것으로 단적으로 말해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신앙이었다는 것이며, 그와 함께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로 생생하게 응답하시고 강렬하게 예비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시대의 바사 왕국에서의 제 이인자이자 하나님께서 대적으로 삼으셨던 아말렉 족속 아각왕의 후손으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하만의 악독과 간계에 의해 당시 바벨론 땅 바사 왕국의 모든 유다인들이 말살당할 위기에서 죽지 않게 된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그러한 유다인들을 괴롭게 했던 온 지경의 이방 족속들을 거의 진멸하다시피 함에 있어 결정적인 관건이었고 역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순간에 있어, 곧 아무리 왕후라고 하더라도 왕의 부름이 없는데 안뜰을 넘어 왕을 찾아가면 왕의 감정에 따라 죽을 수도 있었던 때에 그러한 왕으로부터 30일 동안이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에스더는 세상적, 상식적, 확률적으로는 죽임 당할 가능성이 더욱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뿐 아니라 그 수산 도성의 대부분의 유다인들이 함께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후 목숨 걸고 왕을 찾아갔을 때 극적으로, 진정 결코 작지 않은 기적에 의해, 심지어는 가장 은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왕이 금규를 내밀면서 맞이했을 뿐 아니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에스더 왕비가 요청하면 주겠다고 말하기까지 된 순간에 있어, 참으로 그와 같이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역사에 있어..
다른 그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 구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 자체가 시대와 나라들에 의해 제한이나 한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사실상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정말 가능하고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음은 그러한 구주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 더 크시며 영원보다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래 본문에서의 에스더나 모르드개 등과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회막, 성전, 지성소,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멜기세덱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오늘날의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었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함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며, 더 나아가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들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이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들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었고 응답과 이적들도 셀 수 없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이며, 한편으로는 굳이 표현하자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모든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을 뛰어 넘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은 불가능인 것이고, 따지고 보면 기도의 응답 한 번까지도 불가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다르게 말해서 잘 통찰해 보면 원론적으로는 구약 시대에 있어서든 오늘날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든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는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만한 구원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고, 순간순간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실상 영생에 까지 이르는 것이고, 아래 본문을 전후해서 당시에 에스더 왕후가 누릴 수 있었던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 진정 공짜와 같은 이적이자 응답은 그 중에 지극히 일부인 것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은, 실상 그 어떤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실제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 곧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과 이치와 원리는 아래 본문 이후에 이어지는 말씀들에서의 최고의 타이밍에 그 바사 왕이 모르드개가 암살 음모를 고발하며 밝힌 궁중 일기의 내용을 읽게 됨과 함께 난데없이 모르드개가 존귀를 입게 됨에 있어서도, 또한 에스더 왕후가 마련한 잔치들과 함께 대적 하만이 순식간에 몰락하게 됨에 있어서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역전되어 유다인들이 죽게 된 위기가 완전하게 뒤바뀌어 그 대적들이 진멸케 되는 등과 같은 값없는 은혜와 기적적인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오늘날의 우리들이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실제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됨에 있어서도, 게다가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그로 인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이적과 복들 등을 이 세상에서도 생생히 누릴 수 있게 됨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세상 끝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을 제대로 분별하며 잘 통찰할 수 있게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이 땅에서의 여러 모양의 음행과 세속과 변질과 이단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 등의 문제들에 있어서도, 더군다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극렬한 대립 등과 같은 모든 갈등과 테러와 전쟁들 등에 있어서도 구주 예수님께서 말 그대로의 구원이 되심을, 곧 각성과 자복, 변화와 흥왕, 평화와 치유, 반전과 역전의 길과 방법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 되실 수 있고, 그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정말 그러한 십자가 구원이 그 이상으로 강력하고,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에 있어 직접적, 실질적 측면에서 불가능일 수가 없는 것이며, 필요하면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기적 이상의 일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얼마든지 누림과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감추고 반복하며 악용하는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이 아닌 제대로 각성하며 참회하고 돌이키면서 얼마나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느냐, 본질적으로는 어느 정도로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 긴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해 그와 같은 구주 예수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을 보이시며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사실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며, 근원적, 본질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누림들, 강렬함과 풍성함들에 있어서 다름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함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특히 아래 본문에서의 에스더나 모르드개 등과 같이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느냐가 실질적인 관건과 통로인 것이고, 실제로 가장 절실하고 순전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정도의 그러한 말씀의 신앙이 생각 이상으로 귀히 쓰이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4:14~1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0월 22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