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두 얼굴 최 건 차
요즘, 태국이 우리나라를 향하여 뜨거운 감자짓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들이 6‧25 전쟁 때 파병했던 우방이어서 그간 비자를 면제해 주면서 잘 대해주고 있는 터이다. 이런 관계로 우리도 태국으로 여행을 많이 가고 태국인들도 관광이며 취업 등으로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들의 다수가 체류 기간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 일부는 폭력과 마약밀반입 유통, 인신매매와 성매매 등으로 우리 사회의 시민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수가 무려 4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태국인들의 경우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체류자는 1만4천여 명이고, 불법체류자가 14만여 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 정부에서는 그대로 놔둘 수가 없어 일단 태국 정부에 협조와 시정을 요청한 바 있지만, 지금까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불체자들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외국인 범죄자들과 불법체류자들을 색출하여 추방하고 입국을 강화하고 있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하고 추방된 태국인들이 자기들만을 차별했다며 소동이다. 그들은 SNS를 통하여 한국 정부에 비난을 심하게 퍼부으며 한국제품 불매운동과 한국 관광객을 일절 받지 말고,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추방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에 태국 정부 관계자들도 이제는 한국이 필요 없다며, 중국과 일본으로 여행 가는 것이 더 좋다고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총리와 국방장관이 한국에 대하여 심한 망언을 쏟고 있어 외교적인 문제로 번지게 되는 양상이다.
방콕에서는 우리나라를 향하여 야단법석들이지만, 인천국제공항이나 제주국제공항의 출입국관리는 질서 있고 깨끗하고 신속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 반면에 태국의 유명 관광지와 호텔에서는 씀씀이가 좋고 신사적인 한국 관광객들이 오지 않고, 돈은 쓰지 않고 어지럽히기만 하는 중국인들로 경영이 어려워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여타 외국인 관광객들도 줄어들고, 시끄럽고 무질서한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다니며 온갖 행패를 부려대고 있어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있다가 추방되어 돌아온 자국민들이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주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는 성토로 방콕국제공항은 때아닌 시위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태국은 6‧25 전쟁 참전국이다. ‘리틀타이거’라는 지상군부대와 함정이며 수송기까지 보내주어, 16개 참전국 중 7번째 큰 규모의 군대를 파병해준 고마운 나라였다. 나는 카투사로 1965년 여름 경기도 운촌에 있는 미7사단 카이져 캠프에 잠시 가 있으면서 길 건너에 주둔해 있는 태국군 부대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들은 1296명의 전사자를 내고 1972년 6월 12일 본국으로 철수했다. 2007년 7월 다시 옛 태국군부대를 찾아보았다. 텅 빈 언덕 위에 세워진 태국군참전기념탑을 둘러보고 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을 추모하면서 ‘혈맹의 타일랜드’라는 우방 전적지에 관한 글를 섰다.
1960—70년대의 태국은 세계 미인대회에서 두 명의 미스유니버스를 배출하는 등 이미지가 괜찮았다. 하지만 태국은 이전 같지 않게, 마약유통과 총기사용 등으로 망가져 가는 모양새다. 나는 1956년 할리우드에서 옛 태국 왕실을 빗대어 제작한 뮤지컬 영화, 율부린너와 데보라카 주연의 ‘왕과 나(King and I)’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 또 1957년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 알렉 기네스와 윌리암 홀덴, 잭 혹킨스 그리고 일본인 하야가와 세슈가 열연한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도 태국 방콕이 떠올려지는 전쟁영화 명작이어서 요즘도 다시 보곤 한다.
1992년 1월 3일, 나는 방콕의 밤거리를 거닐다가 겪은 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수원 경목위원으로 태국에 단체여행을 갔을 때였다. 해군 UDT 출신의 절친한 이 목사와 방콕의 거리를 구경하자며 나섰다. 나 역시 왕년에 주먹을 좀 썼던 당수도 유단자이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력인지라, 둘이서 당당하고 의기차게 좀 위험하다는 방콕의 밤거리를 살펴보자며 투어에 나섰다. 조명이 화려한 상가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홀 내부가 훤히 비치는 카페가 있어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기로 했다. 아가씨 둘이서 컵에 부은 콜라를 가져다주면서 자기들도 마시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있던 유럽인들이 카운터에 항의를 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이에 계산하고 빨리 나가려는데 몸이 약간 휘청여 중심을 바로 잡으려고 애를 썼다. 콜라에 분명 무얼 넣은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고 어지러웠다. 계산서를 보니 콜라 두 잔에 아가씨들이 마신 것과 서비스 대라며 미화 200불을 내라는 것이다. 너무 비싸다고 하니 따라오라며 남자 둘이 나타나 주방 옆의 창고 같은 곳으로 우리를 밀쳐 넣었다. 다섯 명의 남자와 음산한 인상의 두목격인 중년 여인이 우리를 쏘아보며 차고 있는 전대를 풀어내라며 한 놈이 예리한 나이프를 들이댔다.
나는 경목증을 꺼내 Police Officer라는 부분을 보이며 우리는 미션경찰관(경목)이다. 우리가 당하면 같이 온 동료들이 너희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고 하니 수그러져 100불을 주고 나왔다. 이번 태국인들의 작태를 보면서 32년 전 방콕에서 당했던 사건이 떠올려진다. 이런 게 다 <방콕의 두 얼굴>인가 싶어 애증과 연민으로 씁쓸하다. 2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