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소식
스마트폰 어르신 모드, 이건 아니잖아요
올 초 화려하게 시작했던 페이스북의 런처는 결과를 놓고 보면 싱겁게 끝나버린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스마트폰 런처 이야기가 또 나온다. 이번에는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스마트폰 런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통신 3사와 더불어 스마트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용, 어린이용 UI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차로 SK텔레콤이 요금제의 개편과 함께 'T실버' 서비스를 발표했다. 실제 서비스는 9월30일부터 시작된다. KT와 LG유플러스도 곧 내놓을 계획이다.
T실버 서비스의 뼈대는 스마트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주로 쓰는 기능만 모아서 쉽게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런처에는 전화, 메시지, 카메라, 사진첩 등 기본적인 기능과 건강 관련 서비스들이 주로 등록된다. 따로 쓰는 앱을 설치하고 메뉴에 포함할 수도 있긴 하지만 기본 앱 위주로 쓰도록 꾸며져 있다. 보건복지부의 프로그램들이 들어가 꾸준히 건강 관련 정보를 업데이트해주는 것은 킬러 콘텐츠로 꼽을 만큼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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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T실버 모드 인터페이스. 보건복지부의 건강 콘텐츠가 앞으로 나와 있다.
스마트폰의 UI를 쉽게 만들자는 시도는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다. SK텔레콤은 자체적으로 'T간편모드'를 넣었고 삼성전자는 '이지모드', 팬택은 '심플모드' 등의 런처를 제공해 왔다. KT도 시도한 적 있다. 공통적인 특징은 큼직한 버튼 위주로 단순한 기본 기능만 넣은 UI였다. 제조사와 통신사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것까지 더하면 비슷하지만 다른 런처가 최대 3개까지 설치되는 제품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나온 것들 중 뭐 하나 딱히 성공한 건 없다. 여전히 스마트폰은 어렵다는 인식과 쓰는 기능만 쓰는 사람들, 그리고 더 많아지는 기능들이 묘하게 반복되고 있다. 특히 국내 이용자 대부분이 선택하는 안드로이드는 사실 쓰기 쉽지 않은 운영체제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IT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특히 유행이 너무 빠르고 전국적으로 획일화되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스마트폰도 그렇다. 아직은 폴더나 슬라이드 같은 형태의 작고 가벼우면서 전화와 메시지만 되는 피처폰을 원하는 이들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등 떠밀려 넘어온 노인들이 많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피처폰은 이미 씨가 말라 버렸다.
필요성보다도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선택하는 50·60대도 겉으로는 자식들에게 별로 좋은 것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속내는 좋은 제품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들에게 ‘효도폰’ 같은 이름의 기능 빠진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 거기에 피처폰처럼 보이는 UI를 설치하라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이들을 위한다고 ‘실버폰’이니 ‘어르신UI’니 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처럼 보인다. 필요 없어도 쿼드코어에 풀HD 디스플레이 같은 하드웨어를 쓸 것을 기업들도, 또 이용자 스스로도 바라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런 것 필요 없어’, ‘이것만 쓰면 돼’라고 한정지어 말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이다. 풀HD 디스플레이, 더 빠른 하드웨어, 새로운 기능들은 아무리 나이 들어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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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이전에 내놓았던 'T간편모드(왼쪽)'과 팬택의 '심플모드'도 나왔지만 그리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돌아보면 중간 다리가 필요했다. 삼성전자가 최근에 내놓은 '갤럭시골든'같은 제품이 대안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노키아의 '아샤'처럼 피처폰과 스마트폰의 중간 과정에서 메시징 기능을 더하고 간단한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제품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그것도 최신 제품이 아니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지금은 이도 저도 어렵게 됐다.
필요해서 쓰는 이들 외에 갖고 싶어서 구입한, 카카오톡 주고받으려고 스마트폰을 구입한 어른들은 사실 주변에 ‘나도 스마트폰 쓴다’고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크다. 이들에게 실버폰이나 쉽지만 아주 밋밋한 화면을 쓰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실버 UI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형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배우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LG전자 '와인폰'이 대박을 쳤던 적이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어나는 속도에서도 와인폰은 시리즈를 더하며 인기를 끌었다. 결국 지금은 LG전자가 모든 역량을 안드로이드폰에 쏟기로 하면서 사라지긴 했지만 와인폰의 성공을 보면 노년층의 수요가 뭔지 알 수 있다.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건 큰 글자나 쉬운 화면이다.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와인폰을 돌아보면 기존에 나오던 휴대폰들과 메뉴 구성은 거의 똑같다. 다만 글자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고 자주 찾는 기능은 아예 화면 아래에 하드웨어 버튼으로 두었다. 쓰고 싶은데 안에 숨겨져 있어 잘 쓰지 못하는 기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앞에 끌어다 놓았느냐는 것이 성공 비결이었지, 노인들을 위한 별도의 UI를 만든 게 인기를 끌었던 건 아니다.
요컨대, 조금 더 스마트폰처럼 보이는 UI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는 얘기다. 어른들을 위한 UI를 개발하되 디자인에 대한 고려는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고유의 스마트폰 UI를 더 쓰기 쉽게 가다듬고 글꼴 크기나 화면 배치를 보기 좋게 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필요한 기능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은 제조사와 통신사가 욕심을 덜 부리면 된다. 아무 것도 깔지 않은 새 스마트폰도 앱 서랍을 열었을 때 30~40개씩 깔려 나오는 프리로드 앱들이 스마트폰을 더 어렵게 하는 요소다.
자식된 입장에서도 실버UI나 이지UI들을 보면 '이런 것만 꺼내 놓을 것 같으면 왜 스마트폰을 쓰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앱도 새로 깔아서 쓰고 그걸로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들으셨으면 좋겠다. 그게 그렇게 무리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쉽게 배울 수 있는 창구가 없어서 못하는 쪽이 많다. 제조사건 통신사건, 혹은 지방자치단체건 어떤 창구로라도 스마트폰 교육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안드로이드의 UI를 해치지 않으면서 기능을 쉽게 만든 갤럭시 골든, 하지만 갤럭시S4 등으로 높아진 눈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는 법 없다. "노인네가 뭘 그런 걸 써"라고 말하지 말자는 얘기다. 외산폰이나 저가폰을 싹 말라죽이고 플래그십 스마트폰만 남긴 것이 국내 시장의 색깔이고 특성이라면, 어르신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 뭘 더 만들기보다 누구나 쓰기 쉬운 인터페이스에 대해 고민하고 그마저도 어려운 이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UI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것도 아니다. UI는 누구에게나 쉬울수록 좋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국민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창출하자는 국가운영전략이 정부 3.0”이라며 “복지 정보에 대한 혜택을 충분히 누리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이번 협업은 정부 3.0 구현을 위한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해 보자. ‘이것만 보면 된다’가 아니라 ‘이것도 보고 다른 것들도 더 찾아서 보라’고 하는 것이 계층별, 세대별 정보 격차를 줄이는 지름길이 아닐까.
최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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