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관한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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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손 / 유홍준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시안 (2004년 가을호)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 이성복
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심에는 사천 원 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받을랩니다' 기어코 돌려 주셨다. 아, 그걸 점심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다거나 언짢은 기색은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시집 -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2004년 열림원)
손을 씻는다 / 황지우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義手를 외투 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共同正犯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손1 / 강해림
오래된 잡지 흑백 사진 속에서 깡마른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온통 굵은 주름으로 결박해 놓은
고사목 같다
손가락 사이 담배꽁초가 타들어가고 있다 빈 속의 手心歌가 자욱하다 마른 동굴 같은 저 속이 쓰디쓰겠다
마디마다 옹이가 있고 툭툭 불거진 힘줄 버팅기는 힘으로 박혀있는 손톱은 흙빛이다
일편단심, 흙의 경건만 파고들다 뭉퉁해진 무지렁이
의 쟁기 닮은 한 모금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온순해지고 사나워지는 제 몸의 들숨 날숨에 대해 나이테에 대해 골몰하는 손의 표정
결박의 시간이 역광이어서 더욱 선명하다
현대시 (2006년 7월호)
손을 펴라 / 박노해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 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쥐고는 흐뭇해 합니다.
그런데 쌀을 가득 움켜쥔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봐도
그 자루 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서 놓아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슬프게도
원숭이는 한줌의 쌀을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한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인들에게 생포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움켜쥔 손을 펴라.
한 번 크게 놓아 버려라
저린 손 / 고영민
괜히 하루가 울쩍한 날엔
한 선배의 농담을 떠 올리며 웃네
자기 손으로 자위를 하면
별 느낌이 없어
남의 손 하나를 잠깐 빌렸지
남의 손이라는 것이
내 손마디 하나를 엉덩이 밑, 깊숙이 집어넣고
깔고 있다 보면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이 내 손 같지 않을 때 꺼낸
그 저린 손
살리기 위해
내 멀쩡한 손마디를 잠깐 죽였지
오늘도 너는 펄펄 살아있다고
저린 내 손마디가 산 나를 절절히 위로하더군
내 손을 쳐버리고 남의 손이 되어 움켜쥔
이 생생하고 뜨거운 순간
그 감각 참, 죽여주더군
구석구석이 다 살아나더군
자네도 그 손,
꼭 한번 죽여 봐
목수의 손 / 정일근
태풍에 무너진 담을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가 많은 목수였다. 일이 굼떴다. 답답해서 일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못 하나를 박았다. 늙은 목수는 자신의 온기가 나무에게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을 박았다. 그 때 목수의 손이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구나. 생각해보니 나사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 / 이기인
보육원 자원봉사자가 빨래를 너는 동안
끊어진 고구마줄기처럼 더 이상 길을 걷지 않는 아이가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흘린다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들이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진다
아이들은 그네의 쇠사슬 부분을 꼭 붙들고 앞 뒤로 흔들거린다
아이가 찬 공이 자원봉사자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들의 빨랫감이 점점 많아져서 제비처럼 빨랫줄을 가득 메운다
빨래집게가 점점 삭고 있다
현대시 (2005년 9월호)
왼손의 쓸모 / 김나영
보통 때는 잘 모른다.
땅에 돈 떨어진 것 발견했을 때
내가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들어 놓을 때
참다 참다 말 안 듣는 자식 등짝 몇 대 후려 칠 때
망설일 것 없이 왼손이 스프링처럼 확 튀어 나간다.
아버지 앞에서 오른 손 부들부들 떨며 숟가락질 배운 탓에 ㄱ, ㄴ, ㄷ,… 오른 손 덜덜 떨며 완곡하게 구부려 쓴 탓에 지금은 오른 손으로 글을 쓰고 오른 손으로 밥 먹고 살지만
위기가 닥칠 때 맨손으로 버티는 것이 왼손의 근성이다.
유년 시절 한 봉지의 과자를 훔치던 손이 성공했더라면
어느 하산 길 왼손이 나무뿌리 부여잡고 피 흘려주지 않았더라면 내 생의 지도는 극도로 우회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른 손은 왼손의 쓸모를 수시로 빌려 쓰고 있다.
바느질 할 때, 돈 셀 때, 생선 지느러미 가위질 할 때, 친정 이불장 사이에 봉투 찔러 놓고 올 때
왼손이라야 더 날렵하게 끝을 낸다.
상처의 칼집인 왼손이
생활의 현장 속으로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십 년 넘게 교육 한번 받지 않은 왼손이
시집 『왼손의 쓸모』(2006년 천년의시작)
손 / 마경덕
일찍이 죄 많은 손이었다. 소금자루처럼 무거운 등에 업힌 막내, 엄마 몰래 동생을 꼬집던 죄와 함께 자란 손, 개를 키워 개장수에게 팔고 목줄 끊고 도망쳐온 개를 쇠줄로 묶어 돌려보냈다. 저를 팔아 넘긴 주인에게 돌아와 꼬리 치며 얼굴을 핥던 똥개. 끌려가며 찔끔찔끔 오줌도 지렸다. “내 다시 개를 키우면 개새끼다.” 다짐한 개만도 못한 손 다시 개를 먹이고 배 떨어진 강아지를 내다 팔았다.
개 패듯 여편네를 두드리고 밤새 화투짝을 쥐고 놀던 옆집 최씨, 집 한 채 말아먹고 시퍼런 작두로 엄지 하나 찍어내고, 다시 손가락 네 개에 화투를 끼우고 노름판에 떴단다. 다들 ‘개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지하철 손잡이가 꺼림칙하다. 별의별 손이 스쳐갔을 손고리에 선뜻 맘이 닿지 않는다. 먹지처럼 까만, 죄 지은 손이 두려워하는 게 고작 지하철 손잡이라니!
웹진 <문장> 5월호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글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손이 무슨 죄가 있다고
시키는건 머리인데
가끔은 손이 주범일때
도 있지만 ♡
머리가 시켜도 안 하는 손도 있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