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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 죽은 넋이 구천을 떠돌다
이제는 돌아와 두견화가 되었네
억겁을 울음으로 온 하늘을 적시고
피울음 한 되어 빨갛게 익었네
슬픈들 어이하리 죽은 넋이야 아 ?
앞 마을 산자락을 빨갛게 물들였네
귀촉도 죽은 넋이 구천을 떠돌다
이제는 돌아와 두견화가 되었네
귀촉도 죽은 넋이 구천을 떠돌다
이제는 돌아와 산딸기가 되었네
억겁을 설움으로 온 하늘을 뒤덮고
수줍어 숨어서 빨갛게 익었네
서러운들 어이하리 죽은 넋이야 아 ?
한여름 복더위에 까맣게 타버렸네
귀촉도 죽은 넋이 구천을 떠돌다
이제는 돌아와 산딸기가 되었네
귀촉도 작시 : 고진숙 작곡 : 김규환 노래 : Ten.김영환
김해윤-그와 나는 감옥 안에서 만났다. 그러니까 그와 내가 긴급조치 위반이라는 이름으로 서대문 구치소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깨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춥고 으스스하던 어느 겨울날 그가 내 감방의 근처에 나타난 그 시간부터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고, 그 또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오래 전부터나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반가와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그 반가운 만남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변함이 없이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한 중량급 미결수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라벨과는 달리 그는 마치 아가씨와 같이 희고 곱다란 얼굴과 굴절없이 온 몸에 흐르는 편안하고 다정한 미소로 그 깊은 죽음의 집안에서도 남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는 인상깊은 청년이었다. 거기에다가 그의 사귐성이란 보통이 아니었으니, 반정부 사범이라면 누구나 막론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던 교만한 옥졸들까지도 그를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으며, 드디어는 은근히 그를 도와주는 사람까지 그들 속에서 자청하고 나서게 되었고, 그 바람에 그는 수감된 지 두어 주간도 지나기 전에 그 자신보다도 거의 한 해나 먼저 들어와 있던 나를 도와줄 수 있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여 도운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옥방 안을 수색당하면서도 머리에 떠오르는 절실한 생각들을 놓치기가 안타까워서 그것들 중의 한 두어 줄이나마 성경의 갈피 안에 못으로 눌어 써대고 있던 나에게 어느날 그가 사람을 시켜서 볼펜의 심지 한 개를 보내준 사실이다.
물론 그가 볼펜 심지를 보내준 이유는 나더러 그것으로 시를 쓰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몇 편의 시를 그 볼펜 심지로 휴지조각에 옮겨서 그에게 건네주었으며, 나중에 내가 출옥하여 낸 옥중시집인 『북치는 앉은뱅이』속에 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도움으로 감시의 눈을 피하여 시를 도둑질하듯이 옮겨적던 그 동안에 내가 그에게서 놀라운 점 한 가지를 또다시 발견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닌 뛰어난 암기력과 뛰어난 시낭송의 능력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내가 몰래 시를 써서 그의 손으로 건내주자마자 그는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나의 시들을 줄줄이 외우더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내 기억에 뚜렷이 떠오르는 일이지만, 그의 감방이 마침 내 감방에서 대여섯 개의 감방 건너에 있었으므로 그가 뺑끼통 위에 올라가서 철창에 입을 대고 목소리를 높혀서 시를 낭송하는 것을 나는 여러차례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의 뜨거운 목소리는 그 시를 쓴 장본인인 나의 가슴을 오히려 뜨겁게 덥혀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그때 그가 자주 외우던 「오시는구나 그대 마른 풀 밟고」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그는 미처 내가 짐작하지도 못했던 정감까지도 적재적소에 보태어 넣은 다음에 감옥 안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쟁쟁한 목소리로 아침 저녁 소리높혀 외우고 또 외웠으니, 그가 그렇게 시를 외우던 시간이면 감옥은 감옥이 아니라 갑자기 시의 세상이 되어진 것 같아서 나는 혼자 벽에 기대어 낮아서 눈시울을 붉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아, 그 매서운 겨울 바람이 옥벽에 몰아치던 날 밤에 혼자 일어서서 시를 외우던 그. 그는 분명히 그 어둠의 나라의 잠을 깨우는 뜨거운 시인이었다.
그는 그렇게 그 겨울 내내 철창에 입을 대고 시를 외웠고 그리고 목청껏 소리질러 세상의 죄를 심판했다. 불의의 힘을 이 땅에서 내몰기 위한 싸움은 그 감옥 안에서도 치열하게 계속되었으며, 그 싸움에 그 자신이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소위 말하여 '옥중투쟁'. 이 일에 그는 서슴없이 앞장섰으며, 한 겨울을 넘기고 봄이 올 때까지 그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감옥 안의 동지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연락을 취하고, 혹은 지휘하고, 혹은 명쾌하게 수습하면서 그 안에서도 우리 모두가 살아있음을 바깥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였고, 혹은 무자비한 옥졸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까지 단식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철창을 긁기를 하루도 쉬지 않았으니, 그때 그 감옥안의 동지들 사이에서 '우리 해윤이'의 인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우리의 해윤이는 그 참담한 감옥 안의 싸움 속에서도, 참으로 공연히 두겹 세겹으로 감시받고 또한 남보다도 더욱 더 격리당하며 못죽어서 목숨을 이어가는 나를 위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것 저것 염려해 주기를 제 일처럼 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그 고통스러운 옥살이의 아픔을 가끔씩 잊도록 해주었음은, 그가 본래 남에 대한 정이 깊고 또한 자상한 사람이기도 한 탓이겠지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천성이 모든 삶을 몸을 던져 사랑함에 있음이 아니겠는가.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나 나나 똑같이 극한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온 얼굴에 맑은 미소를 띠고 내 몸과 마음을 염려해 줄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심지어는 겨우 10분도 다 못되는 운동시간에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옥졸들을 따돌리고 사형집행장 부근의 담벼랑 밑에서 조그만 '금잔화'한 뿌리를 뽑아다가 식기를 화분삼아 심어서 내게 보내주던 그. 그 어둡고 지루하던 모든 날들의 금잔화는 진실로 내 옥방에서 내 쓰디쓴 눈물방울들을 받아마시며 자라나던 그 작고 희뿌연 꽃잎파리들이 아니라, 덜커덕 덜커덕 감방문을 따는 소리들에 이어서 아침세수를 핑계삼아 내 감방 앞으로 달려와서는 마냥 반가와서 어쩔줄 모르는 젊은이인 우리 해윤이었다.
이런 우리의 해윤이와 내가 헤어지게 된 것은 극한적인 옥중투쟁의 이유로 우리 동지들 대부분이 전국의 여러 감옥으로 산산이 흩어져야 할 운명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약 1년 넘도록 어느 시골의 산속에 있는 감옥에 옮겨져서 깊은 병이 들어 거의다 죽은 몸으로 다시 영등포 감옥으로 실려왔고, 이어서 병원생활까지 한 끝에 다시 또 감옥 안의 '병사'라는 곳으로 들어가서 갇혀있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또 우리의 해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감옥에 이미 먼저 와 있던 그가 내 소식을 듣고 내가 누워있던 병사에 접근하여 내 감방의 뺑끼통 쪽에서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예의 그 다정한 미소와 함께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는 역시 자유롭게 손을 잡고 만날 수 없었지만, 눈만 가지고도 길고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서대문 감옥시절보다도 훨씬 단련되어 보였다.
우리가 나란히 출감하여 세상을 충분히 익히기도 전에 10.26에 이어서 5.18이 났으니까, 그것은 참으로 숨돌릴 겨를도 없는 시국의 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윤이는 세상속에서도 남보다 앞서 있었다. 이미 감옥경험이 있다는 젊은이들이 사사로운 자리에 앉으면 으레히 '별'을 달았다는 이력을 가지고 은근히 으시대기나 하는 틈에, 그는 광주대학살의 한을 이기지 못한 몸 하나로 어디론가 소식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무 말 없이 몸을 숨겼다 할지라도 그가 간 곳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 치과대학생이며 학생운동가인 영환이가 아니라, 일당 3천원을 받는 단순노동자였다.
꼭두새벽 졸음에 절은 두 눈을 비비며
나는 이제 노동자야
길고 긴 지난 시절
룸펜 인텔리가 아니야
일당 삼천원 후끼질하며
조금은 만족하고 그래도 괴로워라
덜 깬 잠속에서 날마다 흔들리는
생각들을 붙들어 둘 수만 있다면
그래 부셔버려야지
드디어 그는 감옥이라는 용광로에서 갓 나온 굳은 쇠가 되어 눌림받는 형제들의 삶의 현장으로 떠났다. 위에 인용한 그의 시 「성수동」의 한 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그가 아무도 모르게 그의 몸을 스스로 옮긴 것은 분명히 하나의 소리높고 당당한 선언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비로소 개인적인 삶의 형식과 이념 사이의 갈등 및 자기연민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지나간 것들과의 결별을 통하여 새롭게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지나간 것들과의 결별을 통하여 새롭게 다가서는 기쁨의 세계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반복할 필요도 없이 '아직은 결코 우리라 부르기를 유보한' 노동현장의 형제들과'거친 악수를 나누며'날마다 거듭하여 다짐하는 새날에 대한 믿음이 더욱 그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명실공히 노동자가 되었고, 수단으로서의 노동자가 아닌 삶으로서의 노동자임을 자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의 마음에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구라인딩 뻬빠질'을 잘하는 숙련공이 되기 위하여 밤낫없이 현장에서 일할 무렵에 나는 몇 번인가 우연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의 굳은살 박힌 손바닥에서 그 당시의 그의 삶을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단지 그 한 사람 뿐만이 아닌, 그와 비슷한 입장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무수한 젊은이들의 크고 깊이 있는 삶을 나는 그를 통하여 알고 또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반면에 또 나는 그가 제 손으로 ' 룸펜 인텔리'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노동자가 된 대신에, 그의 보람있고 참돈 삶을 '시'라는 형식의 글을 통하여 한 줄 한 줄 기록하고 있는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이유는 내가 그의 삶을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의 감옥시절에 보여준 시인적인 기질에 대하여 잠깐 잊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의 하나로 노동자가 되었고, 노동현장에서 진짜 노동자가 되어 여러 햇수를 일해옴으로써, 비로소 피상적으로나 관념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세상의 주인의 실체를 삶을 통하여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참으로 전날의 흰 손의 그가 아니었으며, 그 흰손이 차마 닿지 못하는 곳을 향하여 발만 구르며 안타까와하던 수많은 목소리 큰 벗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저만치서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여느 젊은이들과는 다른 젊은이요, 여느 시인들과는 다른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느 시인들이 시라고 하는 사물 자체에 쩔쩔 매는 꼴을 우습게 보면서 한 마디로 이렇게 선언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내 앞서 나아간다
먼저 흙손 들고
저 벌판으로 나아간다
지금은 서러우나
결단코 외로울 수 없는 이 길
개의치 않으리
모진 풍파 먹구름
다가오는 한낮은
모두가 사라져 버려
숨결조차 스며드는 때
늦은 밤 첫발 떼며
어둔 산길을 돌아간다
나아가는 것은 낮추는 것
가라앉아 부르던 노래
너 시여 살아오라
땀으로 피로 틈틈 새새
죽음의 냄새 절은 모습이 되어
강철이 되고
차돌이 되고
끝내는 도처에 흘러가는
물살이 되어오라
미처 추스르지 못하는
내 삶, 때로
내가 감당치 못할 날이 온다 해도
시여 내가 앞서 나아간다
먼저 흙발 딛고
-「따라오라 시여」
이렇게, 그 어두운 죽음의 집에서 선배 시인에게 금잔화 한 뿌리의 사랑을 바치던 우리의 해윤이는 학생운동가에서 기층노동자로, 기층노동자에서 노동운동가로, 그리고 노동운동가에서 시인으로 성장했다. 오직 그에게는 세상을 통하여 자신을 달구고, 자신을 통하여 세상을 달구는 일밖에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우리의 해윤이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막연히 그 굳은 살 박힌 빈 손이 아닌, 그와 그의 새로운 벗들이 함께 부른 '일의 노래'를 꼼꼼히 적은 한 보따리의 원고를 끼고 그는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의 그 다정한 미소를 띠고, 혹은 반짝이는 영리함과 투지가 넘치는 그 잘생긴 얼굴로 그는 우리 곁에 나타났다.
그가 가지고 돌아온 시의 원고들을 묶어서 '시인사'에서 시집을 낸다니까, 나는 그를 살붙이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선배의 입장에서 그저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하여튼 나는, 그의 이 첫 시집에 실린 시들이 앞으로 그의 굴곡있고 변화무쌍한 삶에 늘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밑바탕이 되어 주고, 더 나아사서는 알게 모르게 이 세상의 두꺼운 어둠을 내모는 일에 누룩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덧붙여서 운동가로서의 삶이나 시인으로서의 삶에 조금도 구김살없는 큰 기쁨만 있기를 바란다.
해윤아, 용기를 내라. 세상이 다 네 편에 서리라
출처: 김영환 의원 홈페이지
첫댓글 배부를 진수성찬보다 배고픈 맨 보리밥 한 덩이를 좋게여긴 아름다운 삶
행동으로 보여주는 따듯한 사랑과 배려 이런 인생 길 본받아 산다면 세상 삭막하고 어둡고 춥지 않으리.
황금만능시대 저축은 돈보다 중요한 옳바른 품성을 저축하는것.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동깊게 잘 보았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