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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자불여금(來者不如今)
장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는 뜻이다.
來 : 올 래(人/6)
者 : 놈 자(耂/4)
不 : 아니 불(一/3)
如 : 같을 여(女/3)
今 : 이제 금(人/2)
鳥獸哀鳴海嶽嚬
새와 짐승은 슬피 울고 바다와 산은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이 나라는 속절없이 망해 버렸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해 보니
難作人間識字人
글 배운 선비노릇하기 참으로 어렵구나.
구한말 꼿꼿한 선비정신의 상징 매천 황현이 일본에 국권(國權)을 뺏기자 자결에 임해 지은 절명시(絶命詩)다.
그의 죽음은 일제의 침략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힘의 한계를 깊게 느꼈고, 그로써 울분과 자괴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쌀 한 톨의 국록(國祿)도 받은 적 없는 초야의 포의(布衣)였던 그는 망국에 대해 죽음으로써 항거했던 것이다.
매천은 맹자가 말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곧 사단(四端) 가운데 일본과 관련해 ‘의, 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하겠다.
일본을 향해선 일본인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라는 정의감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촉구했고, 우리 스스로에겐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구별해 떨쳐 일어날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실천 의지를 당부한 셈이다.
2월 8일은 2·8독립선언의 날이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학생들은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한국 청년들의 의기를 청사에 떨쳤다. 3·1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도 학생들은 물러섬 없이 불의에 항거했다. 개인의 성장을 위한 배움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몸을 던져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를 개척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청춘의 가능성을 높게 여겨, “젊은 사람은 두려우니라. 어찌 장래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매천의 애국 단심(丹心)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좌전(左傳)은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死而不朽).”
옳은 말이다. 격동의 한반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역사의 거울’이다.
패기와 노련미의 조화
“후배는 두렵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실려 있는 말로 원문은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이다. “후배는 두렵다. 그들의 미래가 지금의 우리보다 못할지 어찌 알겠는가?”
즉, 당장 볼 때 후배들이 서툴고 모자라게 보인다 해서 결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잠재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강의 뒷물결은 앞 물결을 재촉하고, 세상의 새 사람은 옛 사람을 쫓는다는 석시현문(昔時賢文)의 글도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고, 어느 순간 그들 역시 순식간에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대체되고 만다는 것이다. 마치 큰 강물이 도도히 흘러 앞에 있는 물결이 도저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모양과 같다.
당나라 후기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의 시 “오동나무 꽃 가득한 산길에, 어린 봉황이 늙은 봉황보다 청아한 소리를 내는구나(桐花萬里丹山路 雛鳳淸於老鳳聲)”도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아름답다는 것을 노래한다.
하지만 고전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위험을 경고하는 글들도 있다. 한비자(韓非子)에 실려 있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다.
어느 해 봄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大夫) 습붕을 대동하고 고죽국을 정벌하러 떠났다. 전쟁을 끝낸 군대가 귀국길 산 속에서 지름길을 찾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러자 관중이,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며 즉시 늙은 말 한마리를 풀어 놓았다. 말의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돼 큰길이 나타났고 군대는 곤경을 벗어났다.
또 얼마 후 산길을 행군하다가 이번에는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리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흙이 한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과 습붕처럼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도 자신이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어리석어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한비자는 성현의 지혜에 대해 말했지만, 소위 젊은 지식인들이 나이든 선배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경륜으로 부터 배우려하지 않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소학(小學)에는 “선배가 하는 일은 치밀하여 빠진 데가 없고, 후배가 하는 일은 빠뜨리는 것이 많아 엉성하다”라고 실려 있다. 후배가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경험이 주는 역량을 갖출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은 두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합쳐져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하이브리드의 시대다. 혼혈, 잡종이라는 뜻의 하이브리드는 조직의 운영에서도 적용된다.
선배들의 경험과 경륜, 그리고 후배의 참신성과 창의력이 하나로 합쳐질 때 조직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마치 체력과 패기의 신인과 경험과 노련함의 노장이 잘 조화된 스포츠 팀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내부지거(來不知去)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今(이제 금)은 ❶회의문자로 仐(금)의 본자(本字)이다. 세월이 흐르고 쌓여(合) 지금에 이르렀다는 뜻이 합(合)하여 지금, 이제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今자는 ‘이제’나 ‘오늘’, ‘곧’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今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今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알파벳의 A자 아래에 획이 그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口(입 구)자를 거꾸로 뒤집어 그린 것으로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전국시대 명문(銘文)에서도 今자는 ‘머금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본래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이제’나 ‘곧’, ‘현재’와 같은 시간적인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口(입 구)자가 더해진 含(머금을 함)자가 ‘머금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今(금)은 한자어(漢字語) 위에 사용하여 지금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이제, 지금 ②오늘 ③현대 ④곧, 바로 ⑤혹은(그렇지 아니하면), 만약(萬若) ⑥이, 이것 ⑦저(발어사)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옛 고(古), 예 석(昔), 어제 작(昨)이다. 용례로는 지금의 세대를 금대(今代), 올 겨울이나 올해 겨울을 금동(今冬), 지금까지를 금래(今來), 현재 왕위에 앉아 있는 임금을 금상(今上), 오늘 저녁을 금석(今夕), 이승이나 지금의 세상을 금세(今世), 오늘 아침을 금단(今旦), 오늘 밤을 금야(今夜),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임을 금여고(今如古), 지금 세상의 사람을 금인(今人), 오늘을 금천(今天), 이번을 금회(今回), 올해를 금년(今年), 오늘이나 내일 사이를 금명(今明), 이제나 방금이나 지금 막을 금방(今方), 이제나 방금이나 일이 진행되는 바로 그때를 금시(今時), 오늘이나 지금을 금일(今日), 이번을 금번(今番), 이번 주일을 금주(今週), 이제 또는 이 시간을 지금(只今), 어제와 오늘 또는 요즈음을 작금(昨今), 옛날과 지금을 고금(古今), 눈앞의 형편 아래 또는 바로 지금을 목금(目今), 바로 이제나 지금을 방금(方今), 이제까지나 아직도를 상금(尙今),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음을 일컫는 말을 금고일반(今古一般), 지금이 옛날보다 못함을 이르는 말을 금불여고(今不如古), 지금과 옛날을 비교할 때 차이가 매우 심하여 느껴지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금석지감(今昔之感), 어떤 일을 한 뒤에 이내 좋은 보람으로서 복을 누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금시발복(今時發福), 이제야 처음 봄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견(今時初見),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들음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문(今時初聞), 오늘 일을 일컫는 말을 금일지사(今日之事),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금시작비(今是昨非)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