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때였다. 0시를 지나서 15분이었다.
‘2군 사령관 박정희다’ 라는 호통소리가 들리면서 6관구 위병소의 문이 열렸다.
박정희 소장이 도착한 그 시간의 위병소에는 헌병과 위병과 무장군인들이 무리를 지어 경비하고 있었고,
6관구 사령부 장교 외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출입을 시키지 못하도록 6관구 사령관의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2군 사령관 박정희 소장의 앞길은 아무도 감히 막지 못했다. 겹겹이 둘러쳐진 철통같은 영문을 긴 헤드라이트를 끌며 유유히 6관구 사령부 내로 들어서는 지프차...
본의 아니게 연금 상태가 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기를 각오하고 권총을 빼들었던 6관구 내 혁명장교들은 이제 초조와 불안의 극한상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 박정희 장군이냐.
죽음의 골짜기에서 잃어버린 지휘관을 다시 찾은 부하들의 기쁨을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하랴.
박정희 장군은 6관구 참모장 김재춘 대령으로부터 그 동안의 경위를 자세히 보고받는다.
장도영 참모총장의 모든 부대 출동금지 명령과 그로 인하여 혁명군 부대의 운용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겼음을...
오랫동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면서 이윽고 박정희 장군은 입을 열었다.
“수고들 했소. 그런대 김대령, 그렇다면 출동 가능한 부대는 어느 부대가 되겠소?”
“현재로선 공수단과 해병대뿐입니다.”
김재춘 대령은 침통한 음성을 감추지 못한 채 망연자실 대답했다.
이 불리한 상황에서 박정희 장군은 어떻게 결정을 내릴 것인가. 혁명동지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정희 장군의 얼굴에 멎었다.
자휘관의 말 한마디에 오로지 혁명동지들의 운명이 모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 됐어.”
박정희 장군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그의 표정에는 추호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날, 최후의 한사람까지라도 그 1인이 남아 있는 한, 혁명은 기필코 성취되어야 한다고 격려하던 박정희 소장의 말이 동료들의 뇌리를 혜성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사태는 근본적으로 혁명군에 불리하도록 전개되어 가고 있는 양상이다.
혁명지휘소로 예정한 6관구 사령부는 헌병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혁명군으로 출동을 예정했던 행동부대들은 그들대로 장도영 장군의 출동금지명령과 박정희 장군의 출동명령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극한적인 혼돈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드디어 박정희 소장의 결단이 내려졌다.
“나 지금, 공수단과 해병대를 독려하러 떠나겠어. 남아 있는 장교들은 김재춘 참모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 6관구를 사수하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6관구 사령부를 떠나서 김포가도를 향해가는 박정희 장군...
(2) 박정희 장군이 훌쩍 떠나버린 6관구 사령부는 다시금 혁명장교들을 불안과 초조에 휩싸이게 한다.
6관구를 포위하고 있는 헌병들이 언제 다시 그들의 신변에 위협을 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혁명장교 전원이 6관구를 빠져나와 버리면 이는 지휘본부를 포기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박정희 장군이 다녀간 6관구 사령부는 실로 기대하기 어려웠던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종철 사령관의 비상소집령에 의하여 혁명군을 진압차 6관구로 달려왔던 장교들이 한 무리씩 떼를 지어, 혁명군에 가담함으로서 혁명장교들을 감동시키더니,
그 다음에는 혁명장교들을 체포키 위해 수사관 70여명을 인솔하고 6관구에 들이닥쳤던 이광선 대령이 혁명대열에 자진하여 참여하는 것이다.
이에는 6관구 참모장 김재춘 대령의 설득과 6관구 사령부를 홀연히 들렀던 박정희 장군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서 이미 혁명의 이념을 필연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편 혁명군 체포를 명받고 출동했던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이 6관구로 들어간 후 소식이 끊어지자 헌병감 조흥만 준장이 직접 6관구에 나타났다.
급기야 6관구 사령부의 주인인 서종철 사령관까지 들이닥쳤다.
혁명동지들은 그들에게 엎드려 협조를 간곡히 요청했다.
두 장군도 혁명이 일어남을 필연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드디어 6관구를 포위하고 있던 헌병들이 철수하기 시작했고, 조흥만, 서종철 두 장군의 든든한 협조 약속까지 받아내는 감격어린 순간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3)공수단은 언제든지 항공기상에서 야간 침투훈련을 할 수 있는 부대였다.
거사일인 16일의 하루 전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야간훈련을 하고 있었다.
도봉산 훈련부대로 작전명령을 변경하여 15일 낮에 훈련을 실시토록 되어 있었으며, 안성·이천·장호원 훈련부대는 16일 새벽 2시에 여의도 공항에 이륙하여 훈련에 임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15일 밤 10시 30분,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 이하 공수단의 혁명 장교들은 자기네들의 혁명계획이 누설된 것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일 아침 7시까지 일체의 훈련을 중지하고 부대를 장악하라.”
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으로부터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에게 일체의 출동을 금지하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이어서 박치옥 대령의 직속상관인 특전감 장호진 준장이, 장도영 장군의 특명으로 부대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들이닥쳤다.
사실상 박치옥 대령은 장도영 장군의 명령을 거절 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평소에 장도영 장군에게 신임이 두터웠고, 그만큼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깊었던 사이였던 것이다.
단장 박치옥 대령과 대대장 김제민 중령은 그야말로 진퇴유곡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도영 장군은 쉴 새 없이 출동금지의 확인전화를 걸어왔으며, 한쪽에서는 혁명동지들이 계속해서 출동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의 지휘를 책임진 영관급 장교들의 애매한 태도가 계속되어가자, 차지철 대위 등 피가 끓는 젊은 위관급 장교들은 터지는 분통을 참을 길이 없었다.
이때였다, 6관구를 출발한 박정희 소장이 감포가도를 줄곧 달려와 공수단에 도착한 것이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거냐, 동지들은 배반할 작정이냐?”
출동지연을 나무라는 박정희 소장의 노한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꽝꽝 공수단에 울러 퍼졌다.
공수단의 지휘급 혁명장교들은 그제서야 새로이 용기를 가다듬었다.
도봉산에 훈련차 나갔던 병력들이 들어왔다. 부대가 집결되고 서둘러 군장검열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공수단은 혁명계획에 입각하여 늦게나마 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10여 차례나 걸려온 장도영 장군의 출동금지 전화는 끝내는 무산되어 버린다.
그날 밤, 홀연히 공수단에 나타난 박정희 소장은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에게 병력출동을 독촉하고는,
그길로 해병대를 향하여 차를 몰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