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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태권브이가 기억나시는가. 2001.08.21.화요일
태권브이. 76년 여름 태권브이 1탄이 첨 나왔으니깐, 그러니까 깡통 로보트의 철이가, 이제는 출연 당시 자신 또래의 자식쉐이가 있는 아부지가 되어 있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을 만큼, 오래 전 일이다. 하.. 세월 정말 존나.. 빠르다. 그렇게 오래된 거라, 현재 스코어, 생각만큼 자료들이 팍팍 찾아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태권브이 복원을 위해 몇 달 째 온 천지를 헤집고 다니는 본 기자 아직도 원판 네가티브 필림을 찾진 못했지만, 그 와중에 도저히 본 기자만 알고 넘어가기엔 본 기자의 추억세포들이 너무도 아우성치는 자료들을 접하고, 독자제위께 중간보고 해야겠다 마음 묵어 이 기사를 쓴다. 본 기자의 대뇌 추억 세포들을 마구 자극했던
자료들이 무엇이냐. 본 기자가 이제부터 태권브이가
너거뜰 가슴에 얼매나 뚜렷하게 남아 있는지 깨닫게
해주께. 눈 크게 뜨고 잘 바바. 로보트 태권브이 제 1탄의 신문 광고. 이거 기억들 하시는가. 76년 당시 국민학교 여름방학에 맞춰 태권브이의 개봉을 알리는 광고로 나갔던 거다. 다른 자료들과는 다르게, 솔직히 본 기자 이 신문광고는 기억에 없다. 신문 광고를 보고 태권브이를 보러 가야겠다 결심했다는... 뭐 그런 종류의 기억이 없단 말이다. 생각해보면 국민학생들이 신문 보나. 그렇담, 이 광고들은 부모님을 상대로 하는 광고라고 봐야 하나. 하여튼, 일반대중에게 태권브이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린 인쇄물 자료되겠다. 그 이후로도 신문광고는 매 시리즈마다 꼬박꼬박 있었다.
대상이 국민학생이니 태권브이 시리즈는 전부 방학을 맞추어 개봉했었다. 그러니깐 76년 이후 전국의 대가리 피 안마른 아쉐이들은 모조리 방학 때마다 태권브이를 고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정식 신문광고 외에도 여러 종류의 홍보물에 태권브이가 등장했었는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주제가집도 있었다. 미원이 세계 45개국에 수출되었단다. 그랬나? 한국화재보험협회가 깡통로봇을 모델로 한 것도 졸라 재밌다. 하여간 당대의 기업들이 광고를 단 것으로, 당시 태권브이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부족허냐? 그럼 좋다. 이건 어떠냐.
그래, 책가방이다. 이거 보고 가심 안 벌렁 거리는 넘 있냐? 가방 색깔은 언제나 진청색 아님 검정. 가방 가슴팍에 새겨진 로보트 태권브이. 생각나냐. 손잡이는 가방 본체와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 손잡이를 들면 조금 움직이고, 가방 뒷면으론 어깨끈이 두 개 달려 있었다. 앞 쪽에 달린 딱정벌레 등딱지 같은 두 개의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그림이 그려진 앞 덮개를 열면, 이중으로 주머니가 있어 등쪽 큰 주머니엔 책과 공책, 앞의 보조 주머니엔 잡것들 - 잡것들이지만 실제론 교과서보다 훨씬 중요했던 딱지, 구슬, 새총, 껌종이, 병두껑, 연필 깍는 칼 등을 넣고 다녔다. 연필 깍는 칼은 학용품이라기보단, 여자애들 고무줄 절단에 보다 자주 활용되는 불한당의 무기였고. 그러고 보면, 가방 속에서 나오는 태권브이 그림 중 가장 큰 그림은 책받침에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책받침.
볼펜 깍지에다 몽땅연필 끼워 쓰라고 학교에서 장려하던 시절, 공책에 연필로 필기를 하려면 뒷장에 배겨나오지 않도록 사용되었던 바로 그 책받침. 요즘도 책받침 쓰나 몰라. 또, 이건 어떠냐.
헉. 이 놈은... 그렇다. 저학년 미술용품의 지존, 크레파스. 그 중에서도 크레파스 업계의 최강자, 왕자파스. 더구나 20색. 그 위에 대담하게 인쇄된 태권브이의 위용. 저 호쾌한 용트림. 오오.. 눈물이 날라 그런다. 크레파스는 우리들의 예술적 광기를 그 얼마나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가. 방 벽지에서부터, 방바닥, 담벼락, 달력 뒷장, 학교 책상... 샘솟는 예술혼을 동굴에 여기저기에 그려넣었던 크레마뇽인처럼 세상 온 천지를 캔버스로 여기게 했던 바로 그 예술도구. 기성세대들의 가혹한 핍박 속에서도 학교 화장실 등지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게 했던 바로 그 크레파스. 당시 왕자파스의 신문광고를 보면 담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색마다 태권브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 자, 이제 가방에서 나올 수 있는 마지막 종류의 놀이도구. 아래 자료를 보라. 흐흐.. 입가에 묘한 웃음을 웃는 너거뜰이 눈에 선다. 왼쪽은 조각맞추기 퍼즐이고 오른쪽은... 이거 뭐라 그러냐 씨바.. 하여간, 어렸을 적에 해본 넘덜 많을 거다. 그림에 보이는 숫자대로 따라서 선을 그어보면 그림이 나타나는 퍼즐. 자료제공: 장동일님 함 해보고 싶지? 그럼 그림을 누질러라. 보나스다. 프린트해서 놀면 되겠다. 부장한테 들키지 않게 몰래 잘해라. 괜시리 회사서버에 딴지일보 차단시키지 말고.
자료제공: 남상우님 기억들이 새록새록 허냐? 그럼, 이건 어떠냐. 새소년.‘소년중앙’,‘어깨동무’와 함께 3대 메이저 소년소녀 잡지. 이런 소년소녀 잡지들은 매달 별책부록으로 만화책이나 장난감을 줬었는데, 위 새소년 표지의 하단을 자세히 보면, 애독자 태권브이 시사회 초대 추첨권이란 문구가 보일거다. 당시 국민학생을 상대로 추첨 초대하는 시사회가 있었다는 사실, 놀랍다. 여기에 당첨된다는 것은 당시의 대가리 피 안마른 아쉐이들에게는, 오늘날 성인들이 체육복권 당첨되는 이상의 흥분을 안겨주었드랬다. 본 기자, 이런 일이 있으면 애독자엽서를 써서 추첨되길 하느님과 부처님과 공자님께 참으로 열나게 빌었었다. 동네마다, 평균 이상으로 토속적인 넘들이 꼭 한 두 명씩은 있곤 했는데 그 넘들은 으레 천지신령님을 찾았었고... 위와 같은 월간 소년소녀지에 매월 연재되거나, 혹은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던 태권브이 만화책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원본과는 또 다른 내용으로 각색된 경우가 많았다. 좌측에 보이는 건 그 이름도 빛나는‘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알 만한 넘덜언 다덜 알 것이다)’에서 출간한 태권브이 2탄의 만화본이고, 아래 보이는 책도 태권브이의 각색물을 많이 한 탓으로 태권브이의 원작자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김형배씨의 작품들이다. 김형배씨는 후에 <21세기 기사단>, <최후의 바탈리언> 같은 만화를 그림으로 국내 SF 만화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다.
자료제공: 장동일님 또 흔히 알고있는 바와는 달리, 태권브이 단행본을 그린 작가는 김형배씨 외에 차성진씨가 있다. 유독 김형배씨만 기억을 많이 하는 이유는 후에 차성진씨가 순정물 쪽으로 작품을 낸 까닭은 아닐까 한다. 아래는 차성진씨의 작품.
자료제공: 장동일님 여기까지 더듬어도 가심에 와 닿는게 없냐. 그럼, 넌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고, 날 기억이 없는 거다. 아무래도 84태권브이 세대에겐 쩜 생소하겠지만 그래도 재밌지 않냐?. 이외에도 무지 많은 자료들이 있었다만 여기까지만 하자. 이만 하면 충분할테니까.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담긴, LP와 테이프를 발견했을 때는, 그걸 실제 전축에 틀어놓고는, 어린 시절 손잡고 태권브이를 보러 같이 갔던 친구가 생각나 하루종일 멜랑꼴리하기도 했더랬다. 또, 영문까지 낀 여러 버전의 비디오를 수십 차례 다시 보면서, 수상한 옷차림으로 야산을 자주 다니는 훈이의 행동은 70년대 당시는 간첩으로 오인될만 했다는 걸.. 영희와 메리를 비교해보자면, 미니스커트 패션이라든가 헤어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메리가 압도적으로 섹쉬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아내기도 했고, 1편 세계태권도 대회에서 훈과 리처드 쇼가 대결하면서 보여주는 훈이의 태권도 동작 장면은 70년대의 기술수준으로 볼 때, 오늘날의 파이널판타지에 버금가는 엄청난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는 등 자료를 수집하면 할 수록, 본 기자 태권브이의 그 엄청난 매력을 너거뜰에게도 꼭 되돌려 주고 싶다. 태극기 못 그리는 건 용서되어도 태권브이 못 그리는 건 용서될 수 없는 시절에 국민학교를 다닌 본 기자, 지금도 태권브이 그려보라면 태권브이 대가리 정도는 스스쓱 한 큐에 그려낼 수 있다. 사실 본 기자와 동시대 인간들 중 아마 수 십만명이 이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꺼다. 한 세대 전체에게 그런 영향력을 발휘한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 또 있던가. 본기자, 이제 중간보고 마치고 다시 태권브이 자료 수집과 복원 프로젝트 하러 다시 길 떠난다. 조금만 더 기둘려 보시라. 니들도 본 기자와 같은 감동 먹을 날 멀지 않았응께. 태권브이는 반드시 복원된다.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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