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향 지음 l 황금부엉이 펴냄 l
한겨례신문 박미향 기자가 맛집 순례에 나섰다. 이태원과 삼청동, 동대문 등 서울시내 골목골목 숨겨진 맛집들을 화려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주인장들이 털어놓는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에 있다. 곱창을 즐기는 젊은 부부가 아예 곱창집을 차려버린 사연에서부터,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7080을 위한 공간을 만든 어느 중년 남성의 이야기까지....... 맛집은 4가지 테마로 나눴다. 맛보다 분위기가 더 끌리는 곳, 평범한 요리지만 그 곳에 가서 먹으면 더 맛있는 곳, 여럿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면서 먹기 좋은 곳, 이국의 정취와 맛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곳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① [홍기와 집] 유기농 감자로 끓인 감자탕, 쓰린 속 풀기 그만
젊은 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늘 명랑한 아내는 잔소리가 심한 남편에게 타박을 주기 시작한다. “세상 사람들은 머피와 사는 사람과 샐리와 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대. 그거 알아? 머피랑 사는 사람은 늘 세상일에 부정적이고 불평불만을 많이 해서 잘 되는 일이 없대. 그런데 샐리와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 긍정적이라서 일도 잘 풀린대. 당신은 머피와 사는 사람이야? 왜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지? 나는 샐리와 사는 사람이야 ” 아내의 말이 끝나자 영리한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럼 당신이 머피야? 나는 샐리고? ” 아내는 할 말을 잃는다.
세상에서 오롯이 나만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 주신 각자의 시간일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꾸릴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렸고, 그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도 있다. <홍기와집> 주인장은 머피와 살 뻔했지만 샐리를 선택한 시간들을 조용히 털어놓는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IMF 광풍에 남편이 쓰러지자 생활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에 500만 원을 빚내서 <재벌>이라는 죽 전문점을 열었다. 평소 아픈 이가 많았던 집안 내력 때문에 죽 하나는 자신 있었단다. 그녀의 정성은 그 집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또 다른 도전정신으로 <홍기와집>을 열게 되었다.
사실 고깃집만 즐비한 이 거리에서 감자탕은 색다른 맛이다. 특이한 간판 역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실하게 끈다. 진한 빨강 바탕에 멋들어지게 휘갈겨 쓴 ‘홍기와집’이라는 글자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멋진 디자인은 홍익대 주변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홍대 문화예술인 조합’ 소속 ‘No Name No Shop'팀 덕이다. 죽 전문점을 하면서 친해진 이들은 그 당시만 해도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디자이너들이었다. 마침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던 그들과 주인장의 손발이 맞아 함께 이 집을 만들게 된 것이다. 주인장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든 테이블과 전등, 화려한 간판과 소박한 실내 장식이 맛난 음식들과 묘하게 조화되어 빛이 난다.
이 집의 매력은 감자탕과 닭매운탕, 그리고 보쌈의 맛에 있다. 주인장이 밝히는 감자탕의 비법은 끓이는 시간에 있다. 시간이 짧으면 고기와 뼈가 떨어지지 않고, 길면 아예 뼈만 올라온다. 여기에 어릴 때부터 배운 어머니의 손맛과 주인장만의 비법으로 만든 양념을 넣어 아주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기농 감자와 국산 돼지고기라는 재료이다. 주인장이 감자를 가져오는 곳은 좀 특별난 곳이다. 주인장은 단양 ‘산위의 마을’에서 재배하는 감자를 가지고 온다. 그곳은 노동시인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형인 박기호 신부가 만든 참살이 운동단체 ‘예수살이공동체’가 활동하는 곳이다. 주인장 역시 열심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재료부터 특별한 감자탕이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보쌈 역시 서울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모든 보쌈들을 다 먹어 보고 준비한 것이다. 의외로 닭매운탕이 인기라는데, 너무 맵지도 달지도 않아서 좋다.
그녀는 자기 안에 지금과 같은 열정이 있는지 몰랐단다. 43세, 갑자기 몰아닥친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한 그녀의 선택이 또 다른 삶을 만들었다. 그녀는 말한다. 10대일 때는 지식을 받아먹고, 20대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30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40대는 30대 한 일중에 한 가지를 정해 풍성하게 만들고, 50대가 되면 그 열매는 거두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제 그 열매를 이웃들과 나누고 싶단다. 벽에 걸린 ‘소유로부터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 이란 커다란 글귀가 눈에 띈다. 샐리를 선택했지만 어느덧 자신이 샐리가 된 그녀, 그녀를 찾는 이들에게 맛과 행운을 선사하고 있다.
[위치] 마포구 서교동 (02-324-9858)
[영업] 오전 11시~저녁 11
[메뉴] 감자탕 중 2만2천원, 소 1만7천원 / 닭매운탕 중 2만2천원, 소 1만7천원
[강추] 속 풀기에 그만인 곳.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한 턱 쏠 때도 좋다.
② [부원식당] 잘게 쪼갠 얼음이 동동, 고운 면발 휘감아 입안에 쏘옥
둥글둥글 비행접시가 날아다닌다. 가제트 형사처럼 긴 팔을 쭉 뻗어 한 접시 잡는다. 이윽고 으드득 으드득 뜯어먹는다. 표면은 살짝 딱딱한 기운이 감돌고 노릇노릇 갈색으로 잘 익은 피부를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처럼 우아한 맛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온전히 녹두로만 만든 녹두전. 환상적인 맛에 가격까지 너무 싸서 먹으면서 실실 웃음이 난다.
낡은 벽과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넓게 열린 커다란 창, 그 너머로 한여름의 소란스런 열기가 전신줄을 타고 들어온다. 밤이 되어도 지구의 깊은 내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기운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주인장을 불러 조용히 냉면을 주문한다.
얼음 둥둥 떠다니는 작은 냉면 그릇은 순식간에 커다란 남극 대륙으로 변한다. 얼음을 잘게 쪼개고 젓가락으로 고운 면발을 휘감아 입 안에 쏙 넣는다. 남극을 먹는다. 얼음 사이로 살짝 살짝 보이는 달걀 조각은 펭귄을 닮았다. 그 펭귄도 입에 쏙 넣는다. 아~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돌려 알루미늄 새시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왁자지껄 시끄럽다.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린다. 남대문의 저녁은 이렇게 싸고 맛있는 <부원식당>의 냉면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40년 전에 생긴 이 집은 3대째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주인장은 제대 후 아내와 함께 가업을 이었다. 어지간한 것은 그의 아내가 모든 것을 관장하지만, 요리는 여전히 주인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비법을 손안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쳐 달라고 졸라도 안 된단다. 그래도 졸랐더니 살짝 귀띔하길, 냉면은 배합하는 비율이 예술이고 녹두전은 반죽할 때 들어가는 양념이 ‘아트’란다. 그동안 프랜차이즈체인을 내자고 제안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가족들 모두 크게 욕심내지 말자고 결의했단다.
음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다. 그 소박한 맛은 멀리 일본에까지 전해져 취재도 많이 해갔다. 이곳은 의자도 특이하다. 안주인이 개발한 의자는 앉으면 등받이가 허리까지만 오는데, 공간 활용성도 좋고 편안하다.
이 집에는 모든 것이 오래되었다. 오랜 역사, 오래된 손님들,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주인장과 함께 호흡하는 직원들, 세월만큼이나 남대문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대문 경기가 좋으면 이곳도 북적대고, 어려우면 이곳도 썰렁하다. 그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이 땅의 역사가 되었다. 한때 이곳은 노회찬 의원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버린 이곳은 낡아서 또 찾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심장이 쿵쿵 뛰는 일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과정이지만 이 집에서 녹두전 한 점, 시원한 냉면 한 젓가락으로 무더운 여름을 치유하면 다시 피가 돌고 가슴이 쾅쾅 뛰게 된다.
피가 돌게 하는 그 맛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주려는 이들이 간혹 포장을 해달라고 조른다. 주인장, 절대 안 된단다. 심지어 만삭인 아내가 정말 너무 먹고 싶어 한다며 간청하는 남편에게도 매몰차다. 냉면은 바로 먹지 않으면 금방 면이 불어서 제 맛을 잃어버린단다. 주인장의 철학이다.
새침한 처자들이여, 남자와 함께 이곳에 가 보라. 그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은 물론, 여느 아가씨와 달리 이런 곳을 알고 있는 당신을 특이한 매력의 소유자로 볼 것이다. 변화무쌍한 사랑의 기술은 냉면 위에 올려진 달걀처럼 완성을 위한 한 점이다.
[위치] 중구 명동(02-753-7728)
[영업] 오전 11시~오후 9시
[메뉴] 냉면류 5천원~5천5백원 / 닭무침 8천원 / 녹두전 2천5원
[강추] 그동안 우아한 곳에서 데이트를 했었다면 이번엔 별미로 냉면과 녹두전을 먹어보라. 털털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친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할아버지께 맛있는 냉면으로 효도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③ [새마을식당] 묵은 김치 딱 7분만 끓이는 ‘7분 김치찌개’
1900년대, 구부정하고 동그란 안경을 코에 걸쳐 쓴 쿠피어는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딸랑딸랑, 자전거에 맛있는 샌드위치와 우유를 싣고 안개가 자욱한 도시 빈의 허름한 동네를 향해 자전거 바퀴를 돌린다. 휙휙 가로수들이 지나가고 싸늘한 아침공기가 기분을 맑게 한다. 이윽고 도착한 작고 허름한 집. 쿠피어는 콜록콜록 폐결핵을 앓고 있는 친구의 여윈 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의사이자 보상관리 및 공장 안전책임자인 그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서두른다. 쿠피어는 정말 이 친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친구는 공장시설의 검사활동과 보상관리 책임자이다. 세계 최초로 공장 안전모를 발명해서 1912년에 미국 안전협회로부터 금메달까지 받았다. 하지만 결국 친구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쿠피어는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욱 친구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왜냐고?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히는 <변신>을 지은 작가, 프란츠 카프카였던 것이다.
가까운 친구 사이였지만 그가 그렇게 훌륭한 작가였다는 것을 몰랐다. 늘 소박하고 겸손했던 친구에게 그런 놀라운 면이 숨겨져 있었다니! 그가 자신의 친구라는 사실이 참 기뻤다.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 함께 거닐었던 빈의 거리 등 그리움이 밀려왔다. 친구는 안전모를 볼 때마다 카프카를 생각한다.
누구나 ‘무엇’을 보면 그 순간, 그리움이 밀물처럼 몰려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 사랑에 관한 것이든, 일 혹은 열정에 관한 것이든.
<새마을식당>을 가면 오롯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양은 냄비, 낡은 문짝 등 이런 것들을 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져 울컥한다. <새마을식당>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그 시절의 먹을거리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함지박 철로 간판을 달고 격자무늬의 문짝들이 우아하게 늙은 모습으로 달려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짝의 손잡이는 홈이 패였다. 그 위로 ‘잘 살아보세’,‘새마을운동’,‘국민체조’ 딱 세 곡의 노래만이 흘러나온다.
<새마을식당>은 그저 사람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집을 만들자는 주인장의 고민 속에 탄생했다.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70년대의 정취는 젊은이들에게는 신기함을, 나이든 이들에게는 그리움을 안겨 준다.
가게 한쪽에는 매일 배송된 신선한 고기를 손질하는 정육점이 훤히 보인다. 그 곳에서 매일매일 신선한 고기가 내 입으로 달려온다. 신선하고 맛난 고기를 구워 먹은 후 냉김치말이 국수로 입가심을 하면 하루의 피곤이 금세 풀린다. 밥이 먹고 싶다면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된다. 김치찌개는 일명 ‘7분 김치찌개’다. 인내심을 갖고 7분 동안 묵은 김치가 끓고 있는 냄비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7분이 다 되어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주인장 백종원 씨는 식당 창업에 대한 책을 낼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먹을거리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그의 아이디어와 끼로 <원조쌈밥>, <한신포차>,<행복분식>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지금 주인장은 중국에 <새마을식당>을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 맛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그의 욕심 덕에 조만간 중국 청도의 바람 몰아치는 그 거리에서 <새마을식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먹을거리만 아니라 우리의 70년대와 그리움까지 수출하는 것이다.
한참을 <새마을식당>에 앉아 있노라니, 어느덧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고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변신>을 꺼내 한 줄 읽는다. 오래전 카프카의 열정을 ‘열탄 불고기’와 함께 가슴에 새긴다. 불고기 한 점, 그 맛을 새기고 나는 ‘변신’을 한다.
[위치] 강남구 논현동 먹자골목 (02-544-3284)
[영업] 24시간 연중무휴
[메뉴] 소금구이 7천원 / 연탄불고기 7천원 / 차돌박이 1만5천원 / 7분 김치찌개 5천원
[강추] 70년대에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과 함께 가서 그 시절을 느껴보라. 수다스럽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서 왁자지껄하게 먹어 보는 것도 좋다. 1년 내내 24시간 영업하므로 언제가도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④ [무아국수] 다이아 반지 대신 국수를 다오. 파전과 함께
K군은 뛴다. 큰일이다. 오늘 만나야 할 여자들 숫자를 다 채우지 못했다. 아마도 종합인구국에서 또 난리를 피울 것이 뻔하다. 손목시계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K! 당신은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수감이다.” 에어버스가 3000m 상공을 나른다. 아, 이대로 도망가고 싶다. 여자들을 만나는 것, ‘관계’를 하는 것, 모두 너무 힘들다. 사랑은 없다. 과거 2000년대 남자들이 부러울 뿐! 지구를 공해 천지로 만든 조상들이 원망스럽다.
어쩌면, 3000년대가 되면 후손들 중에 이런 청년이 나올지 모르겠다. 여성의 숫자가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지구는 생존을 위해 이런 방법들을 선택할지 모른다. 최근 영국 과학 전문잡지 <네이처>는 브라질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염도가 높은 지역에서 여아 출생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여성이 공해처럼 인류에게 부정적인 요소에 맞서 여아출산율을 늘려 자연스레 종족을 보존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남성의 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가 X염색체보다 공해에 대한 저항력이 낮다는 해석도 있다. 어찌되었든 ‘생존’을 위해서라면 변화하고 열심히 달릴 수 밖에! 생존에 한가운데에는 먹을거리가 있고 그 먹을거리 한가운데에 <무아국수>가 있다. 아무리 3000년대가 되어도 무아국수가 주는 생의 기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안암동에 있는 <무아국수>는 2명의 사내가 만든, 국수 맛이 기가 막힌 곳이다. 두 사람은 고향, 학교, 선후배 사이로, 부산을 거점으로 20년 넘게 맛난 집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느 날 죽이 맞아서 신기한 국숫집을 열었다.
그냥 왠지 국수를 만들고 싶었던 이들은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많은 국수를 먹어봤다. 그 결과, 부산에서 유명한 ‘구포국수’면을 매일 공수해 오기로 했다.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구포국수’는 역사가 오래된 면발이다. 국물은 최상의 멸치로 우려낸다. 멸치의 질은 금세 국물로 드러나기 때문에 아무 거나 쓸 수가 없단다.
소설가인 주인장은 1주일에 한 번 서울에 올라오고, 이곳은 거의 박영환 실장이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배워서 지하 창고였던 이곳을 역사가 묻어 있는 퓨전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상하게 일본 분위기가 느껴진다. 국수 하나 후딱 말아 먹고 삶의 터전으로 향했던 우리네 근대사를 반영한 것이란다.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국수 한 그릇을 말아 먹고, 막걸리와 파전을 주문해서 먹으면 알록달록 기분이 좋아진다. 실내 분위기는 현재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연세 많은 주인장의 문학적인 기질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실내 분위기에 취해 누구든 심순애와 이수일이 되어버린다. “에라,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국수를 다오~ 파전과 함께!”
살짝 까치발를 하고 고개를 내밀면 금세 춥고 차가운 언 바람이 작고 보잘것없는 슬픈 가슴으로 냉큼 스며들어 온다. 이럴 때 정종만 한 친구가 없다. 정종 한잔, 파전 한 입 그리고 후루룩 국수 한 젓가락이면 뱃속이 든든해진다.
국수와 파전을 먹고 나서 무아지경에 빠지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는 <무아국수>. 현재는 안암동과 종암동에만 있지만 앞으로 지점을 더 만들 계획이란다. 물론 모두 직접 꾸려 갈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국수 맛을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흑갈색 젓가락에 국수 면을 돌돌 말아 먹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3000년대 K군이 이 국수를 한 입 맛나게 먹는다면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시대적 과업을 완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헤죽헤죽 웃음이 난다
[위치] 성북구 안암동 (02-927-7050) 6호선 안암역 2번 출구에서 가깝다
[영업] 오전 10시~다음날 새벽 1시
[메뉴] 국수류 2500원~4500원 / 파전류 5000~9000원 / 정종·막걸리 3000원
⑤ [엘리펀트 포] 세련된 곳에서 푸짐하게 즐기는 태국 음식
새벽 4시 어두운 제주도 거리, 예약한 택시를 타자마자 잠에 취해 쓰러진다. 이윽고 도착한 성산일출봉 입구, 휘휘 바람소리만 나를 반긴다.
커다란 사진 가방을 짊어지고, 그 능선을 천천히 오른다. 오싹! 지금 생각해보면 간이 커도 너무 컸다. 한 굽이 한 굽이 돌때마다 지푸라기와 갈대는 괴물로 돌변해 나를 향해 달려든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오직 ‘나는 오른다’ 각오를 다진다. 이때 건장하고 우락부락한 남정네라도 불쑥 나타나면 그야말로 황천길이라는 생각이 들자 등짝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얼추 정상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바위에 앉아 땀을 닦고 있는데, 갑자기 일출봉 난간 아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라, 이건 또 뭐지? 갑자기 까만 보자기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악! 진정 귀신이 있단 말인가! 백발의노파가 난간을 넘어 내게 달려온다. 아 당신은 누구신지? “ 어이 처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아, 다행이다. 인간이었다. 일출을 보기위해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음료수와 김밥을 파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왈 “ 야, 나도 깜짝 놀랐어. 머리 풀어헤치고 그러고 있으니. 나도 제명에 못살고 갈 뻔 했어.”
해는 2시간이 지나 떴고, 그 사이 할머니와 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당시 내 몰골이 머리에 꽃을 달고 뛰어다니는 여자와 같아서 등산객조차 그 꼴을 하고 사진을 찍는 나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한 잡지에 표지와 여러 페이지를 장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있는 것은 참으로 보기가 좋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대학로 <엘리펀트 포> 주인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 비록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이름을 널리 알리진 못했지만, 그의 열정과 자부심만은 어떤 거창한 레스토랑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호주배낭여행 중에 참가한 세계요리축제에서 동남아 요리를 맛본 후 그것에 미쳐 버렸다. 직장을 다니는 중에도 틈만 나면 태국까지 가서 음식 맛을 보고 왔고, 관광객으로 간단한 요리학교에 등록해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그의 이런 열정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태국 음식 전도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강한 열망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다른 태국음식점처럼 태국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신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까지 좋아할 만한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이다. 음식 가격도 적당해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요리조리 양을 고려해서 이것저것 주문해도 8만원을 넘지 않는다. 메뉴를 잘 구성하면 푸짐하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단체 모임을 하기 에도 적당하다.
중국 샥스핀, 프랑스 브야베스와 함께 세계 3대 스프에 드는 톰얌꿍은 얼큰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보여준다. 새우볶음 쌀국수는 신선한 새우맛과 찰진 기름이 어우러져 젓가락이 절로 간다. 닭고기 그린 커리는 야채를 짓이겨 죽처럼 만들고 독특한 향과 코코넛밀크를 섞었다. 태국 전통 맥주 싱하도 별미인데, 단 것도 있고 매콤한 것도 있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호주나 미국에는 동남아 음식점이 많다. 서양인들은 중국, 일본요리보다 오히려 동남아 요리를 더 즐긴다. 주인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지 않는 지 안타까워했다. 태국 음식 때문에 태국어까지 공부했다는 그는 정말 제대로 빠져 있다. 그의 눈에는 이 맛을 보러 오는 이들만이 크게 보인다. 아름답다. 그의 눈이. 한때 나의 눈이 사진기와 함께 빛났던 것처럼.
[위치] 종로구 혜화동 (02-765-1284)
[영업] 11시 30분~오후 10시30분
[메뉴] 세트메뉴 2만~3만원 (스프링롤+쇠고기쌀국수+파이애플 볶음밥 등 ) / 코스요리 1인당 2만~2만5천원 / 전채(얌운센 등 ) 4천~9천9백원 / 국수 7천9백~8천9백원
[강추] 조용한 분위기에서 알뜰하게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연인, 밝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가족을 위한 곳. 월요일마다 쉰다.
⑥ [르 생텍스] 프랑스 남자가 차려주는 프랑스 가정식 밥상
해질녘 바람 소리가 붉은 기운에 묻혀 귓가를 맴돈다. 도시의 바쁜 걸음들은 속도를 내며 어둑한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 위로 별들이 빛나고 떨어진 해 사이로 보랏빛 열망들이 피어난다. 작은 모퉁이를 돌자 <르 생텍스>가 보인다. 향긋한 빵 냄새가 절로 발길을 붙잡는다.
은빛 실내가 돋보이는 <르 생텍스>는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의 주인공 클로이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가 되어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의 사탕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박물관을 구경하고 마치 악마에게 유혹당한 것처럼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왔다. 겪어보지 않은 관음적 상상이 온 몸을 휘감는다. 허락과 거부의
짜릿한 줄다리기가 심장을 붉게 물들인다. 저녁 식사 후 광장이 보이는 작은 내 침실로 그를 끌어당긴다. 순백색 이불을 휘감고 이내 격정으로 변한다. 거칠게 단추를 뜯는다. 살짝
입술을 깨물자 그 작은 아픔도 아주 진한 쾌감으로 전해져 온다. 이윽고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의 움직임에 맞추어 우리는 사랑을 한다. 오직 희미한 달빛만이 우리를 비춰 준다....’ 앗~ 맛있는 송아지스테이크가 나왔네! 나의 상상은 ‘펑’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린다.
<르 생텍스>에 가면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그곳에는 프랑스 냄새가 가득하다.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멋지게 차려 내는 이곳은 한국말에 능숙한 멋진 남자 벵자맹 주아노가 책임지고 있다. 12년 전, 프랑스 대사관 직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주아노는 대사관을 그만둔 후 홍익대학교 계약직 교수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2000년, 프랑스 요리는 비싸고, 우아하고 세련되어야만 먹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서 <르 생텍스>의 문을 열었다. 안락한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무서웠단다. 하지만 고향 보르도에서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인수해서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버지와 이곳의 재정을 담당하는 한국인 동업자 친구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을거리를 좋아한 그는 날것으로 요리를 해주셨던 어머니의 입맛을 물려받았다. 이곳의 메뉴는 파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일 했던 주방장에게 자문을 구해서 정했다. 지금은 주아노를 대신하는 프랑스 요리사가 만두 요리에 들어가는 피, 훈제연어 등을 직접 만든다. 모든 요리는 천천히 만드는데, 천천히 오래 요리해야 재료의 질감, 향, 맛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메뉴로는 한우로 만든 안심 스테이크요리와 훈제 연어 요리를 꼽을 수 있는데, 고기는 담백하고 아주 쫄깃하다. ‘염소치즈와 아몬드샐러드’도 맛있다. ‘오늘의 요리’는 4~5개월마다 계절에 맞는 요리를 정해서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메뉴를 바꾼다. 갈 때마다 은근히 기대가 된다. 와인은 프랑스 지방별로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빈티지에 신경 쓰는데, 고국에서 긴 세월 동안 먹어본 와인 중에서 괜찮은 것들만 골라 메뉴에 넣었다. Grand Luberon 이 특히 맛있다. 한두 잔만 마시면 그 빛깔만큼 마음도 몸도 빨개진다.
그는 프랑스와 우리나라 문화를 연결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단다. 600쪽에 이르는 우리나라 여행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것은 물론 200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라는 프랑스 요리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이국의 판화 조선에 관한 옛 프랑스 판화’ 전도 기획하고 전시했다. 이제 곧 또 다른 책인 <움직이는 서울>이 프랑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정말 프랑스적인 삶을 느끼고 싶다면 사랑스러운 그녀와 함께 바람 부는 <르 생텍스>로 향해보라. 그리고 왜 우리가 사랑하는 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위치] 용산구 이태원동(02-795-2465)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KFC 건너
[영업] 오전 12~오후 3시, 오후 6시~오후 12시
[메뉴] 오늘의 스프, 오늘의 스페셜 전채요리, 메인요리 8천5백~3만4원 / 모듬요리 7천~2만5천원 / 디저트 5천원 / 잔와인 6천~9천5백원 / 와인 3만1천~24만원
[강추] 샐러드와 메인요리 하나 정도 주문하면 2인이 먹기에 충분하다. 주말에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기에 좋은 집이다.
⑦ [요코즈나] 모든 생선은 당일 산지서 올라와
콧수염이 날린다. 서해안 너른 개펄을 신나게 달린다. 저 푸른 바다 위에서 펄떡펄떡 뛰어오르는 생선처럼, 저 푸른 바다 속에서 호령하는 용왕처럼 콧수염은 달린다. 이윽고 해변에서 만난 생선 가게 아저씨들과 소주 한잔 나눈 후 서울로 펄쩍 뛰어오른다.
김흥국의 콧수염보다 더 매력적인 수염을 가진 <요코즈나> 주인장은 생선을 참 좋아한다. 목포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소박한 자연이 숨 쉬는 너른 개펄이 놀이터였고, 아버지의 어선이 신기한 학교였다. 고깃배에 몰래 올라타 작은 낚싯대로 잡아 올린 오만 가지 물고기들은 그에게 팔딱이는 삶을 선사했고, 그는 그 생선을 청담동의 널찍한 마당에 펼쳐 놓았다.
청담동이라고, 크다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겁먹지 마시라. 그것은 또 다른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거창한 제목을 단, 하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오히려 소박하기까지 한 에로비디오 같은 선입견일지 모른다. ‘살속의 추억’(살인의 추억), ‘반지하의 제왕’(반지의 제왕), ‘박하사랑’(박하사탕) 등 그 바닥에서 영화를 만드는 시간은 고작 몇 주이지만 제목을 짓는 시간은 거의 몇 달이 걸린다고 한다. 최근 그 바닥에서 회자되는 멋진 제목은 ‘목표는 형부다’(목포는 항구다)란다. 하하하, 우습다. 이러저러한 패러디들은 어색한 모임을 재미있고 흥겹게 만든다.
목포는 아주 멋진 항구도시다. 구수한 입담만큼 그곳의 생선 맛도 최고다. 주인장은 그 최고의 맛을 선사하기 위해 늘 바닷가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선을 맛본다. 바로 그때 혀를 사로잡는 맛을 만나면 즉시 <요코즈나> 식탁에 올린다. 그래서 <요코즈나>의 모든 생선은 그날그날 산지에서 올라온 것이고, 운이 좋으면 서비스로 흑산도 홍어도 맛볼 수 있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요리조리 알뜰하게 주문하고 이벤트 행사를 이용하면 최고 40%까지 낮춘 가격으로 맛볼 수가 있다. 주인장은 알뜰 이벤트 이외에도 늘 색다른 것을 준비해서 언제나 손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단다.
실내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고급스럽다. 약간 비싼 감은 있지만 꼭 좋은 음식을 대접해야 되는 분이나 입맛 까다로운 어르신을 모시고 가기에는 더 없이 좋다. 또 청담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30~40명이 단체로 들어갈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 그 점도 장점이다. 싱싱한 생선 요리를 먹으며 동창회라도 하는 것은 어떨까? 3~4명이 조용히 맛을 보면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만한 방도 많이 있다.
생선 외에도 초밥 맛이 일품이다. 새색시 속살 같은 부드러운 밥과 그 밥을 포근하게 덮고 있는 색동 이불 같은 물고기 조각, 이들의 조합이 초밥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밥보다 생선조각이 커서 초밥의 싱싱한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초밥과 함께 나오는 서비스도 훌륭하다. 장어초밥은 자연산 장어를 얹어서 그 맛이 그야말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몸이 후끈해질 정도다. 맛이 예술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날그날 시가로 먹는 생선 요리들도 있다. 가격을 버리고 오로지 맛으로 선택한다. 여름에는 초밥과 튀김이 소바와 함께 나오고 겨울에는 소바 대신 나베우동이 나온다. 계절마다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장쯔이는 긴 머리를 날리며 괴기스러울 만큼 화려한 춤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넋이 나간 사내들은 그녀를 갖기 위해 너도나도 선금을 준비한다. <요코즈나>에서는 장쯔이가 춤을 추었던 화려한 무대와 그 향취가 느껴진다. 화려하지만 애잔한 맛이 묻어난다.
[위치] 강남구 삼성동(02-548-6565)
[영업] 오전 11시~ 오후 11시
[메뉴] 생선회 8만~12만원 / 사시미정식 3만원 / 초밥정식 3만원 / 새우튀김정식 2만원 / 도미조림 2만원 / 여름 소바+초밥+튀김 2만원 / 겨울 나베우동+초밥+튀김 2만원
[강추] 입맛이 까다로운 어른이나 잘 보여야하는 직장 상사와 함께 가라. 룸이 많아서 중요하고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적은 양이지만 깔끔하고 친절하다.
⑧ [달리세] 냄새야 연기야 가라! 꼬챙이에 끼워먹는 삼겹살
오래전, 아무도 살지 않던 이 땅에 사람들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낮은 지붕들이 모여 소담스럽게 우리의 행복을 지켜 주는가 싶더니 지붕의 높이가 점점 높아진다. 신을 그리워하는 걸까! 자연의 섭리를 운운하면서 5층 이상 높이에서는 사람이 살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자연주의자들도 많았지만 거대한 자본의 논리는 그런 주장을 사장시켰다.
아무것도 없었던 뽕밭 잠실이나 모래더미 한강둔치에 삐죽삐죽 높다란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내 머리위에 사람 있고 내 발아래 사람이 있다. 이 아파트란 것이 참으로 요상해서 지금은 재산증식 수단으로 너도 나도 좋아라하는 물건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참으로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우스운 일도 많았다. 당시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이 잘 안 돼서 희한한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일단 아파트에서 살면 전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었다. 왜냐고! 아파트 동마다 ‘엘리베이터 걸’을 두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예쁜 아가씨가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 했으니 남정네들 심장이 울렁울렁했더랬다. 아줌씨들도 얼마나 편했을 고! 무엇이든 세월이 지나면 예전일이 까마득해지는 법이다.
삼겹살은 아파트만큼이나 우리에게 친근한 먹을거리이다. 예전에는 그저 불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 먹던 것이 요즘은 익혀 먹는 법이 다양해졌다. 이름도 희한한 <달리세>에서는 삼겹살을 이상한 꼬챙이에 꽂아서 굽는다. 테이블 가운데에 파진 구멍 안에 ‘hot 삼겹살’이나 ‘wine삼겹살’이 꼬챙이에 끼워져 지글지글 익으면서 돌고 있다. 먹다가 남은 삼겹살은 바로 옆에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곳으로 옮겨 놓고 계속 데워 먹을 수 있다. 그 삼겹살은 마치 수증기로 만든 천으로 덥혀 있는 듯 시간이 지나도 딱딱해지지 않아 맛있다.
주인장은 <달리세>아래층에서 갈빗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고기를 다루는 일을 했다. 젊은 날에는 축협에서 개최한 큰 대회에서 상을 받아 고기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고기를 다룬 그의 이력으로 이런 삼겹살집이 탄생한 것이다. 삼겹살을 꼬챙이에 꽂는 아이디어는 그의 부인이 일본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생각해 낸 것이란다. 처음에는 삼겹살을 꽂을 마땅한 꼬챙이가 없어 고민했으나 번개 같은 아이디어로, 연기도 나지 않고 옷에 삼겹살 냄새도 배지 않는 지금의 형태를 완성하게 되었다. 연기와 냄새가 없다는 점 때문에 젊은 처자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이곳에서 삼겹살을 먹는 또 다른 즐거움은 샐러드가 모두 공짜라는 사실이다. 된장국, 동치미, 마카로니, 브로콜리, 천사채, 양파 등 각종 샐러드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샐러드 바에 잔뜩 쌓인 흰 그릇을 보면 신선한 채소에 절로 손이 간다. 푸짐하게 쌓아 산을 만든다.
실내 공간도 아주 넓다. 생떽쥐베리의 <야간비행>에 나오는 주인공이 ‘휘익’ 하고 나는 사막만큼 광대하다. 그래서 단체회식을 많이 한다. 인근에 있는 많은 벤처회사들의 젊고 발랄한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이기도 하고, 동창회 모임도 많이 한다. 한자리에 3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한자리만 고집하지 않는 다면 더 많은 사람도 들어갈 수 있다.
<달리세>란 이름이 특이해 “마구 달리면서 먹자는 거냐? 아님 시위 학생들이 주로 사용했던 ‘달린다’(전경에서 잡혔다)는 의미냐? 도대체 뭐냐?” 물었더니 기가 막히게 한자였다. <達理世> 즉 ‘세상이치에 통달했다’는 의미란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가치와 의미가 변한 아파트의 역사처럼 삼겹살 역시 그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 변화한다면 세상사에 통달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위치] 강남구 삼성동(02-564-9049)
[영업] 낮 12시~ 밤 10시 30분
[메뉴] hot 삼겹살, wine 삼겹살 9천원 / 잔치국수 3천원 / 와인 4만5천원
[강추] 점심때는 매운 갈비찜과 쌈밥 정식만 합니다. 단체 회식 장소로도 좋다. 옷에 구운 삼겹살 냄새 배는 것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좋아한다.
⑨ [안춘선] 황해도식 손맛으로 차려주는 갈비배추탕과 오마니국수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난다. 김 영감이 드디어 백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했다. “아이구, 아버님. 이제 하늘나라 가시면 어머님 만나시겠네요. 여자 때문에 어머니를 그리 고생시키시더니.... 두 분,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세요, 어머니께 잘해주세요.” 김 영감, 공중에 붕 떠서 아들딸들이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할망구 만나면 잘해줘야지. 내가 첩들 때문에 너무 고생을 시켰어.”
흐뭇하게 웃으며 구름 위로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먼저 간 할망구가 방끗 웃으면서 김 영감을 맞는다. “영감, 이제 오슈? 여기서는 맘고생 안 시킬 거죠? 드디어 영감 독차지하게 되었네” 이에 질세라 김 영감도 “ 그럼 할망구, 나도 반성 많이 했어, 이제 우리, 구름 위에서 부부의 정을 나눠봅시다.”라며 슬그머니 할망구의 손을 잡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고~ 저 멀리에서 산발한 여인네들이 마구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이~ 영감 이제 오슈? 얼마나 기다렸다구~” 하며 애교를 피운다. “어머, 이 영감 내 영감이야.” “어라 내가 진짜야, 날 제일 예뻐했다구.” 할망구, 한숨을 푹 쉬면서 “아이고, 첩년들도 다 모였네. 내 여기서도 머리채 잡고 싸워야 하나? 이 세상 끝나면 저 세상은 다를 줄 알았건만….” 하며 한탄하더라.
갈비배추탕이 맛나기로 유명한 <안춘선>의 주인장 부부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주인장 부부의 금슬이 너무 좋아 그 맛으로 맛난 먹을거리를 만들어서 행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뭇거뭇 누덕누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낯익은 주인장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눈이 마주치면 ‘아, TV에서 본 분이네’하고 내심 생각하게 된다. 주인장은 오랫동안 연극무대와 TV를 오가면서 멋진 연기를 펼친 예인이다. 안이 훤히 보이는 부엌에서 안주인이 음식을 만들면, 그는 완성된 음식을 여기저기 나른다.
안주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했단다. 이웃들은 그녀가 만든 김치를 자주 먹으며 음식장사를 해보라고 그리 성화였지만 그녀는 함께 나눠 먹는 것이 더 좋다며 극구 사양했었다. 그러다 8년 전, 집에서 만들던 황해도식 손맛을 그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서대문에 <안춘선>을 만들었다. 독특한 이 집의 이름은 안주인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이다. “내 이름 걸고 음식을 만듭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아주 좋은 음식만 내지요.” 이제는 손님들이 “잘한다” 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단다.
이곳에 있는 갈비배추탕이나 오마니국수, 매골수육은 정말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양념으로 쓰는 고춧가루는 주인장 고향에서 처음 딴 고추를 말려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최고로 신선하다. 반찬으로 나오는 깻잎의 맛도 특이한데, 짜지도 맵지도 않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만든다. 이곳의 모든 메뉴가 안주인의 창의력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요상한 스파게티나 16가지 된장찌개 등 아주 많은 요리를 시도했단다. 밤마다 메뉴를 고민하고 연구하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현재의 메뉴로 정리되었다.
이집에는 특이한 동동주도 있다. 일명 ‘청술’이라고 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에 들어갔던 술이라서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연로하신 분이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을 어찌어찌 해서 안주인이 들여왔다. 오로지 손님들에게 최고만을 대접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쉽게 취하고, 쉽게 깨며, 다음 날 뒤끝이 없어서 진정한 술꾼들에게 인기란다.
조용히 안치환의 노래를 들으며 부부의 다정한 정을 양념으로 넣은 수육과 오마니국수를 먹어보라. 천국이 따로 없다. 우리네 소박한 설날 상차림처럼 담백하고 따스한 정이 송골송골 솟아오른다. 참, 가수 안치환이 조카란다. 가족사랑 역시 맛난 음식처럼 깊고 은은하다.
[위치] 서대문구 충정로2가(02-392-2877)
[영업] 오전 12시 ~저녁 10시
[메뉴] 갈비배추탕 7천원 / 오마니국수 6천원 / 매골수육 3만5천원 / 동동주 7천원
[강추] 집은 조금 작다. 별로 꾸미지 않아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다. 오래된 맛을 즐기는 분을 모시고 가기에 좋다. 겨울에는 주인장이 손수 만든 깻잎을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