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측면에서 건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사상누각이며 부질없는 탐욕이었던가! 덧없는 세월엔 장사가 없나보다. 나름대로 자신만만한 나를 조롱하며 단박에 서푼어치도 못되는 자만을 가차 없이 깔아뭉갤 사태가 벼락 치듯이 닥치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가벼운 뇌졸중 증세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건강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면서 천야만야한 절벽에서 수직으로 추락한 기분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나대던 미몽에서 깨어나라는 일깨움치고는 지나치게 야박하여 섧고 떫다. 지난 3월 7일(2016년) 낮 1시 45분경부터 갑자기 블랙아웃(blackout) 같은 기억 단절 현상이 발생하여 6시간 정도를 깜깜한 혼돈의 세계를 헤매다가 8시경에 정신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9시경에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정상적으로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락가락하던 6시간 정도 완전히 비정상이었다고 한다. “오늘이 며칠이냐?” “지금이 몇 시냐?” “별다른 의미도 없는 서류를 들고 나와서 이게 무엇이냐?” “작은 아들 보고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따위의 질문을 몇 초 간격으로 되풀이 하면서 횡설수설하여 가족들은 황당무계했었단다. 혼돈 속을 헤매며 기족들의 얼을 뺄 정도로 헛소리를 해대다가 기억을 되찾고 나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가족들과 멀쩡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정상인 상태로 잠을 잤다.
8일 이른 새벽을 맞았다. 두 아들과 아내에게 떠밀려 삼성창원병원을 찾아가 신경과에 진료를 신청했다. 담당 전문의는 문진(問診)을 마치고 뇌졸중 현상이 가볍게 지나간 것으로 유추되기 때문에 자세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해마 쪽에 마이크로(micro) 상태의 흔적으로 나타날 정도로 지나갔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소견이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미 예약된 환자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채혈검사와 심전도검사는 다음날인 9일로 예약하고, 자기공명영상(MRI)검사와 뇌파검사는 모레인 10일로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9일이 밝아왔다. 전날 했던 예약에 따라 확실한 정황의 파악과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 일차적으로 채혈검사(많은 혈액을 채취하여 5개로 나누어 담아 각각 다른 검사에 사용한다고 했음)와 심전도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10일엔 검사를 위해서 아침식사를 거른 채 서둘러 오전 10시에 병원에 도착하여 대략 30분정도의 MRI검사를 받고, 11시부터 대략 1시간 정도의 뇌파검사를 받았다. 그 후에 병원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가서 아내와 작은아들과 함께 가벼운 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다시 병원에 돌아와서 대기하다가 2시 경에 MRI검사와 뇌파검사 결과의 분석에 대한 담당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우선 가장 우려했던 치매증상과 관계가 없어 그나마 불행 중에 다행이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불안한 징조가 분명하다고 예상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듣는 순간 둔탁한 물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의사는 해마에 가벼운 뇌졸중 증상의 흔적이 확실하다며 MRI검사 결과인 필름을 보여 주었다. 다행인 것은 그 크기가 대략 8mm 정도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치료와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섭생에 유의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위로했다. 그리고 다음에 재진을 할 때까지 복용할 약의 처방을 받았다. 해마에 나타난 혈전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추적하기 위해서는 신경초음파검사와 심장초음파검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여 바로 그들 두 가지 검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미 예약한 환자가 많아서 다음 주 월요일(14일)로 예약되었다. 그러므로 예약된 날 두 가지 검사를 받고나서, 다시 일주일 정도 지난 22일에 겨우 담당 의사를 만나 자세한 진단 결과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종합병원이 다양한 검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원인을 규명하여 치료하는 원칙에 불만은 없다. 하지만 병이 발생한 시점에서 완전한 진단 결과에 따라 치료방법이나 약물 투여 내용이 결정되는 과정이 너무 길어 명이 짧은 사람은 그동안 불귀의 객이 되어 이승과 별리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내 경우 병의 발생일은 7일이고 최종 진단 결과를 들을 수 있는 날이 22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병의 발생에서부터 최종적인 진단결과는 정확하게 15일이 소요된다*. 또한 이 병에 대한 각종 검사비 중에서 의료보험공단의 부담을 제외하고 개인의 직접 부담액이 대략 160만원이다. 이는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기다가 부대비용까지 합하면 더 더욱 무거운 짐이 될 공산이 크다. 병원에서 ‘뇌졸중의 위험인자 관리’라는 작은 책자를 건네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일주일에 5번 정도 14-15km 정도 되는 산의 정상을 오르내리는 등산을 해왔고, 금연한지 10년이 넘었으며, 육류보다는 채소류를 즐겨 섭취해왔다. 그렇다고 당뇨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지혈증의 징후가 보였어도 심각한 수치가 아니었는가하면, 혈압도 안정적이었던 데다가 특별한 심장질환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혈압을 측정했더니 정상치에서 조금 웃도는 형편으로 나타났다. 험을 들추자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셔왔었는데, 이제부터는 영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으로 고시되었다. 오늘날 첨단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전자제품은 우리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런 제품들도 몇 십 년이면 수명을 다해 폐기처분된다. 하물며 70년 이상 나를 지탱하도록 뒷받침하던 장기나 육체가 탈이 나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기능이 퇴화되었다고 탓하거나 서러워 할 일이 아니지 싶다. 흔히들 요즈음은 수명이 길어져 백세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하늘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역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갑자기 닥친 당혹스러운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슬기롭게 순응할 요량이다.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