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 91년 화요공부방 <영주, 청정주 >
강연자 : 우주정복 4단 -이기홍 교우님-
설법 : 박경전 부교무님
[강연하는 기홍교우님^^]
뜻을 알려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원리를 알고 뜻을 파악하면 독경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유발이 됩니다. 알고하면 신앙이고 공부이지만 모르고 하면 미신입니다. 대종사님이 즐겨하시는 말이 강연입니다. '강'이라는 것은 '억지'라는 겁니다. 굳이 말을 하자면 강연이라고 하는 겁니다. 집신세벌이라는 법문도 같이 읽으셨죠?
제가 아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고난이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할때에, 이상한 주문을 외우곤 했습니다. “우짬짜??.....”. 이 사람 집이 어렸을 때 중국집이었는데 그 중국집 메뉴판의 앞머리 글자만 따서 지은 자기만의 주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대산종사님께서 게송하나가 떠올라서 계속 읊조린곤 하셨습니다. 그때 영주가 있었으면 아마도 영주를 외우셨을 것입니다. 밤낮없이 우연히 떠오르는 게송을 외우다 보니 집중이 되고 안정이 되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대산님을 모실 때 실제 겪었습니다만..정말 대산종사님께서는 밤낮없이 외우십니다.
염불독경의 원리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염불과 독경에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념으로 들어간다는 원리와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맘속에 오만가지 잡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잘때는 잡념이 없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잘때도 꿈을 꾸죠? 자는 것도 잡념의 연속입니다. 정신을 계속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한 잡념이 이는 마음속에 나무아미타불 등등의 다른 주문들을 외우면서 이것으로 잡념을 대체해 가게 됩니다. 집중하면 잡념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한 가지에 강하게 집중하면 다른 잡념들은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씩 잡념들이 떨어져 나가면 어느 순간에는 결국 나무아미타불만 남아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일념입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독경의 원리입니다. 기복불교는 여기까지도 가지 않습니다. 이 상태에서 염불삼매로 들어갑니다.
염불일념의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나무아미타불도 사라집니다. 이 일념도 사라집니다. 나라는 근원적인 생각도 없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의 자각, 이런 자각이 없을 때, 그것도 사라지면 뭐가 남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를 一心이라고 합니다. 일념과 일심을 구분해보는 공부도 해봐야 합니다. 염불을 막 하다가 좌선입정에 들어갈 때 그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 없으세요? 저는 그때를 참 좋아하거든요.
이 일심이 불교에서의 無心의 상태입니다. 일심과 무심은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는 무엇도 없고 내가 만들어낸 어떠한 것도 없는 겁니다. 나가 없으니까 일원상의 자리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원불교가 무엇하는 곳입니까 물어보면 (최근에서야 마음 공부하는 곳입니다라고 하지만) ‘일심공부 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일심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하나에 집중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그것은 일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일심을 얻고 일원의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하면 안 될게 있습니까? 다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 일심이 어떤 마음이냐? 본래 마음입니다. 우리의 본래마음.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죠. 어떤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 나왔다가도 이 마음(본래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행복하고 싶죠? 행복이 뭔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쁘고 즐거운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도인들은 아무 마음도 없는 것을 행복함으로 여깁니다. 새디스트에게는 무엇이 행복입니까? 맞는 것과 고통스러운 껏이 행복한 상태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에펠탑 효과라고 합니다. 에펠탑을 세우고자 했을 때,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20년 후 철거를 약속하고 세웠었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펠탑은 파리 시민의 자랑이 되고 파리의 관광자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에펠탑을 다 좋아합니다. 익숙해지고 자꾸 눈에 보이다보니까 좋아하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기쁘고 들뜨고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을 행복으로 알지만 이 상태를 24시간 유지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그런데 24시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상심’입니다.
우리는 TV, 컴퓨터 등등에게 우리의 맘과 삶을 ?壺畸璲? 이런 평상심이란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습니다. 가끔 이런 상태가 찾아옵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컴퓨터도 없도 TV도 없고 ...하는 상태 말이지요. 우리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즐기는 방법을 모릅니다. 기어이 핸드폰을 찾고 그럽니다. 없다는 상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없이 지내온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 것들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언가를 즐길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도를 물맛이라고 합니다. 늘 먹는게 물이고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물대신에 술이나 음료수를 마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을 매일 물처럼 먹는다면 알콜 중독으로 죽습니다. 물맛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물맛을 느낌 사람이라야 가끔씩 물 대신 마시는 음료나 술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이 물맛에 관한 예화처럼 평상심의 맛을 하는 사람은 가끔씩 찾아오는 기쁨 슬픔등의 감정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교전에 나와 있는 마음이라는 말에 대해서 잘 봐야 합니다. 분별심으로 쓰일때도 있고 성품으로 쓰일때도 있습니다. 생각이나, 의식을 마음으로 알면 곤란합니다. 의식은 죽으면 사라지는 겁니다. 의식은 육근을 작용할 때 사용하는 것이니까 이것도 일원상(일심)이 들어서 작용하는 겁니다. 코의 냄새 맡는 것이랑 생각하는 의식은 똑같은 기능입니다. 이런 것은 다 죽습니다. 사라집니다. 그러면 뭐가 남습니까. 물론 깨닫지 못한 자는 분별자리도 남습니다. 일원상의 자리만 남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일원상으로 가는 공부이고 일원상을 찾고 알고 느끼고 유지하고 생활에 사용하고 위력을 아는 공부이기 때문에 일원상으로 보여주신 진리로 우리가 들어가야 하고 또 그렇게 되는겁니다. 그냥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일원의 위력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수학의 기본이 덧셈뺄셈이기는 하지만 모든 문제를 다 그것으로만 풀 수 없듯이 아무거나 주문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영주나 청정주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만든 최적 효율의 주문입니다.
영주를 많이 하고 청정주 조금 하는 것은 무슨 이유냐 하면, 사실 보편적인 이유에 있습니다. 영주의 쓰임이 더 많은게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똑같은 소금이지만 왕소금이나 맛소금의 쓰임이 다른 이유랑 같습니다. 영주와 청정주나 법신불 일원상과 나와의 관계 .. 관계를 알고 체성에 합의하자는 뜻입니다.
이것하나는 유념하세요. 다이어트를 하는 아가씨가 돌리는 훌라우프가 그녀의 일원상이 아니듯이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일원상도 일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정성과 지성으로 독경을 할 때만이 일원의 진리에 합할 수 있습니다.
개인 경험을 말씀드릴께요
섬진강 하류에 댐으로 인해 분리된 섬이 있습니다. 밥 하기가 귀찮아서 단식을 하기로 하고 들어가 있었습니다. 한달간.. 단식을 하면서 기도와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천도재는 아버님 천도재였습니다. 3일정도 지나니까 단식 때문에 너무 배가 고파서 죽겠더라고요. 배를 타고 나갈 기운도 없습니다. 4일 째 되니까 2년전에 먹은 떡국맛이 정확히 기억이 날 정도였습니다. 별의 별것이 다 기억납니다. 그곳 거처의 이름이 혹파당(미혹함을 깨뜨리는 곳)이었는데 그때 단식을 하면서.. 5일 넘어가니까 몸이 안정되고 그랬습니다.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음식냄새도 없었으니까 음식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집중이 잘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영주 청정주를 송주하니 그때가 정토국이었습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이제 나가면 내 할 일은 중생제도 뿐이겠구나 했습니다.^^ 나가서 다시 학교를 다니니까.. 다시 원래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깨달음이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결국 남은 것은 유무념 공부밖에 없습니다. 깨달았어도 유무념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얻는것이 없습니다. 부처도 깨달으신 후 마음챙김을 다시 하셨는데 중국으로 불교가 넘어오면서 그 부분이 빠져 전달되었습니다. 깨달은 것을 계속 챙겨야 합니다.
‘아득회광’ 에서도 회광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얻어야 합니다. 계속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삼학공부로 계속 잡아나가야 합니다.
[질문]
1. 첫번째 질문
Q-박윤호교우님 : 송주와 좌선을 잘 해야겠구나 다짐은 드는데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습관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춘천에 갈 때 2시간 걸리는데 2시간 걸리는거 알고 갑니다. 예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김제원 교무님께는 질문을 잘 못드릴것 같은데요...
A-박경전부교무님 : ‘니가 2시간동안 좌선하는데 그 동안 청정한 일심의 상태가 얼마나 되느냐’ 이렇게 정산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일을 할때는 가끔씩 입정에 들때도 있지만요...
여러 가지를 해보십시오. 염불 좌선 송주 이런 것들을 다 해보세요. 이런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수치화 하기가 힘듭니다. 개인차가 있습니다. 저도 13년 동안 하는데도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부끄럽습니다. 대산님은 5만생동안 해도..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2. 두번째 질문
Q-신천숙교도님 : 아침 새벽 좌선을 할 때 염불 경전 등을 하는데요 이런것을 하면서 전에 교무님께서 가르켜주신 집심 능심 관심 등등을 생각해보는데요..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집심과 관심까지는 간 것 같습니다. 아까 의식작용이라는 것은 육근작용이 들어서 했다고 하셨는데 의식상태도 다 버리고 무심상태로 들어가야 되는데 교무님께서는 이 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주실수 있습니까?
A-박경전 부교무님 : 아까 설명해드렸습니다.
염불 먼저 하고 좌선을 가니까 염불을 수준을 낮게 볼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염불로도 입정에 들 수 있습니다.
원불교는 단전주선을 통해서 진경에 익숙해지도록 합니다.
3. 세번째 질문
Q-이진우교우님 : 책을 읽다보면 그 안에 내용보다도 .. 책도 없고 나도 없는 그런 상황이 있었다.
A-박경전 부교무님 : 수행의 과정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살면은 그것은 바보입니다. 무심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무심이 있는 동시에 밥먹는 생각이 나오는 것이고 무심이 있는 동시에 책도 읽는 것입니다. 아까 설명할 때는 염불할때는 밥먹거나 다른 거 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게 설명했던 것입니다.
4. 네번째 질문
Q-문혜은교우님 : 생각이나 의식을 마음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A-박경전 부교무님 :이 말은 마음=성품일때의 마음인 것입니다.
Q-문혜은교우님 : 마음과 의식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세요
A-박경전 부교무님 : 대종사님의 말씀은 ‘보면철학’이라고 합니다. 유상으로 보면 이렇고 무상으로 보면 이렇고.. 아까 설명했던 것을 구분지어서 생각하시지 마시고요 하나로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첫댓글 상세한 후기 감사합니다~~ ^ㅇ^ 그나저나 강연하신 양반은 누구래~~ 잘 생기셨네~~ 나 그 단에 들어가야쥐~~ㅋㅋ
속보이심돠 우힛
속이 보였나? 쿠쿠
깔쌈한 후기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