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작가 다니구치 지로의 책을 몇 권 사서 읽었다.
처음에는 친구한테서 추천받은 적 있는 <열네 살>(두 권짜리 장편)을 읽었고,
그다음에 단편모음집 두 권을 더 읽었다. <개를 기르다>와 <느티나무의 선물>
<느티나무의 선물>은 이 작가가 쓴 글은 아니고,
다른 분이 쓴 단편소설을 가지고 새로이 만화로 엮은 거다.
나는 만화책을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만화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기도 하겠고,
과장되고 황당한 대화들도 책에 깊이 빠지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 같다.
특히 몇십 권짜리, 한 페이지에 별 내용도 없이 후다닥후다닥
넘기면서 읽는 게 제격인 그런 만화책은, 내용이야 어떻든 내 성향에 맞지가 않다.
그런데 다니구치 지로가 쓰고 그린(또는 원작을 가지고 만화로 엮은) 책은 누구 말대로,
다 읽고 나면 잔잔한 감동을 주는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듯 느껴진다.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다 보면
한동안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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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막한 서평 -
* 자질구레한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보다는 삶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굳건한 작품.
* 다니구치 만화가 표현하는 일상성과 그 배경에 깔려 있는 문학성은 기존의 일본 만화들과는 다른 고유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 동물과 인간의 교감, 삶과 죽음, 가족의 의미….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를 조용하지만 큰 울림으로 전달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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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연약한 정서들을 표출한다.
(....) 그러나 그들이 감추고 있는 고통과 외로움은, 국경을 넘어, ‘일상적인’ 그들의 모습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미숙할수록 더욱더 짙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니구치 만화의 정교한 선과 경직된 동작, 그리고
절제된 표현은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고통스러운 침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치였을 것이다.
그들의 심리적 지층에 감추어져 있던 격한 감정들은 결국 따스한 휴머니즘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오래된 분노와 오해는 감동적인 화해와 이해의 순간에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이웃의 항의에 시달리면서도 정원의 느티나무를 끝내 베지 못하는 하라다의 마음은
다니구치의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우처럼, 고통을 느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던지는 따듯한 시선이다.
- <느티나무의 선물> 추천의 말(최흡)에서
이외에도 이 책은 가정, 죽음, 이별, 노인 문제 등 우리가 자칫 귀찮고 하찮게 여기기 쉬운 것들을 사랑해야 하는
당위성을 겸손하게 속삭여 주기에 그의 작품은 아름답다.
- 역자의 말(김소연)에서
발작이 일어난 지 20일, 링거를 끊은 지 5일, 비쩍 말라 쇠약해졌어도 탐은 살아 있다. 어떻게 저럴까. 탐이 가련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탐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눈물만 흐른다. 목소리를 내면
흐느끼게 될 것 같아 둘 다 입을 꼭 다물고 있다.
- <개를 기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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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다니구치 지로의 책 -
<열네 살> (샘터)
<개를 기르다> (청년사)
<느티나무의 선물> (샘터)
<아버지> (애니북스)
이 밖에도 산악만화 <신들의 봉우리>, <K>와
<시튼 동물기>, <고독한 미식가> 등
여러 종류의 작품이 나와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