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이번 설 명절이 제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님으로부터 질문을 받고서도 속히 답변을 드리지 못했는데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님의 질문은 태신자 전도 운동에 대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요즘 교회마다 전도 운동을 활발히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 입니다. 그런데 흔히 듣는 용어 가운데 ‘태신자 작정’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신자’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아는 사실인데, 아무래도 성경적인 배경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작정’ 이라는 말도 좋게 생각하면 좋지만 역시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님이 질문하고 있는 ‘태신자 작정’이란 말은 ‘태신자 전도 운동’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펼치고 있는 ‘태신자 전도’는 우리나라 교회들이 하고 있는 여러 전도 방법에서 보고 있는 전도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소위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전략의 하나로 쓰고 있는 전략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영리 전도이니 전도폭발 전도이니 다락방 전도이니, 이슬비 전도이니, 고구마 전도이니, 꿀벌 전도이니....많이 있잖습니까? 요즘은 알파 컴퍼런스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태신자 전도는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도 방법의 하나입니다. 주님이 전도 명령을 주셨다는 것을 빌미로 말입니다.
태신자 전도 운동을 전개하는 교회에서 하고 있는 말을 빌리면, 이들이 말하는 ‘태신자’란 “작정된 전도 대상자”라는 뜻이라는 군요. 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마치 아이를 밴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아기를 뱃속에 간직했다가 출산하는 것과 같이 한사람의 성도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거나 과거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 출석을 하고 있지 않는 자를 구원 할 목적으로 세 사람 또는 한 두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영적 자녀로 마음에 작정하여 품고 일정 기간(약 10개월) 동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의 수고를 통해 작정된 자를 전도하여서 교회에 초청하고 결신(출산)케 하여 등록하게 한 후에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하여서 교회의 일군(제자)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태신자’란 용어를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의 "…제자를 삼아"(make disciples)라는 말씀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태신자 전도 운동을 전개하는 교회는 말입니다. 자신들은 이 운동을 전개해야 할 전도의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사도행전 1장 8절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인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를 들어서 세계를 복음화 해야 하는 전도의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절대 절명의 사명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들이 그의 분부에 귀기울여서 그의 지상적 사명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면서 세계를 복음화 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자신들에게 크나큰 결단을 요청하고 있으니 이 절대적인 요청 앞에 응할 것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받은 사명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를 극복해야 하며, 사명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신선한 방법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쇠퇴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태신자 전도 운동을 통해서 교세가 크게 커진 교회가 있습니다. 길자연 목사가 시무하는 왕성교회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교회들마다 교회가 커지기 위해서 태신자 전도 운동법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과연 이 전도법을 사용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교회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이 전도법을 전도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생기고 있는 것이겠죠. 교회가 커질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태신자 전도 운동에는 다음과 같은 그릇된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전도 명령은 태신자 전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자신을 믿고 따르게 하시는 것은 오직 그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무엇 때문에 전도하게 하시는가 하면,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게 하시며, 불택자는 지옥이 그들의 것이 되게 하기 하는 것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복음)를 전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듣는 자가 되게 하시며 보는 자가 되게 하시며 깨달아 알고 그 믿음에 있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불택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복음)를 전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그를 거부하고 배척하게 하십니다. 이는 말이죠 그들이 듣고 보는 십자가의 도에서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강팎한 마음의 상태에 있어 그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그대로 나타내시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리석게만 들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요구했으며, 자기들의 철학으로 해석하며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헬라인들은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들을 때 마치 잠꼬대 소리를 듣는 것 같이 미련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여기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전도로 삼으셨으며, 이에 따라서 누구든지 차별하지 않고 구원의 자리에 부르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요 지혜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고전1:21-24).
따라서 말이죠. 전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까닭에 전도를 하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나온다 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이 있는 곳에서 이 복음을 믿는 믿음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있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의 전도란 것은 이유불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만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은 오직 그분의 이름만을 전하여 그분이 생명의 주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가족에게, 그리고 동족에게, 나아가서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심정을 갖는다는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서 그를 구원시키겠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를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알 수 있게 할 뿐이며,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거나 멸망하시는 것은 우리가 전한 복음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능력이 하십니다.
태신자 전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인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를 어떤 동네를 복음화시키고, 국가를 복음화시키고, 세계를 복음화 해야 하는 전도의 사명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으로 세우시는 교회에 위임하신 명령입니다만, 그래서 땅 위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이 땅에서 저 땅에 있는 동서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만, 이 명령이 태신자 전도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태신자 전도를 전도 운동으로 전개하는 교회는 마치 아이를 밴 어머니가 열 달 동안 아기를 뱃속에 간직했다가 출산하는 것과 같이 어떤 사람을 전도하겠다는 작정을 품고서(잉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의 수고를 통해 전도하여서 교회에 초청하고 결신(출산)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이는 말이죠. 전도 대상자를 자신들이 임의로 작정하고 또한 믿는 자로 만들어가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발상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그러한 생각과 노력이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가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그러한 전도 방법으로 되어지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가져나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함으로 가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갖는 전도 방법으로 사람들을 전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에 나오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전도하여서 구원시켜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이죠. 전도할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말하여 사람들에게 전할뿐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얻고자 하는 심정을 갖는 것은 그에게도 하나님의 긍휼이 함께 하실 것을 바라는 것이지 우리가 그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전도법으로 삼고 있는 각종의 다양한 전도 운동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서 이들로 채워진 교회를 만들겠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교회 성장, 또는 교회 부흥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런 저런 전도의 방법을 동원하여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고자 하며,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만듭니다. 만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만든 사람들로 되어진 교회라면 그 교회는 생명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로 갖는 사람들의 교회입니다. 나는 지금 이것이 교회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참된 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이 교회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종교로서의 교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교회라면 이는 거짓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둘째,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전도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들이신 예수로 세상에 보내어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전도의 일을 하시는 것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나타내 알게 하여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 전도를 통해서 택한 백성을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십니다.
그런데 태신자 전도 운동은 사람이 자신이 전도할 대상을 정해 놓고서 이를 잉태와 출생의 개념으로 사람을 결신케 하고 교회에 등록시킨다는 전도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도법은 하나님의 구원의 예정과 선택에 의한 전도를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일로서의 전도가 아닌 사람의 일로서의 전도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양한 전도법에 의한 전도 운동이 그러했듯이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상당한 효과를 본 교회가 많을 것이며, 이로 인해서 소위 교회 부흥 또는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는 교회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도 운동이 전개되는 한에는 계속해서 이 전도법으로 효과를 얻어내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려는 교회가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전도법에 의한 전도 운동으로서는 결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전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도와는 상관없는 사람의 전도에 의해서 모여진 것이기에 이를 통해서 비록 큰 무리를 이루는 교세를 가지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전도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전도는 태신자 전도 운동 같은 사람의 방법과 그 수단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는 것을 통해서 되어집니다. 전도하는 자는 자신이 전도할 대상을 정하고 그를 믿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것에서 창세 전에 품으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름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도를 통해서 온 세상에 알리신 뜻에 따라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아들을 보고 믿지 않는 자마다 멸망케 하십니다. 전도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셋째, 태신자 전도 운동에 의해서 교세가 커진 것은 전도된 것이 아닙니다. 태신자 전도 운동을 전개해 오는 과정을 보면,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방법인 전도가 아니라 사람의 방법으로서의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인 전도는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는 것으로 행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인 전도는 십자가의 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 말이 전해지면 듣는 사람은 어리석게만 들릴 것이며, 미련하게 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가 되게 하시며 보아도 그 눈은 감겨 있어도 보지 못하며 도무지 그 마음에 깨닫지 못하도록 그들을 완악한 상태에 두십니다. 그런데 태신자 전도 운동을 해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서 교회에 나오게 하다니요!. 하나님은 말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그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에 두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하게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악한 죄를 드러내시며 죽음 아래 있게 하십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사람들이 환영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로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각각 흩어져 떠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만 들리고 미련하게 들리는 십자가의 전도를 듣고서도 모여든다고 하면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를 수 있는 비결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기대할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자의 살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그들 안에 참 생명이 없다는 진리가 전해지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택한 백성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하는 은혜를 입게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께 남아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전도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도를 통해서 동서에서 택한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하여서 그들도 아브라함이 약속으로 받은 복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말이죠. 우리가 전도한다는 것은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인 전도에 의해서 전도된 자들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전도 받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모은 사람으로 결신케 하고 교회에 등록하게 하여서 교인 삼아 만든 교회와는 같지 않습니다. 하늘에 있든지 땅에 있든지 사방에서 모아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하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된 자는 교세로서 교회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을 위하여 교회된 모임을 가지나 또한 언제든지 교회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교회인 주님만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신자 전도 운동으로 교세를 이루고 이를 교회로 여기는 자들은 비록 이것에 의해서 교세가 커진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전도된 것은 아닙니다. 그 실증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와 상대적인 사람이 만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전도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전도 방법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온갖 수단들이 동원됩니다. 주님이 주신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비롯하여서 사람의 마음을 능히 움직일 수 있는 온갖 것들이 동원됩니다. “한 손에는 떡을, 다른 한 손에는 복음을”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떡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식입니다. 복음의 접촉 기회로 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떡과 복음을 함께 전도로 삼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전도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입니다. 떡과 복음을 들고 태신자 전도 운동을 하여서 교세가 커진 것은 전도된 것이 아니며, 이것으로 교세가 커졌다는 것은 결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 부흥이니 교회 성장이니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우리가 전도한다고 하면, 그것은 교회 부흥이나 교회 성장을 의식하고서 이를 염두에 두고 하지 않을 것이며, 교세를 크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전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한다고 하면,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구원인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이를 전하여 하나님만 드러낼 뿐입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엎으시며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그들을 질책하신 적이 있는데 이런 현상이 모양만 바뀌어져서 더욱 성행하는 것을 태신자 전도 운동에서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태신자 전도 운동에는 교회 부흥이니 교회 성장이니 하는 것에서 갖는 인간의 욕망이 분출되고 있는 것이어서 음란하고 악한 세대인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십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도를 삼고 그들 식으로 전도 운동을 해 나가도 하나님은 복음의 전도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인 전도인데, 이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작정하시고 우리를 택하신 데 따라서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실천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서의 전도가 아닌 사람의 방법으로 전도를 하는 자들을 수치와 부끄러움에 있게 하십니다.
하오니, 님이여!
교회들이 이런 저런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수단껏 전도해 나가는 실정에 있을지라도 이에 합류하지 않고 당당히 하나님이 전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그의 죽음과 부활만을 전하여 생명의 주를 통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저 역시 목사님의 말씀과 같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대상을 교회당으로 데려와 등록시키고, 교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전도라고 하는 생각이 일반적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을 믿지 않는 불신이며, 오히려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자기 긍정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첫댓글 저 역시 목사님의 말씀과 같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대상을 교회당으로 데려와 등록시키고, 교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전도라고 하는 생각이 일반적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을 믿지 않는 불신이며, 오히려 자기 존재를 드러내려는 자기 긍정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아멘입니다...배우고 확신한것에 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