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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성군 신도비 및 무석(충남 유형문화재 86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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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익성군 묘의 소재지를 네비게이션으로 따라가면 마을 도로 주변의 엉뚱한 곳을 알려줍니다만, 마을 초입에서도 멀리 있는 묘역이 잘 보입니다. 이 묘역에는 왕릉의 무인석과 형태가 똑같은 제대로 만든 무인석이 있으며, 왕릉의 무인석보다는 크기가 작은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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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하단 좌측에 신도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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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바로 아래 위치한 진산군(晋山君) 순경 묘 - 익성군의 장자 |
익성군(益城君, 1556∼1612)은 중종의 증손자로 이름은 형령이다. 명종 21년(1566)에 태어나 13세에 익성정이 되고,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머물자 그 곳에 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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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덕흥대원군의 장자인 하원군의 2자) |
서울로 돌아와 선조 30년(1597) 익성군에 봉해졌다. 광해군 4년(1612) 이이첨의 무고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치었으며, 인조 21년(1643)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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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좌우측에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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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좌측 가까이서 본 모습과 상석 |
신도비는 높은 받침돌 위에 한돌로 이루어지 비몸과 머릿돌을 세운 모습이다. 머릿돌의 앞면에는 용을 새기고, 옆면과 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문은 비몸의 앞면에만 새겨 놓았다. 인조 21년(1643)에 세운 비로, 조익이 비문을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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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내 무인석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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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석 정면 및 좌우 측면 모습 |
무인석은 전체가 하나의 돌로 조각된 것으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다. 양손은 가운데로 모아 칼을 잡고 있으며 허리에는 칼집을 차고 있다. 엄숙하고 단정하며 위엄이 느껴지는데, 조선 중기의 조각 수준을 가늠해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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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성군 묘역 우측에 위치한 아들 묘역군 |
▲ 맨 우측에 위치한 진평부정 묘역에서 바라 본 모습 |
익성군 묘역 우측에 3기의 묘가 있는데, 좌측부터 진천군 묘(익성군의 2자), 진릉군 묘(익성군의 3자), 진평부정 묘(익성군의 4자)가 있으며, 종중 자료에 보면 동일 묘역내에 진계부정(晋溪副正) 윤경 묘도 있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눈에 보이는 공간에는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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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천군(晋川君) 희경 묘 |
▲ 진릉군(晋陵君) 태경 묘 |
▲ 진평부정(晋平副正) 승경 묘 |
익성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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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논산시 은진면 용산리 산93-3 화살표 ↑ 위치 부근에 익성군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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