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포구 팔십리를 가다.
어제께 예전부터 조금 아는 분을 만났었다. 시내에서 조그만 장사를 하는 분인데 장사가 신통하지 않아 결국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원룸으로 들어가고 말았단다, 가게에 걸린 전세금과 소형평수의 아파트가 전 재산이었는데 워낙 불경기가 되다보니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더라고 하며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었다.
달리 위로를 해줄말도 없고 나로서는 그래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있으니 뒷바라지나 마저 하고 그들에게서라도 보람을 찾아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서부시장 장날이라 시장구경을 하고 간단히 물건을 살 것도 살펴보아야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에는 날씨가 좋은 탓인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김장철이 되어서 배추와 무가 많이 나와 있다. 방송에서는 무, 배추 값이 폭락하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는 사람들은 큰 포기 하나에 2,000원꼴이다. 다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들 야단이다.
이곳저곳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의 흥정하는 모습도 보면서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향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하동행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오랜만에 섬진강과 하동포구의 모습들이 보고 싶어졌다. 버스 안 TV에서는 가족 찾기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 한명은 우리고향 부근 사람인데 나는 복잡한 도시도 아닌 시골 같은 곳에서 어쩌다 헤어져 저처럼 애타게 찾아 헤매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이제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헤어진 혈육에 대한 정이 저처럼 사무치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차는 어느 듯 진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진교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진교라는 곳은 지나쳐보지도 않았지만 군대생활을 하면서 진교에 사는 아가씨와 펜팔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동네 앞 산을 올라서면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고 하였었다.
그 아가씨는 나 아닌 사람과도 펜팔을 많이 하였었는지 몰라도 글 솜씨가 제법 좋았었다. 그래서 나는 병사들이 취침준비를 하고 자리에 누우면 그녀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 주곤 하였었다.
언젠가 휴가를 나와 부산에서 만난 적도 있었는데 그 아가씨와 펜팔을 하는 것을 알아차린 누님이 아가씨를 사귀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 고 물으니 그쪽에 사는 아가씨들이 맹랑하더라는 것이었다.
하여간 나는 제대를 하면서 그녀와 연락을 끊었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사무실로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었다. 편지 내용을 보니 그 아가씨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내가 편지를 받은 날은 이미 그녀의 결혼식이 끝난 일주일 후였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긴 한 것일까? 그리고 그 편지는 왜 그렇게도 늦게 도착한 것인지....
차창 밖으로 멀리 금오산이 바라다 보였다. 우리가 어릴 때는 금오산에 미사일기지가 있어 아무도 접근을 못한다고 알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내가 산을 좋아하다보니 지뢰가 제거되고 등산을 허용한 이후에 두 번 정도 그 산을 올랐었다. 산정상에 오르면 남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산 중간지점, 지금은 확장되어 폐기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결혼 후 세 살 배기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는 길에 출발 전 두 시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그래도 결국은 자리를 잡지 못해 아이를 팔에 안고 무려 서너 시간을 서서 가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금오산 중턱에서 차가 고장이 나서 한동안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힘들었던 과거사지만 지나고나니 다 추억으로 새록새록 피어난다.
하동이 가까워지니 재첩국집 간판이 많이 보인다. 재첩은 강물과 바닷물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많이 자라는데 구수한 국물 맛이 좋아 등산이나 여행을 다니는 도중 많이 사 먹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것들도 그렇듯이 중국산이 활개를 치고 또한 국산으로 둔갑하고 있어 재첩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창을 통하여 바라다보는 하동포구는 정말 아름답다. 일전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니 전국의 강변 경치를 다 다녀 보았어도 구례에서 하동을 잇는 하동포구 8십리가 가장 아름답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보존된 자연이 더 한몫을 하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채첩국밥이다. 가격은 8,000원이다.
점심을 재첩국으로 먹으려고 시장통을 가서 제첩국집을 찾아 갔었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 하는 수 없이 섬진강 방향으로 가다가 이 집을 들렀는데 맛도 좋고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친절한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먹고 하동솔림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전에 이곳을 들렀을때는 송충이도 먹고해서 나무가 힘이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관리를 잘하여 보기가 좋았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어떻게 저렇게 울창하게 잘 자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저 모래사장에 대한 추억도 있었다. 학창시절 언젠가 친척집을 왔다가 저 모래밭에서 단체들과 시비가 일어나 무릎을 꿇은 일이 있었다.
한 두명정도는 오기로라도 상대를 해볼 수 있었는데, 그게 상대가 대여섯명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맞았다. 그냥 처음부터 잘못 했다고 하고 말 것이지...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섬호정으로 오르는 길이다.
전망대이다.
내려다 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건너편 산자락의 집들...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유명인사들의 시비가 많았다.
섬호정 정자이다.
섬호정공원으로 올라갔다. 나는 아직껏 이곳은 와 보지 못하였었다. 공원에 오르니 상당히 공원은 넓고 시의 동산이라 그런지 많은 유명인들의 시비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섬진강은 구비구비 흘러가고 있고, 작은 나룻배들도 보인다. 건너편은 전라남도 광양군이다. 옛날엔 텃세를 한답시고 이편 저편이 제법이나 거칠게 대하였었다.
멀리 기차가 광양에서 하동으로 건너온다.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요전에 이곳이 세계적으로 살고싶은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었었다는 기사를 본일이 있다.
그리고 강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악양은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머무르는 것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강물을 내려다 보며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