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쌀의 본색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쌀이 변신하면 엄청난 파워를 과시한다. 김치 속 젓갈처럼 쌀 속 전분은 '요술방망이'. 이놈은 분해하면서 유산을 토해낸다. 그런데 이 유산이 생선을 감싸게 되면 생선은 좀처럼 부패하지 않는다. 유산이 방부제 구실을 하기 때문. 소금이 귀한 내륙 오지 사람들은 쌀을 이용한 각종 발효•숙성 식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가령 영덕에서 잡힌 고등어를 현지인들은 즉석에서 먹을 수 있지만, 안동 사람이 먹으려면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는 천일염에 푹 절인 간고등어로 염장시켜 두고두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을 안고 식해와 식혜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현대인들은 '식해'와 '식혜'를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특히 대구 사람들은 식혜와 단술(감주)조차도 식별 못한다. 하여튼 식해(食)와 식혜(食醯)는 한국의 지역색이 가장 집약된 전통음식이고, 최근들어 지역에서도 웰빙식으로 재현돼 화제가 되고 있다.
# 역사 속의 식해와 식혜
식해의 '해'와 식혜 '혜'의 한자는 참 구별하기 어렵다. 정다산은 '아언각비'를 통해 '젓갈 국물이 많은 것을 해'라고 구별했다. 식해에서 맵고 짜고 비린 요소를 제거, 밥과 엿기름만으로 달콤하고 걸쭉한 국물로 만들어 음료화한 게 식혜라 보면 된다. 식혜는 선인들의 '청량음료'였던 것이다.
식해의 등장은 서기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이때 벌써 생선 젓갈을 담가 먹었다. 송나라 때는 은어, 잉어, 해파리, 거위, 심지어 참새를 갖고도 식해를 만들어 먹었다.
물론 식혜보다 식해의 역사가 더 장구하다. 1600년대말에 나온 '주방문(酒方文)'과 1680년 나온 '요록(要錄)'에서도 '생선에 곡식과 소금을 넣고 식해를 만든다'고 적었다. 1700년대 발간된 '역주방문'에선 생선 대신 소의 내장은 물론 심지어 멧돼지 껍질까지 사용해 후추를 섞었다고 했다. 생선의 경우 함경도에선 가자미, 강원도에선 북어, 황해도에선 도루묵, 강원도 속초 등지에선 오징어, 영덕에선 홍치 등이 애용됐다.
이 식해가 일본을 대표하는 생선초밥, 니기리 스시의 원형이란 게 식품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태국의 '쁘라하', 보르네오의 '쟈루구', 대만의 '도스도' 등이 식해의 원류 구실을 한다. 그 제조법의 전통이 남은 게 일본의 '나레즈시'다. 소금을 넣어 잘 섞은 밥을 붕어 내장을 제거해 그 안에 넣고, 나무상자에 넣은 뒤 무거운 돌로 누른 상태에서 수개월, 길게는 1년간 묵혀 먹었다. 이게 패스트푸드화돼 변한 게 현재의 스시다.
함경도 가자미 전통은 남화해 현재 강릉의 대표적 가자미 음식 전문점인 남항진동 은총횟집(033-652-5758)으로 스며들었다. 여기선 참가자미 대신 자그마한 물가자미를 사용하고, 쌀 대신 조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경상도 스타일의 식해는 영덕군 강구농협의 밥식해로 뿌리를 내렸다.
# 식혜와 감주를 구별하는 법
식혜는 식해와 맛이 다르다. 식혜는 생선을 넣지 않고 쌀과 엿기름만으로 만든다.
삼국사기 권8 신문왕 3년(683)에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품목에 '혜'가 들어가 있다는 대목이 있다. 또한 정부인 안동장씨(1598∼1680)가 쓴 음식 조리책인 '음식 디미방'은 17세기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 일대 식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여기에도 안동식혜가 소개돼 있다. 이어 1740년 나온 수문사설에 '감주'란 용어가 보이고 1800년대에 발간된 '시의전서(是議全書)', 1896년 나온 '규곤요람'에선 식혜 제조법을 소개했다.
고종 독살에 사용된 음식이 식혜란 설도 있다. 이증복은 1958년 12월16~19일자 '연합신문'에 실은 글을 통해 "1918년 12월19일 밤에 두 한씨(한창수•한상학)가 독약이 들어 있는 식혜를 올려 고종을 독살했다"고 밝혔다.
그럼 식혜와 감주는 어떻게 다른가?
밥알이 뜨면 식혜, 안 뜨면 감주로 보면 된다. 물론 대구에서는 감주가 발달했다. 식혜는 엿기름으로 밥알을 완전히 삭힌 후 건져서 찬물에 헹군 다음 먹기 직전에 밥알을 띄워낸다. 반대로 감주는 밥알이 삭아서 뜨면 건져내지 않고 엿기름 물과 함께 계속 끓인다. 이렇게 하면 전분이 빠져나간
안동식해.
고춧가루가 없는 안동의 백식혜.
영덕 밥식해를 시연중인 김갑출씨와 홍치로 만든 영덕 밥식해.
밥알이 부서지면서 다시 당분을 흡수해 밥알이 가라앉게 된다. 감주는 모계사회의 산물이란 주장도 있다. 제수를 올릴 때 술을 못먹는 여성들을 생각해 독하지 않은 단술을 올렸다는 얘기다.
# 영덕 밥식해를 찾아서
함경도 가자미 식해와 형제간인 식해가 영덕의 밥식해다.
영덕에선 가자미 대신 홍치(횟대)를 잘 사용한다. 이 먹거리는 경조사 때는 물론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와 제사상에도 반드시 올렸다. 제사 때는 음복 전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먹을 때 고춧가루를 넣는다.
밥식해를 만나기 위해 영덕 강구농협으로 갔다. 현란한 자태를 보이는 강구항 대게 거리 한켠에 위치한 강구농협 밥식해 사업장(054-732-6854). 그곳의 밥식해 지킴이 김갑출씨(여•58)를 만났다. 그녀의 밥식해 사랑은 남달랐다. "우리 전통음식 중에서 유일하게 매콤달콤새콤한 게 밥식해"라고 자랑했다. 김씨는 강구농협 원충희 상무(53)와 21명의 농협 산하 농가주부모임 회원들과 의기투합, 2001년 두 차례 밥식해 시식회를 가졌다. 반응이 좋자 곧바로 상품 개발에 나섰다. 영덕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식재료는 오직 영덕산만 고집했다. 이만큼 신토불이 버전을 갖춘 음식도 드물 것이다. 밥식해를 맛보기 위해선 최소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재료는 생선 600g, 밥 또는 조밥 350g, 무채 650g, 고춧가루 350g, 물엿 1큰스푼, 설탕 3큰스푼 비율.
일반 햅쌀과 좁쌀처럼 생긴 기장쌀을 10대 1 비율로 섞어 하루쯤 불린다. 이 쌀을 찜솥에 넣고 40분간 쪄 5분간 뜸을 들여 고두밥으로 만든다. 쌀힘을 좋게 하기 위해 20분 찐 뒤 물을 한 번 끼얹는다. 홍치는 내장을 빼고 여러 토막 내 엿기름으로 버무려 1차 숙성을 해둔다. 썬 무에 굵은 소금을 넣고 숨을 죽인다. 남은 소금은 고두밥에 넣고 섞는다. 밥과 엿기름, 엿물을 함께 넣고 비빈다. 엿물을 넣는 이유는 밥알이 덩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홍치에 빻은 생강과 마늘, 설탕을 섞고 버무린다. 고두밥은 조금 말렸다가 홍치 담긴 용기에 붓고 5분간 잘 비벼 항아리에 넣은 다음 5℃ 냉장고에 1주일 저온숙성시키면 된다. 그 과정은 꼭 김치 담그는 것 같다. 몇 점 씹으니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신맛이 침샘을 자극했다. 기운을 상승시키는 매콤함. 분명 전라도 젓갈과 대적할 만한 경상도 원형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 음청류로 진화한 안동식혜
안동식혜는 생선 식해에서 생선이 빠진 일종의 소식혜에서 분화해 음청류로 진화한 것. 고추가 국내에 도입되기 이전인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누룩의 일종인 홍국을 사용했다. 대구지역의 감주와 달리 끓이지 않고 얄팍하게 썬 무와 엿기름 우린 물,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삭힌 게 특징. 안동에도 대구식 감주가 있는데, 그게 바로 '점주'다.
안동식혜는 봉화, 영양, 예천, 영주, 청송, 의성 등지까지 분포돼 있다. 유명 종가는 물론 24년 역사를 가진 안동댐 근처 헛제사밥 전문 까치구멍집 등도 후식으로 안동식혜를 내놓고 있다. 대구시 수성구 숯불갈비전문점 안압정 후식으로 나오는 식혜도 변형된 안동식으로 보인다.
안동식혜는 밥식해처럼 활성화되고 있다.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인 조옥화 선생을 축으로 결성된 안동식혜 보급 동아리가 안동식혜를 캔음료로 개발시키고 있다. 특히 (주)한스바이오(대표 최충식)는 안동대 RIS(지역혁신시스템) 중심 사업단과 공동으로 안동식혜 상품화에 나섰다.
◇도움말=안동농업기술센터
◆ 안동식혜 만드는 법
1. 찹쌀을 8~12시간 불린다.
2. 엿기름은 물에 잘 씻어 10~12ℓ만든다.
3. 무는 채썰거나 나박 썰기를 하여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낸다.
4. 생강은 곱게 간다.
5. 찹쌀은 고두밥 지어 식힌다.
6. 고운 천에 고춧가루를 넣어 30℃로 데운 엿기름물에 넣고 붉게 물들이며 생강즙도 함께 넣는다.
첫댓글 잘배웠어요...음식은 과학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