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가 거액의 교회 공금을 장로들도 모르게 은밀히 유용했습니다. 이에 일부 제직들이 반발하여 그 상세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목사는 자신을 추종하는 다른 제직들을 동원하여 이들을 교회에서 제명시키고 출교시킵니다. 교회에 덕이 안 되거나 교회를 해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 명분이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 점차 빈발하고 있습니다. 양들이 교회를 빼앗기고 쫓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교회답지 못하고 목사가 더 이상 목사답지 못해 이에 분노하거나 낙심하여 떠납니다.
지도자 복이 어지간히 없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근자에 정말 못 볼 풍경을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사유화 문제가 갈수록 크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일부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성취에 취한 일부 목회자들은 담임목사라는 직분을 남용하고, '가르치는 장로'로서의 분수를 넘어 다른 장로들의 고유 책무인 '다스리고 관리하는 일'에 더욱 한눈을 팔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 직제를 비성경적인 수직적 계급 구조로 왜곡시키고 다른 직분이나 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의 실권을 꾸준히 강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간 열심히 뿌려 온 '변질된 복음'이 뿌리를 내리고 이제 상당수의 교회에서 목회 독재가 거의 정착된 느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한국교회를 성장시키는 데에 가장 기여한 직분은 목사직입니다. 그 수고와 희생과 헌신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한국교회를 부패시킨 데에 제일 책임져야 할 직분도 목사직이라는 점입니다.
목자를 배신한 목동들
물신숭배가 만연한 요즘, 초기 한국교회의 그 순수했던 목동들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목동들이 목자이신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푸른 초장의 양들을 벌판으로 밀어내고 그 대신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염소를 늘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점차 밀려나고 털색만 비슷한 목사의 제자들이 교회 내에서 득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양털을 깎아 목장을 키운 후, 이제는 그 양들을 홀대합니다. 그리고 말 많고 탈 많은 양보다는 군소리 없이 잘 자라는 염소가 좋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목회가 목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목동들이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타게 수고하시던 그 목자의 마음을 배신했습니다. 그리하여 양들이 찢기고 상하고 다쳐도 모른 척 외면하고 오로지 털 깎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변절한 목동들이 교회 대형화와 교회 사유화를 경쟁적으로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들의 얼굴도 모르는 목회는 더 이상 목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축이나 사축일 뿐입니다. 목회란 대량으로 사육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양계장식 경제활동이 아닙니다. 한 마리 양을 기억하고 찾아 수고해야 하는 영적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목동들은 목장을 편법으로 운영합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교회 공금을 수억 또는 수십억 씩 함부로 쓰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또한 교회 사업이나 사회사업 등을 빙자해서 법인을 만들고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넘겨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또한 교회를 다른 목회자에게 팔아넘기고 은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왜 교회 장부는 그리 감추고 보여 주지 않나요.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요.
여기가 예배당입니까, 아니면 성황당인가요. 왜 한국의 많은 중대형 교회들을 보노라면 기복적 원시종교 같은 이질감이 깊이 느껴질까요. 한국교회에는 장엄한 예배가 있고 유창한 설교, 아름다운 찬양, 열성적인 봉사와 헌금, 그리고 세계 유일의 새벽 기도까지 있습니다. 또한 커다란 십자가도 도처에 높이 장식해 놓았건만 과연 무엇이 누락되어 있는지요.
극에 이른 교회 사유화
한국교회의 사유화는 이미 극에 달했습니다. 요즘 부패한 목사들의 행태는 예수님 당시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던 종교 지도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들에게 교인들의 돈주머니는 먼저 보는 목사가 임자입니다.
많은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부족한 생활비로 인해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비하여, 대부분의 중대형 교회 목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회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목사에게 지급되는 돈을, 기본 봉급 외에도 자녀 교육비, 광열비, 통신비, 차량 유지비, 심방 지원, 사택 관리비, 선교비, 해외 출장비, 판공비 등 기타 다양한 항목으로 은닉하여 분산시켜 놓고 추가로 가져갑니다. 그래도 말로는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현재 중대형 교회 중에서 교인들에게 재정 내역을 문서로 상세히 공개하고 예·결산을 정상적으로 엄정하게 시행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 흔한 교회 홈페이지에 예·결산서를 당당하게 공개하면 안 될 그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왜 대부분 그저 두루뭉술한 자료로 눈가림하기에만 급급한 모습인가요.
이처럼 교회가 헌금을 거둘 때에는 하나님께 바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막상 그 헌금을 사용할 때에는 엉뚱한 인간들이 제멋대로 가져다 쓰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대형 교회의 비리 의혹에 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장로들이 교회 재정 지출 내역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담임목사와 극소수의 측근만이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례로 보면 이번에도 그냥 잠시 시끄럽다가 또 다시 슬그머니 덮고 감출 확률이 높습니다. 그나마 오랜 전통의 대형 교회가 저런 정도이니 나머지 교회들은 오죽할까요.
교인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소중한 헌금이 회중의 별다른 간섭이 없이 일부 목사들의 속주머니로 과도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본래 개신교에 별도의 성직자란 없습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모든 신자가 다 성직자이고 동시에 모든 목사와 장로도 다 평신도입니다. 그런데 소위 성직이라는 기만적 명분으로 목사직이 특권화되고 세속적 부정도 묵인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목사가 교황이 된 교회들은 더욱 계급화하고 있습니다. 변질된 복음이 교회를 기업화하고 담임목사를 회장으로 그리고 장로나 집사 등 나머지 직분들을 모두 부하 직원으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종이 주인이 된 망측한 상황입니다. 어린 주일학교 학생에게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우리 목사님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웃어넘길 자격이 있을까요.
한국교회 사유화의 극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바로 '교회 세습'입니다. 그 도가 지나쳐서 요즘은 '세습을 안 하면 바보, 못 하면 등신'이라는 말도 나돕니다. 정말 전 세계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늘 아래 이런 기막힌 교회가 있었던가요.
그리고 '죄 짓고는 못 살겠다'는 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처럼 보입니다. 한국교회의 상당수 목회자들은 공적인 죄를 짓고도 아주 의연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교회 공금을 유용한 혐의가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여전히 계속 목회를 합니다. 뇌물을 주고받고 성추행이나 세습을 한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수준이 극히 의심스러운 막말 목사들이 주제 파악을 상실하고 기름진 얼굴로 정치판을 기웃거려도 아무도 못 말립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지나치게 교권을 독점하고 악용하는 이들의 범죄는 결코 일회성이거나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된 많은 교회들은 목회자들의 공적인 비리에 대하여 공의 없는 사랑과 이해하기 힘든 관용을 남발하며 개신교 역사에 유래가 없는 '비성경적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과도한 교권 집중과 목회 독재
여기서 왜 유독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교회 사유화가 극심한지에 대하여 간단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목사직에 대한 지나친 교권 집중이라고 봅니다. 교회 사유화가 일어나고 있는 교회에는 거의 예외 없이 목회 독재가 존재합니다.
더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개신교는 이런 목회 독재가 일반화하여 신도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수용할 정도로 세뇌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하는 일을 적절한 분별없이 쉽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목회자를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크게 금기시합니다.
목사는 사도가 아닙니다. 물론 제사장 직분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신도들은 목사를 단순히 설교자나 장로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도나 제사장급에 준하는 예우를 합니다.
이런 현실은 한국 개신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장로교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간판은 장로교라고 하지만 그 명칭을 목사교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습니다. 장로교는 본시 교회의 운영과 관리를 회중에 의해 선출된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 담당하는 교회입니다. 따라서 외국의 장로교회에서는 일차적으로 당회가 목사의 사역을 관리하고 감독합니다. 목사를 임명하거나 해임하는 일도 당회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교는 어떤가요. 당회나 제직회가 목사의 시녀 역할을 하기에 급급한 교회를 어찌 장로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많은 교회에서 예배와 설교 그리고 교육에 집중해야 할 목사가 교회 사업, 행정, 관리, 인사 및 재정에 깊숙이 관여하여 비상식적이며 초직분적인 월권을 해도 그저 입을 다문 채 아무도 정당한 교정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모두가 잘 아는 이런 사실을 너무 반복해서 거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한 결론도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닙니다. 목회자들이 분수를 지키고 과도한 교권과 불의한 이권에서 스스로 물러서야 합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스리려 월권하지 말고 '가르치는 장로'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세워야 할 교회
양들이 빈들에서 마른 풀만 바라보며 울고 있습니다. 양들이 쉴 곳이 없습니다. 선한 목동들을 찾아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려 보지만,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극히 일부의 교회들만이 예외입니다. 늘 푸르던 초장은 거의 다 살찐 염소들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처에 있던 쉴 만한 물가에는 오히려 대형 축사들이 증축되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양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 민족은 많은 고난을 이겨 온 온유한 민족입니다. 늘 빼앗기기만 했습니다. 땅을 빼앗기고, 사람을 빼앗기고, 자원을 빼앗기고, 그리고 심지어는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슬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과 순결한 삶입니다.
한국교회의 종교 업자들이 일시적으로 교회를 차지하고 간판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판이 교회는 아닙니다. 예배당 건물이 교회도 아닙니다. 우리 신자들 자신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됨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거룩한 교회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과거 바빌론에 의해 나라와 고향을 빼앗기고 낯선 땅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 백성들은 그 외지에서 날마다 예루살렘을 향해 슬피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깊은 회개와 자성 후에야 비로소 거룩한 성전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회개하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새로 세워져야 할 교회는 결코 건물이 아닙니다. 성직을 빙자하여 사람이 위세를 부리는 곳도 아닙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서로 대등하게 동역하며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과 약자가 존중을 받으며 신분의 구별이 없이 십자가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울러 인위적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교회가 아니라, 자발적인 무기명 연보를 격려하고 이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소수가 모이더라도 예배와 성례를 바르게 시행하고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그리고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복음을 우리의 이웃과 기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한국교회는 더 이상 목축이 아닌 참된 목회로 세워지고 바른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렘 42:11)."
샬롬!
<기사제휴/당당뉴스> |
첫댓글 그 목동들때문에 양이 다 무리에서 이탈하고 떠나고 ... 목동들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오직 물질과 명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저도 개신교 신자로 충성 봉사 다했지만 변질된 교회에 더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교회를 나와 기독교 안티가 되었습니다 로제형님은 그런 기독교 안티를 하느님께 돌아오게 해주신 중매쟁이 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떠나 예전 신실했던 그 순수한 믿음은 사라진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어요. 개신교 신자들은 서울서 시골로 이사를 와도 일요일은 서울 교회로 예배를 보려 가더군요. 몇시간씩 걸려서...서울하느님은 특별하신가 봐요. ㅋㅋㅋ
성전(교회건물)을 인정하지 개신교라 하지만, 성전을 인정하는 천주교 보다 더 성전을 중시하는 느낌을 받더라고요...ㅎㅎㅎ
개신교에서는 등록이된 교회에서 예배 보도록 권고 하고 있습니다 출장가서도 본교회로 예배보러온 사람을 목사가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대형 버스를 동원해 멀리 사는 신도를 데려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없는 차량 봉사 그것이 봉고차같은 교회차로 신도를 데리고 오는 경우인데 그만큼 주차장도 큰교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