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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아요디아
허황옥 할머니와 나
- 까만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사랑하는 손자를 앞에 두고 할아버지께서 말씀 하셨다. “너희 시조할머니는 멀리 아유타국의 공주로 돌배(石船)를 타고 바다를 건너 김해에 도착하여, 가락국 수로왕(首露王)의 왕비가 되셨다. 김해 구지봉(龜旨峰)아래에 허왕후 릉(陵)이 있고 그 앞에 김수로왕 릉이 있다. 두 분 사이에 10왕자를 두셨는데 큰아들은 가락국의 2대왕 거등왕이 되시고, 두 아들을 허(許)씨 성으로 사모성(賜母姓)하여 지금의 許씨 시조(始祖)가 되었다. 너는 자랑스러운 가락국(駕洛國)후예이고 왕손(王孫)이다.-
-초등학교 시절 손자에게 사랑을 듬뿍 주신 할아버님의 반복적인 교육덕분으로 “가락국”, “아유타국 공주,” “김수로왕”, “돌배”, “구지봉”등의 단어가 머리에 각인(刻印) 되어졌다. 중학교를 부산에서 유학한 관계로 시외버스를 타고 김해 구지봉 앞 도로를 지나칠 때마다 버스 안 에서 차창으로 시조할머니의 커다란 릉을 보고 다녔다.(마산-부산간 도로가 김해구지봉을 경유)-
-건설사 재직 시(1994년),김해구지봉 인근에 15층아파트 6개동(대한주택공사-현L.H공사)을 건축할 시, 안전기원제(安全祈願祭)를 현장 金소장에게 연락하여 수로왕릉과 시조할머니 릉에서 지냈다. 참봉어른의 호 에따라 서쪽을 향해 4배를 드리고 공사시작을 告했다. (그후 동참 李씨 왕손 임원으로 부터 가락왕손을 인정받음)
-귀향 후(固城郡 馬岩面-2008년) 죽오회(竹烏會) 회장으로 제일처음 했 든 일이, 김해 수로왕 할아버지와 허황옥 할머니 왕릉(王陵) 참배였다. 가까운 일가친척과 서울.부산에 거주하는 젊은 일족들이 많이 참석했고, 구지봉과 연결된 은하사도 돌아보며 불교와(佛敎)할머니, 장유화상과 칠불암(七佛庵) 의 연결고리를 생각했다.-
- 이러한 행사들은 할아버지가 가르치신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이런 인연(因緣)으로 가락중앙종친회에서 주관하는 허왕후 기념비 건립 15주년 성지순례단 기념행사 참가에 제일먼저 신청서를 접수하고
가슴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2,000년을 뛰어넘는 시공을 초월하여, 할머니 탄생지인 인도 아요디아 성지(聖地) 순례, 관광(觀光)기를 적어본다.
2월29일
오전 10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으나 우리일행 집결장소 3층을 2층으로 잘못 안내해 조금 당황하긴 했으나 허정효 본부장과의 전화연결로 무사히 순례단과 합류하고, 김기재 회장님과 인사 후, 허봉무 사무총장의 소개로 일행들과 인사 교환하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13시 30분 에어 인디아 (Air India)항공 점보여객기가 비상했다. 인천상공은 맑고 흰 새틀 구름이 간간히 떠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시조할머니가 태어나신 인도 아요디아를 (Ayodhya)행해 하늘 길로 날아가고 있다. 이번 15차 순례단은 총37명이고, 김해시 이현조 문화예술과장과 이창수 계장, 시의회 전영기 부회장 그리고 김해시 예술단장(연음) 천승호외 4인이 함께하고 있고, 허총장의 친형님이신 허창무 (한국학중앙 연구원 전 교수)종원을 비롯한 가까운 친척 고성(固城)인 11명(부부포함)이 대거 참석하였다.
출발 후 1시간여가 지나자 서해안을 따라 남행하든 비행기가 제주도에서 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중국남쪽 바다위 대만 쪽으로 향하는 게 모니터에 나타난다. 내 옆자리 허 현 종원과 각자가 알고 있든 허황옥(許黃玉)할머니의 인도에서 김해까지의 뱃길, 역사 등에 관해서 의견을 교환한다. 허 현 씨는, 오랫동안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중국 사천성 안악현(옛보주)까지도 직접 할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현지를 답사한 할머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종원이다. 안악현은 양자강을 끼고 있으며 서운향에 보주허씨(普州許氏)사당이 현존(現存)하고 있는 許氏 집성촌이다.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잠을 청하기 위해 맥주1캔과 와인한잔을 먹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신만 또렷하다.
중간 기착지 홍콩에서 2시간을 기내에서 체류했다. 다수의 인도인들이 탑승해 인도행 비행기임을 실감한다. 옆자리에 건장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50대의 인도인이 탑승했다. 홍콩에 직장이 있고 약6개월 만에 뉴델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간다며 핸폰에 저장된 자기 와이프(Wife)와 애들 사진을 보여준다. 와이프가 미인이고, 애들도 예쁘다고 하니 좋아한다. 미소와 칭찬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하는 만국공통어다. 나도 한복
입고 찍은 3손녀의 활짝 웃는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약2,000년 전 우리할머니(아요디아 공주) 탄생지인 인도 UP주로 37명의 후손들이 함께 가는 순례길 이라고 하니 경이로운 눈길로 놀라움을 표시한다.
비행기는 태국 치앙마이- 미얀마 북부-방글라데시 다카 상공을 거쳐 인도 캘커타 동쪽에 진입하고 있음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약3시간을 더 비행해 목적지인 DELHI(델리)국제공항에 오후 9시30분(현지시간 한국 보다 3시간 30분 늦다.)에 안착하다.(총12시간 소요(비행10시간+홍콩체류2시간)총6,000Km 1만5천리다.
인도의 입국검사는 양손중앙 3손가락 지문을 찍고, 까다롭기가 미국.캐나다 보다 심하고, 검색대 통과도 철저하고, 기관총을 손에든 무장경찰관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내 차례가 되어 입국담당관 앞에 섰다. 가볍게 ‘나마스테“하고 인사하니 ”나마스테“하고 답하면서 내 여권과 얼굴을 척보드니 ”pass“한다. 얼떨결에 ”Thank you, sir“하고 통과하니 무표정하든 담당관이 웃는다. 내 얼굴이 자기들과 까만 피부색이 닮았다고 환영의 호의?를 베푼 건지? ”나마스테“인사 한마디가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조할머니 인도 땅에 첫발을 기분좋게 내딛었다.(우리 일행 중 지문을 찍지않고 통과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입국수속. 가방.화물을 찾는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공항청사 밖으로 나오니 현지가이드 신하(Sinha)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밤11시가 넘어가고 있어 더위는 별로였으나, 매캐한 냄새에 탁한 공기가 호흡하는데 많은 부담이 된다. 버스에 오른는 순서대로 환영의 뜻으로 자주색 생화 꽃목거리를 걸어준다. 숙소인 DWARKA 호텔에 12경애 도착했으나 공항검색대와 동일한 방법으로 사람.화물 모두 분리 검색을 마친 후에야 호텔 안으로 진입이 가능했다.(호텔도 철저하게 검색한다) 2인1실 방 배정을 받고 간단한 샤워를 끝냈을 때는 13:00시다. 내 룸메이트는 김형태 (도로 교통공단)군은 50대초반으로 대전이 집이고 혼자참가 했다. 너무 늦고 피곤하여 준비해간 소주 한잔 식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3월1일
아침기상 04:00시(모닝콜) 후, 04:30분 호텔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DELHI 공항으로 버스로 이동하여 LUCKNOW(럭나우)행 07;10분 발India 항공국내선에 탑승했다. 스모그가 심하게 나타나 예정시간 20여분 넘기고야 간신히 이륙 했다.(비행 1시간) 일정이 처음부터 몹시 바쁘다. 공식행사인 UP주 지사 방문이 12시로 일정이 잡혀있어 럭나우 소재 주청사로 직행하여, 3층에서 면담을 기다렸으나, 주 수상 공관에서 공식행사를 하겠다는, 수상 비서실장을 통한 연락을 받고, 다시 공관으로 향했다. 여기에서는 주 수상이 공관에서 공식행사도 하고 만찬도 한단다.
UP주는 인도 29개주 중, 인구가 2억 명을 넘는 2번째로 큰 주란다. 주마다 주 수상(우리나라 도지사),각 부 장관이 구성되어 있는 행정 체계이다. 야다브( Shiri Akhilesh,Yadav) 주 수상은 삼촌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46세의 명문가 출신이다.(인도는 카스트 계급사회가 현존) 삼엄한 경비속에 우리일행 버스는 수상 관저정문을 바로 통과해 커다란 회의장(행사장)으로 안내되었고, 주 관계자가 생화꽃목걸이와 꽃다발로 환영해 주었다. 야다브 수상과 金회장님의 우정에 찬 악수를 시작으로 우리일행과 개별악수(인사) 때 “나마스테”하면서 손을 내밀었더니 “How are you ”한다. 공식행사인 만큼 우리일행도 넥타이에 정장 차림으로 예의와 품위를 지켰다.
수상에게 金회장님이 우리 측 동행 인사를 소개한 다음, 야다브 수상 환영사를 시작으로 우리 측 金회장님 답사가 따르고, 선물교환으로 이어지는 공식 환영행사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전달한 선물은 김종철 가락 청년 부회장이 큼직한 체구를 이용해 조심을 다해 가슴에 안고 온 대형 도자기 이다. 양측 참가자 전원 기념촬영 후 뷔페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전국(현지)T.V방송. 신문기자들이 벌떼 같이 몰려와 플랫쉬를 터트리며 취재경쟁이 요란하다.
13:30분경 럭나우 출발한 버스는 아요디아를 향해 출발했다. 편도 2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버스가 덜컹거릴 때 마다 “아이쿠”소리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시골장터 옆 도로를 지날 때면, 오토바이, 소.대형 화물차, 승용차, 버스들이 뒤엉켜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는 산이 없고, 사방이 지평선만 보이는 한없이 넓은 벌판(황무지)이 나타난다. 들판에는 아주 커다란 고목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먼지를 뽀얕게 뒤집어 쓴 엉성한 소형초가집들이 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새카만 피부의 하층민들이 많은 어린애들과 함께하는 힘든 생활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벌판은 간혹
사탕수수 재배지만 보이고, 사탕수수 대를 가득 실은 화물차도 보인다. 중국의 넓은 벌판이 빈곳 없이 개간되어 곡물들로 빈틈없이 심어진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도로변 인가 옆에는 소똥을 동그란 무더기로 쌓아놓고 있다. 소똥은 취사연료, 초가집 흙벽 보수용으로 요긴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아요디아 까지(125Km)는 4시간이 소요되어 5시가 지나서야 도착해, 숙소인 KRISHNA PALACE 호텔에 체크인 후 짐을 풀었다.
미쉬라 왕궁에 2대의 경찰차 에스코드를 받으며 저녁 7시에 도착했다.
왕궁 입구에 키 큰 종려나무가 양쪽으로 쭉 뻗어 있어 색다른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흰색의 ㄱ자형 왕궁건물이 서치라이트 불빛에 그 위용을 나타낸 가운데, 우리예술단이 선두에서 북. 장구. 꽹과리를 두드리며 한마당 사물놀이를 펼쳐, 항옥(黃玉)할머니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고하며, 왕궁기념식장 무대 앞으로 접근한다. 오늘의 호스트(Host) 미쉬라 왕손이 선두 金회장님을 악수와 포옹으로 환대하고, 꽃목걸이(우리일행 전부)를 걸어준다.
5층 규모의 왕궁 중앙 앞 정원에 마련된 의자에 착석하고, 조명불빛에 비친 흰 백색의 고궁(왕궁)을 올려본다. 유럽풍의 고색창연한 흰 건물은 그 큰 규모와 웅장함이 옛날 미쉬라 왕국의 번영을 말해주고 있다. UP주 수상을 대리해 산림장관이 참석하고, 아요디아 대학부총장, 경찰서장, 유력 방송. 신문기자 등 많은 유관 귀빈들이 金회장님과 앞자리에 착석했다. 우리 옆 좌석에는 왕손가족(Royal family) 과 특별히 초대받은 많은 현지 귀빈가족과 주민들이 참석, 성황을 이루고 있고, 왕궁건물 베란다 벽창호 사이를 오가는 원숭이 가족들도 함께했다.
현지 귀빈과 우리 순례단 인사소개 후, 미쉬라 왕손, 대학 부총장 등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윽고 우리대표 金회장님의 답사가 약20여분 동안 원고도 없이 영어(-인도 제2공용어)로 진행되었는데, 영어 회화능력과 달변에 경의를 표한다.(-약 2,000년 전에 인도 아요디아 허황옥 공주가 한국에 오셔서 고대 가락왕국 왕비가 되셨고, 그 후손들이 오늘 할머니 탄생지를 15회째 방문했다. 미쉬라 왕손내외 김해방문, 인도 모디 수상 한국방한 정상외교등으로 양국관계 친선과 외교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고
계속 발전 될 것이다. -중략) 이곳 미쉬라 왕손에게 큰 도자기(청년회
김해 야구협회 회장 허세용 종원이 가슴에 안고 왔다.)가 선물로 전달되고, 귀빈들에게도 준비한 한국토산품들이 전달되어졌다.
이윽고 김해시 예술단의 사물놀이가 한바탕 무대 위에 흥겹게 펼쳐진다. 긴 상모를 돌리며 원형으로 뛰노는 신명나는 한국 춤에 이곳 관중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진다. 현지 인도전통의상을 갖춘 민속예술단(8-9인) 여자무용수들이 빠른 템포의 북소리(남자-리더)에 맞춰 특이한 손놀림과 경쾌한 리듬으로 춤을 춘다. 생화(生花)) 꽃잎을 수없이 손님(우리)을 향해 듬뿍 공중에 흩뿌린다. 우리는 무용수들의 빠른 율동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호응한다.(음악은 만국공통어 다.) 이윽고 밤하늘을 가르며 축포(祝包) 가 공중으로 부상한다. (약2시간의 식전행사)
왕궁내부로 이동하여 주인(主人)과 (客)이 함께하는 뷔페식 만찬이 시작된다. 천정에는 산델리아 조명아래 선풍기가 돌아가고, 만찬장 식당에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자주색 카펫트가 깔려있고, 옛 왕궁에서 사용하던 도자기(접시. 주전자. 찻잔(茶))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에는 부처님 불상(佛像), 힌두교 혹부리 부처상, 큰 호랑(뱅골)이가 박제되어 서있다.
3마리의 호랑이 가죽과, 긴 칼 등이 실물로 벽에 장식되어 있어 옛왕궁의 기품과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왕궁식단에 매료되어 여러 가지 진귀한 음식을 집다가 보니 접시가 가득해 포식했다. 후식으로 시원한 음료수와 차. 아이스크림 까지 제공된다. 金회장님에게 여러 인사들이 대화를 요청해 만찬이 시간이 자꾸만 길어진다. 이 틈새 시간을 이용해 우리일행은 미쉬라 왕손과 예쁜 공주와 함께하는 사진 찍기에 바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2층 왕궁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의 안내는 예쁜 공주(-18세. 미쉬라 왕손의 조카(누님의 딸) 가 맡았다. 전시실 벽에는 역대 왕 과 왕비의 사진(그림), 사슴뿔, 상아, 사냥총, 칼 등이 걸려있다. 대칭의 2마리 물고기 문양과 태양문양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 쌍어(雙漁)문양과 태양(太陽)문양은 김해 김수로왕 납릉정문 입구에 새겨져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 김해 가락국을 연결하는 귀중한 역사 자료가 된다.(가락-가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물고기를 말함) 한문으로 쓴 김대중 전 대통령 글씨와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의 글씨가 나
란히 자리하고 있다. 하반신만 조금가린 왕과 왕비의 전라(全裸) 사진이
대형거울에 반사되는 특이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2층 북쪽 창으로 기다랗게 이어진 왕궁건물이 어둠속에 들어와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 왕궁에는 현재 미쉬라 왕손내외 외 6명의 직계가족이 그 일부만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비워 있단다. 이 빈 공간 왕궁건물을“헤리티지 재단”(미국-설립-EDWIN FEWLNER)에서 호텔로 리모델링해서, 일반 관광객들에게 공개 할 예정으로 있단다.(미쉬라 왕궁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는 기회를 희망한다) 자정이 넘어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하고 소주한잔 하고 숙면했다. 오늘 숙소인 KRISHNA PALACE 호텔은 욕조도 없고, 시설도 엉성하고 관리도 시원찮다.
(아요디아 는(옛 아유타국) 현재 인구55,000명의 소도시이나 고대 성지 도시로 다양한 종교와 종파의 참배 장소가 많은 곳이다. 힌두사원 약4,000개, 자이나교 사원 4개, 이스람성원 15개 등 이 있어 연중 지속적으로 성지순례단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힌두교의 중흥시조인 라마(Rama)왕의 탄생지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을 처음으로 시작한 지역이다. 그리고 인접한 펴자바드(Faizabad)와 아요디아는 김해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3월2일
08시조식 후(호텔식) 09시에 버스로 이동해 10시에 아요디아 사류(SARYU)강변에 위치한 허황옥 시조할머니 기념공원에 도착했다. 기념공원 정문에서 우리 참배객 일행은 김해시 풍물패 단원들의 요란한 북. 장구. 피리. 소리를 앞세우고 래드 카페트(Red Carpet)을 밟고 중앙통로로 입장한다. 현지 행사 관계자들이 입구에서 꽃 목거리 로 환영해 준다. 공원전체는 잔디가 깔려있고, 검은 돌(烏石) 기념비 2개(한국어. 영어)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2,001년 건립) 기념공원 사방은 키 큰 나무들로 둘러 쌓여있고 사류 강변 둑 이 왼쪽에 위치한다. 행사장은 가설천막이 통로 양쪽에 가설되어 있고, 왼쪽에는 순례 단, 오른쪽에는 미쉬라 왕손과 공주가 나란히 앉고, 오늘도 산림청 주 장관과 현지경찰서장 등 현지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한다. 1시간여의 축하 식전행사가 한국. 인도
민속공연단의 공연으로 시작된다. 장대에 카치발로 두발을 올리고 걷고장대위에 3층으로 공연자가 삼각형 탑 모양으로 어깨 위를 겹치기도, 허물기도 한다.(우리가 초등학교 운동회 때 대나무 장대에 양쪽 발을 올리고 빠르게 달리기를 했다. 이 놀이를 인도에서 보다니 놀랍다.) 또한 삼지창(三支창)을 들고 빠른 리듬에 맞춰 상대방을 찌르고, 살생하는 전쟁놀이 삼지창 공연은 전쟁 이야기다.
12시에 역사적인 인도 허황후 기념비건립 15주년 기념행사(참배)가 허봉무 총장의 집례와 허정효 본부장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생화 자주 꽃이 둘려진 기념비 앞에 제물(祭物)이 차려지고, 참배객 일동은 일제히 도열했다. 향(香)이 올려지고, 전 참가종헌이 4배를 드린 후 김종철 종원의 축문낭독에 이어, 金기재 회장님(가락중앙회)이 초헌을, 아헌( 전영기-김해시의회 부의장) 종헌(허노진 –왕후릉 참봉)으로 술잔을 올리는 제레(祭禮)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헌다(茶)를 김기원(-경남 과기대 명예교수-시인) 족장이 올릴 때 두 여자(김옥순.최정숙) 보살이 양쪽에서 보좌 하는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이 차는- 허 황옥 시조할머니가 2,000년 전에 김해 오실 때 가져오신 차(茶)씨(種子)가 현재 김해 장군차로 전해지고 있다) 헌관은 제례 복을 갖춰 입고, 유건까지 착용 (일반 참배객은 정장) 했으니 더운 여름 인도날씨에 땀이 연신 흐른다. 이어서 미쉬라 왕손과 공주, 현지 내빈도 생화를 올린다. 이 진기한 한국식 제례의식을 취재하는 방송사(T.V) 신문기자들의 열기가 뜨겁다.(인근주변 많은 현지인 들이 강둑에서 우리 기념행사를 구경하고 있다-원숭이 가족도)
金회장님의 기념사와 김해시장의 축사(이현조 과장 대독), 현지내빈(주정부 장관)의 축사를 끝으로, 우리 일행전부가 4배를 드리고 기념식은 끝났다. 이어서 전체 기념사진(현지 민속공연단 포함) 촬영과 개인 기념사진(인증사진?)찍기로 식장은 바쁘게 돌아간다. 이 틈새 시간에 나 혼자 옆 강(江)둑에 올라서니 사류강 이 한눈에 들어온다.(서울 한강보다 강폭이 넓다) 나도 모르게 강물이 흐르는 지점까지 둔치를 한참 걸어서 당도했다. 강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현지인 종교순례자 20여명이 함께 노래(주문) 부르며 자기들의 신앙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2,000년 전에 이곳 아요디아 에서 허황옥 공주가 오빠와 함께 이 유유히 흐르는 사류강을 타고 갠지스강에 닿아 인도남쪽 뱅골만 바다로 항
해 끝에, 김해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호텔로돌아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시원한 맥주로 땀을 식힌다. 인도음식은 길쭉한 밥이 찰기는 없지만, 매콤한 카레에 비벼먹을 만 하다. 특히 인도 풋고추는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입맛을 당기게 해 식사도 문제없다.
현지음식을 잘 먹고 소화해야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식사 후 바라나시(Varanasi)로 향한(200Km) 버스투어가 시작된다. 공식행사가 모두 끝나 간편한 여름 서츠로 바꿔 입고, 신발도 준비해간 슬리퍼형 신발을 신으니 한결 시원하다. 2차선(편도) 고속도로를 덜컹거리며 동남쪽으로 계속 달려간다. 이곳도 넓은 평야는 어제와 동일했으나 황무지는 거의 없고, 밀을 많이 재배하는 경작지가 많아(밀은 우리나라와 동일) 푸른 초원의 밀밭이 보기에도 좋다. 2-3층의 생활주택도 보이고, 힌색의 아파트(?)및 고층건물도 간간히 눈에 뛴다. 그리고 도로 옆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약20여명 의 무리가 막대와 긴 줄에 별 같은 조형물을 달고 들고서, 맨발로 걷고 있다,(갠지스강 으로 가는 종교순례행사라고 함-가이드) 2시간을 버스로 달려 휴게소(간이)에 들려 화장실도 가고, 허리 운동도 하면서 잠시 쉰다.
다시 버스로 이동 중, 시장옆길에 잠시 주차하여 김종설(연제구 종친회장)족장이 시원한 캔맥주를 구입하여 하나씩 돌린다. 덥기도 했지만 알콜도수가 높은 독일산 “버드와이저”맥주는 기분 좋은 취기를 불러와, 허총장의 노래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차 안은 박수와 웃음 속에 노래방 분위기로 확 바뀐다. 허총장 십팔번이 나와 같아 “내 나이가 어때서 ”를 반복으로 힘차게 열창 했드니 박수가 터지고 흥이 고조된다. 본인소개와 자기 장끼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서로를 잘 이해하고 공유하는 유용한 시간이 되었다. 사회자의 전권(全權)으로 약간의 공갈. 협박성? 멘트 덕분에 무작위로 호출 된 종원들이 주저 없이 나와 노래하고 자기를 알린다. 젊은 종원 김형태도 노래하고, 앞자리에 나란히 자리한 김옥순, 최정숙 두 분은 (김해에 거주하는 친구사이로) 노래도 잘하고, 분위기도 잘 맞춰준다. 이수진. 박상아(연음예술단).도 푸로답게 역시 잘한다. 그리고 여행 중 시종일관 넉넉한 웃음 뛴 모습으로 대화하시든 이민자 선생님(부부 허성락-경남항공 전교장) 도 한곡 하신다. 특히 허노진 왕후릉 참봉은 노래도 우렁차게 노익장을
과시하시고, 매월 (초하루.보름) 2번, 04시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10여년을 한결같이 동참하는 족장님들과 함께 할머님께 지극정성으로 상식을 올린다는 말씀에는 숙연해 지기도 한다. 끝으로 천승호(연음예술단-무형문화재 37호) 단장의 우렁찬 판소리 사철가 한마당은 가히 오늘의 압권이다. 우리소리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알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약5시간에 걸친 버스여행이 끝나고, 저녁6시에 숙소인 CLARKS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 후 허정효 본부부장 방에서 소주파티를 벌리고 오늘하루를 마감한다. 호텔은 깨끗하고 시설도 고급이다.
사철가(단가-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청을 튀 우고 가다듬는 노래))
-이산저산 꽃이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찿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 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백발 한심쿠나. 내 청춘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데 있나.
(중략- 이어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한다)
-세상 벗님네들 이내 말 들어 보소 인생 팔십을 산다고 하여도 병든 날, 잠든 날, 근심걱정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사는 인생 죽어지면 북망산천 흙이로다. 사후 만반진수, 불여생전 일배주만 못하니라. 세월아 세월아 가지를 말어라(하략-부모효도를 강조 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3월3일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5시30분에 버스로 갠지스강 으로 이동한다. 버스에 내려서 2사람씩 조를 짠다. 일행을 놓치면 큰일이다. 어두운 새벽 좁은 골목길 에는 누더기 이불을 뒤집어쓴 많은 순례자들이 맨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다. 매캐한 탁한 공기가 한없이 밀려오는 미로 같은 길에는 소똥이 널려 있고, 힌두교 인들이 신(神)으로 모시는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개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드디어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갠지스 강에 도착했다. 강변계단을 내려가 중간크기의 목선에 우리일행 전부가 탑승했다. 배는 강변(강변길이 7km)을 따라가면서 강변의 이곳저곳을 보여준다. 먼저강변에 우뚝 솟은 붉은 벽돌색의 커다란 성곽건물은 옛 왕궁이고 지금은 강변 호텔로, 식사도 할 수 있단다. 여명이 밝아오는, 갠지스 강물위로
장엄한 일출이 시작되고, 강물위로 촛불이 켜진 연꽃등이 떠다닌다.
인도는 인구의 80%이상이 힌두교를 신봉한다. 힌두교 신자는 일생에 한번 이 “바라나시 가트”(목욕장)에서 강물에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업(業)따라 윤회(輪回)시 보다 더 좋은 내세(來世)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목욕장에 새벽부터 많은 남녀가 목욕하고 있는 광경이 지금 보인다.
다음에는 강변 화장터(2곳이 있다고 함) 가 보이 고, 화장(火葬)을 하기 위해 장작을 운반하는 사람, 차곡차곡 쌓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이 사망하면 이 강물에 시신(屍身)을 목욕시키고, 장작더미 위에 시신을 올리고 거의 저녁시간에 화장을 행한다고 한다.(화장용 장작은 365Kg 이고, 여기서 화장을 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최상의 효도라고 생각 한다-화장터는 사진촬영 불가) 아버지와 아들이 탄, 물고기를 파는 작은 배가 붙는다. 물고기를 방생(放生)하면 선업(善業)을 쌓는 것이다.(불가의 생명존중)) 나도 거금(?) 10달라(US)를 내고, 물고기 7-8마리를 갠지스 강물에 풀어 주었다.(父子의 生業에 힘을 주고 자)
약1시간 선상(船上)관광을 끝으로 하선하여 버스로 향한다. 좁은 길 양옆 가게에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이나 공화(供花)를 팔고 있고, 길가에는 많은 동냥하는 사람들 (노인,병자.불구자)이 앙상한 까만 손을 내밀고 있다. 아기를 왼손에 안은 여자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적선(積善)을 강요해 1 달라를 살짝 손에 쥐어주었더니 또 다른 아기 안은 여자가 나타난다. (한 사람에게만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 후 08시에 녹야원(鹿野苑-불교 8대성지중1)로 향한다. 붓다가 5명의 비구를 위하여 처음으로 불법을 펼친 “사르나트“ 유적지는 상당한 규모로 보존되어있다. 하단에 석축과 적벽돌이 1층 정도의 높이로 여러곳에 남아있고, 주위에는 허물어진 돌과 벽돌잔해가 널려있다. 이 벽돌잔해 중간에 ”아소카“대왕 석주 2개(약8미터 높이)가 나란히 서있다. 삼장법사가 다녀갔다는 장소 옆에는 고승(古僧)의 사리탑도 보인다. 원형으로 된 둥근 탑 앞에 섰다. 이 탑이 바로 붓다가 불법을 펼친 성소(聖所)이다. 탑 하단은 돌로 기초하고 중간에는 적벽돌과 돌로 쌓아올려진 아래가 넓고 윗부분이 좁은 약10여 미터 높이로, 탑 중간 중간에는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그림이 조각되어있다. 바로 옆에는 큰 고목(古木)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2,500여 년 전에 이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부처님이 설법하시든 모습을 떠올려본다.“스리랑카”에서 단체로(30여명) 이곳을 찾아온 여 신도 들과 마주 친다. 까만 피부에 전부흰옷을 입은 불교 성지순레단이 퍽 인상 깊다. 다음 이곳 “사르나트”박물관에서 이 유적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아소카왕의 사자 장식 돌기둥은, 4마리(동서남북) 사자가 연꽃위에 둥근 수레바퀴(문양)를 발아래 깔고 있다. 인도국기가 된 수레바퀴 문양조각, 자비로운 부처상, 목과 팔 다리가 떨어져나간 부처상, 가부좌자상 등 많은 고대 석조 조각품들을 관람했다.(파괴된 유물들은 회교도가 파괴함-가이드)
(아소카대왕(Ashoca Mauria)-기원전 240여년 경에 “마가다국” 제3왕조인“마우리아”제국의 3대 황제로, 최초로 인도전역을 통일해 인도인에게 전륜성왕으로 불린다. 통일정복 전쟁 시의 살생을 후회하고 불교에 귀의해 불교를 중흥시키고, 인근나라에 (스리랑카.태국.버마) 불교를 전파하고 붓다의 유적지를 복원.보존했다.)
호텔로 돌아와 중식을 할 때 마주앉게 된 허 송(여주종친회- 부부 김제숙) 회장님이 소주를 컵 가득히 한잔 따라줘 기분이 좋아진다.(애주가-우리 허씨) 오후2시에 CLARKS호텔 출발하여 바라나시 국제공항으로 이동한다. 공항에는 한국 BTN(불교방송)에서 온 불교 성지순례단 신도 60명이 스님들과 함께 귀국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웠다.12일 전에 네팔(Nepal) “룸비니”성지를 시작으로 7개의 인도소재 불교성지 참배를 모두 끝냈는데, “부처님의 가피로”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한 보살님이 이야기했다. 오후5시20분 비행기를 6시30분경에야 탑승해 저녁9시경에 델리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버스가 1시간이나 지연되어 오늘숙소인 DWARKA 호텔에는 저녁9시 넘어서야 도착했다. 호텔식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비에 가까운 식당에서 생맥주 한잔씩을 허 본부장과 허춘구(김해 허씨대종회 이사), 김태영 종원과 함께했다.
3월4일
07시30분 호텔조식 후 08시30분에 전용차량으로 출발하여 세계문화
유산인“찬드라굽타”왕의 “꾸뜹미나르”승전탑을 관광했다. 적벽돌 건축물인 승전탑은 중앙 건축물 반대방향으로 조금경사지게 원형으로 건축되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만약 천재지변 등으로 건물붕괴 시 본 중앙건축물 반대쪽으로 넘어지도록 경사지게 설계 되었다고 한다. 고대건축기술과 미래를 예측한 설계시공에 찬사를 보낸다. 이 유적지 건축물은 전체가 이슬람교성원 건축물로 본 건물은 1-2층 높이만 남고 거의가 허물어진 상태인데, 건물1층 대리석 원형 돔에 새겨진 아라베스크 식 정교한 조각은 놀랍기만 하다.
다음은 인도의 국부인 “간디”(Mahatma Gandi) 화장터를 관광하게 되었는데, 간디추모공원은 잔디와 조경수로 잘 조성하여 정성을 다하여 관리되고 있었다.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영국식민지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종교 갈등(힌두교.이스람교) 으로 갈라졌던 인도 국민을 하나로 이끈 민족의 지도자였다. 국부를 존경하는 인도국민의 마음과 정성이 스며있는 공원이다.
다음은 버스로 델리 중심부에 있는 대통령 궁, 정부건물, 등을 둘려봤다. 델리는 중앙도로를 사이에 두고 해방 후 건설된 신시가지를 “뉴델리(New Delhi)”라고 하는데 인도의 수도이고 인구가 1,300만의 거대도시이다. 점심을 이곳 중국집에서 맛있는 요리로 잘 먹은 후 “아그라”(Agra) 로 이동한다. 13;30분에 출발하여 저녁8시에 아그라도착 JATPEE PALACE 호텔도착 후 호텔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허총장 방에서 허노진 참봉이 주관하는 소주파티가 있었는데 준비한 잔량소주, 안주를 모두 챙겨서 희망자만 참석했다.
허 본부장이 몸이 아파 저녁도 못 먹고 혼자 방에 누워있어, 내가 여행 시 비상용으로 꼭 챙겨 다니는 청심환을 먹게 했다. 빨리 기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호텔은 시설이 퍽 고급이긴 한데, 여기에도 실내화가 없어 샤워 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호텔.공항에는 전부 삼성.엘지 T.V로 설치되어 있어 가슴 뿌듯하다.
3월5일
오늘로 인도관광 일정이 끝나는 날이다. 06시에 호텔조식 후 서둘러 08시에 “타지마할”(Taj Mahal) 로 향했다. 거대한 타지마할 외곽정문을 통과하는 데는 철저한 검색(몸.가방)을 거쳐야했다. 정해진 입구도로를 따라 타지마할 남쪽정문을 다시 통과하니, 중앙에 흰 대리석 커다란 원형
돔이 두개의 작은 원형 돔을 거느리고 웅장한 자태를 나타낸다. 사
방에 4개의 3층 원형 대리석 첨탑이 본 건물을 보호하고 있다.(이 첨탑 역시 본 건물 반대방향으로 조금 경사져 서 있다.) 건물 중앙에는 수심이 얕은 연못이 일직선으로 조성되어있고, 연못을 따라 약1미터 높이의 녹색 조경수가 일정간격으로 양옆에 도열하듯 직선으로 서있다. 맑고 투명한 흰 대리석건물과 조경수 그리고 물 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고대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이” 총애하든 애비(愛妃)가 죽자, 비탄에 젖은 황제가 두 사람 사랑을 영원불멸하게 하려고 20여년에 걸쳐서 건조한 묘(墓)가 사랑의 상징 타지마할이다. 약400년 전(1613년경) 2만명의 노동자가 동원되고, 그 당시 최고 예술가들이 여러 국가(페르시아.이집트.중국.이태리)에서 초빙 되어 이 불후의 이슬람건축물인 셰계문화유산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이 공사에(절대권력) 동원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을 쏟았지만, 지금은 위대한 조상 덕에 이곳 주민 70%이상이 타지마할 관광으로 먹고산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계 각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오늘도 붐비고 있다.
신발에 덧신을 신고, 건물 내부로 덜어갔다. 본 건물 높은 돔 바로 중앙에 흰 대리석 석관(石棺)이 2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사랑했든 애비(愛妃) ‘무무타지마할“과 샤 자한의 석관이다.) 관에 아라비아 문자로 ”신은 영원하시며, 신은 완전 하시도다“라고 새겨져있다-”영원“은 두 사람의 사랑. ”완전“은 저승에서의 두 사람 재결합을 암시한단다)
다음은 “아그라 성”으로 행했다. 이 성(城)은 무굴제국의(1526-1857) 황궁(皇宮)이다. 16세기 초 이슬람교도인 “바브르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이동하여 세운 이슬람왕조이다. 제3대황제 “악바르가 인도의 대부분을 점령하여 제국으로 키웠으며, 이슬람.흰두교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중용하여 화합을 이끌어 인도최대의 영토와 번영을 이루었다.( 2008년도 인도영화”조다 악바르“가 무슬림인 악바르 황제와 (남배우-리틱로산)와 힌두교 ”라지푸트족 “공주(인도최고의 미녀배우-아이쉬와라 라이)의 종교를 초월한 선남.선녀의 감동적인 사랑을 그
린 영화다-감독-아슈 토쉬) 아그라성은 붉은 사암(沙岩)으로 된 성벽높이가 50M 인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쌓인 견고한 요새와 성채모습으로 위
풍 당당하다. 원형정문을 통과하여 황성 안 으로 한참을 걸어서 들어간다. 황궁 건물규모와 전체면적은 실로 방대하다.(중국 자금성의 2-3배 크기?) 푸른잔디가 깔려있는 곳이 엿 날 아그라성 주민의 시장터란다. ㅁ자형으로 배치된 “마할궁전”은 지붕이 원형 돔으로 중세인도 이슬람건축의 정점이다. 내부건축물의 대리석조각, 장식은 섬세 하고 아름답기가 놀랍다. 예를 들면 꽃잎은 붉은 대리석으로, 잎은 녹색 대리석으로, 줄기는 나무색깔에 알맞은 색상의 대리석을 조각하여 붙였다. 황제의 거주공간은 남쪽은 잠나강 (갠지강 지류) 과 사방이 탁 트인 광활한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황제 거처방은 동서남북으로 창(窓)을 내어 시원한 자연통풍으로 더위를 모르고 생활할 수 있게 했고, 목욕탕도 모자익 대리석 조각으로 바닥에 깔았다. 여러 색상의 대리석 조각품이 천정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호화로움의 극치다. 그런데 위 샤 쟈한 황제도 3째 아들인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퇴출, 유폐되어 생을 마감한 공간(방)도 있다. 절대권력(權力)은 아버지도, 형제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 동서양의 공통된 역사다.
멀리 잠나 강변에 위치한 흰 백색 타지마할이 선명히 보인다. 샤 자한이 이 황궁 방에 앉아 그 토록 사랑하든 애인(애비)을 보듯이 타지마할을 보며 살았을 것이다.-사랑은 숭고(崇高)하고, 영원하다.
호텔중식 후 뉴델리로 이동한다. 이동 중에 허황옥 할머니 기념공원 이전확장 부지 예정지를 조망했다.( UP주 수상이 약 10,000평의 부지 제공 약속) 현재의 기념공원 확장(안)과 이곳 장소로 기념공원을 옮겨 더 크게 확장(안)은 우리 종원들 모두가 심도 높게 의논하여 결정할 중요문제이다.(본인은 현재 기념공원 부지를 조금 확장하였으면 하는 쪽이다)
오후5시경에 뉴 델리시내에 있는 한국문화원(주인도 한국대사관) 김 금평 원장의 초청을 받아 한국문화원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영상물을 보고, 문화원 전체를 둘려봤다. 3층 도서관에는 인도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기위해 공부하고 있었고, 어제 천승호 예술단장이 판소리로 불렀든 “사철가” 한국어 병풍이 강당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이든 허황옥 할머니 기념공원 설계건축담당 예정인 현지 교
포 Chang_Hyun Kim을 만나기도 (한국문화원 초청은-金기재 회장님의 개인적 친분으로 이루어 짐) 현지 외교관들의 활동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닭계장/비빔밥을 한국식 반찬과 쌀밥으로 대접받았다. 김치와 콩나물무침 몇접시가 연달아 요청되고, 또한 서빙되었다. 며칠 못 먹은 한식에 포식을 하고 대사관을 떠나 델리공항으로 직행했다.
저녁 11시15분 발 인천공항으로 가는 인디아 항공을 타기 위해서다. 이별을 아쉬워 하듯 인도에서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예정된 시간에 탑승하니 거대한 인디아 점보제트가 정시에 이륙하여 거대한 기체를 몇 번 출렁 이드니 동쪽으로(한국) 기수를 바로잡고 밤하늘을 나른다.
- 나마스테 인디아-
말미에!
허황옥 시조할머니가 인도에서 김해까지 오신 경로와 잊혀 진 고대 가락국을 다시 역사에 등장시키는 작업은 우리 700만 후손들의 몫이다. 이 방대한 역사복원 작업은 파사석, 쌍어문, 태양문양 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물을 발굴하고, 인근국가들에 전했든 철기문화를 역추적 하여 승자(勝者)에 의해 쓰여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후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쏟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여행한 인도는 앞으로 10여년이 지나면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생각된다. 넓은 땅과 자원, 인구(현 12억3천만명) 그리고 “아리안족의”높은 IT기술이 융합되어 빠른 속도로 발전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애풀- 창업-미국)도 영감과 두뇌(頭腦)회전의 활력을 얻기 위해 청바지에 맨발로 수개월씩 인도를 여행했다. 이 신비하고 이상한 나라가 용트림할 때 세계역사는 완전히 다른 각도로 전개될 것이다.(2016년 3월25일)
*먼저 이번 순례행사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주신 金회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제15회 허황옥 시조할머니 인도기념공원 순례단으로 함께한 5박7일간 의 족장님들과의 인연(因緣)에 감사드리고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참고자료;
-대영백과사전 인도편 –김해허씨족보 - 김병모 교수(한양대-인류.고고 학)의 블로구- 인도 성지순례단 안내자료(기념비 건립 15주년)
첫댓글 몇년전 KBS-TV 러브인 아시아 프로그램.
즉 한국으로 시집온 며느리가 애들과 함께 친정 네팔로 떠나면서
애들에게 외할머니한테 인사 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합장하고 "나마스테"하라고 시키는 걸 본적 있습니다.
김해에서 1년 6개월 근무하면서 허황후 묘, 불모산,장유암 등
가락국의 유래에 대해 많이 접해 본적이 있습니다.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나마스테"
배대장 나마스테 4주년기념으로 식사한번 합시다 !
정말 기행문을 잘 쓰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허가들 굉장하네요! 부럽습니다.
나마스테, 정말 귀하고 가치있는 인도 여행 하셨네요.
4월 불자회 모임때 사진과 함께 좋은 기행담을 부탁드립니다.
불자회원들 께서 4월에는 많은회원들이 모일것갔읍니다. 기대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