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1884~1920)】 "잔느 에뷔테른과 저주받은 사랑이야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Jeanne Hébuterne (au chapeau), 1917년 작품, 52x67cm, 개인소장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화,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 왼쪽은 1917-18년 작품, 오른쪽은 1918년 작품, 모두 개인소장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에게 자신을 모디라고 불러달라고 했단다. 모디는 모딜리아니를 줄여 부르는 애칭이다. 하지만, 모디는 프랑스어 Maudit과 같은 발음이었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저주받은 Cursed라는 뜻이 있었다. 자기를 저주받은 사람, 저주받은 예술가라고 불러달라 했던 것이다. 그는 허세남이었다.
그는 술과 마약에 쩔어 지냈다. 하지만 많은 미술사가들은 그가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었던 것을, 그가 만든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학생이었을 때부터 결핵을 앓고 있었다. 결핵은 20세기초 많은 인텔리들과 예술가들을 죽게 한 병이었다. 예전 드라마에서는 가련한 여주인공의 목숨을 앗아가는 그런 병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병은 전염이 되는 감염병이었다. 물론 페스트나, 오늘날의 코로나처럼 쉽게 널리 퍼지는 전염병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사람에게 옮길 수 있는 감염병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도 결핵에 걸린 사람들은 "폐병쟁이"라며 환영받지 못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이 결핵 환자인 것을 주변에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술과 약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던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술과 약에 취해있을 때는 활력이 있었고, 술과 약에서 깨어나고 있는 초췌한 모습은 결핵 때문이 아닌 술과 약의 후유증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술에 취해 단테의 신곡을 암송했고, 흥이 나면 술판에서 옷을 벗어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극단적인 보헤미언으로 보이기를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잘 생겼고, 옷도 잘 입었다고 한다. 이태리에서 온 외국인이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그에게는 여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허세남에게는 강한 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를 사랑했던 것은 양갓집 규수였다. 미술지망생이었던 파리의 소녀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와 사랑에 빠졌다. 1917년의 일이다. 둘은 사랑을 했고, 가난하고, 술과 약에 쩔어있는, (적어도 아직은) 성공하지 못한 화가 또는 화가지망생을 소중한 딸의 배필로 좋아할 부모는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둘의 사이를 반대했고, 잔느는 모딜리아니와 함께 있기 위해 집을 나왔다. 잔느의 부모는 잔느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 대책도 없고, 잔느에게 충실하지도 않았던 모딜리아니였지만 잔느는 그에게 충실했다. 항상 그렇듯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모딜리아니에게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1918년 잔느가 아이를 임신하자, 이들은 니스로 이주할 것을 결심한다. 니스로 찾아오는 돈많은 관광객들에게 그림을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다.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아이를 유모에게 주어야 했다. 첫째도 키우기 힘들었는데,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잔느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그녀는 이 시기 자살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1919년이 끝나가면서 상황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의 미술상인 즈보로브스키의 노력이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는지, 그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잔느는 희망에 차 오르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첫째 아기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모딜리아니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더니, 갑자기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1920년 1월말 모딜리아니는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죽어버린다. 잔느는 임신 8개월의 몸이었다.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날, 그녀는 부모의 집, 5층 베란다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22살의 짧은 삶을 마감해 버린다.
모딜리아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대로 그는 저주받은 예술가였던 모양이다. 사실 자기가 살고싶은대로 살았고, 하고싶은 것을 했던 모딜리아니보다는 그를 사랑했던 잔느가 더 저주를 받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도 키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거액에 거래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맨 아래 있는 모자를 쓰고 있는 잔느 에뷔테른이라는 그림은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를 그린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0만불에 거래가 되었다. 550억원이 넘는 돈이다. 어쩌면 이 그림이 모딜리아니의 생전에,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의 가격에라도 팔렸다면, 모딜리아니는 결핵을 죽는 대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도 뱃속의 아이와 함께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림의 가격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은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1918년 작품, 38x55cm, 오른쪽은 스카프를 두른 에뷔테른 Jean Hebuterne with Scarf, 1919년 작품, 54x92cm, 모두 개인소장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느 에뷔테른, Jean Hebuterne with Yellow Sweater, 1918-19년 작품, 65x100cm,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Solomon Guggenheim Museum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9년 작품, 55x92cm, 일본 쿠라시키 소재 오하라미술관 Ohara Museum of Art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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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어깨를 들어낸 잔느 에뷔테른, Jeanne Hébuterne aux épaules nues, 1919년 작품, 73x91cm, 개인소장
모자를 쓰고 있는 잔느 에뷔테른, Jeanne Hebuterne (au chapeau),1919년 작품, 54x92cm,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