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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신고 인사방 스크랩 대지의 항구 - 배삼룡 / 은방울자매 / 쎄쎄쎄 / 김정호 / (원곡) 백년설
김나무골 추천 0 조회 106 17.09.06 13: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원곡) 대지의 항구 - 백년설 (1941년)


대지의항구 [1941년]
김영수 (=남해림) 작사, 이재호 작곡, 노래 백년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는냐
쉬지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찾아 가거라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피리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말고 쉬지를 말고 꽃잡고 길을 물어
물에 어리는 물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정처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쉬지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 가거라

대지의 항구 - 김정호

대지의 항구 - 배삼룡

대지의 항구 - 은방울자매

안봐도 비디오(원곡=대지의항구) - 쎄쎄쎄 (1996년)



안봐도 비디오 (작사:이윤정 작곡:이재우 노래:쎄쎄쎄)

원곡 : 대지의 항구


내앞에서 눈물 흘리는 가련한 여인아

솔직하게 말해보렴 나 때문이 아니지

나를 피해 딴짓 하던거 내가 모를 줄 아냐

안봐도 비디오 안들어도 오디오

너 자꾸 오바하지 마


며칠전에 너의 호출기 비밀번호 바꿨더구나

내가 알면 큰일 날까봐 몰래 얼른 바꿨니

그렇다고 모를 줄 아냐 아이큐가 소수점이냐

안봐도 비디오 안들어도 오디오

머리 굴리지 마라


메세지에 음성 남긴게 혹시 너 아니냐

헤어지자 그만 만나자 더 이상 못 만나겠다

나를 피해 딴짓 하던거 내가 모를 줄 아냐

안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

너 자꾸 오바하지 마





[펌]http://blog.daum.net/cjk4205/17036031


대지의 항구  


작사  남해림 (본명 金永壽)작곡 李在鎬 (본명 李三同) 노래 백년설

 

1.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는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2.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피리 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 찾아 가거라

 

3.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정처 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 가거라

 

 

 

일제강점기 젊은 김영수님은 만주로 간 동포들이 이국 땅에서 받는 민족차별의 설음을 달래려는 마음으로 대지의 항구라는 노랫말을 쓰고 "남해림"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노랫말에 이재호님이 곡을 붙혀 1941년 백년설의 노래로 불리면서 순식간에 널리 퍼졌습니다.

 

  

1934년, 일본유학시절부터 경성방송국을 통해서 발표한 드라마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김영수님이 일제에 의해서 폐간되기 전의 朝鮮日報에서 1938년에 모집한 신춘문예 부문에 소복<素服>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내 당선되고 소설, 희곡, 드라마 등 모든 분야를 설렵했습니다. 


그 무렵에 쓴 노래가 이 "대지의 항구"였습니다. 남해림으로 발표된 노래는 대지의 항구외에도 "사나이의 길처럼" 달빛어린 강변항국의 물망초, 애수의 사막, 남국의 달밤 등의 노래들도 있습니다.  해방되면서  KBS 편성과 직원으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77년 생을 다 하실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님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방송 드라마 선구자 김영수님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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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게재 일자 : 2012년 07월 25일(水) 
 
(17) 남해림·백년설의 ‘대지의 항구’  일제강점기 만주로, 남양군도로… ‘시대의 아픔’… 친일가요 논란도 


▲  ‘대지의 항구’가 수록된 가수 백년설의 앨범 재킷 사진. 이 노래는 친일가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말을 타고 달리던 옛날 사람들은 버드나무를 발견하면 곧장 말에서 내렸다. 우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먼 길을 오느라 사람도 말도 목이 탔던 것. 버드나무 밑에는 으레 샘물이 있었고, 이정표도 세워져 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잠시 쉬고 있는 나그네.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1941년. 남해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이 부른 ‘대지의 항구’의 노래시는 이런 낯익은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가거라.”

 

서정적인 노래시와 작곡이 조화를 이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친일가요’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만주 이민사’를 다룬 국책 영화 ‘복지만리’ 삽입가였다는 것이다.

 

1930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군은 이듬해 만주국을 세워 중국대륙을 넘보기 시작한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욕이었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만주로 강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해 군량미를 확보하겠다는 게 저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만주 땅은 본디 우리나라의 옛터가 아니던가. 파묻힌 성터, 깨어진 기왓장 그리고 주춧돌은 무엇을 말함이던가. 우리 조상들의 혼백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고구려의 정신이 스며 있었다. 높은 기상과 기개. 광개토대왕의 호랑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피리 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물에 어리는 물에 어리는 항구 찾아가거라.’

 

만주는 드넓다. 이 광활한 대륙에서 동서남북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그네와 고향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하지만 이 노래는 ‘항구를 찾아가라’고 강조하지 않는가. 그것도 유자꽃 피는 항구를….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나 남해지방에서는 유자꽃이 핀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의 이미지와 뉘앙스는 남양군도(南洋群島)를 연상시킨다.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정처 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가거라.’

 

노래의 정서는 작품성에 있다. 매끄러운 시어(詩語)들이 빛나면서 점입가경으로 들어서는 이 노래, ‘대지의 항구’. 신선미가 넘치면서 정감이 있는 건 바로 한국적 정서로 다가서기 때문.

 

‘달 실은 마차다 해 실은 마차다/ 청대콩 벌판 위에 휘파람을 불며 불며/ 저 언덕을 넘어서면 새 세상의 문이 있다/ 황색기층 대륙길에/ 어서 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싸움터다/파묻힌 성터 위엔 청노새는 간다 간다/ 저 고개를 넘어서면 새 천지엔 종이 운다/ 다함 없는 대륙길에/ 어서 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남해림(본명 김영수·1911~1979)은 서울 태생.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서 ‘동맥(動脈)’이 당선된다. 그리고 1939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서 ‘소복(素服)’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작사로서는 1940년에 발표한 이용준 작곡, 남해연이 부른 ‘비오는 부두’가 데뷔작이다. 이밖에 ‘꽃피는 마음’ ‘대지의 항구’ ‘복지만리’ 등이 있다.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그가 쓰고 연출했던 것.

 

작곡가 이재호(1914~1960)의 본명은 이삼동. 경남 진주 태생이다. 대표곡으로서는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만포선 길손’ ‘불효자는 웁니다’ ‘울어라 기타줄’ ‘남강의 추억’ ‘북국 5천킬로’ ‘기타에 울음 실어’ ‘단장의 미아리 고개’ ‘고향에 찾아와도’ ‘귀국선’ ‘세세연년’ ‘산유화’ ‘무정열차’ 등이 있다. 진주고보를 졸업한 그는 1937년 일본 우에노(上野)음악학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항구에서 항구로’란 자작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한때 진주에서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일한 적도 있었다. 1951년 6·25 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 KBS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다. ‘무적인’이라는 그의 필명은 등대수라는 뜻이다.

 

가수 백년설의 고향은 경북 성주. 본명은 이창민이다. 그가 예명을 백년설(白年雪)이라고 자작한 건,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대에서도 백두산에 쌓인 흰 눈처럼 기상을 지키자는 이유에서였다. 한때 연극지망생이던 그가 가수가 된 건 주위 사람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보리 숭늉같은 구수한 음색은 특유의 멋이 있었다. ‘유랑극단’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만포선 길손’ ‘눈물의 백련화’ ‘산팔자 물팔자’ ‘어머님 사랑’ ‘일자 일루’ ‘고향설’ 등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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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흰할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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