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쓸모 있을 TMI | 세기의 라이벌
잘못된 만남이 낳은 ‘홀로코스트’히틀러 VS 비트겐슈타인
여기 두 사람이 있어. 첫 번째 인물은 평생 술과 담배, 육식(학대받는 동물을 보면 불쌍해서 고개를 돌릴 정도였대)을 멀리했고 예술을 사랑했으며 사랑하는 여인만을 바라본 순정남이었지. 두 번째 인물은 주변 사람 다 정리될 초절정 예민함과 제로에 수렴하는 사교성, 부모 속 터지게 안 가도 될 군대에 자원 입대하고, 그 뒤 교사로 부임한 학교에서 ‘체벌왕’으로 이름을 날리며 남의 부모 속까지 터지게 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어. 둘의 정체가 궁금하지? 순서대로 답을 공개하자면 바로 세기의 전쟁광이자 악마로 불리는 히틀러와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철학자로 칭송받는 비트겐슈타인이야. 놀라지 마~
답 맞아. 자, 그럼 지금부터 ‘유대인 대학살’의 씨앗이 된 이 둘의 ‘잘못된 만남’을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
“레알슐레(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에서 나는 유대인 소년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신뢰할 수 없는 경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_ 히틀러
넌 왜 다 가진 거야(feat. 히틀러)!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내가 실업학교라니! 이게 말이 돼?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 폭군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그림쟁이가 웬 말이냐!?’라며 내 꿈을 짓밟았고 그런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겁 많은 어머니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지.
레알슐레 진학 후 난 행복하지 않았어. 여기 친구들이 내 예술혼을 이해하겠냐고!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의 4시간짜리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날 말야. 어라, 이게 무슨 소리야? 누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 거지? (4시간 후) 헉! 다 외웠어! 저 괴물은 뭐야. 비트겐슈타인? 오스트리아 재계를 주무르는 철강왕의 아들? 바그너에 버금가는 작곡가 브람스가 쟤네 집에서 연주회를 열고 형제자매 피아노 레슨을 봐준단 말이지. 슈만과 클라라도 오고. 뭐? 오스트리아의 국보급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도 저 집안의 후원을 받고 있어? 게다가 저 말투. 귀족인 척 잘난 척은, 역겹게!
선생님들도 저 아이 앞에선 꼼짝을 못하네. 듣자 하니 천재라는데 진짜 천재인 거야, 돈의 위력인 거야? 철강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 공부를 하러 이 학교에 왔다고? ‘두 자우유트!(이 더러운 유대놈아!)’ 난 유대인을 진심으로 증오해! 그들은 비열한 수법으로 부를 독차지했고 예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더러운 돈으로 음악가와 미술가들의 환심을 사지. 두고 봐. 언젠가 내 힘이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세상 모든 유대인들을 싹 쓸어버리겠어.
아주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주오(feat. 비트겐슈타인)
누가 내 얘길 하나, 왜 이리 귀가 가렵지? 히틀러가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인 걸 알았느냐고? 몰랐어. 주목을 끌 만한 친구가 아니었거든.
아, 나를 잘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잠시 내 소개를 하지. 난 현대 영미철학의 최고 슈퍼스타로 불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야.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쑥스럽지만 믿을 만한 곳에서 진행한 투표 결과라고 하더군.
나를 잘 몰라도 내 어록은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다’ ‘철학의 목적은 파리에게 자신이 갇힌 병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너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할게.
꽤 잘사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너무 겸손했나?) 부와 명예는 언제나 내 관심 밖이었어. 철학적 사유만이 날 매료시켰지.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전 재산을 친구들과 예술가들에게 기부하고 정원사, 초등학교 교사, 약품 배달 사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어. 1차 세계대전 때는 모두가 말렸지만 자원해서 참전하기고 했고. 더 놀라운 건 전쟁을 치르며 집필한 <논리 철학 논고>가 내 대표 저서라는 거야. ‘놀라운 나’ 같으니라고!
듣자니, 히틀러는 미대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군대에 들어가 권력을 잡은 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아닌 레알슐레가 있던 린츠에 ‘아돌프 히틀러 박물관’을 세웠다더군. 또 굳이 린츠에다가 제철소를 세우고 우리 가문의 공장을 흡수했다지 뭐야. 내게 느꼈던 콤플렉스가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지. 불쌍한 영혼 같으니라고 쯧쯧….
몸과 마음을 다해 철학을 실천했다고 자부하는 난 ‘아주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 듣자 하니 히틀러 저 친구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하던데. 혹자는 그러더군. 히틀러가 어린 시절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기형적인 콤플렉스를 키우지 않았다면 역사는 좀 다르게 흘러갔을 거라고.
그렇다고 히틀러의 악마 같은 행위가 조금이라도 이해받아선 곤란해. 다신 이런 끔찍한 역사가 반복돼서도 안 될 거고. 이 철없는 친구에게 연락을 한 번 해봐야겠어. 비록 삶을 마감한 후지만 이제라도 깨달음을 얻게 도와주려 내 위대한 사상을 좀 들려줄까 해. ‘귀 열어라~ 철학 들어간다’하며 말이지.
레알슐레 재학 당시의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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