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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고려의 인구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
PSYlove 추천 0 조회 1,700 08.01.17 15:48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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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1.17 21:24

    첫댓글 저도 친구와 대화 중에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책에서 본 것이 200만 가량이었다고 하니까, 비록 급조된 것이긴 하나 거란에 대비해 편성된 광군 30만이면 고려의 인구 계산도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었는데, 조금 의문스럽습니다. 정말 급조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불과한건지...

  • 작성자 08.01.17 21:43

    급조되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광군은 광종대에 처음 편제되어 문종대까지도 그 흔적이 엿보이는 군사 편제로서 고려의 정예 주력군이었다고 파악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 22.11.25 11:03

    고려사 숙종기록보면 전투병력15만 비전투병력은 22만 도합 37만 기록나옵니다
    그러니까 상비군은 15만정도되고 지원병력 예비군은 22만정도 됩니다

  • 08.01.17 21:56

    급조라는 표현이 조금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거란에 대비해서 급히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급히 만들었다 한들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로 많은 인구를 차출해내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고려가 7세기 고구려 30만 대군과 동일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는지는 좀 의문스럽습니다. 만약 그 정도 힘이 있었다면 굳이 거란 눈치를 볼 상황도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 08.01.17 22:38

    30만으로 거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은 그다지... 거란은 병민일치의 초강력 군사제국이었습니다. 사실 고구려가 30만을 동원했는지도 명확치 않을 뿐더러 그 30만이 다 정병이었다고 여길 수는 없습니다.

  • 22.11.25 11:40

    @PSYlove 고려관련해서는 상비군 즉 정규군 15만 기록있습니다 위에제가 쓴글보세요 그냥 기록있으니까 추정하시면됩니다
    고구려는 발해의발언이나 한번 동원할때 순수고려인이 12만정도였고 최치원발언이나 당시 고구려제국인구
    400~550만 말갈거란5만병력등 종합적으로 25~30만 추정되고요
    고려는 송 거란 금 고려 동아시아 3대축입니다 그시기에 요금등이 중원을 압도했고 우리는 중국을 다먹어버리지
    못하게 견제충분히 했다로 정리할게요 그리고 언급드릴게 중요한건데 고려의 전시기동안 국경선은 만주요양부터
    선춘령 공험진까지입니다 이건팩트이고 앞으로 서서히알게될겁니다 이미 연구도 거의 끝났고요 다만 강단에서 토론자체를
    피하고있다고하죠 수서 당서 요사 금사 원사 고려사제외 조선초기가록 모두 그렇게 적시하고있고 빼박입니다
    여기카페에서는 언급이 거의없네요 고구려평양위치도 요양쪽이고 통ㆍ신초기 국경도 만주입니다
    심지어 조선중기까지 고려에비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만주였고 조선후기는 간도쪽입니다
    그리고 고려인구는 한반도만보면 300만 위영토까지보면 400만추정합니다1100년정도말하는거고요
    질문있음 댓글달아주세요 역사학계는 실지로 카르텔이있습니다 그래서 일제에의해 왜곡된 사실이 많은게
    팩트입니다!

  • 08.01.17 23:58

    제가 고구려를 언급한 것은, 당시 고구려의 힘이 당나라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구와 병력 계산에 문외한인 제가 이 부분을 언급하기가 망설여지긴 합니다만, 고구려는 당나라 50만, 설연타 20만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가 고구려와 비슷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고려는 대외 문제에 소극적이었습니다.(물론 고구려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말입니다) 거란 문제에 있어서도 당시 5대10국 시기의 중국과 연합하여 견제해 보려는 일이 있었지만, 그 시도마저도 혜종 때 바로 포기합니다. 물론 고구려시대와 고려시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두 국가의 활동적 측면에서 아무래도

  • 08.01.17 23:59

    차이가 나는 것 같아 보입니다.

  • 작성자 08.01.18 02:09

    중국과 함께 거란을 견제하려던 노력은 고려에 혼란기가 찾아오면서 자연스레 중국쪽에서 손을 놓아버린 형태였습니다. 송은 고려가 거란과의 전쟁을 치룰 힘이 있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고려는 초창기부터 북방의 역사에 깊숙히 관여한 국가였습니다. 고구려처럼 독자적인 천하관 아래서 주변 국가들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강대국으로 성장하지는 못 했지만 이게 고려가 대외 문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려가 고구려보다 군사력이 더 강했으면 강했지 약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08.01.18 14:01

    물론 저는 고구려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런 면을 보인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물론 고려의 힘은 거란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제 생각엔 그 정도 힘(고구려와 군사력이 비슷하거나 더 강했다고 볼 경우)을 가진 국가가 대외적으로 뚜렷한 변수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분명 고려-요-송-서하의 4강체제에서 고려도 한 축이었지만(저 역시 고려가 강했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두고는 있습니다), 고구려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이 있지요. 고려는 한 축이었을 뿐, 고구려처럼 국제정세에서 주도권을 쥐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 08.01.18 13:59

    거란 견제를 먼저 시도한 쪽이 고려였지만, 왕건 사후 2대 혜종이 먼저 포기했지요. 오히려 중국(후진)에서는 2대 출제(出帝)가 고려를 믿고 전쟁 준비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로 볼때에도 견제에 소극적이었던 나라는 고려입니다. 후진의 경우 첫출발부터 거란의 간섭을 일정하게 받았지만, 고려는 거란의 간섭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고려의 내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고려가 다분히 적극적으로 국제정세를 주도하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 작성자 08.01.18 14:38

    분명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고려에게 있어서는 중국이든 거란이든 자신들의 잠재적 적국입니다. 고려가 중국과 함게 거란을 공격해 거란을 멸망시켰다 한들 고려가 그 다음으로 맞이해야하는 적국은 결국 더 비대해진 중국입니다. 고려에게 있어서 거란은 적국이지만 그렇다고 거란이 없으면 중국과 곧장 마주해야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거란이라는 유목제국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려는 결국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고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확립했으며 여러 천하관이 공존하는 동아시아의 모습을 만들어내느데 성공합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원했던 남북조, 유목제국과 함께 4대 천하관으로서 동아시아를 유지하려 했던

  • 작성자 08.01.18 14:41

    크게 다르다 할 것이 못 됩니다. 고려로서는 고구려의 옛 고토인 만주지방을 차지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고,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송화강을 기준으로 동쪽 지방을 고려의 세력권으로서 거란에게 인정받기에 이르릅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비슷한 군사력을 지녔다고 하여 꼭 대외적으로 뚜렷한 변수를 남겨야 하는 법은 없으며 고려는 대외적으로 뚜렷한 변수를 남겼습니다. 그 뒤부터 고려는 끝없이 북쪽을 향해 때로는 외교적으로 때로는 군사적으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이런 고려의 북진은 금나라가 들어서기 직전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고려는 혼란기에 접어들어있었는데 어떻게 거란을 칠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것이 견제에 소극

  • 작성자 08.01.18 14:41

    적이었다고 주장하는데는 너무 근거가 빈약합니다.

  • 08.01.18 02:13

    고려인구가 200만이었습니까? 전 최소 500만.. 최대 1000만명으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 작성자 08.01.18 12:10

    중국의 기록 상에서는 200만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최소 500만 최대 1000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08.03.03 20:20

    최대 1000만 명은 어폐가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에 사갑자생의 노인을 불러 영조 왈 "나는 700만의 백성을 다스리는데 너는 어떠하냐?", 노인 왈 "저는 전하께서 백군(많은 군현)을 다스리고 700만의 백성을 다스리듯이 저는 수백개의 벌통에 수백만의 벌을 키웁니다."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선 후기 영조 때 인구가 700만인데 어떻게 의학,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려가 1000만의 인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 08.03.03 20:44

    고려가 조선보다 의학,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건...뭘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 08.01.18 15:02

    고려가 거란이라는 존재를 남겨두어 동아시아 다원천하가 이룩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고려가 주도한 것처럼 해석한 것입니다. 고구려가 4강 천하를 이룩했다고 말하는 것은 비록 그들이 월등히 강해서는 아니었지만, 유연과 송(남조)을 연결하여 북위를 견제하는,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려 시대의 4강 체제에서는 고려가 이렇듯 주도한 역사가 없습니다. 단지 거란 침략을 막아냄으로써 우리도 하나의 강국이다 정도를 보여주었을 뿐이지요. 고려가 4강 천하를 주도적으로 이끈게 아니라, 이들 4강이 각기 안정을 취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 작성자 08.01.18 15:05

    동의합니다. 고려가 거란의 존재를 일부러 남겨두었다는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뭐가 어쨌든 고구려가 그렇게 원하던.. 고려가 하고자 했었던 다원적 천하는 분명히 성립했고 이것 만으로도 고려는 충분히 국제정세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으로 봐야합니다. 그리고 글의 주제와는 한참 동떨어진 이 대화는 이쯤에서 끝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새로 글을 써주세요.

  • 08.01.18 15:06

    물론 고려가 고구려와 힘이 비슷하다고 해서 꼭 그정도의 국제적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정도의 국제적 능력 차이라면 국력 면에서도 확연히 비교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군사력 쪽에 문외한이라 고려가 고구려와 비슷한 군사력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하여 국제정세와 관련된 부분만 언급하는 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작성자 08.01.18 20:38

    고려와 고구려가 그렇게까지 크게 국력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것 자체에 전 아주 부정적입니다. 애시당초 성장을 위해서 많이 힘겨운 투쟁을 해오다가 동아시아의 세력을 양분하고 있었던 북쪽의 유목제국과 남쪽의 중국이 완전히 분열되어 제대로된 힘의 구심점이 없었던 시기를 틈타 강대국으로 올라서서 동아시아 정세를 마음껏 휘둘렀던 고구려와는 다르게 고려같은 경우에는 이미 약간의 분열기 이후 금새 다시 통일되어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송나라와 북방에는 유목세계 뿐만이 아니라 한족과 중국의 땅까지 일부 차지하고 발해까지 멸망시킨후 발해의 문화까지 받아들여 발전시킨 동아시아의 먼치킨 군사제국인 거란국이 있었습니다.

  • 작성자 08.01.18 20:41

    그런 상황에서는 고구려의 광개토태왕 시절이 고려에 완벽하게 부활하더라도 고구려처럼 부쩍 성장해 동아시아를 주름잡는 제국이 되기 힘든 상황이 아닙니까.. 거란국은 그 강력하다는 유목 제국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글의 주제와 너무 동떨어진 토론같으니 더 하실 말씀이 있거든 새 글을 써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08.01.18 20:54

    예..일단 이야기가 본 글과 많이 벌어지고 말았군요. 논의가 다른 쪽으로 되어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고려의 인구 문제에 대한 지적은 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듣는 쪽으로 좀 자중하겠습니다.;;

  • 08.01.21 18:53

    고려의 동,서북계 군사력을 모두 합치면 14만이고 주진군(상비군)이 5만2천입니다. 여기에 전시에만 출전하는 예비군의성격을 띈 백정까지 포함한다면 더욱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08.03.01 09:50

    200만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최소 600만명~1050만명정도는 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 22.11.24 19:50

    고려초기인구1100년정도에 200만아니고 현재 300만으로 파악합니다
    단 이것은 현재 우리가아는 반도내에 추정치입니다 고려는 만주 요양부터 선춘령공험진까지
    가 고려국경선입니다 만주의 인구까지 포함하면 약400만정도로 추정됩니다 ...
    서긍 기록은 잘못된겁니다

  • 22.11.24 20:05

    위에 ps러브님 말씀대로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천민등을 인구에서 누락되어있고
    그래서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 인구를 대략 가깝게 추정할려면 고려와 조선의 인구를 역으로해서 추정하면됩니다!
    그리고 그시기의 문헌이나 국경선이나 영역 뿐아니라 한반도와 만주의 기후 그리고 농경 식량생산 데이타등을
    종합적으로 추정하면됩니다 이런데이타들은 이미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1600년경 조선인구 1000만넘고 1400년 조선건국때는 550만 1100년경300만인데
    제가 아는바 고려와 조선중기까지 국경선은 위에 말씀드린 만주지역까지였으므로 나온계산에서 대략100만~150만을
    더하면됩니다 저는 분명 국경이 만주라고했으며 의견있으면 댓글달아주세요
    왜 여기카페에서는 고구려평양위치나 고려와 조선의 국경위치에대해 아직 관심이 크지않아보이는데
    이미 이런연구는 막바지에 와있습니다

  • 22.11.24 20:27

    자 그러면 1000년이전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 인구를 추정해보면 우선 인구의 추정에앞서 한반도와 만주의 인구를 추정하면
    900년경 한반도 약 280만~300만 만주전체 약400만~450만이내로 이것은 제가 기후나 식량데이타등으로
    추정한것입니다 정리하면 1000년 이전에는 농업생산량이 변화가 미약하고 1000년이후 서서히 증가해서
    조선시대는 더큰폭으로 증가합니다
    학자들이 고려와 조선의 인구를 이런데이타로 추정하는것을 알수있고 우리가 아는 문헌만
    보는것보다 더 근접해서 추정할수있습니다
    500년경 고구려전성시기는 한반도 250만~280만 만주 350만~400만 추정됩니다
    여기서 고구려 백제 신라 통ㆍ신 발해 국경을알고 문헌을 대략참고하면 그냥 대략적인 추정치가 분명히
    나오는거죠! 5세기 고구려 450만 ~550만정도로 보이며 이것은 김용만 선생님이 말하시는 고구려순수인구뿐아니라
    거란 실위 말갈 속국신라 북연 요서지역 지두우등 속민들까지 포함한 저의 최소 최대치입니
    다 저기서 순수고구려인은 350만 전후로 추정됩니다 농업생산량 기후 국경선 문헌등을 종합해서 시대를
    역으로 추적해나가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고구려인구에 도달할수있다고봅니다!

  • 22.11.24 20:33

    통ㆍ신초의 인구는 250만 발해전성기인구는 250만~300만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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