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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미연의 차 안(아침)
운전석의 미연.
미연의 시야 속에서 ‘이삿짐 트럭과 짐을 옮기는 인무’들이 움직이지만,
그들을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미연은 자신의 계획이 어쩌면 무모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되돌리기엔 늦었다고도 생각한다.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은솔이 엄마를 올려다본다.
미연 :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은솔에게) 걱정하지마, 다 잘 될거야, 그치?
미연이 차에서 내린다. 은솔이 따라 내린다.
(동진) : 내 일상은 지루하고 보잘 것 없었으나 평화로웠다.
S#2. 빌라 단지 내(아침)
동과 동 사이가 멀지 않은 빌라 단지.
이삿짐을 나르는 이삿짐 센타 직원들을 옆걸음으로 지나쳐 경비 아저씨가 나온다.
미연에게 이사상황에 대한 ‘확인 사인’을 부탁한다.
(동진) : 지구 어느 쪽에선가의 전쟁과 격동은 영화처럼 현실감이 없었고,
그리하여 내 작은 세계는 평화로웠다. 남쪽 베란다 창문을 열기 전까지....
올려다본 동진의 집.
이빨을 닦으며 내다보던 동진과 미연의 눈이 마주친다.
미연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경비아저씨에게 볼펜을 돌려주고 다시 올려다 봤을 때, 창문은 비어있다.
S#3. 동진의 집 거실(아침)
칫솔을 입에 문채 벽에 붙어있는 동진. 상황을 이해해보려 한다.
자기도 모르게 치약거품을 꿀꺽 삼키고는, 콜록대며 화장실로 뛰어간다.
(동진) : 평화는 깨졌다.
S#4. 수영장(아침)
물속의 윤수, 얼굴에 힘이 팍 들어갔다.
윤수를 바라보는 은호의 코에서는 계속 물방울이 뽀글 뽀글 올라가는데, 윤수는 그냥 숨을 참고 있다.
더 이상 못 참고 수면위로 올라오는 윤수, 얼굴의 물기를 연거푸 닦아낸다.
가쁜 숨을 쉬는게 죽다 살아난 사람 같다.
은호 : (따라나와 윤수를 보며) 괜찮으세요?
윤수 : (숨을 고르면서) 예....
아침시간이라서 수영장은 한산한 편이다.
은호 : 크게 크게 호흡하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윤수, 시키는대로 한다.
은호, 윤수같은 회원은 처음이다.
윤수 : (겨우 진정하고) 보기에 한심하죠?
은호 : 그건 아니구요, 이렇게 힘든데 수영을 꼭 배워야 하나 싶어서요.
윤수 : 그게요, 젊은 사람들 중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다시 수험생이 된 꿈을 꾸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남자들 중에는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꾸기도 하구요.
나같은 경우는 뭔가 힘든 일이 생기면, 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꿈을 꾸더라구요.
시커먼 물이랑....폐에 물이 차들어가는 고통이..... 이게 또 굉장히 실감나서
꿈인줄 알면서도 고통스럽죠.
말하는 동안 윤수는 어리버리한 수영 지진아에서 샤프한 대학교수으로 바뀐다.
은호, 윤수의 변신을 바라본다.
윤수 : 수영을 배우고부터는 적어도 그런 꿈을 꾸지는 않더라구요
은호 : 예....
윤수 : 사람마다 그런 순간이 있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 끔찍한 순간...
선생님은 힘들고 괴로울 때 어떤 꿈을 꾸십니까?
은호 : (생각나는 순간이 있지만, 머뭇댄다)
윤수 : (뜬금없이) 오늘은 그만할까요?
은호 : 예?
윤수 : 저기...
윤수가 쳐다보는 곳.
창문너머 휴게실에서 동진이 손을 든다.
S#5. 휴게실(아침)
남자 수영강사와 ‘수질에 관해 이야기’하며 걸어오던 윤희가 동진을 보더니 아는 척을 한다.
동진도 가볍게 목례한다.
수영강사. 누구?냐는 듯 쳐다본다
윤희 : (작은 소리로) 유팀장 전남편.
수영강사, 흥미를 가지고 동진을 돌아본다.
그때 은호가 들어온다.
얼른 시선을 거두는 윤희와 수영강사.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윤희 등이 나가자, 어색하게나마 웃던 은호의 표정이 싹 변한다.
은호 : (동진 앞에 앉으며) 왠만하면 오지 말랬지?
동진 : 왠만하니까 왔지? 누군 오고 싶어 왔냐? 듣고 놀라지 마.
은호 : (어서 말하라는 듯 쳐다본다)
동진 : (바싹 다가앉아서 작은 소리로) 니 친구, 우리 동네로 이사왔어
어때, 놀랬지? 싶은 동진의 얼굴.
은호의 반응이 없자 오히려 당황한다.
동진 : 얘가 안 믿네. 진짜야. 우리 앞 동으로 이사 왔다니까. 오늘 아침에.... 창문 열면 다 보여.
은호 : (시큰둥하게) 어쩌라구?
동진 : 어? 아니.... 어떻게 하라는게 아니라.... 이상하잖아?
이 광활한 분당시내에 하필이면 내 집 앞인데.... 안 이상해? (문득) 알고 있었어?
은호 : (고개를 흔든다)
동진 : 둘이 또 짠거 아냐?
은호 : 뭘 짜? 당신 골탕 먹일려구? 집팔고 이사하고, 돈 들여서? 대단한 이동진씨...
동진 : (자기가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뭐.... 꼭 그렇다는게 아니라.
은호, 동진의 음료수를 끌어다 마시면서 동진의 눈치를 슬쩍 본다.
동진 : (생각해보니 열받는다) 어쨌든 니가 알아서 해. 니 친구잖어.
은호 : 어떻게 뭘?
동진 : 아.... (딱히 말할게 없다. 궁시렁댄다) 진짜 이상하네.. 그여자 뭐 하는 여자야?
궁시렁대는 동진을 슬쩍 보는 은호.
S#6. 동진의 집 거실(밤)
창밖으로 보이는 미연의 집 거실.
오자마자 곧장 그러고 있었던 듯, 겉옷을 입은 채로 준표가 커튼 뒤에 숨어서 미연의 집을 보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톤으로
준표 : 자. 정리해보자. 그 여자가 이 곳으로 이사온 이유를 대략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어.
동진 : (관심 있다)
준표 : 첫째...우연이다.
동진 : (집중한게 억울하다) 이런....
준표 : 둘째....복수를 위하여
동진 : 아니, 내가 뭘 어쨌다구?
그 순간 초인종소리.
동진. 현관쪽으로 간다.
준표 : 마지막 셋째.
S#7. 현관(밤)
(준표) : 이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데...
동진이 문을 연다.
문이 열리자 동진 앞으로 디밀어지는 냄비.
(준표) : 널 꼬실라구
미연이 배시시 웃고 있다.
미연 : 안녕하세요. 이사온 거 아시죠? 인사왔어요
준표, 동진 너머로 미연을 본다.
S#8. 주방(밤)
식탁 위에 냄비.
준표가 조심스럽게 뚜껑을 연다. 금방 끊인 듯한 두부전골.
동진과 준표가 물끄러미 두부전골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한다.
준표 : (먹으면서) 아저씨 그날 무슨 짓을 하신거예요?
동진 : 아무짓도 안 했대니까.
준표 :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여자가 이러냐? 이건 얼핏 봐도 꼬시는 건데.
넌 인마, 사내 자식이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이런 일이 생기냐? 행실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날 봐라. 평생 이런 일이 있나? 에잇 부러운 자식
동진 : (그새 다 먹고 밥통을 열면서) 밥 더 줘?
준표 : (밥그릇을 건넨다) 눌러 퍼라, 꾹 꾹.
동진. 밥을 푼다.
준표 : 어떡할거야?
동진 : 뭘?
준표 : (두부전골 냄비를 숟가락으로 때리며) 이 파상적인 공격을 어떡할거냐구
동진 : 말하면 되잖아. 딱 부러지게. (밥그릇을 딱 소리나게 놓으면서) ‘난 관심 없다!!’
cut to.
S#9. 현관(밤)
문이 열리면,
미연이 냄비를 들고 있다.
손잡이를 잡은 채 서 있는 동진.
미연 : 카레를 했는데 너무 많이 했나봐요.
동진 : (애매하게 웃으며) 뭘 이런걸 다.....
S#10. 동진의 집 거실(밤)
식탁에 던지듯 냄비를 내려놓는 동진.
냄비를 내려다보며 어이없다.
동진 : 그 여자 진짜 눈치 없네. 내가 고맙다고도 안 하고 냄비도 안 돌려주고
이렇게 확실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왜 못 알아듣냐고? 의사 소통이 안 되네 진짜....
(뚜껑을 열어본다) 내가 강아지야. 먹을 걸로 꼬시게.
(손가락으로 감자 하나를 집어먹는다) 아이 짜증나....
거칠게 전기밥통 뚜껑을 열고 밥을 푼다.
동진 : 어쩔라구 이러냐....
카레를 슥슥 비벼 한 입 먹는다.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 아 진짜.....간은 맞네,’
투덜대면서.......
S#11. 빌라 단지(아침)
청소중인 경비아저씨.
출근하는 동진이 아저씨과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가려는데....
(미연) : 동진씨....
돌아보면, 창문으로 몸을 내민 미연이 손을 흔든다.
동진, 당황해서 고개도 숙이고 동시에 손도 흔든다.
경비아저씨가 동진과 미연을 번갈아 쳐다본다.
S#12. 비디오가게(밤)
간만에 신중한 동진의 얼굴.
결정을 내린 듯, 뭔가를 고른다. 그가 떠난 곳은 ‘에로’ 비디오 진열대.
카운터에 비디오를 올려놓는다.
삐딱하게 서서 여유있게 기다리는데
(미연) : 뭐 빌리셨어요?
뒤에서 미연이 고개를 디밀고 쳐다본다.
동진, 비디오를 후다닥 뒤집어 놓는다.
은솔, 자기 눈높이의 조그맣게 붙은 제목을 읽으려고 한다.
동진, 재빨리 돌려놓으며 어설프게 웃는다.
은솔 뚱하게 치켜본다.
S#13. 숲(밤)
준표,지호,은호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준표 : 한 번 두 번 마주쳐, 자꾸 보게 돼. 당연히 감정이 생기지.
뿐이냐? 남자들 밥정에 약하거든, 혼자 사는 남자, 배고픈 남자, 찌개나 카레, 이런 거 환장한다.
버틴다고 버티지만 오래 못 간다. 동진이 그 자식 끈기 없는 거 은호씨가 잘 알잖어?
지호 : 뭘 버틴대? 외롭고 배고픈 영혼들끼리 끌어 안으면 좋지. 등 따숩고.
준표 : (지호를 째려보며 입으로 뭐라 뭐라 한 다음 은호에게)
여자눈엔 어떨지 모르지만 남자가 봤을 때 미연씨 매력적이야. 섹시하구 순진하구.
(은호의 표정을 살핀다)
지호 : 닥터공 같으면 벌써 넘어갔을텐데...
준표 : 어서옵쇼지... (하다가) 너 배 안고프냐. 뭣 좀 입에 넣어라. 넣고 우물거려.
(은호에게) 은호씨. 잘 생각해봐, 그 자식이 은호씨 친구랑 잘 되도 진짜 괜찮어?
은호 : .....
준표 : 이대로 가다간 후회해도 늦어.
지호 : (혼자말처럼) 왜 의사가 되셨을까? 결혼정보회사가 적성인데.
준표 : 니가 그런 식으로 부정적이니까 취직을 못하지
지호 : (상처받은 표정으로 준표를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떨군다) .....
준표 : (말해놓고 미안하다) 야. 왜 그래?......아까 너도 니 인생은 아르바이트 인생이라고 농담하고 그랬잖아.
지호 : (슬프게) 내가 말하는 거하고 남한테 듣는 거하고 같애요? (얼굴을 가리며) 잔인한 사람.
준표 : 야.....너 왜 안 하던 짓 하냐? 야.....미안해.
지호 :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리며 슬픈 표정 그대로)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양념꼬치?
준표 : .....
지호 : (아무렇지않은 얼굴로) 배우나 되볼까?
티격태격하는 준표와 지호를 보며 은호, 딴 생각을 한다.
S#14. 헬스룸(낮)
미연의 헬스하는 모습이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여진다.
스트레칭 룸의 은호가 살짝 살짝 미연을 본다.
S#15. 스트레칭 룸(낮)
정우성이 윗몸 일으키기를 하며 은호와 공 주고받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은호 : (호흡 시범을 보이며) 후.....후.....올라올 때 내쉬고 내려갈 때 마시고....... 마지막 열 번 더 하겠습니다.
(미연쪽을 흘깃 흘깃 보면서)
(은호) : (처음엔 온건하다) 대단해 김미연
은호 : 하나
(은호) : (처음엔 온건하게 시작한다) 이사까지 갔어?
은호 : 둘!
(은호) : 니가 맹모냐?
은호 : 셋!
(은호) : 자존심도 없니?
은호, 공을 던지는게 조금 거칠어진다.
정우성, 아직은 견딜만하다.
은호 : 넷!
(은호) : 두부전골?
은호 : (어쩐지 이를 악무는듯하다) 다섯!
(은호) : 카레덮밥?
정우성, 왜 이러나 싶다.
은호 : 여섯!
(은호) : 좋아하디?
은호 : 일고옵!!
(은호) : 좋아했겠지?
은호 : 여덟
(은호) : 그 담엔 뭘 할건데?
은호 : 아홉!!
(은호) : 밀어붙이기?
은호 : (있는 힘껏 던지면서 짧게 내뱉는다) 열
분노가 실린 마지막 공, 정우성이 받았음에도 그대로 배를 강타한다.
배가 아파서 몸을 움츠리는 정우성.
은호 : (분노의 숨을 토해내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정우성. 자기가 뭘 잘못했나? 나가는 은호의 눈치를 살핀다.
S#16. 휴게실(낮)
창문을 열어놓고 열을 식히는 은호.
(은호) : (심호흡하면서) 왜 이러니? 유은호. 니가 열받을 까닭이 뭔데.
이성적으로 생각해라......마음의 평화. 스으읍...마음의 평화
진정됐다.
(미연) : 자기옷은 이쁘게 입으면서....
미연이 다가온다.
은호 : 어?
미연 : 어제 쓰레기 버리다가 동진씨 만났는데.... 위아래 팥죽색 츄리닝.... 그거 너무했더라. 니가 사준거라며?
은호 : 사줬다기보다.... 싸길래....
미연 : 창피해 죽겠는데 할 수 없이 입는다고 하더라.
은호 : (궁시렁댄다) 지 얼굴이 하얘서 아무 색이나 잘 받는달 땐 언제구....
미연 : 동진씨 먹는 거 뭐 좋아해?
은호 : 오뎅.
은호, 괜히 말했다 싶다. 미연 모르게 인상쓴다.
S#17. 동진네 집 거실(밤)
1000피스짜리 퍼즐을 하고 있는 동진. (팥죽색 츄리닝을 입고 있다)
3분의 2쯤 맞추었다. 퍼즐 한 조각을 맞추기 위해 수십번 비슷한 모양을 들이대는 단순, 반복자학적 취미.
조각이 들어 맞을 때는 희열을 느낀다.
초인종 소리.
도어아이를 내다보는 동진.
동진 : 잠깐만요
동진, 인상을 구기며 소파의 츄리닝 윗도리를 드는데 옷자락에 걸린 퍼즐판.
애써 맞춘 퍼즐 조각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소리없이 절규하는 동진.
S#18. 동진네 집 현관(밤)
냄비를 들고 서 있는 미연과 은솔 (*미연과 은솔은 내내 커플룩이다)
동진은 퍼즐 붕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탈한 얼굴이다.
미연 : (환하게 웃는다) 오뎅을 샀는데 너무 많이 샀나봐요.....
(동진) : (픽픽 거린다) 예.....그러셨겠죠.
동진 : 아. 예...
미연 : (애교있게) 오뎅 끓일 줄 아세요? 불 조절이 좀 어려운데....
(동진) : 그래서 오뎅이시구만.
미연 : (동진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며) 우리집이랑은 구조가 좀 다른가....
동진. 혼자 픽픽 대다가 은솔과 눈이 마주친다.
은솔은 픽픽대는 동진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
동진 : (표정 바꾸며) 잠깐 들어오시......든가
끝엣말을 듣기도 전에 얼른 들어가는 미연.
은솔이 꾸벅 인사하며 따라 들어간다.
문이 닫힌다.
S#19. 동진의 집 거실(밤)
휴대용 가스렌지에서 끓고 있는 오뎅 냄비
색색깔의 모양도 다양한 오뎅이 보글 보글 끓어오른다.
캔맥주도 나와있다.
은솔은 투니버스 채널을 보고 있다.
미연 혼자 이야기하다시피하고 동진은 듣는둥 마는둥 뚱하다.
미연 : 이 계란얼굴, 은솔이가 만든거예요. 이쁘죠?
동진 : (대충) 예....
미연 : 접시 줘보세요. (앞접시에 덜어준다, 무 반 오뎅 반 덜어준다) 많이 드세요
동진 : 예
미연 : 국물도 드세요? 무를 많이 넣어서 시원할거예요 (국물과 함께 무를 더 떠준다)
동진 : (시큰둥하게) 됐습니다. 제가....
동진, 묵묵히 오뎅만 먹는다.
이쯤하자 미연도 동진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미연 : 내가 너무 눈치없이 굴었나봐요?
동진 : (시선도 안 마주친 채로 삐진것처럼) 고마운 일 아닌가요?
느닷없이 이사와서 이것저것 먹을 거 챙겨주고....
미연, 할말을 잊어버린다.
동진, 말해놓고 미안해진다.
동진 : (웅얼 웅얼) 나야 뭐.... 잘 먹고는 있지만...
미연 : 난 그냥.... 혼자 밥먹으면 맛도 없고, 그래서 동진씨도 그렇겠지 싶었던 건데... 미안해요..
동진 : (더 미안해진다) 아니 그게...
미연 : 게다가 우리 솔이가 사회성이 떨어진대요. 엄마하고만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내가 너무 내 욕심만 부렸나봐요.
동진 : 아닙니다. 그게.....오늘 제가 힘든 일이 좀 있어서....
미연 : 다행이네요. 좀 드세요.
동진 : 예..... (무를 먹는 척 내려놓으면서) 은솔이 친아빠하고는 어떻게.... 연락을 안 하시나봐요?
미연 : 솔이가 아빠를 안 만날려고 해요.
동진, 은솔을 흘깃 본다.
은솔은 만화채널에 푹 빠졌다.
미연, 잠깐 망설이다가 냄비의 오뎅을 젓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연 : 어쩌다가 내가 아빠한테 맞는 걸 봤거든요. 그 때부터 아빠를 너무 무서워해서 보기만 해도 울고....
이혼두 사실 솔이 때문에 했어요. 난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냥 겁먹었던거 뿐이죠... 한심한 엄마죠?
미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동진, 할말이 없어 바닥을 쳐다본다.
미연 : (작은 한숨을 쉰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한적 없는데.... 미안해요, 화장실 좀 쓸게요.
미연이 자리를 뜨자.
동진,‘그런일이 있었구나 생각하며’ 앞접시의 무를 냄비에 쏟다가 은솔이의 쏘아보는 눈과 마주친다.
동진 : .......? 내가 울린거 아냐.
은솔 : 왜 무 안 먹어요?
동진 : 뭐?
은솔 : 아저씨가 무 좋아한다고 해서 일부러 많이 넣은건데.... 아저씨 무 하나도 안 먹었죠?
동진 : 내가 무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
은솔 : 수영선생님이요.
동진 : .....
은솔 : 엄마는 바보같이..... 저런 아저씨가 뭐가 좋다구.....
은솔, 다시 tv로 향한다.
동진, 무를 어떻게 할까 잠깐 망설이는데....
미연 : 이리 주세요. 제가 퍼드릴게요.
미연, 무만 듬뿍 퍼서 동진에게 건넨다.
동진. 어쩔수 없이 무를 먹는다. 무가 억지로 넘어간다.
S#20. 스포츠 센터 앞(밤)
은호, 나오다가 주춤한다.
현중이 추위 때문에 동동 뛰면서 은호를 기다리고 있다.
또냐? 싶다.
현중 : 아....추워. 은호씨가 좀만 늦었어도 나 내일 신문에 날 뻔 했어요. 20대 미남청년 동사.
은호 : 그 정성을 국가를 위해 쏟는 건 어때요?
현중 : 날도 추운데 데이트 시작하자구요. (팔짱을 끼려한다)
은호 : (팔을 빼면서) 데이트?
현중 : 데이트 아니어도 좋으니까 뭣 좀 먹으러가요. 뜨거운 걸루.... 내가 살게요
현중, 은호의 등을 민다.
S#21. 오뎅 트럭(밤)
김이 모락모락 솟는 오뎅국물
현중이 호호 불면서 마신다.
초라하고, 추워보이는 현중을 바라보는 은호, 차츰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은호) : 엄마없이 아버지랑 산다더니....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현중 : 아.....좋다. 추울 땐 오뎅이 최고예요. 그쵸.
은호, 현중의 컵에 국물을 더 따라준다.
은호 : 오늘 춥댔는데 챙겨입지....
현중 : 아침에 아버지랑 싸우느라고.
은호 : 나이가 몇인데....
현중 : 은호씨는요? 아버지랑 연락도 안 한다며...
은호 : 누가 그래요?
현중 : 동생이....
은호 : .....
현중 : 보통 딸들이 아버지랑 사이 좋지 않나?
은호 : 아버지랑 왜 싸웠어요?
현중 :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돌아가시고 사이가 틀어졌어요
은호, 픽 웃는다.
현중 : 왜요?
은호 : 나랑 비슷해서.
현중 : 그렇다니까. 은호씨랑 나랑은 운명적인 뭔가가....
은호 : (오뎅장수에게) 얼마예요?
현중 : 왜 이래요? 내가 내요.
현중, 바지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 동전이 쏟아진다.
쭈그리고 앉아서 동전을 줍는 현중.
은호 같이 줍는다.
(지호) : 연민에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어요
S#22. 병원 복도(밤)
책을 실은 카트를 밀면서 치호와 준표가 걸어간다.
준표 : 동정은 사랑이 아니지.
지호 : 모든 사랑의 감정 밑에는 상대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는거라구요. 여자는 더 그래요.
닥터공도 사랑해봤다면서요. 생각해봐요.
준표, 생각해보는 동안
지호, 진료실에 책을 갖다주고 돌아온다.
준표 : 그럼 이것도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인가 들어봐. 내가 첫사랑 얘기 했나? 대학 때 말이야. 2학년 때....
내가 사랑이 좀 늦었거든.
지호 : (추임새처럼) 뭐든 늦으시잖아요
준표 : 버스를 탔는데 돈이 없는 거야. 기사아저씨 소리 지르고... 어떡하냐 버스는 타야 되는데....
200원인가 250원인가. 그걸 안 꿔주네. 사람들이.
눈 안 마주칠려고 딴데보고.... 사람들 진짜... 그때 돈을 꿔준 게 연이었어.
그래. 이게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이구나?
지호 : 그건 구걸이구....
이런....준표 지호를 쳐다보면.
지호,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S#23. 동진의 집 거실(밤)
어두운 실내.
동진이 비닐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현관 불이 들어왔다가 꺼진다.
동진이 거실 불을 켠다.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낸다.
비닐봉지에서 잼병을 꺼낸다.
잼을 식빵에 바르려다가 자세히 들여다본다.
식빵에 곰팡이가 났다.
한숨을 쉬는 동진, 엎어놓은 세 개의 냄비가 보인다.
숟가락의 잼을 핥아 먹으면서 베란다를 통해 미연네 집을 건너다본다.
S#24. 미연의 집 앞(밤)
냄비 세 개를 든 동진이 초인종을 누른다.
대꾸가 없다. 아무도 없나?
그 순간 문이 빼꼼히 열린다. 체인을 건 상태에서 은솔의 작은 얼굴이 나온다.
동진 : 냄비가 다 우리집에 있길래....
동진이 씨익 웃는다.
그 순간 문이 닫힌다.
동진, 뻘쭘한데, 체인 푸는 소리가 나고 문이 다시 열린다.
S#25. 미연의 집 거실(밤)
동진이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동진 : 엄마 어디 가셨니?
은솔 : 일하러요
동진 : 일?
S#26. 찜질방(밤)
전단지용 광고 사진을 찍는 미연과 두 세 명의 아줌마 모델들.
전단지 특유의 과장스런 표정연기 중이다.
‘더 활짝’ ‘웃어요’ ‘여기보고’ 카메라 감독의 지시가 잇따른다.
S#27. 미연의 집 거실(밤)
동진 : (아쉽다) 그래
식탁에 차려진 밥이 그대로다.
동진 : 저녁 안 먹었어?
은솔 : 먹기 싫어서요.
동진. 은솔의 밥을 보자니 군침이 돈다.
은솔이와 눈이 마주치자. 동진 무안하다.
동진 :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나가려는데)
은솔 : 내 밥.....먹어도 되는데요. 대신.....
동진이 쳐다보자.
은솔, 들고있던 실을 손가락에 돌돌 말았다. 풀었다는 반복한다.
동진이 거실 탁자를 바라본다. 종이컵들과, 실뭉치가 가위와 칼이 널려있다.
(점프)
싱크대에 다 먹은 그릇들.
동진이 종이컵에 신중하게 구멍을 내고 있다.
또 잘못됐다. 잘못 찢은 종이컵이 서너개.
동진이 은솔 눈치를 본다.
동진 : (변명한다) 아이 아깝다. 다 됐었는데...
은솔, 같잖다는 듯 한숨쉬며 외면한다.
자존심 상하는 동진. 새로운 종이컵에 구멍을 뚫는다. 신중 또 신중....
제대로 뚫렸다.
동진 : 됐지? 완벽하지? 아저씨한테 맡기라고 했잖아.
은솔 : 실 묶어야죠
동진 : 할거네요.
동진, 실을 연결하는데
은솔 : 그렇게 하면 안돼요.
동진 : 돼? 걱정마.
은솔 : 여기 써 있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동진) : (발끈하는) 그럼 니가 하든가.....
동진 : (참는다) 책 줘봐,
동진. 책을 본다.
투덜투덜대면서 책에서 시키는대로 실을 연결한다.
(점프)
제대로 만들어진 실 전화기.
동진. 뿌듯하다. 은솔을 보는데 은솔은 여전히 뚱한 얼굴로 실전화기를 내려다본다.
동진 : 왜? 맘에 안 들어?
은솔, 뭐라고 중얼거린다.
동진 : 뭐?
은솔 : (중얼중얼) 해보고 싶다구요.
동진 : 그게 뭐 어렵냐? 그 쪽 잡어봐.
은솔 : (외면하면서) 집과 집에서 해야지 뭐.
(동진) : (은솔을 쳐다본다) 얘 좀 보게. 야금 야금 바라는 것도 많어.
은솔, 뚱한 얼굴로 딴데를 본다.
동진 : 테니스공 있어?
S#28. 베란다(밤)
테니스공에 실 한쪽을 묶은 동진.
동진, 던질려고 보니까 자기집 창문이 닫혀있다.
동진, 인상을 팍 쓴다.
S#29. 빌라 단지(밤)
안에서 나오는 동진, 실전화기를 들고 있다.
동진 : (중얼댄다) 엄마나 딸이나 사람 참 귀찮게 해요.
자기 빌라로 들어간다.
S#30. 동진의 침실(밤)
창문너머 미연네 집 베란다에 은솔이 나와 있다.
동진이 테니스공에 실을 묶어 던진다.
첫 번째는 실패.
실을 잡아당기는 동진. 다시 던진다.
베란다 안으로 들어간다.
이예!!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동진.
S#31. 미연의 집 베란다
은솔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테니스공의 실을 풀러 종이 전화기에 연결한다.
S#32. 동진의 집 침실(밤)
동진 : (꿍시렁댄다) 무슨 여섯 살짜리 표정이 저래? 뚱~해갖고. 고마우면 고맙다, 왜 말을 못해?
엄마나 딸이나 정이 안 간다 진짜....
은솔이 실을 연결하기를 기다렸다가,
동진 : (큰소리로) 실이 팽팽해야 돼.
은솔, 고개를 끄덕인다.
동진 : 종이컵을 귀에 대봐.
은솔이 시키는대로 한다.
동진 : (종이컵에 대고) 잘 들리나 오버!
은솔, 가만히 있다.
동진 : (종이컵에 대고) 들리면 대답하라 오버.
은솔이 쭈삣대며 종이컵에 입을 댄다.
동진이 종이컵을 귀에 댄다.
은솔 : 잘 들린다.....오버
말해놓고 무안한 듯, 고개 숙이고 배시시 웃는 은솔.
은솔이 웃자. 아이의 뒤에서 꽃이 피는 것 같다.
동진, 멍하니 은솔을 바라본다. 동진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린다.
동진이 자기를 보고 웃자, 은솔 화난 듯 다시 뚱해진다.
S#33. 빌라단지(밤)
위에서 내려다본 빌라단지.
은솔의 집과 동진의 집을 연결한 가느다란 실.
단지 내 정원을 장식한 꼬마전구가 반짝거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도시는 아름답다.
S#34. 동진의 집 침실(밤)
동진이 침대에 기대 책을 읽는다.
표지만 봐도 무서운 ‘어둑컴컴한 물밑에서’류의 공포소설.
동진, 책에 몰입되어 있다.
동진이 문득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사르륵 사르륵....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여자 목소리.
가뜩이나 무서운데....
동진, 고개도 못 돌리고 눈으로 옆을 쳐다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동진, 움찔한다. 뭔가가 움직였다.
종이컵이 바닥을 긁고 있다.
여자 목소리도 종이컵에서 들린다.
S#35. 미연의 베란다(밤)
밖에서 들어온 차림 그대로 미연이 실전화기에 대고 속삭이기를 반복한다.
미연 : 동진씨.... 동진씨.....
창문을 열고 동진이 나타난다.
미연 : (육성으로).....자는 줄 알았어요
(동진) : 근데 깨웠단 말이지
동진 : 늦었네요?
미연 : 촬영이 늦게 끝나서요.... 고마워요. 솔이 숙제 도와줘서....
동진 : 예....
미연 : 솔이는 자구, 잠깐 건너가고 싶지만....
(동진) : 오긴 어딜 와요?
미연 : 동진씨가 싫어할까봐 못하겠어요.
동진, 보이지 않게 안도의 숨을 쉰다.
미연, 뭔가 말하려다가 멈춘다.
종이컵을 입에 대고 동진을 본다. 종이컵을 귀에 대라는 듯.
동진이 종이컵을 귀에 댄다.
미연 : (종이컵에 대고) 어떡하죠? 점점 더...... 동진씨가 좋아져요.
미연이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깐다.
미연 : (종이컵에 대고) 이만 끊은게요.....오버!
미연이 창문을 닫고 사라진다.
동진. 미연의 직접적인 고백에 ‘이거 참 곤란하네’ 싶다. 한참 서 있다가 안으로 사라진다.
S#36. 헬스룸(낮)
트리 장식이 번쩍인다.
한산한 크리스마스 시즌의 스포츠센타.
정우성을 포함, 두세 명이 운동 중일 뿐, 무료하고 한산하다.
헬스하던 여자를 누군가 부른다.
S#37. 복도(낮)
세 명의 아줌마들이 어딘가로 향해 간다.
S#38. 수영장(낮)
수영장에서 올려다본 휴게실 창문너머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영장을 내려다본다.
수영장엔 대여섯 명의 회원들이 풀 가장자리에 모여 출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은호가 몸을 푼다. 선수들이 하듯, 팔을 휘돌리고 고개를 꺾어본다.
옆 레인, 현중이 몸을 풀고 있다.
출발대위에 올라가는 은호와 현중, 수경을 쓴다.
윤희 : (손을 들어올리면서) 준비!!
은호와 현중이 자세를 취한다.
윤희 : 출발!!
동시에 출발하는 두 사람.
은호는 수영선수답게 초반에 앞서간다.
터닝!!
터닝 이후부터 현중이 거리를 좁혀온다.
물속에서 흘깃 현중을 보는 은호.
결승점 주위로 몰려드는 몇 안 되는 수영회원들,
그 중엔 윤수도 있다.
거의 동시에 터치
은호와 현중, 수격을 벗으며 윤희를 본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 유팀장이 이겼다. 남자가 이겼다. 여자가 이겼다.....
중구난방이다.
윤수 : 선생님이 조금 빠른 것 같은데요.
은호 : (얼굴 밝어진다)
현중, 윤희를 향해 살인미소를 흩뿌린다.
윤희 : 오늘의 승자는.... (은호를 향해 얄밉게 웃어 보인 뒤 손바닥으로 현중을 가리킨다)
현중, 승리의 세레모니로 몸을 솟구쳤다가 등으로 떨어진다. 물보라가 튄다.
얼굴에 튄 물을 닦아내는 은호, 억울하다.
윤희 : 근데 뭐 내기했어요? 술내기했으면 나도 가요
S#39. 휴게실(낮)
음료수를 마시던 은호가 큭 기침을 한다.
은호 : 뭐라구요?
현중 : 밥 먹자구요.
은호 : (현중을 쏘아본다) 그 전에....
현중 : (소리 줄어든다) 우리집에서....
은호,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현중 : (쫓아가면서) 그냥 밥만 먹고 오면 돼요.
은호 : 현중씨 아까 너무 무리했어요. 제정신이 아니네.
현중 : 사귀는 여자 있대니까, 아버지가 한번 데려오라고....
은호 : (냉정하게) 그 사귀는 여자가 혹시 나예요?
현중 : 같이 밥도 먹고, 오뎅도 먹고.....사귄다고 볼 수도......
은호 : (쏘아본다)
현중 :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이 있는데.... (조른다) 내기 했잖아요?
은호 : 5천원에서 2만원까지......식당에서 살게요, 됐죠 (나간다)
현중 : 우리집에서 가정식 백반 먹으면 되는데....
현중, 역시 안 되는구나 싶다.
S#40. 숲(밤)
지호와 준표가 앉아있다.
준표 : 배배 꼬인 사람들한테 질투작전은 무리였던 게야.
그런 사람한테는 다이렉트.....직접적인 칭찬밖에 없어. 우리 연이도 그랬거든.
지호 : 아. 그 놈의 첫사랑..... 그게 마지막 사랑이죠?
준표 : 됐고..... 제대로 해라. 받은 돈 토해내고 싶지 않으면.....
지호 : 에효 산다는게 뭔지....
은호가 들어온다
준표 : 온다
은호 : (앞에 앉으면서 지호에게) 넌 아주 아르바이트에 정착할거냐?
지호 : (준표를 보며) 나도 푼돈에 이래선 안 된다는거 아는데....
준표 : (화제를 바꾼다) 은호씨 맥주 마실거지? 500한잔이요. (은호 눈치를 슬쩍 보면서 은호를 툭 친다)
지호 : (안주 먹다가) 벌써 해요?
준표, 웃음으로 얼버무리다가 은호 몰래 다시 다리를 툭 친다.
지호 : 예 예....(일부러 또박 또박 책 읽듯이) 미연 언니는 어떻게 지낸대요?
준표 : (기다렸다는듯) 동진이가 아주 미칠라 그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출근할 때마다 창 밖으로 인사하고 동네 사람들은 둘이 살림 차린 줄 안대.
은호, 준표를 본다.
준표 : (은호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연기한다) 뭐라고 해주고 싶어도 은호씨 친구라서 참는다고 그러더라구.
은호 : (픽 웃는다) 내 친구여서 참어?
준표 : 진짜야. 은호씨 친구만 아니면 벌써 한마디 해줬을 거래.
동진이 그 자식이 겉으로 퉁퉁대서 그렇지. 속으론 은호씨 생각을 얼마나 한다구....
지호. 얼씨구.....준표를 쳐다본다.
은호, 흥흥! 안 믿는 척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준표 : (필 받았다) 그 여자 좀 주책인가봐. 동진이가 잘라고 그러면 그렇게 말을 시킨다네. 실을 잡아당기구.
은호 : 실?
준표 : 동진이 침실이랑 그 집 베란다랑 실전화기가 연결돼있거든. 종이컵으로 만든거.
은호 : (표정이 바뀐다) 뭐?
준표 : (앗차싶다) 아니 그게 말이야. 그 집 딸이 숙제라고 만들어달래서.... 냄비 주러 갔는데.... 애가 혼자....
그게 은호씨 친구 딸이니까.... 할 수 없이 만들어줬다고....
은호 : (이미 늦었다) 정성이 뻗쳤구만.
준표, 더 이상 붙일 말이 없다.
은호,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열받은게 보인다.
지호 : (딴데보면서 작은 소리로) 바보.
준표, 좌절한다.
S#41. 서점(밤)
야근중인 동진. 재범. 진명. 미화. 정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중이다.
동진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S#42. 서점-준표의 차 안(밤)
준표와 동진이 통화 중이다.
동진 : 여보세요.
준표 : (다짜고짜) 너 크리스마스이브에 뭐해?
동진 : 전화해서 인사부터 하는 건 사라진 풍습이냐?
준표 : 시끄럽고. 그날 오전근무 맞지? 저녁때 숲에서 보자. 은호씨랑 지호랑 넷이서..... 알았지?
동진 : 미쳤냐? 이혼한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게.
준표 : 작년엔 미쳤었구나.
동진 : 작년은 작년이구.
준표 : 그냥 한번만 좀 하자는대로 해줘라. 일일이 토달지 말구. 내가 절 위해 똥줄이 타들어가는 줄은 모르고.
동진 : (좀 누그러진다) 그 녀석이 그러자고 할까?
준표 : 그러니까 니가 말을 잘해야지.
동진 : 내가?
준표 : ‘크리스마스 이브는 꼭 너와 같이 보내고 싶다’ 제대로 전달해. 괜히 팅팅대지 말고.
비꼬지도 말고 부드럽게, 알아들어?
동진 : 너 무슨일 있지?
준표 : 너 제대로 못하면 아이예수 태어난 날 입적 하는 수가 있다. 그럼 이만.
준표와 동진이 전화를 끊는다.
S#43. 빌라단지(낮)
미연이 차를 출발시킨다.
앞쪽에 동진이 걸어가는게 보인다.
미연이 경적을 울린다.
미연 : 출근하세요? 태워 드릴게요.
동진 : 아닙니다.
미연 : 타세요. 같은 방향인데....
청소하던 경비 아저씨가 미연 차 앞유리에 끼워진 광고지를 빼주면서 동진을 흘깃 쳐다본다.
동진. 차에 탄다.
S#44. 미연의 차(낮)
동진. 흘끔 미연을 본다.
(미연) : 동진씨가....점점 더 좋아져요.
동진, 미연의 눈치를 본다. 고백한 상대와 같이 있는게 어색하다.
미연 :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하세요?
동진 : 예? 아.... 그 날 약속 있는데요.
미연 : 누구랑요?
동진 : 친구들 몇 명이서....
미연 : 우리 파티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아깝다.
동진 : 그러게요.
동진, 미연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쉰다.
S#45. 던킨도넛츠 앞 거리(낮)
미연의 차가 멈춘다.
동진이 내린다.
미연 : 잠깐만요.
미연이 대쉬보드 안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낸다.
미연 : 크리스마스 선물이예요.
동진 : (뜻밖이다).....
미연 : 은솔이한테도 잘해주시고 고마워서요.
동진 : (받기가 좀 그렇다) 이런 거 맨날 받기만 하고..... 이런 거 곤란한데...
미연 : 받으세요.
S#46. 횡단보도(낮)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 은호.
고개를 돌리다가 동진을 발견한다.
동진이 차 안의 운전자와 이야기 중이다. 차 안의 운전자는 미연이다.
동진, 미연의 차에 대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은호 앞으로 지나가는 미연의 차.
동진, 미연의 차를 한참 바라보다가(은호 눈엔 그렇게 보인다) 던킨 도넛츠 안으로 들어간다.
은호. 빈정 상한다.
S#47. 던킨 도넛츠(낮)
커피와 도넛츠를 먹는 동진.
사람이 들어 올 때마다 쳐다본다.
마침내 은호가 들어온다.
은호, 동진 쪽을 쳐다도 안 본다. 도넛츠 두 개와 커피를 주문한다.
동진,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는데 은호, 동진과 시선이 부딪치고도 동진의 앞자리가 아닌 빈자리에 앉는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으로 앉은 은호..
동진 : 왜 그래?
은호 : 뭐가?
동진 : 내가 그 쪽으로 가?
은호 : 됐어. 빨리 먹고 가야 돼.
잠깐의 침묵.
(동진) : 참고 참고 또 참는다. 내가....
(은호) : 이상한 여자라고 할 때는 언제구 드라이브까지 하셨어?
동진 : (참는다고 참았는데 목소리가 툴툴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해?
은호 : 글쎄.
동진 : 글쎄는 무슨.... 약속 없는 거 알어.
은호 : (동진을 쏘아본다)
동진 : 준표가 술 한잔 하자고 그러던데....
은호 : 당신두?
동진 : 지호랑 넷이서.
은호 : 됐어.
동진 : 괜히 튕기다가 방바닥 긁지 말고. 부르는 사람 있을 때 ‘예’ 하고 나와.
은호 : ...... 말 안 할라 그랬는데, 사실은 그날 현중씨네 집에 인사갈까 생각 중이거든.
동진 : (버럭) 뭐?
주인이 돌아본다
은호, 동진의 반응이 만족스럽다.
동진 : (소리를 낮춰서) 너 미쳤냐?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인사를 가?
은호 : 그러게 말야. 현중씨가 자꾸 인사 가자 그러더라구.
동진 : (어이없어 하다가 갑자기 배시시 웃는다) 뻥이지?
은호 : (움찔한다) 뭐?
동진 : 이봐 이봐 움찔하는거.
은호 : 진짜야.
동진 : 내가 널 한 두 해 알아 왔니? 니가 쉽게 인사갈 애냐? 우리 집에 갈 때두 그렇게 뜸 들였으면서.....
은호 : (궁지에 몰린다) ....
동진 : 그 녀석도 그래. 연상에 이혼녀를 인사시키기가 쉬워.
은호 : (동진을 노려본다) ....
동진 : 뭘 봐, 당신 들켰어. 뻥을 치려면 집에서 연습이라도 좀 하고와서 쳐라. 그 날 다섯시 어때?
은호, 보란 듯이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른다.
동진. 은호를 멀건히 쳐다본다.
은호 : 현중씨. 집에 인사 가자고 한 거, 크리스마스 이브 때 어때요?
동진 : (보다가 안 믿는다).....지호지?
동진, 은호 핸드폰에 귀를 댄다.
은호, 핸드폰을 살짝 들어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해준다.
(현중) : 진짜요?
동진, 놀라 은호를 본다.
은호 : (애교있는 목소리로) 그날 클럽두 쉬고 난 괜찮은데....
(동진을 힐끗 쳐다보면서) 아버님이 뭐 좋아하세요?
동진, 사태파악이 안 된다.
S#48. 던킨 도넛츠 앞(낮)
은호가 승자의 얼굴로 나온다.
유리문 너머 동진은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걸어가는 은호를 바라볼 뿐.
태연하게 걷던 은호, 동진의 시야에서 멀어지자마자 재빨리 벽에 몸을 숨기고 재발신을 누른다. 신호음.....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기라는 기계소리.
은호 : (다급하다) 왜 안 받어?
재발신을 누르며 바쁘게 걷는다.
S#49. 헬스룸(낮)
은호가 바쁘게 온다.
현중을 찾는다.
은호 : (지나가는 윤희를 잡는다) 민현중씨 왔어?
윤희 : 아뇨.
은호 : (재발신을 누르며) 어쩌자구 안 받은거야.... (윤희에게) 오면 알려줘.
멀어지는 은호를 왜 저래? 쳐다보는 윤희.
S#50. 호텔 로비(밤)
유니폼 차림의 현중이 뛰어온다.
은호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현중 : 은호씨.
은호 : (다다다 묻는다) 운동하러 왜 안 왔어요? 연락도 안 되고.
현중 : 연말이라 바빠서... 은호씨가 이렇게 걱정할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지...
은호 : (끓는다) 됐구요. 아까 낮에 내가 전화 한거요....
현중 : (끊고 들어간다) 그거 진짜 고마워요. 난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은호 :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말하기 힘들지만) 내가 아까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정말 어쩔 수 없이....
현중 : 예?
은호 : 아우....정말 미안한데요. 없었던 걸로 해요. 예?
현중 : (난감한 얼굴이 된다)
은호 : 진짜 진짜 미안해요. 나도 이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 그때 내가 잠깐 미쳤었거든요.
현중 : 아버지한테 얘기해놨는데....
은호 : 예에? 뭘 그렇게 빨리 얘기했어요?
현중 : 너무 좋아서요.
은호 : 아우. 안돼요. 안돼요. 취소해줘요. 예? (두 손 모은다) 한번만 부탁할게요.
현중 : 그게요. 아버지가 그날 중요한 모임까지 취소하고 오신다고 그런거라....
가뜩이나 아버지한테 찍혔는데......그런 얘길 어떻게 해요?
은호, 큰일났다. 난감하다. 한숨만 난다.
S#51. 서점(낮)
여전히 멍한 얼굴로 서가 사이에 서 있는 동진.
(동진) : (멍해서) 인사....인사.....인사고과 발표났나?
(문득 정신을 차린다) 정신 차려라 이동진. 지금은 생각을 할 때다. 이 사태를 워쩔거냐구....
(버럭) 잠깐만....애야 그렇다 치고 부모가 좋아할 리 없지. 총각 아들이 이혼녀를 데려왔는데....
괜히 걱정했잖아...
동진. 안도한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진명과 미화.
동진의 얼굴이 다시 굳는다.
(동진) : 아니지. 은호 걔가 50대 이상한테 은근히 어필하잖아. 우리 엄마 아빠만 해도 그래.
S#52. 동진의 아빠 집 거실(낮)
(동진) : 은호를 만나기 전에는.....
동진아빠 : 운동을 했던 아가씨라는게 걸리는구나.
동진엄마 : (못마땅하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구.
(점프)
(동진) : 은호 왔다 가고 나서는....
동진아빠 : 운동을 해서 그런지 건강해 보여 좋구나.
동진엄마 : 은호는 엄마가 없고, 난 딸이 없고.... 잘 됐지 뭐니. (은호와 같이 할만한 걸 상상하며 행복하다)
S#53. 서점(낮)
혼자 생각하다가 괴로운 동진.
머리를 벅벅 문지른다.
떨어진 곳.
진명과 미화가 동진을 보고 있다.
진명 : 또 왜 저런대니. 몇 일 잠잠하다 싶더니.
미화 : 솔로들에게 나타나는 연말 증후군이지 뭐.
동진이 축 쳐져서 자리를 옮긴다.
S#54. 계산대(낮)
터덜 터덜 걷던 동진, 계산대 앞에 서 있는 현중을 발견한다.
현중이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다.
현중. 인사한다.
동진. 현중이 산 책을 본다.
10권 정도
현중 : (동진의 시선에 답하듯) 회사 송년회 때 선물로 쓸려구요.
동진 : (궁시렁대는) 선물로 책주면 꽤나 좋아하겠다
현중 : 예?
동진 : 아니예요.
현중, 계산한 책을 받아들고, 동진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간다.
현중의 뒷모습을 째려보다가 동진, 쫓아간다.
S#55. 서점 앞(낮)
동진이 현중을 부른다.
동진 : 민현중씨. 민현중씨....
현중이 멈춰선다.
동진 : 물어볼게 있는데...
현중 : ?
동진 : 은호가 그 집에 인사가기로 했다면서요?
현중 : 예
동진 : 하나만 물어봅시다. 은호가 이혼녀인줄 그쪽 부모님도 알고 있습니까?
현중 : 예?
동진 : (사무적으로) 나는 그러니까 중간에 소개해준 사람으로서.....
괜히 속이고 인사갔다가 은호만 바보 되고 상처받고 그럴까봐..... 확실히 하자는 겁니다.
현중 : (뭔가 생각한다) 예....
동진, 일이 잘 풀리는 거 같다.
현중 : 예. 알겠습니다. 확실히 할게요, 고맙습니다. (가버린다)
동진 : 아니.... 확실히 하라는게 아니라... 이것도 아닌데...
동진, 뜻대로 되는게 없다.
S#56. 미용실(낮)
빨간색의 폭탄머리...
은호가 헤어잡지의 모델을 가리키며.
은호 : 이렇게 할까? 기겁을 하게.
지호 : (들여다보면서) 그래 그거 좋다. 거기다 피어싱도 하고, 문신도 하고 그래라.
은호, 째려본다.
지호 : 그냥 쉽게 가...쉽게.... 친구집에 밥 먹으러 간다 생각하고
은호 : 그치? 요즘엔 별일도 아니지?
지호 : 별일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은호, 지호를 째려본다.
지호, 찌그러진다.
은호 :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은호, 동진을 째려보듯 화면 일각을 째려본다.
S#57. 서점(낮)
앞 씬과는 정 반대로 환하게 웃는 은호.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동진을 향해 걸어온다.
은호 : 정장을 오랜만에 입었더니, 어색하지?
동진 : (두말없이) 어
(은호) : 이런...
은호 : (울컥하지만 웃는다) 현중씨 아버님 마음에 들어야한텐데
동진 : 여긴 왜 왔어?
(은호) : 열받으라고..
은호 : 중매쟁이한테 보고해야지.
동진 :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은호 : 어머 깜박했지 뭐야. 다녀올게
동진 : 다녀오든지 거기서 살든지.....
동진, 바쁜척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한다.
은호, 입을 삐죽대며 돌아나간다.
은호가 돌아서자마자 동진, 은호를 바라본다. 여유있던 표정이 허물어진다.
(은호) :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드는 생각.
그때 솔직했더라면 좋았을걸. 나에게도......다른 사람에게도.....
은호가 돌아본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손 흔드는 동진.
은호도 손을 살짝 흔든다.
다시 돌아서 걷는 은호의 표정이 허물어진다. 뒤에서 바라보는 동진의 얼굴도 허물어진다.
S#58. 택시 안(낮)
뒷자리에 앉은 은호와 현중
은호 : (다짐시킨다) 정말, 아무 의미없는 거예요? 그냥 밥만 먹고 오는 거예요? 가정식 백반.
현중 : 넵!!
은호 : 이날 이후로 애인 행세를 한다거나 진지해진다거나 절대 아니죠?
현중 : (맹세하듯 오른손을 든다) 맹세합니다.
은호, 다짐해도 걱정이 된다.
창 밖을 본다.
(은호) :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드는 생각.
그때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솔직했더라면 좋았을걸.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S#59. 집 앞(낮)
현중이 내린다.
은호가 따라 내린다.
은호가 무심코 집을 본다.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저택이 은호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은호) : 그때 우리 모두는 어설프게 이기적이었고, 결국 상처를 입혔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은호가 현중을 찾는다.
현중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5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