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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9월 2일 토요일 아침
힐튼 비엔나 호텔, 조식 부페 식당,
넓고 쾌적하다. 붐비지도 않고 썰렁하지도 않고 적당히 활기있다.
와플, 프렌치토스트, 계란요리 해주는 즉석 조리 코너도 있고
음식도 푸짐하고 맛도 있고 아주 맘에 든다.
조식불포함의 숙박객의 경우 조식이 1인당 25유로라는 가격을 보고나니 더더욱 흡족.
(우린 호텔패스 사이트에서 2인 조식포함 1박에 138유로에 추가 5프로 할인받아 예약하고 왔다.)
아침 먹으러 호텔방 나서기 전에 잠시 비엔나 하루 일정 검점 중~~ (여독과 화장품 부실로 부시시 ㅜㅡ;)
이건 첫 접시... 한 4~5접시 먹은 듯. ㅎㅎ
식당안은 주로 유럽 노인네들... 아마도 유럽 국가의 패키지 여행객이 들어와 있나보다.
우리 옆자리에도 기품있어 보이는 유럽인 노부부가 앉았는데 우리가 앉은 순간부터 우리 자리를 자꾸 흘끔대며 자기들끼리 나즈막히 말을 주고 받는다.
유럽 어느 나라로의 여행객으로만 생각했는데 언뜻 들리는 말은 영어였다.
'뭐지 저 눈길은...? 저 소근거림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새 모이만큼 퍼서 여러 접시 먹어야 지들딴엔 매너인데 나 너무 많이 퍼온건가?'
'더운 요리, 찬 요리 마구잡이로 섞어와서 그러나?'
'온통 유럽 노인네들 일색인 이 식당에 이 새파란 노란 것(섞이면 연두색? ㅡㅡ;;;)들은 뭐지?라고 궁금해하는건가?'
'소년이 좀 쩝쩝대며 먹는 거 같은데 그래서일까…? 그렇다고 내가 소년에게 주의주면 기분나뻐하겠지?'
갖은 자격지심에서 나온 불안한 상상들이 머리를 빠르게 스쳤지만...
그냥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아침식사에 다시 집중하려는 순간
드디어 영국 액센트의 영어로 부인이 말을 건넨다.
'Do you speak English...?'
나는 이렇게 첫말 거는 외국인을 싫어한다. (나는 참말로 싫어하는 것도 많단 말이지.)
그냥 물어보면 되지 왜 꼭 하냐 못하냐 확인을 하냐는 거다. 못할거 같나???
물론 영어로 대뜸 말을 걸었을때 당황하며 대답을 못하는 외국인을 겪어본 경험에서 나온 행동이거나,
처음 말거는 멘트로 이게 적절하겠다라는 판단일지 몰라도...
그런데 웃긴 것은 또 거꾸로 생각해 보면 자기네 나라 말이면 다 알아야 한다는 듯이
무조건 영어로 대뜸 말걸어도 기분나쁠것 같다... (ㅡㅡ;;;)
난 언제부터 이렇게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럴땐 이래서 못마땅, 저럴땐 저래서 못마땅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던가?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고 'a little'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부인이 다시 말을 잇는다. 신사도 나를 보고 웃고 있다.
'We think you are very very beautiful.' (very에 힘주었음, ㅎㅎ)
헉, 당황했다. 그들은 그저 옆자리 동양인 아가씨가(사실은 아줌마 ㅎㅎ) 이뻐보였을 뿐인데 나는 먼가 우릴 흠잡을세라, 그러기만 해봐라, 하며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던 꼴…
그리고는 오빠쪽으로 고개짓을 한 채 한 눈을 찡긋 감아보이며 덧붙이는 말, 'He's also quite handsome.'
그래 반성한다. 긍정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왜 미리 방어하고 의심하고 조심스러워해야하나.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잖아.
그리도 나도 무쟈게 아름답댄다!!! (누구땜시 화장품도 제대로 없어 대충 찍어발랐을 뿐인데?)
하하하~ 오빤 제법 잘생겼단다! (요건 예의상 멘트가 아니었을까~~~?라고 나는 주장…)
이러한 생각치 못한 노부부의 찬사로 인해 기분좋게 비엔나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일정을 짤 때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는 애초에 정했고 한 군데 정도 더 가고자 했다.
나는 영화속에서 본 게 전부이지만 왠지 내가 매우 좋아할 것만 같은 도시, 런던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런던과 두브로브니크를 연결하는 비행기 노선이 있기는 했지만 요금도 비쌌고
비행편이 많지 않아 일정도 잘 맞지 않았다.
결국은 그리 땡기지 않았지만 비행 스케줄이 맞는 곳으로 하느라 우리의 첫 기착지 비엔나가 포함된 것이다.
비엔나를 염두에 두고 주변 여론조사에 들어갔을 때 절반은
‘비엔나는 그다지 특징이 없었어. 잘 기억나지 않아. 그저 그랬다는 뜻이겠지.’라고 답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비엔나는 가장 좋았던 도시 중에 하나야, 꼭 가보렴’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래. 가긴 가는데 어차피 오늘 하루 뿐이고 내일 아침에 바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거니까 욕심내지 말고 클림트 그림 구경이나 하고 쇼핑이나 한 후 저녁에 음악회나 가자고.’라고 결론을 내린 터였다.
그러나 첫 도시에서 쇼핑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인지를 깨닫게 된 것은 바로 그날 오후.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엔나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우리는 목적지를 모두 걸어서 돌아다녔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 작품을 감상하고 나슈마르크트를 향해 나섰다.
클림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
나슈마르크트 가는 길에 지나친 카를 광장 (Karl Platz)에서 만난 버디버에 전시회. 소년의 여행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정말 촌스러운 남북한 곰들... 공무원이 한건가? ㅡㅡ;;
비엔나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대서 찾아갔던 시장, 나슈마르크트.
양 옆으로 쭉 늘어선 즐비한 상점들 중에는 한국 이름이 언뜻 눈에 띄는 가게가 있었다.
가게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Kim's Oriental market인가 그랬을 것이다.
소년의 성격상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님...
들어가서 '한국분이신가봐요~' 하고 인사를 나누며 말을 붙인다...
아뭏든 소년은 가끔 이런 식의 신기한 행동을 잘 한다. 뭐 조금 창피할때도 있지만 대체로 사랑스럽다. ㅎㅎ
그 아저씨는 '아, 예~' 하며 물건 살 것 같지도 않아뵈는 뜨내기 여행자의 인사를 대충 받아 넘긴다.
소년은 가게 안을 휘저으며 한국과자 사진까지 찍고서야 다시 잘계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철수... ㅋㅋㅋ
나슈마르크트에서 발견한 시장통 케밥집에서 소년은 눈을 희번득이며
‘야, 이제 배도 고픈데 마침 잘됐다. 케밥집이다! 케밥먹자, 케밥!!!’
'케바압! 케밥! 케밥! 케밥!'이라고 추임새를 넣어 호객행위를 하는 케밥집 주인의 목청 높은 외침에 덩달아 단단히 신이난 소년이 외쳤다.
소년이 조셉과 여행다녔을 때 즐겨먹던 것이라 그런지 한국에서건 어디서건 케밥만 보면 저렇게 아주 반색을 하고 달려든다. 나는 마음속에서 울컥했다.
‘기껏 비엔나까지 와서는… 아침은 부페식이었으니까 빼고, 이제 겨우 제대로 된 비엔나에서의 식도락을 즐겨보려했는데, 오늘 하루밖에 비엔나에서의 시간이 없는데… 하다못해 슈니첼도 아니고 뭐 케밥????!!’
소년은 배낭여행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 왠만한 거리는 무조건 걷고, 숙소와 음식은 적당히 싼 것을 추구한다. 소년에게 여행이란 다니면서 좋은거 많이 보고, 현지인이든 다른 관광객이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리고 사진 많이 찍는거, 그게 여행이다. 그것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숙소나 음식 따위는 중요치 않다.
즉 나와는 179.8도 정도 틀리다는 뜻. 물론 나도 걷는 거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사랑스러운 빨간 트램이 돌아다닌다면?
그렇다면 얘기가 틀려진다. 목적지가 걸어서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할지라도 타고 싶어진다. 그리고 멋진 호텔과 식도락을 무척 사랑하는지라 비싸더라도 좋은 숙소, 음식은 꼭 맛있는 것, 이곳이 아니면 못 먹을 것들을 찾아가서 먹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비엔나에서는 비엔나의 명물 카페인 자허에 가서 특허까지 취득했다는 죽을 만큼 달콤하다는 초콜렛 케익인 자허 토르테도 맛 봐야하고 예쁜 정원에서 갓 담근 햇포도주와 맛있는 안주를 판다는 비엔나 교외의 야외 양조장 겸 술집인 호이리게도 가봐야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맘먹고 있던 나의 목적지들을 굳이 미리 소년에게 말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말해봤자 뭔가를 먹기 위해 경로를 짜고 이동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당치않다, 그것이 진정한 여행인 줄 아느냐 등등 못마땅한해하며 반대할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상황봐가며 눈치껏 내 의도대로 유도해가리라…고 마음먹었던 차였다.
하지만 이렇게 초장부터 소년의 케밥을 향한 강력한 포스 앞에서 이러한 나의 계략이 앞으로 먹혀들어갈지는 상당히 의문스러워졌다… 급우울해지는 표정을 애써 수습하며 빠른 판단을 내리고 그냥 케밥을 먹어주기로 했다. ‘이제 여행의 시작일뿐인데 처음부터 내 주장만 펴다가는 여행을 망칠지도 몰라. 일단 어느 정도는 맞춰주자…’ 그리고 시장 한복판의 커다란 꼬치에 꽂혀 뱅글뱅글 하루종일 돌고 돌았을, 나에겐 터무니없이 마르고 퍽퍽할 뿐인 無味의 치킨 케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척 하였다.
‘으휴… 저녁엔 음악회 보러가기 전에 꼭 맛난거 먹자고 해야지…’
다시 쇼핑가이자 비엔나의 상징, 게른트너 거리까지는 제법 멀었지만 역시 마냥 걷는다. 게른트너 거리에 도달하자 갑자기 소년의 표정이 확~ 어두워진다.
‘마린아, 나 발이 아퍼. 이 새 신발이 볼이 너무 좁나봐.’
여행떠나기 전에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오빠는 푸마 운동화를 사서 여행 첫날인 오늘 처음 개시한 터였다.
나는 이 에어 운동화가 너무 편했는데 오빠는 처음 신은 운동화가 발에 잘 안맞았나보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나와 나슈마르크트 가는 길. 손에는 벨베데레 궁전 아트샵에서 산 클림트 그림 사본... 이때는 이렇게 쌩쌩했는데...
'아니, 자기가 나서서 계속 걷자고 해놓고 이제 얼마나 걸었다고 고작
발이 아프다고 주저 앉거나,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나는 얼른 백화점에 데리고 들어가 신발가게를 찾았으나 백화점에 신발 브랜드는 하나도 없다.
점원에게 물으니 근처의 Foot locker를 가보라고 하여 또 겨우겨우 찾아왔다.
이제 빨리 편한 걸로 하나 골라 신으면 될텐데 소년은 그 와중에도 가격과 디자인조차 따지니(ㅜㅜ;) 사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른 끝에 겨우 하나 골랐다. 발이 부은 걸까, 그간 신던 것보다 3사이즈나 큰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으니 그제서야 발이 좀 편하단다. 어떻게 무려 3사이즈나 큰 걸? 희한한 일이다. 어쨌든 새 운동화를 신고 편하다며 표정이 밝아지니 나는 마음속으로‘주여~,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여행경비는 다 소년이 준비해서 지참하고 있었으나 다운되었던 소년의 기분을 업시켜주기 위해 내가 몰래 뭐 이쁜 옷이라고 있으면 사려고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유로를 꺼내어 사주었다. 발이 편해졌을 뿐 아니라 내가 사주어서 그런지 기분도 매우 좋아진 눈치였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즐거운 여행모드로~~!! ㅠㅠ;
사실 나는 아까부터 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H&M, Zara등에 빨리 가고 싶었다. 소년도 발이 편해지니 그제서야 옷들이 눈에 들어오던지 Zara 매장에서 거의 환호성을 지르며 마구 쇼핑에 돌입했다. 여자인 나보다 훨씬 오래, 훨씬 많이 커다란 쇼핑백 가득히 채울 때까지 (쇼핑 끝낸 나를 방치하며). Zara 한 매장에서만 두 시간을 넘게 있었다.
상점 구경들을 하며 게른트너 거리의 북쪽 끝까지 올라가니 비엔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슈테판 광장과 성당이 나왔다. 주말이라 (토요일) 아주 흥미로운 거리 퍼포먼스도 벌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성당을 둘러보고 성당에서 오늘
사실 나는 비엔나의 여러 공연들 중에 관광객을 위해 만든 짬뽕 공연같긴 하지만 오페라, 왈츠, 발레 등을 짤막히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우리 호텔 바로 옆 시민공원의 쿠어살롱에 가고 싶었다. 그 외에도 슈테판 광장에는 모짜르트 분장을 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의 호객꾼들이 많았다. 소년은 그런 관광객 전용코스는 별로라는 듯 "난 그냥 성당에서의 바이얼린 쿼텟이 더 좋을거 같네~? 그냥 연주만 듣는 게 더 좋지 사람 보이스 들어간 건 별로야"라고 주장하며 슈테판 성당의 바이얼린 쿼텟을 고집하였다.
무거울까봐 마지막에 들리기로 한 주방용품 샵에서 냄비세트와 수저세트등을 잔뜩 사는 바람에 아까 산 옷들까지 합쳐 거의 짐이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호텔이 멀지 않으므로 들러서 짐을 두고, 옷도 디너와 음악회에 맞게 갈아입기로 했다.
소년은 그 엄청난 짐더미에도 불구하고 호텔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이유로 택시탈 생각이 없는 듯하다.
나는 차마 택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게다가 가장 무거운 냄비세트는 소년이 짊어지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옷들을 들은 나는...) 낑낑 거리며 말없이 소년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지도를 제대로 보지 않아 성당에서 호텔까지 직선 코스가 있는 걸 모르고 일단 시장구경하면서 왔던 코스로 가서 다시 호텔로 가는 루트로 한참을 걸었다. 걷다보니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소년은 아까 지나왔던 길이 맞다고 확신하며 계속 가고 있지만 나는 위치상 이렇게 많이 걸을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치인 내가 감히 뭐라고 따져묻기가 뭐해서 계속 참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소심하게, 조심스레 묻기 시작했다.
'오빠는 그러니깐 확실히 아는거지?'
'오빠, 아까 갔던 궁전, 호텔, 시장, 그리고 지금 여기가 다 오빠 머리속에서 어디어디인지 그려지는 거지? 그리고 우리는 확실히 호텔쪽으로 걷고 있다는 거지?'
지금 믿을 것이라곤 이 사람뿐인 상황에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레 질문...
소년이 단지 낯익은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시 호텔이 아닌 아까의 시장이나 궁전쪽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 가다는 불안감에 나는 계속 확인을 해 본 것이다. 소년은 길치인 니가 뭘 알겠냐는 듯이 '어, 맞어' '어, 알아'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그 후에도 나의 질문이 계속되자 아예 대답을 안하고 걷기만 하였다. ㅜㅡ;
나는 어느 순간 '분명히 우린 잘못 가고 있다'라는 확신에 지나가는 아줌마를 붙잡고 우리 호텔이 위치한 시민공원이 어디냐 물엇다. 아줌마는 영어를 못하는데 계속 '벨베데레, 벨베데레'만 반복했다. 소년도 이상한지 앞에 있던 경찰을 찾아가 물었다.
그렇다... 나의 우려대로 여기는 호텔쪽이 아닌 아침에 클림트의 그림을 보러 왔던 벨베데레 궁전쪽이었다, 호텔쪽 지역을 지나쳐 한참을 걷고 또 걸은 곳이다. 10분 정도로 예상되던 거리를 우리는 납덩이 같은 짐을 이고지고 한 시간 이상을 행군했던 것이다.
원래의 내 성격대로라면 난리를 치며 내말이 맞지 않았냐고 타박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웃음이 피식 나면서 담담히 지금이라도 빨리 택시를 타자고 했다. 할말이 없는지 소년도 순순히 동의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지나쳐 와버려서 이곳은 시가지가 형성되는 트램이 다니는 링의 안쪽이 아니라 아예 바깥쪽이기 때문에 거리도 한산했고 택시도 없었다. 한 10여분을 멍하니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택시를 타니 5분만에 단지 8유로의 요금으로 호텔에 가뿐히 도착했다.
호텔에 쇼핑한 것들을 가져다 놓고 잘 차려입고 나와 멋진 곳에서 저녁도 먹고 (이 저녁을 위해 점심도 내가 참고 그 말라빠진 케밥을 먹었는데!!!!) 음악회를 본 후 야경을 즐기며 차라도 한 잔 더 하면서 비엔나의 마지막 밤을 즐기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땡볕에 냄비세트와 잔뜩 장만한 가을옷, 겨울옷을 들고 한시간을 행군을 한 끝에 돌아온 호텔에서 그만 뻗어버렸다. 어차피 길에서 헤맨 시간 때문에 계획대로 저녁을 먹고 음악회에 가기에는 시간도 모자랐다. 침대에 잠시 엎어져 쉬다가 나중에 한국음식이 그리울 때 먹으려고 사온 컵라면을 하나씩 꺼내어 먹었다. 아침은 부페식 조식, 점심은 케밥, 저녁은 컵라면... 나의 위장은 비엔나의 정취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인가... 슬프다… 컵라면 먹고나니 (웃긴건 그래도 컵라면이 무지하게 맛있더라는…) 벌써 서둘러 음악회에 가야할 시간.
호텔방 창문으로 보니 어젯밤엔 경황없어 몰랐는데 저멀리 슈테판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첨탑만 보며 직진했더니 딱 5분 걸리더라. 가는 길도 아기자기하니 이뻤다. 이런 된장…ㅠㅠ;;; 이렇게도 가까운 것을 아까는 한 시간 이상을 땡볕에 냄비들고 극기 훈련하듯이 헤매었다니… 그로 인해 포기해야만 했던 많은 것들이 떠올라 또 다시 아쉬워졌다. 멋진 디너, 자허의 초코렛 케익, 호이리게... 흐흑흑...
제대로 된 바이얼린 쿼텟을 고집하던 소년은 공연 시작 전 성당내부 사진 몇장 찍더니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자 바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졸면서도 가끔 미간에 인상을 쓰는 것이 아마 꿈속에서도 5개들이 냄비세트를 머리에 이고 비엔나 시내를 이리저리 헤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ㅎㅎ
밤늦은 유럽의 거리 답지 않게 슈테판 광장은 음악회가 끝는 늦은 시각에도 노천까페, 바, 식당이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블마다 촛불을 밝힌 고급스러운 식당들,
음악회가 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즉석 연주가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 있는 까페들…
아직 끝나지 않은 비엔나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화려함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음악회까지 버텨내기도 힘들었던 우리는 시차와, 낮의 강행군으로 더 이상 그러한 유혹에 빠져들 여유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 대신 맥도날드에 들어가 차가운 콜라한잔을 사서 목을 축이며 호텔쪽으로 걸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라이브 연주가 흘러나오던 슈테판 성당 근처 골목길의 까페...
잠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안에는 많은 연인들이 밀담을 나누는 어느 분위기 좋은 까페 앞에 서성대며 잠시나마 음악을 귀동냥하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려면 짐도 정리하고 알람이라도 맞춰야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몸을 뉘였다.
‘아마 오늘을 겪으면서 소년도 느꼈을 거야. 적당히 필요할 때 택시도 타고, 돈도 쓰고 하는 것이 우리의 여행을 훨씬 활력있게 만들고, 결국 돈보다 중요한 시간을 벌어 준다는 것을... 우리같이 일년을 눈치본 끝에 열흘간 휴가를 떠나온 사람들에게 시간이란 돈보다도 훨씬 귀한 거잖아? 아니야…, 어쩌면 냄비를 사자고 한 내가 바보였는지도 몰라, 백만원짜리 냄비세트를 십오만원에 사면 뭐해. 결국 이렇게 소중한 하루뿐인 저녁시간을 놓쳐버린 걸… 그래, 누가 누굴 탓할 일이 아니구나… 그래, 그래도 이것도 다 추억이지뭐, 그래도 오늘 클림트 작품도 보고, 옷도 잔뜩 사고,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아... 음냐음냐…
그래도... 언젠가 다시 비엔나에 돌아와 오늘 못다한 것들을 다시 할 수 있을까…?
‘……zzz…zzz… ’
첫댓글 2004년에 데멜에 갔었기에 이번엔 자허 호텔에 가서 달짝지근한 자허 토르테를 먹으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자허호텔에서 그 맛을 보지 못했지요..But, 빈공항에서 자허토르테를 운좋게 구입해서 프라하 가는 비행기에서 맛있게 냠냠했죠..정말 당도가 상상이상으로 높아서, 기절할 지경이었음!!! 저도 신발을 잘못 골라 신고 다니는 바람에 계속 울상짓고 징징대고..(이점에 대해선 미쳐오빠에게 매우 미안하다고 느낌..)신발을 새로 사지는 못하고 호텔에 일찍 들어가서 tv로 월드컵 봤었어요.. 전 무슨 인연에서인지 빈에 세 번을 갔었지만, 콘서트도, 호이리게도 못가봤어요..다시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혹시 있다면 그땐 가보고싶어요~
지금 언니 글을 읽으니 여행중에 제 모습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요.. 여행중에 속상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속으로 삭히질 못하고 바로 표시를 내는 바람에 같이 다니는 사람들 기분까지 안좋게했던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네요..앞으론 좀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할 듯!! 다시 빈에 가서 언니가 못했던 것들을 다시할 수 있길 바래요~~
나두 뭐든 워낙 내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전에도 여행하면서 트러블이 있기도 하고 그랫는데 이번엔 워낙 둘뿐이니 이상하게 내가 알아서 눈치보고 어느정도는 맞추게 되더라, ㅠㅠ;;; 자허 토르테하고 호이리게, 엉엉~~~ 3번이나 갔는데 못가본 스프를 생각하며 살며시 위안을? ㅎㅎㅎ
우와...우선은 급한마음에 사진부터 쭉 보고..(뭐가 급한건지...) 글은 천천히 읽으려고 하는데 마린이의 첫번째 사진...넘 귀엽다. 비엔나에도 우리나라 과자들이 있다니 새삼 놀라울뿐.... 기다리던 여행기니까 천천히 즐기면서 읽어야쥐~~~
언니~~~ 이렇게 재밌게 읽어주시니 넘넘 감사해요~ 집필 의욕이 쑥쑥!!! ^ ^;;; 그간 넘 오래 얼굴을 안보여주셨는데 언제쯤!!!???
맞아요 ㅎㅎ 같이 여행간 사람 기분 생각하는게 남은 여행을 위해 무지 현명한 거죠.. 근데 막상 가게 되면 그래.. 그래 참자 참자 하면서도 꾹꾹 참다가 더 황당하게 버러럭~ 화내는 나를 보면서.. 나는 왜이럴까 무지 우울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래서 혼자하는 여행이 더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외롭기는 하지만 ㅎㅎ 근데 그 특허받은 자허 토르테는 꼭 먹었어햐 하는건데.. zara에서 여러가지를 구입했으니 것두 괜찮을듯 ㅋㅋ 여행중에 예쁘다는 말 들음 정말 기분?오죠!!
ㅋㅋㅋ hola는 나와 어딘가 너무 많이 비슷하다... ㅎㅎ 혹시 중간에 낀 극성스러운 자매들의 특징일까? 아님 k동의 정기? ㅎㅎㅎ 그래도 옷을 더 많이 못사온게 한스럽네...ㅠㅠ;;;
아 글구 소년님 운동화를 비상금으로 선물하신 마린언니의 센스에 감동!!!
취향이 저랑 비슷하니까 한줄 한줄 읽을때마다 공감 100%에 무릎치고 키득거리고 깔깔 웃다 보니까 어느새 끝이네요. 외국에서 택시 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길치인것까지 저랑 똑같군요.;; 저도 외국 나가면 현지식에 목숨 거는편인데 그게 참 어렵더라구요. 아무리 음식이 중요해도 음식점을 위주로 동선을 짤수는 없으니 타이밍이 안맞아서 엉뚱한걸 먹게 되는 경우가 많고 동행들 눈치도 봐야하고.. 그래도 소년님은 외국 음식도 잘 드시고 한식만 고집하지는 않으시는것 같으니 그 정도면 남자치고 굉장히 양호하신것 같은데..^^ 화장품 부실해도 피부 너무 좋아보이시고 벨베데레 궁전앞에서 썬글라스 끼고 찍은 사진 예술이에요~
맞아요, 정말 음식은 중요한데...! 그걸 아는 저희같은 현자들끼리만 다니덩가 해야지, 정말~~~ ㅠㅠ;;; 네, 소년이 저 만나서 그래도 많이 먹을거 밝히는 편으로 되긴 했어요, ㅎㅎㅎ
두분 누님,형님..20대라 해도 믿겠어용....그나저나 소년형아 드뎌k-10d가 나왔더군요...아 카메라사고 싶어라..
아, 그러냐. 함 들여다봐야겠당.
나 얼마전까지 구래두 20대였으... ㅠㅠ;
ㅋㅋㅋ계속 웃음짓게 하시는...다른 이의 여행기를 읽을 때 내가 다녀 온 곳이면 그래, 그렇지...그렇게 내 추억을 즐기게 하고 공감도 하고 또 다녀오지 못한 곳은 풍부한 상상을 하게 하고 가고싶은 욕망을 끓어오르게 하니....정말 고생스럽게 올려주신 글이 너무 고마워요.먹고 싶은 거 제때제때 못 먹고 돌아서오면 전 쭈~욱 한이 되던데...ㅋㅋ
읽어주시는게 감사하져, 써주신 저에게 고맙다하시니 넘 황송한걸요. ^ ^;;; 그나마 비엔나에선 그곳 음식들이 아주 목숨걸고 먹고싶다까진 아니어서 지금 큰 미련은 없는데, 3년전에 이태리에서 피자못먹은건 아직도 넘 한스러워요, 흑흑...
장황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여행기야 ^^ 마린보이 커플의 미모는 유럽에서도 통하는구나.. 우아한 비엔나에서의 하루 대신 역동적이고 알찬 하루도 괜찮아겠어~ 특히 쇼핑이 정말 보람찼을 듯~
ㅋㅋ 쓰면서 저도 장황하다 생각.... 근데 앞서 나가는 소년의 여행기랑 템포를 맞추려면 비엔나를 한편에 끝내야한다는 일념으로~~~!! 냄비박스 머리에 이고 매우 역동적인 하루를 보냈져, ㅎㅎㅎ 근데 막상 쇼핑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입을 옷이 없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어요, 흑흑~~
진짜 귀엽게 차려 입었네~~ ^^ ~~
싸다가 '싸다~'하며 사준 나시티야, 일명 옥주현 레이스 나시 ㅎㅎㅎ
그래도 냄비는 잘쓰고 있자너..ㅎㅎㅎ가끔씩은 너무나 방어적인 내자세에도 돌아서서 후회하곤하는데 다들 그렇구나..ㅎㅎ글솜씨가 보통이 아냐...자꾸 반할라하하자너..ㅎㅎ
넌 내게 반했어~? ㅋㅋ 그넘의 냄비 주말에 처음 개시해서 파스타 해먹었다오... 본가 한번 들려주삼, 파스타 해줄께~~~ ^ ^;;; 아, 둘둘도 먹고파~~
지금도 그 신발 잘 신고 다닌답니다 ~ ㅋ 결코 택시 타는 걸 싫어하는게 아니고... 걸어가도 되는데 굳이.. --; 비엔나 시내의 구조가 좀 이상해요. 도시모양의 오류라고나 할까.. 관광객 비친화적 구조지요. 도시계획의 실패. --;
으이그~~~ 먼 도시계획 실패까지 운운을 하신댜, 걍 넓은 발볼을 탓하시오~ ㅎㅎㅎ
무척 재미있네요. 부부간의 여행이란 미묘한 심리전이라서 중간중간 서로에게 센스있는 배려와 양보가 참 뭐 중요하다고나 할까요. ㅋㅋ~~
맞아요! 올리브그린님!!! 배려와 양보... 여행뿐아니라 결혼생활의 필수 미덕인거 같아요,,, ㅎㅎㅎ 리플들만 읽어봐도 올리브그린님은 참 차분하시고 현명하신 분이실거란 생각이 들어요~~ ^ ^;;;
아 진짜 웃겨요 ㅋㅋ글을 참 재밌게 잘 쓰시네욧! 할머니들하구 대화에서의 표현들두 그렇고,,,넘 잼게 읽었어요.아! 그리구 벨베데레에서 찍은 독사진 모델처럼 이쁘세요. 담편두 기대할게욧
냉면님, 이뿌다 해주시니 감사~~ 곧 방학일텐데 냉면님, 여행 계획은 없으시구요~~? 전 요새 돈은 부족해도 마음껏 여행할 방학이 있는 학생이 젤로 부러워요~ 담편도 기대해주세요~ ^ ^;;;
ㅎㅎ...두분의 여행 스타일이 다름을 느낍니다..전 소년과 언니의 중간정도~ 근데 저같음 트램은 꼭 타보겠어요!! 근데 저도 그리스에서 먹었던 케밥이 맛있어서인지 그뒤로 좋아한답니다~~그러나...호텔 조식이 더 맛나보여요
그치, 나두 트램 꼭 타고팠엉... 나두 사실 무슨 럭셔리 여행족도 아닌데 이상하게 소년하고만 여행을 논하다 보면 내가 된장녀가 되는 느낌... 흠... 그렇다면 결론은 나두 케밥을 좋아할 수 있도록 그리스를 가봐야겠다! ㅎㅎㅎ
하하...잼있다~~~ 부부여행에 이런 묘미가 있구나~ ㅋㅋㅋ 나도 지난 9월에 미국가서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마랴~리버티아일랜드 들어가는 배안에서 어떤 아줌마가 날 쳐다보더니 팔을 툭툭 치는거야..난 그게 비키라는 표시인줄 알고 슬쩍 기분 나빴는데..그 아줌마 하는 말쌈이~ "You are very very pretty" 헉...놀라면서도 으찌나 좋든지..글고 괜히 의심했던게 미안해지더라구...
ㅋㅋ 우리는 외국 나가야 미녀 대접~~? ㅋㅋㅋ~~~ ^ ^;;; 이 땅은 넘 좁아요... 넓은 물로 나가야 우리의 진가를 알아들 주네요 ㅎㅎㅎ
이거 미녀들이 줄줄이 커밍아웃하는구나~~
1. 마린님 여행기 인기 짱이넹~~^^* ㅋㅋ 근데 싸*지 안 부리고 적당껏 눈치보며 오라버니 비위 안 건들게 조심하는 모습이 왤케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ㅎㅎㅎ 2. 내가 증정했지만 옥주현나시티 늠 이뿌게 잘 어울린당~~ 여행용으로 딱이네! 3. 그 놈의 냄비세트에다가^^ 조리하는 지중해표 닭도리탕 얻어머그러 빨랑 가야되게따!! ㅋㅋ
옥주현티 여행내내 넘 잘입었다, 땡스~~~ 지중해표 닭도리탕 머그러 언제든지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