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 형조판서 이규현(李奎鉉)
이규현[李奎鉉, 1777년(정조 1)~1844년(헌종 10)], 자는 노경(魯卿), 호는 관백헌(觀白軒), 시호는 숙헌(肅獻),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는 덕산현감 이보흥(李普興), 조부는 예조판서 이숭호(李崇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재학(李在學)이고, 어머니는 정동현(鄭東鉉)의 딸 동래정씨이고, 배위는 박사소(朴師邵)의 딸 반남박씨이다.
1812년(순조 12) 제주도에서 귤이 올라온 것을 기념하여 시행한 감제(柑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또 이듬해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헌부 헌납과 1824년엔 성균관대사성 , 이듬해 이조참의가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에 보답하고자 만든 제단에 제사지내면서 청나라 연호를 쓰는 바람에 삭직되기도 하였다.
1827년(순조 27) 복직되어 승정원좌부승지로 일할 때, 순조의 능행차를 잘 처리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가자되었다. 이듬해 진하사(陳賀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참판, 도승지, 사헌부 대사헌, 1843년(헌종 9) 한성부 판윤, 1844년(헌종 10)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곡산부사, 동래부사, 1832년 전라도관찰사, 1838년 개성유수, 1840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초장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장례를 치렀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에는 1824년(순조 24) 경상좌수영 인근 백성들이 좌수영 어민의 실정을 잘 보살펴준 이규현(李奎鉉)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부사 이규현만고불망비(府使李公奎鉉萬古不忘碑)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