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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nyaya Pesnya (가을의 노래)/Anna German (안나 게르만) & photo by 김순용
https://youtu.be/-bs-FlRJx5A
안나 게르만(Anna German, 1936~1982)
우즈베키스탄 출생.
(가사)
가을의 정원으로 나를 부르는 지나간 추억들,
오렌지 색 차림으로 불타오르고.
신선한 공기와 하늘에서 울고 있는 학들,
우리에겐 영원히 이별은 없을 것 같았어.
서로 헤어지지 않고, 마치 공기와 물처럼,
너와 나는 함께 있을 줄 알았어.
가을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 차림은 이제 불타오르지 않으니,
나는 고요해진 정원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추억이 모든 소망과 모든 사랑을 다시 돌려주었으면.
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구나,
너의 말들이 따뜻한 불꽃처럼
나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부르는구나.
나는 알고 있지,
내가 널 잊지 못할 거란 것을...
1957년 9월 24일 제목 : 아이젠하워, 리틀록에 연방군 파견 분류 : 정치 지역 : 국외 미국 시민권 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리틀록의 흑인들 9 사람(리틀록 40주년 행사장에서) 1950년대에 인종분리와 인종차별대우에 대한 공개적인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투쟁은 한 세기에 있어 가장 길고도 어려운 투쟁 중의 하나라는 것이 입증되어 갈 것이었다. 여러번의 대치 상황이 일어났고 대법원은 합법적인 인종차별제도를 파기하는 일련의 판결을 내렸으며 흑인들 스스로 지역적인 인종차별제도에 대하여 강력하고 점차 직접적인 도전을 하기 위해 단합하기 시작했다. NAACP와 흑인 개혁주의자들은 수년동안 끈기있는 합법적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1954년 5월 17일 대법원이 브라운 대학 토페카 교육위원회 소송에서 내린 판결로 마침내 그 결실을 보았다. 칸사스주 공립학교 제도의 합법적인 인종차별주의를 신중히 고려하면서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각 주가 흑인들에게 그 시설물들이 백인의 그것들과 동등한 한 분리된 시설물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었다. 대법원장 워렌은 “우리는 공공교육 분야에서 ‘평등하지만 분리된’ 그러나 교의는 있을 수 없는 처사라고 결론내렸다 . 분리된 교육시설물들은 본질적으론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지역사회는 ‘신중하고도 신속하게’ 여러학교의 인종차별제도를 폐지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고 대법원은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몇몇 지역사회에서는 워싱턴D.C.에서처럼 비교적 쉽게 승낙하는 분위기였지 만 훨씬 빈번하게 강한 지역적 저항이 일어났다. 이 일은 오랫동안 지연되었다. 일부 지역의 학교에서는 인종차별대우를 없애려는 순수한 노력을 회피하려고 애썼고 또 다른 학교에서는 단순하게 그러한 판결을 전적으로 무시하였다. 1957년까지 남부지역의 3000개의 해당 학교 중 단지 684개교만이 인종차별제도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낙한 학교에서도 백인들의 저항은 흔히는 성난 폭도와 같은 행위와 기타 폭력을 자아냈다. 점점 더 많은 학부모들이 그와 같은 공립학교로부터 자녀들을 단순히 퇴교시켜 백인들만으로 분리된 학교에 입학시켰지만, 이러한 학교의 대다수는 부족한 교원과 빈약한 시설을 갖고 있었다. 인종차별제도를 결코 종식시키지 못한 브라운판결은 연방정부 당국과 주의 지방 정부 사이에 장기간의 투쟁을 개시하였다. 몇해동안 연방법정들은 공공교육에서 인종차별제도 폐지의 결정에 승낙하도록 계속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고 법정의 판결을 강화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부는 이 법을 무시하는 지방당국과 대립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대립은 최초로 1957년 9월 알칸사스주의 리틀록Little Rock에서 일어났다. 법원은 그 도시의 센추럴고등학교의 인종차별제도 폐지를 명령하였는데 열광적인 인종차별 긍정론자인 오발 파우뷰스 주지사는 그것을 중지시키기 위해 주방위군의 개입을 명령하였다. 결국 파우뷰스는 한 연방판사의 명령에 응하여 방위군을 철수시켰지만, 그 학교의 인종적 차별을 긍정했던 성난 폭도들은 곧 들고 일어났다. 연방정부 당국에 대한 이러한 공개적인 반항에 직면하여, 그리고 관련 흑인 학생들의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이 가해지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정의 명령은 복종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시하기 위해 마침내 리틀록에 연방군을 파견하여 대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센추럴 고등학교는 최초로 흑인 학생들을 인정하였다. 물론 여러해 동안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1998년 11월 6일에 열린 백악관 행사장에서 클린턴 대통령(President Clinton)은 아칸소(Arkansas)주에 있 는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를 미국의 역사적 장소로 지정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리틀록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장소라는 데 의미가 크다. 클린턴 대통령은 "1957년 9월에 ''리틀록 9(the Little Rock Nine)''으로 잘 알려진 아홉 명의 용감한 아프리카계 십대 청소년이 최초로 리틀록 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심한 대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President Eisenhower)은 학교내 인종 차별을 철폐시키기 위해 리틀록 고등학교 안으로 연방 낙하산 부대를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프리카계 소년들이 정당하게 학교 정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101 공수부대의 투입을 명령했다. 이 사건은 1954년에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 공립학교에서 인종차별을 금한다는 판결이 내려진 후 미국에서 발생한 첫번째 분쟁이었고 미국의 민권 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가 되었다. 버금일지 ▶1996 기밀 누설혐의로 로버트 김 체포 - 분류 : 정치 - 지역 : 국외 - 내용 ; 로버트 김은 전남 여수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학원을 나왔으며 본명은 김채곤시. 그는 지난 97년 7월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해군 정보국(ONI)에 근무할 당시 간첩음모죄로 9년형에 3년의 보호감찰 선고를 받고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96년 9월 동해안에 침투한 잠수함은 1척이 아니라 2척이고, 미국은 미리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정보를 한국쪽에 건네준 혐의로 체포된 로버트 김은 당시 재판정에서 “한국이 보낸 간첩도 아니고 영웅이 되려는 마음도 없었다. 다만 약소국인 조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로버트 김은 97년 7월 기밀유출죄보다 훨씬 형량이 높은 간첩죄가 적용돼 징역 9년에 보호감찰 3년형이 확정, 애팔레치아 계곡에 있는 연방교도소에서 복역중이며 9월말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형량재심의요청이 기각돼 현재 형량재심의 요청을 다시 제출한 상태다. 일부에서는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미국측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특히 한국측이 팀스피리트훈련 재개를 거론하는 등 강경입장을 취하자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로버트 김사건을 이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측의 수사협조요청에도 불구하고 백대령을 귀국조치해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로버트 김구명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 전대통령은 공식서한을 통해 “로버트 김이 미국시민이므로 한국정부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90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 통독협정에 서명 - 분류 : 정치 - 지역 : 국외 - 내용 : 분단된 상황에서 서로 각기 다른 법으로 통치되었던 독일은 마침내는 서독기본법을 바탕으로 한 통일독일의 헌법을 새로이 갖추게 되었다. 즉, 서독 Bonn기본법의 정신은 그대로 통일독일의 기본법에도 이어져오고 있다. 분단으로 인해 각기 다른 법을 지니고 있던 서독과 동독은 냉전 붕괴가 결정적이었던 1989년, 서독 대통령에 재선돼 동서독 재통합조약에 조인한 바 있는 바이츠제커의 협정 서명과 1990년 10월 동독의 인민의회가 서독(독일연방공화국)에 편입할 것을 의결함으로써 동서독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통일조약에 따라 통일독일의 헌법이 된 기본법의 부분개정(기본법 전문, 기본법의 적용범위 및 통일관련조항 등)이 있었다. 1992년 1월 연방의회와 연방참의원의 공동헌법위원회가 헌법개정에 관한 권고적 성격의 보고문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동서독 두나라가 40년간의 분단을 극복하고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기 위해서 두나라의 상이한 법질서를 통합하려고 노력했던 점은 현재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1964 케네디 암살관련 워렌보고서 공개 - 분류 : 정치 - 지역 : 국외 - 내용 : 196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주, 달라스. 눈부신 햇살를 받으며 달리 풀라자를 달리는 콘버터블 리무진을 향해 세 발의 총탄이 날았다. 첫 총탄은 케네디(John F. Kennedy: 스티브 리드 분)를 명중시키고, 앞자석에 타고 있는 텍사스 주지사 코날리에게 명중하여 나갔다. 다른 한 발은 표적이 빗나가 길에 맞았고 콘스탄트 파편이 튀어 서있던 사람의 뺨에 튀었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던 차가 나무판자 있는 곳에 왔을 때 또 한발의 강력한 총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고, 대통령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총격이 있은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4세의 백인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그가 하비 오스월드였다. 케네디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든 비 죤슨은 국내 여론과 외국의 의심을 무마하기 위해 급히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진상조사 위원회를 열었다. 대법원의 얼 워렌 판사를 의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워렌 보고서'를 작성, 이 사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고,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사건을 맡은 대법원장 워렌이 중심이 된 워렌 조사위원회는 총알이 휘어서 나갈 수도 있다는 소위 '마법의 탄환'이라는 '마탄론' 같은 설득력이 약한 얘기를 하면서 이 사건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종결지었다. 그러나 그 뒤로 수많은 학자와 수사관들은 이 위원회의 수사방법에 의문을 제기했고, 군산복합체의 음모라는 제기는 지금도 끈질기게 제기되고 있다. ▶1960 육군장교 16명 정군 건의 촉구하고 사퇴 - 분류 : 정치 - 지역 : 국내 - 내용 : 연참총장으로 옮긴 최영희 중장이 초청한 미 국방부 군 원국장 파머 대장이 이한성명에서 '군내에 일고 있는 정군움직임은 전투 경험을 가진 장성들을 잃게 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경록 총장은 '이 성명은 주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요지의 반박성명을 냈다. 김종필 등 정군파 장교들도 발칵했다. 일부 장교들이 최영희 연참총장을 찾아가 항의하려다 헌병대에 연행, 훈방되었다. 최 영희는 이들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입장을 해명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16명의 장교들을 하극상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겼다. ▶1960 미 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 진수 - 분류 : 사회 - 지역 : 국외 - 내용 : 1960년 9월 24일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스호가 미국 버지니아주 뉴포드뉴스항에서 첫 출항식이 열렸다. 해군은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대체하기 위한 75000톤급 선박의 건조를 위하여 자금을 차입하였고 뉴포트 뉴스 조선사와 드라이 도크회사는 1958년 2월4일에 건조를 시작하였다. CVN-65는 물위에 떠있는 배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배로서 1960년 9월 24일에 엔터프라이즈로 진수하였다. 그 배의 흘수선은 317미터이고 최대 선폭이 4.5미터나 된다. 한 번의 핵연료 공급으로 7년 동안 지구를 24바퀴 돌며 항해할 수 있는 엔터프라이스호는 1개 비행대대를 작전에 참가시킬 수 있는 전투기의 보금자리다. 엔터프라이스호의 건조비는 4억 3천 5백만 달러! 총길이는 3백 미터가 넘는 미 제7함대의 주력 항공모함이 되었다. ▶1993 마르코스 이멜다 법정 출두 - 분류 : 정치 - 지역 : 국외 - 내용 :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미망인인 이멜다는 이 날 1982년 정부의 철도공사와 필리핀 종합병원 건설 당시 정부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을 받게된다. 부패 혐의로 기소된 건만 해도 90건이 넘는 그녀는 마르코스 독재시절 호화와 사치로 악명이 높았다. 상원 조사위원회에 출석해 자신과 남편 故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前 대통령이 과거 20년의 독재 기간에 국가재산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반박했다. 그녀의 ‘전설적인’ 남편은 금무역과 행운으로 부자가 됐으며 그 돈을 애국적인 국가건설 사업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일가의 엄청난 재산에 관한 5시간의 청문회에서 이멜다는 전혀 참회의 기색 없이 50회 이상이나 묵비권을 사용했다. 그녀는 상원의원들에게 “내가 재산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1. 미 흑백차별의 역사와 민권 운동의 흐름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2. 1997년에 있었던 리틀록 40주년에서의 일들을 소개하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3. 케네디 암살에 얽힌 이야기와 그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추적해 본다. 그리고 미 군산복합체의 거대한 실체를 알리고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4.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인 육군 장교들의 정군 건의와 그 이후 그들의 행적을 통해 군인의 진정한 본분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우리 군의 굴절의 역사에 대해 소개한다. 5. 항공모함의 역사와 우리 해군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6. 이멜다의 뻔뻔스러운 답변을 통해 독재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을 이야기한다. 1396(조선 태조 5) 한양 성곽 완성 1553(조선 명종 9) 성리학의 대가 회재 이언적(1491-1553) 세상 떠남 1870(조선 고종 7) 정만식, 정감록 믿고 역모하다 발각 1945 한국마사회 창립 서울시내 국민학교 일제히 개교 1946 9월 총파업 개시 1957 용문사에서 왕의 용상 등 발견 1960 육누 하극상 사건 발생 육군장교 16명이 육군참모총장에게 정군을 건의하고 사퇴 요구 1965 정부, 벨기에에 상주대사관 설치 1978 경북 고령군 지산동 가야고분에서 중요유물 다수 출토 1980 정치풍토쇄신특별법 제정 1982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1986 한국남녀탁구팀, 서울 아시안게임 남녀단체전 우승 1988 김용남(일명 용팔이), 이선준전신민당 청년 제1부장등 행동대원 검거 첫 UPI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 상영 1990 한국, 페만 분담금 2억2천만달러 부담 1991 노태우 대통령,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통일 3대 원칙 제시 곽선희 목사(서울 소망교회), 평양 도착 개인자격으로는 최초로 정부의 승인을 받아 북경발 조선민항 편으로 입북 1991 만취한 재미교포가 숙대앞 굴다리 일방통행로서 시속 80㎞로 역질주 3명 사망, 17명 중상 1992 서울지검, 시한부종말론 주장한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 구속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1997 한보 그룹 정태수 회장, 징역 15년 선고 전남 영광 불갑사에서 월인석보와 보물급 고서 다량 발견 B.C.552 공자 태어남 1896 미국작가 F.S. 핏츠제랄드 출생.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 낙원의 이쪽면 1941 소련, 프랑스 등 16개국, 대서양헌장에 참가 1944 프랑스 조각가 마이욜 세상 떠남 "마이욜의 작품에는 호기심을 일으킬 만한 일체의 요소도 없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죽으면 마이욜이 나를 대신할 것이다."-로뎅 1949 중국공산당, 인민공화국 선포 1960 세계 최초의 미국 원자력 항공모함 엔트프라이즈호 진수 1962 알제리, 인민공화국을 선포 1970 소련의 무인 달탐색우주선 루나 11호, 월석 갖고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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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하루 일정이 좀 바빠서
일찍 다녀 갑니다
좋은 하루들 되셔요
매일 바쁘시네요
그만큼 필요한 사람이란 뜻이랍니다 ㅎ
오늘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담아주신
오늘의 역사에 우리도 황인종이지만 인종 차별은 없어야 하고
다 같이 아우르고 살았음 좋겠어요
간첩 혐의로 체포된 로버트 김은 우리가 보아서는 애국자일뿐이죠
그리고 여러가지 좋은 자료 게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배운답니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입니다
즐거운 불금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