俱學兵法 : 함께 병법을 배우다
함께 구(人-8), 배울 학(子-13), 싸움 병(八-5), 법 법(水-5)
영화 ‘봉오동 전투’를 봤다. 개봉을 전후해서 꽤 많았던 악평과 달리 꽤 잘 만들었다는 것이 내 소감이다. 서사의 전개나 배우들의 연기, 촬영,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 따위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는 영화평을 늘어놓을 자리가 아니므로 그저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레 떠오른 것을 말하려 한다.
이 영화를 보거나 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최근에 일본과 한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아닌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2,300년 전의 두 인물, 孫臏(손빈)과 龐涓(방연)이 떠올랐다.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졌던 馬陵(마릉) 전투가 봉오동 전투와 닮았다는 사실, 나아가 두 인물의 성향과 갈등, 사건의 추이 따위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와 흡사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손빈은 전국시대에 활약한 병법가다. 법가사상가인 商鞅(상앙), 유교에서 亞聖(아성)으로 불리는 맹자와 거의 동시대 인물이다. 그렇지만 <<孫子兵法(손자병법)>>을 남긴 孫武(손무)와 동일인이냐 아니냐, 실존했느냐 아니냐 그리고 그가 과연 병법서를 남겼느냐 따위로 오래도록 논란이 되었다. 사마천이 <<사기>>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서 손빈을 손무의 자손이라고 적었음에도. 그러다가 1972년에 竹簡(죽간)으로 된 그의 병법서 곧 <<孫臏兵法(손빈병법)>>이 발견되면서 그가 손무와 다른 실존 인물이며 또한 병법서를 남긴 것도 사실임이 확인되어 논란도 일단락되었다.
<손자오기열전>에서는 손빈과 방연의 관계와 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주로 적고 있다. 손빈이 제나라 땅에서 태어났다는 간략한 언급에 이어 “孫臏嘗與龐涓, 俱學兵法”(손빈상여방연, 구학병법) 곧 “손빈은 일찍이 방연과 병법을 함께 배웠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실마리로 둘 사이의 질긴 인연이 열전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 인연부터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문물과 제도, 사상 들이 전해지기는 했지만, 중국을 놓고 보자면 ‘함께 배운’ 사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