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E201120202 강수정
한국은 드라마천국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매일 다른 내용의 재미있는 드라마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특히, 주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주말드라마를 챙겨보게 되는데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지나간 드라마 얘기도 가끔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용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고, 주인공과 사건, 제목 등이 혼돈을 일으키게 된다. 많은 드라마를 본 탓도 있겠지만 주말 드라마는 하나의 공통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바로 가족드라마이다.
2년 전 끝난 ‘솔약국집 아들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난 아빠야. 난 가족을 사랑해. 난 강해! 난 남자야!”
이 대사는 부인을 병으로 잃은 남자가 슬퍼하는 아이들과 여동생을 보면서 함께 슬퍼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가정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읊조리는 것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아빠라는 이유로,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인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담담한 척 하며 뒤돌아서서 혼자서 펑펑 서럽게 우는 남자,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같은 드라마의 또 다른 장면의 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너를 지금 조금 봐주는 대신 먼 훗날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 네가 내 맏며느리니 다른 며느리들보다 진심으로 날 챙겨주고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부모가 없고, 혼자 된 오빠와 조카 둘을 거둬야 하는 처지의 아가씨를 맏며느리로 받아들이면서 시어머니가 하는 대사이다. 이 대사를 하기 전까지 몇 회에 걸쳐 장남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 대사 한마디로 그 전까지의 혹독한 반대는 사르르 녹아내리고 눈물이 뚝뚝 흐르는 감동과 드라마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이유인 즉 장남이 처가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두 대사가 드라마에서 사용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국인들에게 감동과 칭찬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작가의 훌륭한 글 솜씨와 제작자의 뛰어난 연출력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한국인에게 내면화된 정서 때문도 있으리라. 인의예지(仁義禮智),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누가 뭐랄 것도 없는 유교사상으로 이것이 한국사회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주말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갖은 모욕으로 결혼을 반대하는 언행을 일삼아도 어른이시기에 똑같이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똑같이 대응하는 장면이 그려진다면 ‘주말드라마, 이대로 좋은가’, ‘가족드라마, 아이와 함께 보기 민망’이라는 기사거리의 소재가 될 것이다. 또한 부인을 잃은 남편이 강해져야만 한다고 한 것은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것이 모든 평화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교사상은 우리의 생활 속에 잠재된 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새로운 눈으로 사회현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매체들마저도 잠재된 유교지배 속에 있기에 한국인들의 사고는 익숙한 현재에서 고정화되어간다. 이것은 변화를 꾀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시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급변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급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이상의 대응책을 지녀야 한다. 하나가 맞지 않는다면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은 ‘유교’라는 하나의 틀에 얽매여 그 안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좁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여럿이 여행을 떠났을 때 즐거운 여행이 되느냐 그렇지 않은 여행이 되느냐는 의견차이가 생겼을 때 결정된다. 여행을 하다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마다 어느 길이 맞는지 의견을 내는데 한 명이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그를 따라 갔더니 잘못된 길이였다.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 갔더니 그 길은 편하고 구경거리도 많으며 목적지 도달에 가까운 길이였다. 그 경우 잘못된 길을 주장한 사람이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이의 생각이 맞음을 인정하면 그것은 즐거운 여행이 된다. 그런데 끝까지 변명과 고집을 부리면 그렇지 못한 여행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우리도 눈을 돌려보자. 새로운 길이 보인다면 한 번 걸어가 보자. 그 길이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것이라면 우리의 고집을 버리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 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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