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9)
2009-08-17 15:53:49
일시 2009년 8월 16일 맑음
참석자 박은수(대장), 박모철(부대장?)
8월 16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올 여름 최고 기온을 기록할 것이란다. 더위에 겁 먹은 삼공 산우들이 다들 어디로 도망가 버렸는지 길음역 4번 출구에 모인 사람은 5공 대장이자 오늘의 산행 대장인 은수와 물 밖에서는 눈 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도다리뿐이다. 지난 금요일 오전 출산 신고를 할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더니 삼공 산우회 햇병아리가 참석률을 걱정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오늘의 등산 코스는 정릉 계곡에서 출발하여 영취사, 일선사를 거쳐 대성문까지 올랐다가 칼바위를 거쳐 다시 정릉 계곡쪽으로 내려 오는 다소 만만한 코스란다. 칼바위 예기는 수 차례 들은 바 있지만 도다리는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코스다.
신발 끈을 고쳐 메고, 얼른 담배도 한대 미리 피워 두었다.
올라 가는 길은 중간 중간에 약수터가 세 군데 있어 쉬엄 쉬엄 가기에 아주 편안한 코스다. 기온이 기온일지라 땀은 온 몸을 타고 주~ㄹ 줄 흘러도 숨을 헐떡일 일도 없고, 처음부터 정상까지 그늘 숲으로 난 길인지라 뙤약볕은 자연스레 피할 수 있다.
한 여름 등산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렇게 숲 그늘 속으로 걸을 수 있어, 나무 사이로 간간히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계곡에는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한 여름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을 온 것이라기 보다 피서를 온 사람들이다.
산을 오른 채 30분도 되지 않아 조그만 폭포수를 만났다. 은수는 예서 잠시 땀을 식혀 가자며 땀에 젖은 머리를 폭포수에 사정없이 밀어 넣고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흔들어 댄다. 물이 좋은 도다리도 똑 같은 자세로 머리를 쳐 박으니, 우와~ 정말 시원하다.
내려 올 때 어디서 알탕이라도 하면 좋겠다며 칼바위로 하산하면 계곡이 있어도 입산금지 조치 땜에 할 수 없으니, 다시 이리로 내려 오면 어떠냐는 은수 말에 두말 않고 그러자고 하였다.
은수는 5공 대장답게 배낭 속에 준비물이 다양하다. 팩 소주에 소주잔도 나오고, 물 티슈도 있고, 상비약에, 여벌 옷까지. 그 중에 백미는 냉수 공장이라 칭할 만한 얼음으로 가득한 식수병이다. 입구마저 꽉 차게 얼어 붙어 칼로 쑤셔 공간을 내더니 갈증이 날 때마다 미지근한 물을 부어 시원한 빙수를 만들어 낸다.
갈증 해소뿐 아니라 더위도 한꺼번에 몰아 내니 오늘 같은 한여름 등산길에는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
중간에 영취사에 들러서는 절에서 마련한 따끈한 사물탕 차 한잔과 졸리듯 산사에 은은히 울리는 염불 소리에 이열치열 땀을 식히니 속세의 시름도 땀과 함께 빠져 나가는 듯 하다.
대성문 옆으로 둘이 앉아 점심 도시랄 먹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엔해가 들어 이 곳이 명당이란다. 등산화, 양말을 벗어 던지고 은수 배낭에서 입구에서 사 온 돼
지 껍데기 볶음에 어제 등산에서 먹다 남은 있는지도 몰랐던 팩 소주가 나오니 단출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점심상이 마련되었다. 먹다 남은 돼지껍데기 볶음과 막걸리는 하산 길에 알탕 후에 먹자며 아껴 두었다.
여름 산은 매미소리가 가득하다.
매~ㅁ 메~ㅁ 메~~~ㅁ 하고 우는 놈.
씨오~시 씨오~시 하고 우는 놈.
찌~하고 길게 우는 놈.
어린 시절 씨오~시 씨오~시 하고 우는 놈을 유리 매미라고 불렀다. 날개가 유리처럼 투명하여 붙여진 이름 인 듯 한데, 그 놈 울음 소리는 듣기에 따라 씨오~시 씨오~시가 아니라 보지요~시 보지요~시하고 운다고 하였다. 그야 말로 숫놈의 울음 소리였던 게 분명하다.
은수는 담에 삼각산 12문을 한번 둘러 보자며 너덜너덜한 지도를 꺼내어 상세한 설명도 곁들인다. 12문을 돌다 보면 삼각산의 지세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면서도 두 팀으로 나누어 힘든 사람은 늦게 출발하여 중간에 만나면 된단다. 나 같은 도다리도 맘 편히 산행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하산길 정릉 계곡은 물이 흐르는 곳곳에 주말 나들이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를 펴 놓고 고스톱 치는 50대 아저씨들, 가족과 함께 물놀이 하는 40대들, 미쳐 그늘을 잡지 못해 햇빛 드는 곳에 누워 양산으로 얼굴을 가려 누운 아가씨들. 허 허~ 눈을 피해 알탕할 자리가 마땅찮네.
용케 인적이 드문 약수터 아래 그런대로 쓸만한 자리를 발견하곤 주위 눈치를 살피며 차례로 팬티 바람에 몸을 적시니 뼛속까지 시원하게 적셔온다. 젖은 팬티를 그냥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이왕지사 짜서라도 입으려면 일단 벗어야 할낀데. 벗는 김에 화끈하게 알탕은 하고 가야지. 이때를 놓칠세라. 은수가 카메라 앵글을 사정없이 들이댄다.
학창시절 학교 뒤 댐 아래에서 창근이 광용이 재중이와 알탕한 이후 30여년 만에 정릉 계곡에서 누드 모델이 되었다. 옆어 벗어둔 팬티 땜에 작품 베맀네.
몸을 닦는 둥 마는 둥 챙겨 입고, 아래 쪽 물가에 막거리 병을 담가 두고 안주상을 차리니 고향 아줌마 없어도 노래 가락이 절로 나올 만 하다.
막걸리엔 역시 시큼한 김치가 제격이다.
양이 많아 다 먹을까 우려 했던 돼지 껍데기도 다 먹어 치우니 하산주 치곤 최고다.
10시 반에 시작한 산행, 산 아래 계곡에서 하산주를 마쳐도 4시 밖에 안됐다.
오랜만에 해 지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니 마나님도 놀래겠다.
2009년 8월 16일
도다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