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아이들이 지켜낸 큰 숲 〈토토로의 숲〉을 소개합니다
〈토토로의 숲〉을 비롯한 일본 도쿄 지역 트레킹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의 《나무편지》는 도쿄 트레킹 나흘 째인 월요일에 일본의 시모베 온천 숲의 숙소에서 띄운 것이었습니다. 숲이 깊어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나무편지》를 만들고, 띄우기 직전에 다시 살펴보는데, ‘합천 가야산 해인사’가 ‘합천 사야산 해인사’로 잘못 쓰여진 걸 찾았습니다. 그런데 고칠 수가 없었어요. 네트워크 사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애면글면했지만, 끝내 고치지 못하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합천 사야산’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띄우고 말았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합천 사야산 해인사’는 ‘합천 가야산 해인사’의 잘못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 아이들이 지켜낸 ‘큰 숲’ 〈토토로의 숲〉으로 ○
도쿄 트레킹, 나흘 동안 참 인상적인 큰 나무를 여럿 보았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40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삼나무를 비롯해 그에 못지 않은 편백,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는 이미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종비나무, 용암지대에 자생한 마취목 ……. 참으로 풍요로운 ‘나무’ 트레킹이었습니다. 최초로 꽃가루에서 정충의 꼬리를 발견한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3백년 역사의 도쿄대 고이시카와 식물원, 일본 최대의 식물원인 ‘진다이 식물원’ 그리고 일본의 황실정원으로 운영돼 온 ‘신주쿠 교엔 정원’ 관람도 의미가 깊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건네 드리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급할 일 없으니, 짬 되는 대로 나무처럼 천천히 하나 둘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선 아이들이 지켜낸 큰 숲 ‘토토로의 숲’ 이야기를 우선 전해드리겠습니다. ‘토토로의 숲’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사실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설렘’의 또다른 표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출발 전에 여러 자료를 찾아본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자료에서 이 숲을 그냥 ‘잡목림’으로 표현했거든요. 그야말로 볼 것도 쓸 것도 없는 숲이라고 한 거죠. “관광코스로는 적당치 않은 숲이니, 웬만하면 찾아오지 말라”는 식으로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숲을 지켜낸 뜻과 과정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 ‘동네 뒷산’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숲 ○
사실 이번 트케킹 일정을 조율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토토로의 숲’은 일정에서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우선 숲 주변에 버스 주차장이 없었습니다. 그건 달리 이야기하면 관광코스로 적당치 않은 곳이라는 이야기겠지요. 굳이 찾아가려면, 개별적으로 택시를 이용해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즉 숲 가까운 곳 길가에서 내려 숲을 돌아보기로 하고, 그 사이에 버스는 주변 지역을 하릴없이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가 돌아나올 시간에 맞춰 되돌아와서 길가에 정차하는 순간에 탑승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토로의 숲’ 주변의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계획대로 숲에서 가까운 길가에 잠시 버스가 정차하는 사이에 서둘러 버스에서 내린 뒤에 숲으로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오랫동안 찾으려 했던 곳이면서도 실제의 사정이 궁금해 몹시 설�습니다. 그리고 바람만바람만 숲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온갖 자료에 나온 그대로 숲은 그야말로 ‘잡목림’ 혹은 ‘동네 뒷산’과 다를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숲이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안내판은 물론 없었고, 다만 숲 모롱이 곳곳에 ‘토토로의 숲 1호지’ ‘2호지’ 등의 표지판만 이 숲이 남다른 곳임을 알렸습니다. 물론 관광차 이 숲을 다녀간 사람도 거의 없으리라는 짐작도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숲을 찾아온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 거죠.
○ 토토로 가족이 튀어나와 춤을 출 듯한 느낌 ○
이미 알고 있던 그대로 〈토토로의 숲〉은 이렇다 할 것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마을숲 혹은 동네 뒷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도쿄라는 세계적인 대도시 주변에 이처럼 동네 뒷산, 마을 숲이 허물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았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붓한 숲길을 걸어 숲을 들어서니 바람 고요하고 새소리만 흥겨웠습니다. 아직 이른 봄이어서, 길섶에 돋아난 풀꽃의 초록 빛은 짙지 않았습니다. 봄을 더 화려하게 맞이하기 위해 땅 속에서 지금 오물거리고 있을 여린 풀꽃들의 ‘옹알이’ 같은 속삭임이 길섶에서 고요하게 아우성을 일으키는 중이었습니다. 일본의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백과 삼나무는 어디에서나 그렇듯 높은 키로 훌쩍 솟아올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습니다. 큰 나무 줄기도 겨울 빛을 벗어던지고 촉촉하게 봄빛을 올렸습니다. 어디에선가 불쑥 토토로 가족이 튀어나올 듯한 동화적 분위기가 물씬 담긴 좋은 숲입니다.
번잡한 도시 가까운 곳에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이 숲을 지켜낸 건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1990년 4월의 일입니다. 도쿄 근처의 개발 사업에서 무너앉을 위기에 대항하여 ‘토토로의 고향 기금위원회’가 결성됐지요. 일본 전국적으로 숲을 지키자는 운동을 시작한 거죠. 1년 반 동안 전국에서 1만 건 이상의 기금이 모였는데, 놀라운 건 그 절반 가까이가 초 중학생이었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적은 용돈을 숲 지키기에 쓰라고 보낸 겁니다. 1991년 8월에 이 소중한 기금으로 360평 규모의 숲을 사 들여 ‘토토로의 숲 제1호’로 이름했습니다. 그러나 개발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숲 지키기에 《이웃집 토토로》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끼어든 건 1996년이었습니다.
○ 어른들이 망가뜨릴 뻔한 숲을 아이들의 손으로 지켜 ○
미야자키 하야오는 숲을 지키기 위해 3억엔을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마침내 그해 12월 19일, 모두 3억7백95만엔으로 이 숲을 사들여 다시는 개발의 위험에 노출되는 일 없이 영원한 토토로의 고향으로 남게 됐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부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숲을 지키겠다는 뜻을 모으고 그 실천의 시작은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토토로의 숲〉을 ‘아이들이 지켜낸 큰 숲’이라고 한 건 그래서입니다. 더불어 이 숲은 세계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모범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됐지요.
숲을 지켜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토토로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숲을 걸었습니다. 〈토토로의 숲〉은 필경 사람살이의 무늬와 향기가 오래도록 머무르게 될 아름다운 숲입니다. 주차장도 없는 도로변에서 우리를 기다릴 버스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짧은 시간만에 되돌아 나와야 했지만, 아마도 〈토토로의 숲〉은 여느 숲보다 오래오래 마음 깊이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맙습니다.
- 아이들의 손으로 지켜낸 아름다운 숲을 떠올리며 3월 25일 아침에 ……
솔숲(http://sols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