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런던 이야기
제이디 스미스(Zadie Smith)
<하얀 이빨(White Teeth)>(2000)
<하얀 이빨>은 제이디 스미스가 스물네 살에 발표한 대단히 인상적인 데뷔 소설이다. 대작인 데다 화려하고 등장인물이 많은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인간미 있고 익살스런 활력을 보여준다. 살만 루슈디와 마찬가지로 망명과 이주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있으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야심과 힘찬 언어를 공유한다. 스미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재능과 대단히 독창성 있는 목소리를 모두 갖고 있다. 이 목소리는 세상물정에 밝으면서 해박한 동시에 대담하고도 철학적이다.
표면상,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두 사람 (겸손한 영국인 아치 존스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로 이슬람교를 믿는 벵골인 사마드 익발)의 불행과, 이들의 매우 문제가 있는 대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미스는 인물의 내면에 마법처럼 접근해 이들이 사랑과 가족으로 인해 겪는 진통을 연민과 유머로 묘사한다. 동시에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이들의 일상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더 폭넓은 문화 및 정치의 역학관계를 살핀다. 스미스의 소설은 부모와 자식, 친구와 이웃에 대한 이야기, 더크게는 이주와 망명과 영국 식민주의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얀 이빨>은 카레 가게와 당구장과 저렴한 미용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런던이 배경이다. “벡들(물질주의적이고 천박한 젊은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 비보이들, 인디 음악을 듣는 애들, 사기꾼들, 한량들, 폭력단원들, LSD 중독자들, 섀런들, 트레이시들, 케브들(노동자계급 남성을 가리키는 속어), 동포들, 래거(레게와 힙합 음악의 특징이 섞인 서인도 제도의 대중음악)하는 애들, 파키스탄인들로 가득하고, 좌절한웨이터들이 역사를 바꾸는 꿈을 꾸며 한때 지독하던 인종과 계급의 경계가 흐릿해진 도시 말이다.
스미스의 인물들은 주위의 사회 변화에 아주 다른 방식으로 대처한다. 클라라라는 젊은 자메이카 여성과 결혼한 주인공 아치는 가벼운 유머로 온갖 변화와 혼란에 대처한다. 그는 사람들이 왜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지, “평화롭거나 조화롭게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함께 살 수가 없는지 궁금해 한다. 그에 반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사마드는 현대 문화가 퇴폐적이며 그것이 자신의 십대 쌍둥이 아들들을 타락시킨다고 분노한다.
아치와 사마드는 두 가지 세계관을 대변한다. 하나는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세계관이며 다른 하나는 이념적이고 절대주의적인 세계관이다. 하나는 우연성을 자유의 부산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운명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를 갖고있다. 광고우편물(DM) 회사에서 일하며 인쇄물 접는 방법을 고안하는 아치는 자신이 “넓게 보면 그 의미가” 해변의 자갈,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 건초더미 속 바늘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기꺼이 흐름을 따른다. 사마드는 세포이 항쟁에서 증조부가 한 역할에 여전히 심취해 있다. 그는 영광과 비범함을 갈망하고 자신이 웨이터라는 비천한 일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분노한다.
사마드는 쌍둥이 아들 가운데 좀 더 고분고분한 마기드를 방글라데시로 보내 적절한 이슬람교 교육을 받게 한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아들 가운데 하나는 자라서 자신의 가족 및 문화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그린 아들들의 미래 청사진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온 마기드는 영국을 열렬히 예찬하면서 변호사가 되려 하며, 흰 양복을 입고 영국 배우 데이비드 나이븐처럼 말한다. 반면 형제인 밀라트는 혁명과 금욕을 설교하는 급진 이슬람 단체에 가담한다.
스미스는 아치의 가족과 사마드의 가족에게 닥치는, 점점 우스꽝스러워지는 일련의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인물들의 자만심과 자기기만을 슬쩍 조롱하는 한편,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아들이 아버지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어떻게 흔히 반감을 품게 되는지 보여줄뿐더러 그들이 어떻게 이전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고 선조들의 꿈을 되짚어가는지 그리고 이민자와 그 자녀가 어떻게 자신의 이중의식과 이중의 유산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보여준다.
대단히 조숙한 이 데뷔작은 스미스가 놀라운 저력을 가진소설가임을, 야심에 걸맞은 재능을 가진 작가임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