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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율법에 따라 만든 음식을 ‘할랄’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한 시장 모습. |
중동을 여행하다 보면 확성기를 통해 난데없이 들려오는 낯선 외침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슬람교가 정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낡은 천에 이마가 닿도록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의 모습은 이방인의 눈에도 경건을 넘어선 확고한 신념으로 비친다.
무슬림들이 절대 다수인 중동에서 아랍어를 쓰고 하나의 문화를 이루는 사람들을 우리는 아랍인이라고 부른다. 아랍은 광활한 지역에 여러 국가로 분리되어 있지만 이들은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식(食)문화도 공유한다. 이것의 바탕은 그들의 종교다.
음식은 신성한 것
이슬람교의 종교적 가치와 신념은 식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무슬림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며, 먹는다는 것은 기도와 동급으로 종교적 행위다. 신을 숭배하기 위해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면 마시지 않는다.
음식 절제에 대한 이슬람교의 입장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라마단이다. 라마단 때 금식은 무슬림의 5대 의무사항 중 하나로 라마단 달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해가 떠있는 동안에는 물조차 마실 수 없다. 침조차 삼키지 않는다. 이들은 금식을 통해 절제와 인내심을 배운다. 성스러운 기간이므로 이웃과의 분쟁이나 전쟁도 피한다. 여건이 허락되는 한 모든 무슬림들이 동참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 무슬림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단결심을 느끼게 된다.
한 달 동안의 금식이 상당히 힘들어 보이지만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오히려 기쁨의 시간으로 여긴다. 해가 진 후 처음 먹는 음식을 ‘이프타르(Iftar)’라고 하는데 보통 물과 대추야자를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족이나 이웃, 친지와 함께 이프타르를 같이한다.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낮 동안의 허기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다음날 금식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는다. 아랍의 음식은 더운 기후의 영향으로 아주 짜거나 달다. 특히 라마단 기간에, 이방인이라면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엄청나게 단 간식을 주로 먹다 보니 무슬림들은 살찌기 일쑤다. 금식과 절제의 기간인 라마단 기간에 TV나 잡지에 다이어트 팁이 종종 소개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아랍 음식의 원류는 고대 아라비아반도의 유목민들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풀과 물을 찾아 옮겨 다니던 유목민 베두인 부족들은 인류 최초로 밀을 빻기 위해 돌절구를 사용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빵이 아랍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아랍인들의 주식은 빵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쌀 한 톨도 귀하게 다루는 것처럼 아랍인들은 빵에 대해 특별한 예우를 한다. 빵을 먹을 때는 절대 칼로 자르지 않고 함부로 던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밥에 반찬을 먹듯 빵에 고기를 싸서 먹거나 콩이나 채소로 만든 진득한 퓨레 형태의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을 즐긴다.
아랍 음식의 원류는 유목민 음식
물이 귀해 농산물이 풍부하지 않았던 아라비아반도 지역의 음식은 원래는 단순했는데, 무슬림이 비잔틴과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비로소 화려한 음식문화가 전수되었다. 터키와 그리스는 이런 이유로 아랍 음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거기다 인도와 중국에서 갖가지 향신료가 건너와 다양함을 더했다.
아랍 음식의 향신료로는 보통 걸쭉하게 숙성된 요구르트, 샤프란, 후추, 커민 등이 많이 사용되는데 여기에다 지중해 연안에서 많이 나는 올리브와 레몬 같은 재료도 즐겨 쓴다. 요구르트는 기원이 중동인 만큼 우리의 김치처럼 아랍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효식품이다. 김치 종류가 다양하듯이 걸쭉한 정도에 따라 음식의 소스나 음료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아랍 요리는 유목생활의 영향을 받아 육식 위주인데 주로 구워 먹는다.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케밥은 터키에서 아랍 전역으로 퍼진 음식으로 터키말로 구이라는 뜻. 케밥의 종류는 다양하다. 전통적인 케밥 요리는 간 양고기에 양념과 채소를 넣고 잘 주물러 소시지 모양으로 만든 뒤 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굽는 것이다. 꼬챙이에 끼웠다 하여 ‘쉬시 케밥’(터키어로 쉬시는 꼬챙이)이라고 부른다. ‘도네르 케밥’은 긴 쇠꼬챙이를 세워놓고 양고기나 쇠고기 혹은 닭고기를 층층이 쌓아 꿰어서 빙글빙글 돌려 굽는다. 익은 부위를 기다란 칼로 잘라내어 납작한 전병처럼 생긴 피타빵에 넣고 채소와 소스를 더해 싸서 먹는다. 우리나라의 떡볶이처럼 아랍인의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쌀은 빵과 함께 아랍인의 중요한 주식이다. 빼놓을 수 없는 아랍의 전통 쌀요리로 ‘와라크 에이나브’가 있는데 쌀과 양념을 볶아서 포도잎으로 돌돌 말아 만든다. 마치 우리나라 김밥과 비슷한데 어느 가정에서나 자주 만들어 먹는다. 가지, 호박, 피망 등 채소의 속을 비우고 고기, 쌀 등 각종 재료를 넣어 쪄낸 ‘마흐쉬’(터키어로 돌마)도 즐겨 먹는 전통음식이다.
오른손으로 먹어라
술을 금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아랍인은 술을 마시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차나 주스 등이 발달했다. 특히 커피는 아랍 지역에서 발전된 것으로 아랍인들은 오래전부터 커피를 마셔왔다. 에스프레소잔 크기의 작은 잔에 마시는 진한 아랍 커피와 단맛이 강한 대추야자를 함께 즐긴다. 대추야자는 고대부터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열매로 무슬림들은 축복의 열매라고 부른다. 곡식보다 저렴해서 가난한 이들이 주식으로 먹기도 했다.
아랍인에게 가장 중요한 식사예법은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슬람의 관습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은 쓰임새가 구분되는데 음식을 먹거나 인사할 때, 선물을 건넬 때는 오른손을 쓴다. 왼손은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를, 식사 후에 ‘알 함두릴라(신에게 찬미를)!’라는 말로 끝낸다. 신께 감사하며 신이 허락한 음식만을 엄격히 구별하여 먹는다.
아랍에서는 인간에게 허용된 음식을 ‘할랄’, 금지된 음식을 ‘하람’, 그리고 권장되지 않는 음식을 ‘마크루’라고 규정한다. 하람, 즉 금기 식품은 돼지고기나 개고기, 동물의 피, 비(非)이슬람식으로 잡은 고기 등이 속한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많아 더운 나라에서 상하기 쉬운 식품이었다. 발병(發病)의 원인이 된다 하여 이슬람 초기부터 금식하였는데 그것이 종교적 금기에 이르렀다. 동물을 도살할 때는 동물의 머리를 메카 쪽으로 향한 뒤 오른손으로 실행한다. 반드시 ‘비스밀라!’라는 말을 하고 목을 딴 뒤 피를 제거하는 ‘다비하 의식’을 따른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잡은 고기는 이슬람 도살법에 어긋나므로 금기가 된다. 동물의 목을 따는 행위는 야만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연구 결과 전기충격요법보다도 고통이 적은 방법이라고 한다. 인간의 풍족한 식탁을 위해 고기를 얻는 방법마저도 무덤덤한 공장식 자동화가 되어버린 오늘날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