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 미술관, 토스카나 지방(우리의 도)에 위치한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큰 박물관이며 미술관,
우피치라는 말은 사무실의 뜻.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가의 행정사무실로 지었으나 나중에 가문의 몰락 후에 그의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상의 끝에 피렌체 시에 기부한다.
절대 피렌체 밖으로는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강력한 조건을 붙이고.
1765년에 공식으로 대중에게 개방, 1865년에는 정식 박물관이 되었다
예약없이 갔다가는 성수기에는 5시간을 대기하는 상황도 생긴다
한국서 미리 예약한 투어 가이드를 따라 관람하며 설명도 들었는데 정신이 혼미하다.
하도 많은 그림 조각 들이 있어 그렇는데
선별해서 유명 작품 위주로 간단히 설명 올려 보자
입구를 지나 오른쪽에 켄타로우스의 머리를 잡고 있는 헤라클레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지는 우르비노 공작.
정식 이름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차.
이 초상화는 마창 시합 도중 한 쪽 눈을 잃은 그의 결함이 가려지도록 옆모습을 그렸다.
화가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 기하학과 원근법 연구에 몰두, 회화와 원근법에 관하여 저술)
주인공들의 위엄 있는 표정에도 약간의 코믹한 모습도 보이고 이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인기가 높다.
이 그림을 첫 대면하면 어? 하면서 금방 작은 미소와 찬탄을 보낸다.
이 남자는 우르비노 출신의 멸시 받는 용병 지도자이자 당시 가장 뛰어난 전략가 중 한 사람.
28살인 1450년에 나폴리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고 그의 지도자들에게 헌신했다
코가 메부리가 된 이유는 전장에서 한 쪽 눈으로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코뼈를 깍아버렸다고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프리마베라, 봄 또는 청춘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르네상스 화가이자 미술역사가 조르조 바시리가 메디치 가의 카스텔로 별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단순히 봄의 정경을 담은 의미에서 나아가 알레고리(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않고 빗대어 표현하는 은유법)의 의미를 지닌다
이 알레고리가 품은 내용은 너무 길다
예를 들어 가운데 위치한 비너스- 다산과 풍요를 상징, 메디치 가문의 혼사와 관련된 해석의 학설,
이 프리마베라의 해석은 다양하다
신화 속에 나오는 황금 사과가 열린다는 영원한 봄의 정원이고 한 가운데 여성이 비너스다
사랑의 여신이자 봄을 관장하는 상징이고.....
하여간 이 그림과 비너스의 탄생 앞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역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몸과 목이 길게 그려져 있는데 해부학적으로는 이 비너스의 포즈는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녀의 체중이 왼쪽 다리에 많이 옮겨져 있고 바람이 왼쪽으로 강하게 불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이 비너스의 그림은 사실적 표현보다 상상의 표현으로 보여진다고.
그림 왼쪽에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아프로디테(그리스어)를 바람을 불어 바다에서 육지로 밀어 올리고 있고 오른쪽에는 비너스가 해변에 도착하면 줄려고 망토를 들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초기의 작품으로 스승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독립한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곁을 방문해 신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고하는 장면이다.
피렌체의 산 바르톨로메오 아 올리베토 교회의 제단화로 그려진 것이고,
2003년 3월에야 복원이 완료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춘다.
누가 복음에 의해 수태고지의 주제는 기독교 미술에서 반복해서 여러 명의 화가들이 그렸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 건넨 첫 마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를 그림에 쓰거나 백합, 흰 수건들을 그려 넣어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연상시키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정원을 배경으로 하여 집 앞에서 책을 읽고 있던 성모의 앞에 말을 건네고 있고 세 손가락을 들어 올린 가브리엘의 손짓은 은총의 의미이며 마리아의 살짝 들어 올린 왼손에서 쳐녀의 몸인 자신이 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 했다.
레오나르도는 다듬어진 돌을 쌓아 올린 건축물의 외벽으로 투시원근법을, 화면 멀리로 희미하게 보이는 호수와 산의 푱경을 통해 대기원근법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색채 조화는 매우 신선한 느낌이며 옷, 주름, 천사의 발밑의 꽃이나 건축물의 표현 등 세부 묘사가 뛰어나고 한 편으로는 책장 넘기는 성모의 오른손과 팔은 왼팔과 비례가 잘 맞지 않으며 가브리엘의 그림자는 성모의 그림자에 비해서 지나치게 우둡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는데 , 오른손 팔과 손이 긴 것은 애초 그림이 걸리는 제단에서 주로 사람들이 옆으로 드나들기 때문에 옆으로 볼 때는 정상적 비례로 보인다는 착시를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도 한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르네상스 화가인 안드레아 벨 베로키로가 1475년 그린 작품.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있는 모습을 묘사.
왼편의 천사 부분은 당시 베로키오의 제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려넣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정작 베로키오ㅢ 작품이면서도 그림 전반의 가치와 중요성은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 와서는 배경속 풍광과 예수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보은 시작이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20년이 사망 정보이며 이탈리아 로마)는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대의 여성화가로 카라바죠 화풍의 영향을 받은 후대 화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취를 얻은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시대에 여성화가는 화가 커뮤니티에서 배척 당하였고 후원자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유디트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이 있었지만,
전쟁에서 패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술에 취한 그의 목을 벤 여성으로 조선의 논개급.
끔찍한 분투와 유혈이 낭자한 장면의 묘사를 보여주는데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보고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그렸는데,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젠텔레스키는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강인한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켜 더욱 강렬하게 연출했다고 한다.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화가 카라바조(1571~1601년, 많이 소개했다)도 어쩌다 단 한 점의,
좀 특별한 작품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바로 이 흉물스러운 메두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메두사는 놀랍게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처녀였다고 한다
그녀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반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전쟁과 처녀의 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메두사와 사람을 나눈다.
그런데 이 포세이돈과 결혼을 꿈꾸었던 아테나는 자신의 신성한 신전이 메두사와 포세이돈의정사로 더러워진 것에 분노와 여성특유의 질투가 폭발하여 메두사의 머리를 독사로 변하게 하고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돌로 변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그리스 영웅 페르시우스가 실수로 실언을 하여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아 하는 위기에서 아테나와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를 죽인다
아테나는 잘린 메두사 머리를 방패에 붙이고 더 강해지고 메두사 머리가 달린 방패는 권력과 힘을 상징하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무시무시한 메두사를 물리친 것은 거울처럼 잘 닦은 뱅패를 이용한 트릭인데 방패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자 바로 칼로 목을 베었던 것.
카라바조는 바로 이순간을 포착하여 메두가사 목이 잘리는 장면을 그렸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메두사 얼굴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는 것.
카라바조는 메두사를 그리기 위해 사형장을 찾아가 처참하게 죽는 사형수를 관찰했으며 물뱀을 주문하고 직접 보고 그렸다고 한다
이 카라바조의 메두사는 메디치 가문을 감동시켰고 당시 종교적 사회 풍토와 맞물리면서 그의 명성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가운데가 볼로한 거울에 그렸기 때문에 입이 어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카라바조 젊은 바쿠스( 1598년경),
이렇게 해석을 잘해놨다
카라바조가 그린 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그린 것이니까 이 그림은 장인적인 바쿠스를 그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그림 속의 바쿠스는 어떤 노동과 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포도가 시들어 가는 것은 먼저 시들려야 포도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단맛과 산도는 과일이 해체되는 과정에서서 높아지기 때문에, 그리고 바쿠스 손톱의 때는 포도주를 직접 만들었다는 의미로 본다.
그리고 만든 포도주를 바쿠스는 지금 시음하고 있는데, 방금 따뤄 놓은 술잔에는 작은 기포들이 떠 있다.
바쿠스의 얼굴은 중성 형태에 가깝고 손은 붉은 데 이건 술 때문이라고보다는 그을렸거나 술 담그느라고 손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지 않을까,
바쿠스의 실제 모델은 카라바조의 친구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현재와 시간의 허무를 딛고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로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다 사라진다는 그 허무함이 과연 현재를 즐길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까, 현재를 사는 힘은 지나가는 현재의 허무가 변화하여 새로운 것이 되는 바로 그것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바로 아모르 파티라고 하는....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라파엘로 산지오 초상화.
일단 라파엘로는 색채가 화려하다
1504년, 피렌체 시 의회 시그노리아는 미켈란젤로에게 의회 건물을 장식할 벽화를 주문했다 주제는 피렌체의 승리로 끝난, 이웃 도시 피사를 상대로 했든 카시나 전투.
그 당시 이미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도 시그노리아는 같은 건물, 같은 방에 벽화를 그려 달라고 요청한다
다 빈치에게는 피렌체가 미라노와 싸워 승리한 앙기라리 전투모습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는 성격이 무척 달랐고 서로 좋아하디지 않았다
50대 중년의 레오나르도는 매력적이고 정중한 사람이었고 29살의 미켈란젤로는 무뚝뚝하고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사람들은 이 작업을 두 천재 예술가 사이의 대결로 여겼다
그런나 레오나르도는 실험적적인 물감을 사용했다가 실패 했고
미켈란제로는 밑그림과 인물 스케치를 마치고 교황의 호출을 받아 로마로 떠나는 바람에 이 세기의 대결은 어느 한 쪽의 승리도 보지 못한 채 막을 내린다.
이 시기 1603년 아그놀로 다니라는 피렌체 영주가 자신의 결혼을 축하하는 그림을 요청했는데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돈티 부조와 같이 둥근 형태 속에 예수, 마리아와 요셉을 담았다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이 둘러앉은 구성이 다빈치의 영향이라는 것.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소묘화 회화는 인물들의 결합이 뛰어난 점이 특징
도니 톤도 (1503~1505년)
배경에는 예수 탄생 이전의 고전 시대를 상징하는 벌거벗은 남성들이 무리지어 있고 앞 그림과 뒷배경의 중간에 있는 소년은 셰례 요한이다.
도니 톤도는 그림에 윤을 내는 효과가 있는 템페라 물감으로 그린 작품.
앞쪽의 세 사람은 매우 선명하게 그려 놓아 마치 한 덩어리로 된 돌에 조각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기법 때문에 성 가족은 뒤에 그린 흐릿한 배경과 뚜렷이 구별 된다
오늘 이 작고 변변치 못한 글들을 올린다고 두 번을 날려버리고 세 번째 성공입니다
ㅎㅎㅎ 아침 여섯시 부터 오후 네 시까지
이제 빨리이태리 남부로 내려가야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