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의 경기고 동문들께(콤플렉스의 의식화가 중단된 동창들께)
프로이드 G.Freud(1856~1939)와 융 C.G.Jung(1875~1961)은 마음의 현상을 이론화시키며 6년간(1906~1913) 사제지간과 같은 동반자의 길을 걷기도 하였습니다. 융은 프로이드의 인과론적(진화론적) 결정론을 비판하며 동시에 아들러의 목적론적 접근도 비판하며 '마음이란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는 관점에 주목하며 분석심리학의 이론을 세웠습니다. 위험한 충동의 도가니속인 무의식에는 무한한 창조적인 기능까지 있음을 설명하며 콤플렉스의 의식화는 인격 형성의 중요한 과제로 보았습니다. 자신의 편견으로 시작되어 쌓여온 콤플렉스는 의식의 표면에 억압되어 있어서 공포의 대상일 수도, 매혹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타인이 언급하면 엄청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스스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상태는 올바른 인식으로 깨닫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러함에도 오랜 세월 소생이 이 땅에서 살아온 71년간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뒤덮인 무리들에 실망한 부분은 열외로 두고, 누구보다도 학구적이고 양심적이었던 친구들이 어쩌자고 대량 살상의 구현자들 곁에 붙어서 생을 이어가고 있는지? 이는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신문에 칼럼도 쓰고 유명세를 떨치며 온화한 성품의 그가 어쩌자고 그들 곁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지? 심지어 자기 위치의 실상을 억지로 위장하며 전체주의의 이론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이가 더 들어가자 그들의 선봉에 서서 능지처참으로도 모자랄 탐관오리를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막말을 내지를 수 있는지? 참으로 갑갑하여서 이를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문수 지사나 이동호 교수처럼 스스로 잘못된 이론을 신봉하며 살아서 부끄럽다는 고백으로 유도해 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가상한 꿈을 꾸며 이 글을 시작합니다.
화동 1번지에 경기교교가 있었고, 고1때 서울로 진학하자 화동 56번지에 방 3칸의 한옥을 부모님께서 장만해 주셨습니다. 문간방이 아주 컸었는데 1969년(고2) 3선개헌 반대 데모가 터지자 당시 고2 회장단의 동기생 10여명이 학교에서 가까웠던 소생의 집으로 몰려와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이지 회의를 했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공부 잘하고 경기고교 교훈이었던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의 대표주자처럼 참 좋았던 친구들이었는데 반세기 세월이 지나니 몇몇 동기생들이 대량 살상의 주역인 탐관오리의 편에 지금도 서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신시절(1972~1979) 나라를 구해내는 일에 압박을 받아가며 항상 저항집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서울대 영문과 백낙청 교수가 왜 그들의 선봉에 서서 연방제 추종자를 선전하고 있는지? 그는 [창작과 비평]사를 만들어 계간지를 발행하며 이 땅의 젊은 문학도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는데.. 이는 어디서 기인된 것일까? 언제부터 그가 주사파를 추종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어찌하면 이를 막을 수 있었을까? 허공에 외쳐대는 메아리로 들리더라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이 이어집니다.
청소년기 왜 사는가 하는 자아정체감의 문제에 심각하게 부닥칠수록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과 그들을 향한 배려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를 진보의 전유물로 여김은 너무도 잘못입니다. 젊어서 가난한 자, 약자, 소수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배려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청계천에서 박봉에 시달리던 노동자들과 치열한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김진홍 목사님은 한 번도 좌편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유신 반대로 옥고도 치루었지만 좌편으로는 간 적이 없었습니다. 약자를 편들며 배려한다는 전통으로 내려온 미국의 민주당도 흡사합니다. 진보는 점점 더 좌파의 전유물인 양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과거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을 연상시키듯이 마구 범법을 저지르는 태도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무리가 모여서 당을 만들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좌나 우나 마찬가지겠지만 좌는 너무 극심하다 못해 결국 그 폐해는 오히려 약자에게로 향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살상까지도 거침없이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이에 이의를 제기하며 뛰쳐나오는 무리는 극소수였고, 오히려 그들의 거짓 선동에 세뇌당한 무리가 늘어나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소련의 붕괴를 목격하고 북한에서 주체사상 이론을 만들어낸 황장엽씨가 탈북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 사회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고 골수 주사파들의 극소수가 전향하였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누릴 것은 다 누렸고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살아왔으니 이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터인데 어정쩡한 상태에 갈등의 연속선상에 머물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망난 사람처럼 '탐관오리의 대명사 같은 중죄인을 김대중 급의 위대한 지도자'라니? 이를 믿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표를 주었던 국민이 1600만명을 넘겼으니 도대체 얼마나 더 속아서 나라가 기어이 공산화되어야 제정신이 들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기사 유신과 5공화국 시절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소생에게 엄청난 눈물과 감동으로 읽혀졌었는데 그가 518에 북한을 끌어들였던 장본인이고, 1997년 故고영복 교수에게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함께 해보자', 1985년 이철 의원에게는 '현재 우리나라는 극심한 계급적 갈등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꼭 필요하다'라고 고백한 진술서가 있다니 이 땅의 많은 수의 식자층들이 위정자들에게 속아서 살아온 세월이 한스러울 것입니다.
총명한 두뇌와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나라의 현실을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바꾸어 보고자 나섰을 많은 좌편의 동창들(51백낙청, 52이종찬, 58이재정, 59강우일, 60정세현, 61김근태, 63유인태, 63이철, 68곽노현, 67몇몇동기생들)이 결국 공산주의를 신봉하며 연방제 통일로 공산사회를 만들려는 무리 속에 끼여 살아가는 원인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중공과 소련, 북한이나 베트남에서 일어났었던 과거를 뒤돌아보면 연방제 통일이 되는 순간 그들도 모두 숙청의 대상이 됨을 잘 보았으면서도 그들은 공산사회에서도 생존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일까? 몇백만명 대한민국 국민들, 우리 동창의 90%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스스로는 뭔 꿈을 가지고 있어서 그리되었을까? 모두 70을 넘겼지만 이제라도 지난 과오를 뉘우치며 국민들 앞에 진정한 한 인간으로 돌아올 방법은 없는 것인가?
집단적 무의식에 휘둘려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10% 정도의 의식에 의지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형태의 인격으로 살아갑니다. 젊은날 측은지심의 마음은 이미 영악함과 자신의 생존으로 귀결되고 이기적인 보편의 인간성으로 살아갑니다. 개혁과 혁신의 의지는 어느새 타협과 부드러움의 가족과 함께 일반적인 가치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아무리 생계형 좌편이라 하여도 죄 없는 신앙인들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치는 무리를 몰살시키는 권력에 일조하지는 아니 하여야 할 터인데 인격의 미성숙이 그냥 정지된 상태로 타협하며 공산사회의 결말은 생각조차 아니 하는 인간들로 살아갑니다. 이런 인간들은 어떤 특징의 유형이며 이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스스로 '빨갱이'였음을 고백하며 골수 좌파였던 김문수 지사나 이동호 교수 같은 깨달음이 오려면 어떤 자극이 필요한 것인가? 좌편의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은 하나님 대신에 김일성 수령을 삽입한 사도신경을 암송하여도 좋다는 것인지?(전능하사 당과 인민을 영도하시는 김일성 주석을 내가 믿사오며..) 아무리 아니다 하여도 그렇게 하지 아니 하면 바로 총부리가 목숨을 겨누고 있을 터인데 이를 알면서 왜 그냥 가만히 서 있을까? 결국 인격의 미성숙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인격의 미성숙이 주변에게 지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면 이는 인격장애자일 뿐입니다. 지난 문ㅈㅇ 정부 시절 최고위 권력층에서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좌편은 모두 이에 해당하는 결과를 만들고야 마는 현실이 있습니다.
한 인간으로 돌아오소서!
한 인간으로 돌아오소서!
한 인간으로 돌아오소서!
2023.9.29. 새벽2:30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으하. 길다
추석 잘 보내세요!
원장님다운 속시원한 글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