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환각 '핵오염수=청정 1급수'
결국 일본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강행했다. 막상 방류 시점이 다가오면서 일본 정부에는 2011년에 노심이 용융된 원자로를 폐로할 계획이 없음이 밝혀졌다. 즉 12년째 불타고 있는 원자로의 핵분열을 멈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 원자로는 핵 오염수를 영구적으로 방출하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보다 핵 재앙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가까스로 벗어난 ‘일본 최후의 날’
2011년 3월에 쓰나미가 강타한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 탱크가 폭발하고 원자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원자로의 압력과 온도가 치솟자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 최후의 날’을 준비했다. 원자로가 폭발하면 반경 170km 범위의 주민을 철수시켜야 하는데, 이는 5천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다. 열도의 중간이 사라지고 일본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총리에게 보고되었다. 그 최후의 날에 대한 예감이 현실화할 상황에서 원자로 폭발은 극적으로 멈췄다. 현장에서 복구인력의 목숨을 건 헌신도 있었지만 지금도 원자로 폭발이 멈춘 진짜 이유는 모른다. 단지 현장의 사고 수습을 책임진 요시다 본부장이 총리실과 도쿄전력이 승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수를 원자로에 대량으로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한 것이 대폭발을 막은 이유로 추정될 뿐이다.
공중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일본의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발전소에서 해수로 희석된 핵오염처리수를 해저터널을 통해 바다로 방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2023.8.24. AP 연합뉴스
지금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원자로 내부는 누구도 접근하거나 들여다본 적이 없다. 로봇을 투입해도 노심에 접근하는 순간 강한 방사선의 영향으로 작동을 멈춘다. 어떤 카메라도 내부를 촬영할 수 없는 블랙홀이다. 그러니 왜 원자로는 폭발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2011년 원전 사고와 관련하여 그동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거짓말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도쿄전력이 수소 폭발 가능성을 자신에게 숨기며 재앙을 키웠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는 나오토 총리에게 "폭발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했는데, 그 직후에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이는 원자로가 통제 불능 상황으로 갈 위험을 사건 초기부터 과소평가했다는 뜻이다.
거짓말, 또 거짓말…
2015년에 일본 정부는 어민들에게 이해관계자의 합의 없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일은 없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그 당시에도 이 원자로는 통제 불능이라는 걸 일본 정부는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폐로작업이 가능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올해도 기시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와 동시에 원자로 폐로화가 추진될 것처럼 세계 언론에 또 거짓말을 했다. 막상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자 이 방류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에 대해 "모른다"고 처음으로 정직한 말을 했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도 사태는 전혀 호전될 수 없다는 걸 처음 인정한 셈이다. 이 오염수 방류는 무한정 계속되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게 엄연한 진실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을 주변국이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사찰단도 들어오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오직 도쿄전력만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한다. 12년 전 거짓말을 하면서 재앙을 키우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던 그 회사 말이다.
오염수 방류와 관련하여 가장 치명적인 거짓말은, 과학이 마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처럼 말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과학이 이 원전 사고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었나? 이 원자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얼마나 오래 오염수를 방류해야 할지, 방류로 인한 생태적 영향이 무엇인지, 과학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애초 과학적 기준에 따른 오염수 정화를 검증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방류한다는 말은 헛소리였다.
우리는 현대 과학이 마치 핵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는 플루토늄의 성질에 대해 2%도 알지 못한다. 해양 심층수 깊은 해류에 플루토늄이 조금씩 축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직도 과학이 파악하지 못한 플루토늄의 98% 성질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과학은 우리가 모른다는 걸 아는 데 있다. 즉 겸손해지라는 뜻이다. 과학으로 안전을 검증했다는 그 오만부터 버리는 게 과학적 태도다.
태평양도서국 중 하나인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주민들이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에 항의하여 '태평양도서국 사람들 목숨도 소중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8.24. AFP 연합뉴스
자고 일어나 보니 냉전
윤석열 정부는 인류 최대의 재앙이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오염수 방류 사태에 눈을 감았다. 일본에 한 마디도 못하고 사실상 핵 오염수 방류를 용인한 한국 정부는 존재하지도 않는 과학을 말하며 방류를 정당화했다. 이런 무기력의 기원은 무엇인가.
미국의 공격적 현실주의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 중반에 "우리는 냉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냉전은 어떤 시대인가. 적과 동지가 확실한 시대였다. 그런데 냉전이 붕괴한 후에는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헷갈리게 됐다. 세상은 온통 회색지대가 되고 말았는데, 이런 상태는 위험하다는 거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패권을 추구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는 본성이 있다. 미국이 중국과 잘 지낼 것이라는 예측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과 체제가 다른 중국은 반드시 미국에 도전하며 패권을 추구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지라고 믿었던 중국으로부터 도전에 직면하면 미국은 차라리 적과 동지가 확실했던 냉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소련이 해체되고 자유주의 전망이 팽배하던 1990년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간 김태효는 1997년에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 당시 시카고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근무하던 미어샤이머에게 사사하면서 김태효는 냉전의 감각을 내면화 했다. 미어샤이머가 말하는 국제질서의 본질은 ‘힘에 의한 지배’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으로 근무하던 김태효가 미어샤이머를 한국으로 초청하여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이명박을 만난 자리에서 미어샤이머가 "한국은 중국을 버리고 확실하게 미국 편에 붙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참석하도록 배려하기 위해 이명박은 6월 서해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한미연합훈련도 취소했다. 원래 이 훈련에는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6월에 중국은 만일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오면 "중국군의 살아 있는 표적이 될 것"이며 "후진타오 주석은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다. 이미 항공모함이 미국에서 출발한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태풍이 온다"는 이유를 들어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겠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이에 미국은 격분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해 11월의 정상회의는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2010년에 유례없는 미중 간의 긴장이 조성되던 시절에 이명박은 중국 편을 들었고 이로 인해 김태효는 좌절하게 된다. 2012년에 김태효는 일본과 몰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려다 들통이 나자 청와대를 떠나게 된다. 이명박은 김태효를 지키지 않았다.
바로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이 되어서야 김태효는 제대로 주인을 만났다. 이웃을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확실하게 구분하고, 나쁜 놈을 두들겨 패는 호전적 지도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속될 나라와 망할 나라, 자유 국가와 독재 국가로 가르는 김태효의 냉전식 사고는 윤석열과 딱 들어맞았다.
신중세주의 대두와 주술의 세계
윤석열 정부에서는 공격적 현실주의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도덕적 이원론으로 비화한다. 적어도 미어샤이머가 중국을 견제는 하되, 중국의 세력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현상 유지의 정치사상이었던 데 반해 윤석열과 김태효는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악마화하고 적대시하는 급진적 이데올로기로 경도되었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만의 믿음을 만든다. 일본은 믿을 수 있는 나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고 믿는 순간 이 오염수 방류 사태는 안이함이라는 더 큰 재앙을 잉태한다.
세상을 양분하는 단순한 사고 체계는 다면적이고 풍부한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지적 장애를 형성한다. 지난 300년 동안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를 두고 격렬하게 대립해 왔다. 빛이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입자이면서 파동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해괴하면서도 모순된 주장이었다. 양자역학에 이르러서야 빛은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진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과학자들에게 매우 불편하며 설명이 불가능한 새로운 인식체계였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좋은 놈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은 나쁜 놈인데 이걸 뒤섞어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주장은 도덕적 이원론을 흐트러뜨리는 매우 불편한 주장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런 복합적 현실을 인식하는 데 내적 장애가 형성되어 있다.
적과 동지를 분명하게 가르고, 반드시 충돌한다는 믿음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은 다분히 종교적인 망상의 세계였다. 중국이라는 악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이를 반대하는 내부의 ‘반국가세력’과 일전을 불사하려는 충동은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같은 편이라면 무너진 핵 발전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염수마저 청정 1급수처럼 보이는 일종의 환각도 불러일으킨다. 8월 18일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윤 대통령은 한미일 삼국의 사실상 동맹을 형성하려는 열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했다. 이 과정에서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무한 면허권을 일본 정부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빠진 정부가 핵 오염의 위험에 직면한 재앙의 실상을 외면하면서 대륙과 높은 장벽을 세우려는 흐름은 이 지역에 중세 시대와 유사한 질서를 추구하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분리되는 질서처럼 말이다. 산업화 이전의 오래된 특성들이 현대에 와서 부활하면서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적 제왕이 된다.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를 문명 바깥으로 추방하면서 스스로 재앙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