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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가치
철학적 사고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우리 시대의 큰 이슈는 철학적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권리 , 정의, 자유, 인간, 사회 그리고 자
연에 관한 물음에 관계된 것들이다. 미래에 새로운 문제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 철학적 문제는
낡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철학적 문제들은 기둥이 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 영
원한 문제들이다. 일찍이 “교육사상의 역사”를 통하여 로버트 울이히(Robort Ulich)는 ‘진리와 가치
에 대한 심오하고 통일된 정의가 없이는 어떤 문명도 살아 남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만이 일관성이
없는 다량의 지식에 만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알기를 원하고, 그가 사는 사
회와 우주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철학은 인간들이 거대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소화
해 내고 평가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철학적 반성이나 논의는 어떤 관점을 가지기 위한 가장 좋
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다음 글을 통하여 철학의 가치는 무엇이며, 인간의 삶에 왜 철학이 필요한가? 그리고 철학을 연구
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철학의 가치는 무엇이며 왜 철학이 연구되어야 하는가. 과학이나 실제적인 여러 문제의 영향에 비해서 철학은 무해무익(無害無益)한 사소한 구별을 짓거나 알 수 없는 사항에 관해서 논쟁을 하거나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의심을 품기 쉬운 사람들이 많다.
철학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생긴 것은 첫째로는 인생의 문제에 관한 그릇된 생각에서 이고, 둘째로는 철학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연과학은 발명을 매개(媒介)로 하여 과학을 전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연구가 권장되는 것은 단순히 또는 가장 우선으로 그것이 연구자에게 미치는 효과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 일반에게 초래되는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용성이 철학에는 없다. 그러므로 어딘가에 철학의 가치가 먼저 요구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이 효과에 있어서라는 것이 된다.
철학도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우선 첫째 지식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이 지향하는 지식은 여러 과학에 통일과 체계를 주는 지식이다. 즉 우리들이 확신, 편견, 신념 등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음미 검토하는 것에서 생기는 종류의 지식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 문제에 해답을 주고자 하는 시도에서는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수학자, 광물학자, 역사학자, 또는 그 밖의 학자에게 그들의 학문에 의해서 어느 만큼 진리의 명확한 총제(總體)가 확립되었는가를 묻는다면, 그 학자의 대답은 긍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철학자에게 할 때 그 철학자가 솔직한 사람이라면 그는 철학이 다른 여러 학문에 의해서 달성되어 있는 만큼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함을 고백할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주제에 관한 명확한 지식이 가능해지면 결국 이 주제는 철학이라고 불리지 않게 되고 한낱 개별 과학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천문학에 속해 있는 모든 천공(天空)에 관한 연구가 전에는 철학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뉴턴의 업적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 불리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의 연구가 오늘날에 와서는 철학에서 분리되어 심리학이라는 과학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철학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대부분 진실이라기보다 겉보기만의 일인 것이다. 이미 명확한 해답이 가능해진 문제는 과학 속에 옮겨지고 지금도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는 것만이 철학이라 불리는 잔재(殘滓)를 형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의 불확실성에 관한 지식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들이 알 수 있는 한, 인간의 지력이 현재와 다른 수준의 것이 되지 않는 한 인간의 지성이 풀 수 없는 문제는 많다. 그리고 그 중에는 우리들의 정신생활에 매우 깊은 관계를 갖는 문제도 있다. 우주에는 어떤 계획이나 목적 같은 통일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주는 원자(原子)의 우연적인 모임인 것인가? 의식은 지혜에 무한한 성장의 희망을 주는 우주의 항구적(恒久的) 부분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거기서의 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 틀림없는 작은 혹성(惑星)상의 일시적인 우연사(偶然事)인가? 선이나 악은 우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것인가? 이런 질문이 철학자에 의해서 생기게 되고 여러 철학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대답되고 있다. 그러나 철학에 의해서 시사(示唆)되는 대답은 거의 모두가 진실이라고 논증될 수 없는 것같이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답을 발견할 희망이 아무리 적더라도 이런 질문이 고찰을 계속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것에 대한 모든 접근을 음미하고 우주에 관한 사변적인 흥미를 생생하게 보유하는 것도 철학의 일부이다.
사실 철학의 가치는 대부분 그 불확실성 자체 속에서 구해야 한다. 철학과 인연이 없는 사람은 상식이나 나이 또는 국적(國籍)에 의한 습관적 신념, 혹은 신중한 이성의 협력이나 동의 없이 자기 마음속에 자라온 확신 등에 유래하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평생을 보낸다. 이런 사람에게는 세계가 명확하고 유한해서 뻔한 것이 되어 버리기 쉽다. 흔한 대상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미지의 가능성은 경멸적으로 거부된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철학적 사색을 시작하자마자 우리들은 아주 일상적인 사물이라도 대단히 불완전한 대답밖에 줄 수 없는 여러 문제로 인도해 갈 수 있을 것을 알게 된다. 철학은 그것이 제출하는 의문에 대해 진실한 대답이 무엇인가를 확실성을 가지고 가르쳐 주진 못하나, 우리들의 사고를 확대하고 습관의 전제(專制로부터 사고를 예방하는 많은 가능성을 시사할 수는 있다. 따라서 사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들의 확실성의 느낌을 저하시키기는 하나, 사물이 무엇일 수 있는가 하는 지식은 크게 증대시켜 준다. 그것은 사람을 자유로이 만드는 회의(懷疑)의 영역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다소 건방진 독단론을 제거하고, 평소에 눈에 익은 것을 익숙하지 못한 면에서 나타냄으로써 우리들의 경이감을 생생하게 유지시켜 준다.
뜻하지 않은 가능성을 나타낸다는 유용성은 그만두고라도 철학에는 사색하는 대상의 위대함과, 이 사색의 결과 개인적인 좁은 목표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에 의해서 하나의 가치가 있다. 아마 이것은 철학의 주요한 가치일 것이다. 본능적인 인간의 생활은 그의 개인적인 흥미의 범위 내에 갇혀 있다. 가족이나 친구는 포함되겠지만 그 밖의 세계는 그것이 본능적인 욕구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을 돕거나 방해하거나 하지 않는 한 완전히 무시되어 버린다. 이러한 생활에는 열광적이고 국한된 어떤 것이 있는데 이에 비교하면 철학적 생활은 정밀(靜謐)하고 자유롭다. 본능적 관심의 사적 세계는 조만간에 사적 세계를 파괴할 것이 틀림없는 강대한 세계 속에 놓인 작은 세계이다. 외부 세계의 전부를 포함할 만큼 우리들의 관심을 확대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적에게 포위된 요새 속에서 꼼짝없이 마지막 항복의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비병 같은 것이다. 그런 생활에는 평화가 없다. 있는 것은 완강한 욕망과 무력한 의지 사이의 부단한 투쟁뿐이다. 우리의 생활이 위대하고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감옥, 이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은 철학적 사색에 의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색은 매우 광대한 범위에 걸치는 것이므로 우주를 적대하는 두 진영―편파적, 돕는 자와 대립하는 자,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전체를 공평하게 관찰한다. 철학적 사색이 순수하면 우주의 인간 이외의 것이 인간과 같은 종류라는 것의 증명을 지향하지 않는다. 지식의 획득은 모두 자기의 확대인데, 이 확대는 그것을 직접 구하지 않을 때에 가장 잘 달성된다. 이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구는 자기주장의 한 형식이므로 모든 자기주장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자기의 성장―자기가 그것을 바라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의 한 장애가 된다. 자기주장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사변에 있어서도 세계를 자기보다도 가치가 적은 것으로 만들고, 그 때문에 자기 것이 되어야 할 재산의 위대함에 제한을 가하게 된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사색에 있어서 자기 아닌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위대함에 의해서 자기의 경계(境界)를 확대한다. 우주의 무한성을 사색하는 마음은 그것에 의하여 무한성에 대한 어떤 관여를 획득한다.
참다운 철학적 사색은 자기가 아닌 모든 것의 확대, 사색의 대상을 위대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또 사색하는 주체도 위대하게 하는 모든 것에서 만족을 발견한다. 사색에 있어서 개인적 또는 사적인 모든 것, 습관, 사리(私利), 욕구에 의거하는 모든 것은 대상을 왜곡시키므로 지성이 구하는 통합을 손상시킨다. 이와 같이 주관과 객관 사이에 장벽을 만듦으로써 그런 개인적, 사적인 사물은 지성에 대한 감옥이 된다. 자유로운 지성은 신이 보는 것처럼 사물을 본다. 즉 그것은 현세와 현재도 없이, 희망도 공포도 없이 습관적 신념이나 전통적 편견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평정(平靜)하고도 냉철하게 오직 한결같이 지식―인간에게 성취 가능한 한 개인적이 아닌, 순수하게 사색적인―을 구하여 사물을 본다. 그러므로 또 자유로운 지성은, 사적인 역사의 우연이 들어가지 않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지식 쪽을, 감관에 의해서 초래된 지식보다 높이 평가할 것이다. 후자는 그런 지식에 언제나 있는 일인데, 배타적이고 개인적인 견지에 의지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왜곡시키는 감각기관을 갖춘 육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색의 자유와 공평에 익숙해진 마음은 같은 자유와 공평을 행동과 감정의 세계에서도 다소 보지(保持)할 것이다. 그 마음은 자기의 목적과 욕구를 전체의 일부로서 바라보며 그것을 고집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경지는 그런 목적이나 욕구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어떠한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도 영향받지 않는 세계의 무한히 작은 단편(斷片)으로 보는 데서 생긴다. 사색에 있어서 진리에이 순수한 욕구로 된 공평성은 행동에 있어서 정의가 되고 감정에 있어서 보편적인 사랑―유용하다든가, 존경해야 한다고 판단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되는 것과 똑같은 마음의 성질이다. 따라서 사색은 우리들의 사고의 대상 뿐만 아니라 행위나 감정의 대상도 확대한다. 그것은 우리들을 다른 도시와 싸우고 있는 성벽도시(城壁都市)의 시민으로서 만들 뿐만 아니라 우주의 시민으로도 만든다. 이 우주의 시민이라는 데에 바로 인간의 참다운 자유가 있다. 좁은 희망이나 공포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의 가치에 관한 의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철학은 그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위해서 연구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명확한 해답이 진리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철학은 문제 그 자체를 위해서 연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가능한 것에 관한 우리들의 생각을 확대하고 우리들의 지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사변에 대한 마음을 닫는 독단적인 확신을 약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나아가 철학이 사색하는 우주의 위대성에 의해서 우리들의 마음 또한 위대해지고 우주와의 통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우주와의 통합이야말로 마음의 최고선(最高善)인 것이다.
1) 사변적(思辨的) : 철학의 관념론에서 경험이나 실증에 의하지 아니하고 순수한 사유에 의한 것.
2) 독단적(獨斷的) : 충분한 근거나 명증 없이 주장하는 설. 도그머티즘.
생각하기 ******************************************************************
1. 철학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를 비교 . 대조의 방법으로 설명해 보자.
2. 철학적 사색의 올바른 자세는 어떠한 것인가 생각해 보자.
3. ‘철학의 가치는 대부분 불확실성 자체 속에서 구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