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기 詩集[꽃과 꽃이 흔들린다]-문예중앙시선021- 본명 임재호. 196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94년 '작가세계'신인상을 수상하였다. 파리10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호주머니 속의 시' 2006 가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조용하게 흐르는 제삼세계 음악을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지금 아르메니아 송이 흐르고 있다. 카페 어느 손님이었다. 이 음악을 좋아하시던 분 있었다. 지금 시각 7시 30분,pm 이다. 한 며칠 후면 비가 또 온다고 했다. 실내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똑똑 떨어뜨리는 더치를 보면서 하루를 생각하고 日記를 생각하고 읽은 詩를 생각한다. 글의 수정과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다. 수정 전의 글과 후의 글, 그리고 몇 년 묵혔다가 다시 읽고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절대 필요함을 느낀다. 브라이언트레이시라는 분이 있다. 매일 무엇이라도 적으라고 했다. 훗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큰 힘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10년 이상 日記를 적었다. 그중 한 분기 잘라서 책을 쓰기도 했다. 물론 詩는 결코 아니다. 자기계발서나 커피에 관한 전문서다. 이제 이 책이 곧 나올 것 같다. 詩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한다. 영화 토르를 본 적 있다. 북유럽 神話다. 북유럽이라고 하면 알프스 이북지역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노르웨이 스웨덴 쪽으로 보면 좋겠다. 북유럽의 최고의 신으로 오딘이 있다. 눈과 지혜를 맞바꾸는 바람에 애꾸눈이다. 그다음 토르가 있다. 전쟁과 천둥, 농업의 신이다. 약간 무식하고 덩치가 크다. 로키가 있다. 꾀가 많고 교활하다. 그다음 발데르가 있다. 오딘의 아들로 미남이고 부드럽다. 나중에는 로키의 모략에 죽게 된다. 언제였던가! 토마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을 읽었던 적 있다. 이 책의 서두에 북유럽신화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왜 이 말을 꺼내는가 의아해할 것이다. 詩는 아마도 최초이자 신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영웅의 등장과 신격화가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 하나만 적는다. 모든 영웅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처음은 신으로 간주 되었다가, 신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로 등장하기도 하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詩人, 성직자, 왕 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요즘은 인쇄술의 발달로 문인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왜 이 神話를 들먹거렸는지 궁금하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經營은 이야기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피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칼디의 이야기와 오마르의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군의 이야기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니까 뿌리다. 사업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뿌리를 다지고 줄기를 만들고 이파리를 만드는 것은 사업주의 역할이다. 그러려면 나의 이야기를 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詩는 그 외의 역할을 많이 한다. 마음의 수양도 그렇고 마음의 치유도 그러하고 또 배움과 성찰과 우리가 모르는 詩의 世界가 다분히 있음이다.
임선기님의 詩集을 읽었다. 너무 감사하게 읽었다.
그러면 임선기 선생의 詩 몇 편을 아래에다가 소개한다.
너에게 1 -13p-
얼굴이여 오 맨얼굴이여 그러나 너의 얼굴에는 밥풀이 묻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바람이 분다 이곳에는 바람이라는 것이 있고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하고 영원이라는 것은 자주 없다 한다 그래도 목련은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맨얼굴이여 오 보이지 않는 단순함이여
너에게 4 -16p-
너의 눈동자 속 굽이굽이 정든 마을 검은 별빛 돌아다니는 물소리 겨울 장계 어둑한 외양간 희지도 않은 마을인데 하얗다 너의 풀어진 머리카락 끝없는 이야기 속 숨은 달빛 다시 태어나려는가 너의 눈동자 속 밤그늘 밤을 걸어도 만나지지 않는 겨울 눈빛
景 -23p-
가난한 친구와 시를 쓴다
말의 속 불목하니 되어
산은 여름인가 가을인가
정처 없는 물
말을 그치니 눈이 내린다
백지가 아름답다
日月 -26p-
계림 근처 여름 들판에 유채꽃 목월 시 경상도 가시내는 가시내고 문둥이는 문둥이다 가을 들판에 오지 않은 낙엽 마른 소리 바람결에 짙다
바다 -48p-
바다는 영혼과 영혼의 만남의 형식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봉변당한 얼굴의 바람이 있고 나체의 해변이 있지만 바다는 영혼의 방정식이다 그 바다에 손을 짚고 누가 일어선 적이 있다
가을밤 -67p-
밤이 깊었다 교정에 은색 이파리들이 반짝이고 아무도 없는데 바람이 불고 있다
먼 산 위로 푸른 하늘 카시오페이아가 선명하다 어떤 신화를 지어 저 별에 붙일까 굉장히 두근거리는 별 하나와 마주 본다
교정에는 비탈길이 넘어져 흐르고 비탈길 하나가 쏜살같이 흘러가고 비탈길 하나가 시내처럼 흐르고 있다
허리까지 차오른 시내를 몸에 별이 박힌 사내가 휩싸여 내려가고 있다
비의 文章 -79p-
비 온다 언제나 첫 비 가슴에서 오는 비는 언제나 첫 비다 새벽에 어둠에 대낮처럼 멀리 떨어지는 비 불 켜지 말고 들어야 듣는 비 온다 이 시각 누가 비탈을 오르는가 비탈이 비탈이 되는 이 시각 다시 빗소리 혼자 아득한 곳을 가고 세상의 모든 차양을 두드리면서도 단 하나의 차양을 위한 비 온다 사랑의 定意는 사랑에 오래 있어야 한다
다음은 류신 선생의 문학평론이다.
여기 꿈꾸듯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맞고 서 있는 한 소년이 있다. 설원의 절대고독 속에서 시나브로 시인이 되어가는 아이가 있다. 이 소년이 마음에 품은 나라는 낭만주의 설국(雪國)이다. 아마도 이런 곳이리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다이 하얘졌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눈이 내린다
눈 속에는
시인이 되어가는 소년이 있다
가야 할 나라가 있다
-풍경 1 전문-
이 단출한 풍경은 임선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꽃과 꽃이 흔들린다'의 주제를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하얀 눈은 순결하고 소년은 순수하다. 눈은 리듬을 타고 지상으로 소복이 내려앉는다. 소년은 먼 곳의 별빛을 동경한다. 눈 속에 파묻힌 소년은 깊은 내면으로 침잠한다. 이제 소년은 겨울 나그네가 되어 긴 방랑을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뽀드득 뽀드득 걷고 또 걷다가 온 길을 회상하고 갈 길을 전망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설 것이다. 그렇다. 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은 1)순수, 2)리듬, 3)동경, 4)침잠, 5)떠남, 6)머무름이란 여섯 가지 낭만주의의 본령을 농축한 시이다. 꿈과 낭만의 상징인 눈의 왕국으로 입성하려는 임선기 시인의 시세계는, 기하학적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육각별 모양의 '눈의 결정체를 닮았다. 임선기 시학의 내부 구조는 정연한 육각형이다. 이제부터 '낭만주의 육각형'을 구축하는 여섯 꼭짓점의 함의를 탐색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