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규리가 즉석에서 그려서 보내준 아빠의 캐리커쳐
(권규리/단국대 시각디자인과 2년)
<아이들과의 대화>
첫날 저녁에 딸이 전화가 왔다. 자신도 제주도 너무 가고 싶다고 하며 잘 다녀오시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말미에 "제주도 **쵸코릿 사다주세요"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 잠시 뒤 스마트폰에 딸이 보낸 ‘아빠, 조심히 놀다오세요’란 글과 함께 삽화를 그려서 보낸다. 한시간이 지나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아빠, 저 누나와 돈을 합쳐서 카메라 사려고 하는데 몇 퍼센트 보조를 해주실거예요”라고 한다. 우리 집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면 아빠가 보조를 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금액을 알아야 보조비율을 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답변을 하며 집에서 상의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대뜸, “아빠, 저 오늘 지갑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돈이 하나도 없는데 내일 용돈을 받는 날인데 줄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동의했다. 그러자 자신도 올 겨울에 꼭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하며 보조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동의한다. 여기서 보조와 비율과 같은 단어는 아이들과의 생활놀이에서 써먹는 단어다. 지난 겨울 딸이 제주도 여행했을 때 50% 보조를 해주었다. 아들이 지난 여름에 제주도에 왔을 때도 80%를 보조해주었다.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지만 아들은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시 남문시장 로터리의 풍경
<아내 놀려주기 & 동기부여>
서귀포에서 버스에 내려서 항구로 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나 지금 너무 눈 아파”라고 했더니 아내는 왜 그러냐며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그래서 “햇볕에 비친 서귀포 바다를 너무 봐서 그런가봐”라고 했더니 깔깔 웃는다. 첫째 날은 성산과 종달리를 지나 함덕에서 내렸다. 10년 만에 본 해수욕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었으며 모래와 바다와 하늘이 멋지게 어울어졌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냈다. “어때, 멋있지?”라는 멘트도 보냈다. 그랬더니 “우리 아파트에서 본 풍경이 더 멋있네요”라는 답장이 온다. 좀 배가 아프다는 표현이다. 멋진 사진 몇 장을 더 보냈더니 ‘새벽에 더 멋있겠네요’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농으로 결혼 20주년에 이곳에 함께 오자고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아니, 벌써 옛날에 20주년 지난 것 몰라요?”라며 투정을 한다. 그래서 25주년에 꼭 이곳에 오자고 제안을 하니 흔쾌히 좋다고 동의를 한다. 사실, 아내는 방콕(방에 박혀있기를 좋아하기에 외출을 싫어하는 사람)출신이라 함께 여행을 하려면 노심초사를 해야하며,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도대체 여행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바람을 잡았으니 다음엔 아내와 이곳에 올 것을 계획잡아도 될 듯하다.
<처이모와의 만남>
이번 제주도 여행 전에 큰 실수를 했다. 바로 제주도 집의 열쇠를 분실한 것이다. 지난 여름 아들이 열쇠를 사용하고 받았는데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챙기지를 못했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장모에게 SOS를 청했고, 그곳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시는 처이모가 문을 열어놓고 가셨다. 지난 달에 막내 처제의 결혼식에 봤지만 벌써 팔순이 다 되셨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더구나 혼자 사신다. 요즘 말로 독거노인다. 어쨌든 신세를 졌으니 한번 찾아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장모에게 주소를 물으니 ‘번개동산’이라고 알려준다. 15년 전에 한 번 그곳에 간 기억이 있지만 도저히 기억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무작정 그곳으로 출발을 했다. 그리고 나이드신 분들에게 물어물어 1시간을 헤멘 끝에 찾았다.
처이모는 갑작스런 방문에 깜짝 놀라셨지만 이내 고생을 했다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오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권서방이 아들은 참으로 잘 키웠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니라고 하자 지난 여름에 기범이가 이곳에서 3일간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하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다음에 오면 천체망원경을 주어야겠노라고 하신다. 처이모에게 그것의 의미는 20년 전에 일본에서 사온 것으로서 당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 임자를 찾았다는 말투이시다. 날이 어두워져 나오니 당신이 직접 수확한 쌀보리를 2리터 팻트병에 넣어서 주신다. 내가 키운 자식에게 사람답게 잘 키웠다는 덕담이 가장 큰 칭찬인 듯하다. 방을 나오자 그 앞에 50년생은 된 듯한 호랑이 발톱나무가 보인다. 정말 탐스러웠으며 정성스럽게 가꾼 나무임을 알 수 있었다.
*50년생 호랑이발톱 나무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왜 마음이 설레는 것일까? 우선 그것은 늘 우리에게 상상력을 주기 때문인데 그 곳에는 바로 자유정신이 있다. 다시 말해서 여행을 가려는 마음이란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사람에겐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째는 나는 변하지 않고, 외부환경이 변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경우, 백년하청이다. 나의 삶은 결코 변하기 않는다. 그저 마음으로 마음을 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변할수록 세상은 서서히 변해간다. 그리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물과 같다. 그저 오래 고여 있으면 썪기 쉽다. 모기도 득실득실해진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은 늘 신선하다. 거기에는 물고기들도 많다. 바로 거기에는 먹이사슬인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바로 변화와 동기부여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새로운 생각들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래서 마음이 춤을 추고, 엔도르핀이 솟아난다. 그래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많은 여행이 필요하다.
얼핏 많은 부모들이 좋은 아빠, 엄마가 되려고 하지만 노력으로 좋은 부모가 되기는 난망하다. 왜냐하면 오직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으며, 훌륭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고 강변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콧방귀를 끼며, 불편하고 불행한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아이와 여행을 떠나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늘 한계가 따른다. 그러나 자연속에는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숨어있다. 늘, 아이의 마음을 춤추게 한다. 거기에선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연이 알아서 아이에게 적당한 호기심을 보여주며, 따라서 아이들은 많은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자연은 부모보다 더욱 위대한 스승이다.
양복 광고중에서 10년을 입어도 바로 구입한 듯한 옷이란 말이 생각난다. 너무 평범해서 질리지도 않으며 늘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가족이란 바로 그런 관계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늘 곁에 있는 느낌, 늘 함께 있다는 느낌이다. 바로 가족이란 보이지 않는 동아줄로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지개를 쫓아가는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상호관계에서 온다. 바로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다. 가족간에 작은 소통과 배려가 모여서 발생한다. 행복이란 내가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족과의 원할한 관계형성이 이루어질 때, 저절로 얻어진다.
만일,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올 겨울방학에 청량리역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정동진행 완행 열차여행을 떠나보는 계획을 세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