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하나 사이에 두고
너는 어찌하여 건너왔으며
나는 무엇따라 건너갔느냐
바다 하나 사이에 두고
너는 무엇하러 떠나갔으며
나는 어이하여 남아있느냐
야, 이눔아야 장윤순이, 구의리 살던 살작곰보 윤순이, 너 죽었느냐 살았느냐.
나 천호동살던 백아무개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너 마지막으로 본지도 어언 삼십년이 넘어가는구나.
네가 미국으로 떠난 뒤 몇번 너희 구의리집에 전화했었지.
그러나 연락은 안되고 지금까지 영 감감 무소식이네.
LA사는 내 동창들, 그 많은 녀석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더구나.
그래 이눔아야 내 고등학교 동창들은 다른 어떤 학교출신보다도 미국에 많이 살지.
그런데도 네 소식은 정말 모르겠네...
우리가 만난건 고등학교 시절.
네가 어찌 바람이 불었는지 강건너 천호동으로 왔었지.
그래, 그래. 영택이 한수때문에 만났지.
나는 사람을 엄청 가려서 사귀는 꽁생원이었지.(지금까지도)
그래도 우리는 죽이 맞았어.
학교동창도 아니었고 부랄친구도 아니었지만...
네가 안오는 날
내가 강을 건너 구의리 너의집으로 갔었지.
그래 지금도 기억난다.
네 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녹음했었지.
녹음기도 흔치않던 시절, 큰 벽돌장만한 소니 녹음기.
음치인 나도 '매기의 추억'을 부르고...
그리고 네가 보여주던 여자 나체사진.
얼굴 빨개진 나를 보고 문산 한번가자고 했지.
문산 미군부대 일대를 꽉 잡고 있다는 네 친구.
낄낄거리며
내가 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 줄 수있다는 네 친구.
이눔아야 그 당시 나는 모범생의 전형이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너의 고향집 남한산성 근처 밤골에도 갔었지.
은고개 금고개 지나,
바로 눈앞의 손도 안보이는 그 깜깜하던 시골 밤,
초롱초롱하던 별빛.
그리고 네가 소개해주던 사촌 여동생.
비록 아무런 사연도 없이 잊혀졌지만...
그리고 너 생각나냐?
내 누이동생 문숙이 손찌검한 학원 원장녀석
너하고 가서 몇대 쥐어박던 일.
네가 떠난 뒤,
영택이는 포항에 가서 정착한지 오래되었고,
한 7,8년전에 아들녀석 축구공을 사준다는 핑계로
서울 왔었는데 사정이 있어 보지는 못했지.
본선이 통해서 소식은 듣고 있지.
본선이 기억하냐?
페인트장사하던 녀석.
지금은 황금타일 장사하느라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네.
한수는 신문기자 노릇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소식이 끊겼지.
웃기지 않냐?
한수녀석이 신문기자 노릇을 다 하다니...
신문사를 28번 찾아갔다고 하더라, 채용해 달라고...
나중에는 질려서 채용하더란다.
그눔아도 물건이었지.
한수하고는 한 때 포장마차도 했었지.
동원이하고 같이.
동원이 기억나냐?
깽깽이 켜던 녀석.
크리마스나 무슨 때만 되면 교회에서 톱연주 하던 녀석.
지금은 젊잖은 장로님이 되어 있지.
(유도하던 충근이는 목사가 되었고)
내가 그 톱이 탐나서 내 보물인 기타하고 바꾸었지.
연습하는데 동네사람들이 기웃거리더라.
귀신울음소리가 나니 당연하지...
다시 포장마차로.
그래, 리어카도 마련해서 꾸미고
꼼장어, 닭발, 똥집도 사오고 술도 받아오고 장사는 시작했는데
도대체 손님이 있어야지...
동네 양아치들이야 얼씬을 안하니 문제가 없었는데
우락부락한 놈들이 서넛씩 지키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 들어올 엄두가 안났었나보다.
(그래서 술장사는 역시 여자가 제격인지)
우리끼리 앉아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아예 문닫고 우리끼리 판을 벌이기를 수십차례.
다 들어 먹은 거지.
다 들어먹는 마지막 날
한강변에 나가서 한 바탕 술추렴했지.
그 당시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허허벌판 잠실 섬 근처.
찌개를 끓이려는데, 한강물이 온통 똥물이더군.
악덕분뇨정화업자가 똥을 탄천에 그냥 부어 버린거지...
그런데 영택이 그눔아가 반합을 몇개 들더니
그냥 강 가운데로 들어가는거야, 옷 입은채로 워카신은채로.
나도 강가에서 자라 물에는 꽤 익숙한데, 워카신고 헤엄치는 놈은 처음 보았다.
영택이 이놈아는 섬출신이라 그런지 완전히 물개더군.
눈깜작할 사이에 한강 가운데로 가서 깨끗한 물을 떠오는기라
한 차례 먹고나서 노래부르고 소리지르고 포장마차는 완전히 끝냈지.
그런데 영택이 이눔아가 지 고향인 용유도에 한번 가자고 하데.
그 며칠 뒤 바로, 그때가 마침 내가 여름방학 때인지라,
한 열명쯤 되는 사내녀석들이 몰려간기라.
그런데 아뿔사, 용유도 선착장에 내렸는데 돈가진 녀석이 몽땅 돈을 잃어버린기라.
돌아가자고 하다가, 한번 견디어보자고 했지.
모래벌에서 잠을 자고, 조개나 굴도 따먹고,
영택이 녀석 고향이니 쌀과 채소는 조금 얻고...
하여튼 열흘을 견딜 수 있겠더군.
집에 가니까 못알아보데. 완전히 거지 중에도 상거지상.
원래 나는 얼굴은 조금 검은 편이지만 살갗은 무척 희지.
열흘을 햇볕에 그을리고 바닷바람을 맞았으니
완전히 깜둥이가 되었지.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시던지...
그 다음에는 또 한수하고 헌책방을 했지.
나는 대학교재를 몽땅 가져다가 팔 물건으로 내어놓았고.
이눔아야 나는 책을 나자신 보다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야.
비가오면 나는 비를 맞아도 책을 품고 뛰어갔던 기억들이 많아.
그런데 한수가 책방을 한다기에 몽땅 내어 놓았지.
그래서 지금도 대학시절 읽었던 책이 없단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또 다 들어먹고 말았지.
물론 내 책도 다 팔리고.
마지막날 정산하고 남은 돈으로 모여서 소주 한잔 마시니 하나도 없더군.
이눔아야, 너는 남산공전의 대빵이었지.
요즘 얘들말로는 '짱'이라고 하던가?
그래 알만한 사람은 알지.
그 당시 남산밑의 남산공전. 악명이 드높았지.
전국의 (그래도 공부는 하려는, 졸업장이 필요한) 양아치들이
다른 학교에서 짤리고 짤리다가 마지막으로 모인다는 학교.
거기에서 너는 대빵이었지.
너는 말을 안했지만,
같은 학교 다니던 영택이와 한수가 그러더라.
그리고 간간이 들려주던 학교평정기(?)
맞짱뜨고 결투해서 모두 제압하던 일.
그래 임마 너는 짱이었지.
아침이면 문앞에서 지키던 네가 회수하는 칼들이
회칼을 포함하여 서너자루씩,
학생과 선생이 (계급장떼고) 맞짱뜨는 웃기던 학교.
인천 통학하던 녀석이 혼자서 기차간에서 공수부대원 4명을 작살내던 학교.
악명을 남긴 고재봉이도 다닌 학교.
그래 그 아사리 판에서 너는 짱이었다.
그런데, 기억나냐?
어느날 구의리 벌판을 지나다가 내가 말했지.
"여태까지 누구한테 한번도 맞아보지 않았는데, 너한테 한번 맞아보고 싶다'고...
그러니 네 녀석이 씨익 웃었지...
그래 이눔아야 너야 프로(?) 싸움꾼이니까 우스웠겠지.
고등학교 시절 이미 태권도 사범이었고,
레슬링 선수였던 너.
그래 우스웠을 거다.
그러나 이눔아야, 승부는 모르는거야.
나도 학교 유도부에서 비록 짧았지만 유도도 잠깐 했고,
태권도는 왕십리 한무관에서 꽤 오래 수련했지.
(국기원으로 통합되기전 서울에 있던 5대문파 중 하나)
검도는 무척이나 하고 싶었는데 도대체 가르쳐주는 곳이 있어야지...
사설도장은 물론 하나도 없었고 대학에 검도부가 겨우 몇 군데 있던 시절.
그래서 서울법대(동숭동) 검도부를 찾아 갔더니 받아주지 않더군.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기특했는지 받아 주었지.
참, 웃기지 않냐? 까까머리 고등학생녀석이 대학생들 틈에서 검도하는게...
한번 대련하고 나서 땀범벅으로 수돗가에서 등목하던 기억. 아직도 눈에 선하네.
지나가던 여대생들이 멀리 돌아가곤 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나도 정말 웃기는 짜장이었네.
하여튼, (이야기가 늘어졌네)
이눔아야 그 때 너하고 그 널찍한 구의벌에서 한번 치고받고 했으면
지금 이리도 보고싶은 마음이 절절하지는 않을텐데...
살아있으면 연락이라도 하라마.
주먹으로 드잡이질이야 할 수 없지만...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형적인 모범생, 깨작깨작 살고있지.
(요즈음은 참는 연습을 하도해서 그냥 맞아줄 수는 있어...
단전호흡하지, 초보자를 지도할만한 수준은 되네.
아니 그냥 옛날처럼 팔씨름이라도 한번 해볼까?)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옛이야기라도 좀 해보자, 이눔아야.
요즈음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었으니
지금 이글을 쓰는 것도 혹시나 이 소식이 너한테 닿지나 않을까 해서이다.
다음의 내 싸이트에 연락처 있으니 연락하거라
http://cafe.daum.net/paekany/
혹시 시간이 지나 싸이트가 폐쇄되었으면 내 본명으로 전화번호부 찾아보거라.
내 이름이 흔하지 않은 이름이니 쉽게 찾을게다.
지금은 천안에 살고 있다.
이눔아야, 보고 싶구나.
추신:
나는 그 뒤로 먹물을 조금 더 먹은 업보로 학교에 있지.
어정쩡한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냐?
너는 공부는 절대 안했을터이니까.(너와 공부는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공부는 네 몫까지 다 했다.
박사학위도 남은게 있으니, 그것도 세상에서 알아주는 학교로, 줄 수있으면 하나 주지...
썰렁한 농담으로 한번 웃어보자는 말이다.
그냥 그냥 보고 싶구나, 친구야.
첫댓글 천호동 백누구신지요 저가 아는사람인지요.......산의마을 김배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