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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9:2-8 산상에서 변모하신 주님 210214 산상변모주일
설 명절 행복하게 즐겁게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이 자주 돌아오면 좋겠지요?
이번 설에는 일가 친척을 많이 만나 볼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명절은 즐거운 갓이 틀림 없습니다.
2. 오늘은 교회력으로 보면 주현절 여섯 번째 주일로, 마지막 주현절이면서, 주님께서 산상에서 변모하신 산상 변모주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주님께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을 데리시고 변모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에서 주님은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흔히 “주님의 산상 변모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 산상 변모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주님은 이 놀라운 광경을 특히 사랑하는 제자 세 사람만을 데리고 가셔서 보여 주셨을까요?
그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은혜를 나누고져 합니다.
그 전에 오늘 본문의 성격을 살피기 위해서 본문의 배치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산상 변모 사건 전에 기록된 말씀은 마가복음 9:27절부터 시작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주님의 수난 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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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전에 나오는 말씀은 데가볼리 광야에서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4천명을 먹이시고도 7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7병2어
여기서 예수님은 군중들을 돌려 보내시고 갈릴리 호수 서쪽의 달마누다(막달라) 지방으로 가셨으나
바리새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들을 피하여 건너편 뱃새다 지방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가르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교훈을 따르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뱃새다에서 맹인 한 사람을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셔서 헬몬산 바로 아래 동네인 가이샤라 빌립보 여러 마을로 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과는 달리 제자들은 어떠한지 알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용감하게 고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시면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주님께서 당하실 수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수난 예고에 대해 베드로가 강력하게 항변하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시며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말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만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는 모든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여 주신 것이 오늘 본문의 산상 변모 사건입니다.
놀라운 변모 사건을 경험한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할 때에
하늘에 구름이 덮이면서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런데 이런 영광된 사건인데도 주님은 산을 내려 오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다음에 바로 전개된 것이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 군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럼 먼저 주님은 동네를 따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다가 왜 갑자기 변모산(헬몬산)에 오르셨을까?
누가복음에 같은 내용의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분명하게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헬몬산에 있었던 주님의 변모 사건은 먼저 기도와 관련됩니다.
첫째, (변모산 사건의 교훈은)기도는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게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변모산의 영광은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기도하시던 중 그런 놀라운 영광을 입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 기도를 생할화하셨습니다.
주님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특별한 일로,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없는 데로 한적한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5(전도 여행을 떠나시기 전의 주님의 행적)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6:46(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후)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누가복음 3:21-22(주님께서 세례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5:15-16(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 때)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6:12(제자 열 둘을 택하실 때)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우리도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위해서, 일이 없을 때는 없는 대로 믿음의 성숙과 변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산기도, 어떻게 할까요?
주님께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이유는 뭘까요?
한적함입니다. 방해를 피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꼭 삼각산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 시절 중고등부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청년들이 산기도를 가자고 해서 가봤는데...삼각산 골짜기...참 열심히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산기도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집에 방들도 많은데...식구들이 출근하고 나면, 그 방을 쓰지 않을 때, 기도방 이름짓고, 문걸어 잠그고, 시간되면 나오세요. 전화도 끄고...성경책만 가지고 들어가세요.
거기가 산입니다.
요즘같이 코로나로 인해 경건 생활이 힘들 때 집안에 기도실을 만들면, 그것이 산기도가 되고...하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는 은혜를 입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 (변모산의 교훈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님은 분명히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사람으로 자라나셨으며, 사람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변모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을 때, 주님은 희고 찬란한 몸으로 변모되셨습니다.
뿐만아닙니다.
이미 1500년 전에 죽은 모세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죽은지 800년이 된 엘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모습을 보고 얼떨결에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을 짓되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다른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다”고 하였을 때,
마침 변모산을 가리던 구름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변모산의 분명한 교훈은 바로 예수님은 사람이시지만 동시에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신(神)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神)이신 이유를 본문 4절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구약의 두 대표적인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가 출현이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기록된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이들은 예수님께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9:30-31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이들이 예수께 나타나서 한 말은 "예수님은 장차 죽으셔야 합니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별세'라는 말은 직역하면 'EXODUS' 즉 '탈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탈출'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 사건이 출애굽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첫 번째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와 새로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반드시 먼저 올 것이라고 예언된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께 드린 말씀이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 출애굽을 시켜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성취해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나눈 것입니다.
변모산에서 주님이 희고 찬란하게 변모되시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베드로는 후에 자신의 목격담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벧후 1:1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좋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
하나님은 변모산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심으로 주님은 완전한 신(神)이시오, 동시에 완전하신 사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참 신이시오,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대속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변모 사건의 교훈은)우리의 사명은 세상에 있다.
똑같이 예수님의 변모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9:32에 보면,
베드로와 두 제자들은 졸다가 갑자기 이 광경을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자마자 변모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굳이 '곤하여 졸다가' 보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5절에 나오는 그들의 고백이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영적인 무지의 표현인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베드로가 놀라 무슨 말을 할른지 알지 못하여 말한 것처럼
변모산의 영광된 모습은 거기 초막을 짓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변모사건 후에 전개된 주님의 사역을 보면 금방 알수 있는 일입니다.
본문의 변모산 사건은 마태복음 17: 1-13, 누가복음 9 : 28-36과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변모산 사건 뒤에 똑같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신 치유 사건이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변모산에 초막을 짓고 거기 거하였다면 귀신 들린 아이는 나음을 받을수 없게 되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변모산 사건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땅에서 구원 사역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의 구원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여 사람을 살리고 고쳐서 구원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하나님이시지만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변모산 사건은 그 하나님이신 주님의 영광을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영광된 변모산 사건의
1. 시작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오르신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는 통로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에 참여하려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아무도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도록 하고 방에 들어가 무을 걸어 잠그고
-처음에 5분, 다음에 10분, 다음에 15분....이런 식으로 기도의 시간을 늘려가 보세요. 분명히 주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의 변모산상의 변모는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라는 선포였습니다.
비록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실지라도 어디가지나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지, 연약해서가 아니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한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구름속에서 들리신 음성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증하신 시건이었습니다.
3. 동시에 우리가 변모산의 영광을 보았고, 참여했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까지나 죄와 문제 투성이인 세상, 가난과 질병, 온갖 시기와 다툼으로 얼룩지고 병든 세상인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구원을 선포해야 합니다.
변모산 아래에서 귀신 들린 아이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산 아래 세상에서는 우리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켜 구원의 소식을 전하여 사람을 살려 내는 일에 힘쓰면
종말의 때에, 그리고 이 땅에서도 우리는 변모산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변모산의 영광이 다시 임하시는 재림의 날까지, 변모산 아래에서 귀신들린 아이가 주님을 간절히 기다렷듯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세상 속으로 달려갑시다.
달려가서 주님의 구원을 전하여 죄악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