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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ac 2007. 2. 6. 00:20 내년은 평양대부흥운동이 있었던 해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금년에 평양대부흥운동과 같은 부흥운동이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각종 모임이 최근 잇따라 열리고 있다. ‘1907년 평양대부흥 1백주년기념 학술세미나’와 ‘부흥사경회’ ‘FIRE AGAIN’등이 그것이다. |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옥토밭이 되고 있습니까? 미국국민들이 옥토의 마음 밭을 이루고 있습니까? 전세계가 어떤 흐름을 타고 있습니까? 기독교 신앙과 전혀 다른 반기독교의 흐름들이 흘러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부흥이 일어날 리가 만무합니다. 한 지역에 한하여 일어난다면 가능하겠지만 전 세계에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에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24장에서
마태24: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은 예언입니다. 그런데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하셧지 부흥이 온세상에 일어나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러나 세상의 끝 즉 재림 전에는 전세계적인 대부흥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나 롯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행전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다시 예수님은 전 세계에 부흥이 일어키라고 하시지 않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부흥이 아닙니다. 세계선교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청사진입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살후2:3절) 마지막 때 배도가 일어난다고 했지 대부흥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현재 대부흥은 교사하고 한국에 일어나고 있는 배도의 물결은 도가 넘어설 정도입니다. wcc 나 NCCK를 보십시오, 전교단에 가입해서 배도의 물결을 이루고 있고, 주사파 정부가 한국교회를 몰살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단체가 나서서 한국교회를 몰살시킬 포괄적 차별금지법 재정을 빨리 이루어지기를 성명서를 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금지하는 정부의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소곳이 순종하고, 도리어 어떤 지역기독교단체에서는 이렇게 국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를 조사해야한다고 까지 좌파 정부 편에 들러리를 설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배감시 파파라치가 일어날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것을 경기도 기독교단체에서 주장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좌파정부로 통하여 전광훈 목사님과 청교도 영성훈련원과 몇몇 교회 빼고 전부다 배교의 물결을 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시면 대부흥을 암시하는 말씀들이 있는데 그것은 대부흥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 볼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로, 에스겔47:1-8절의 말씀입니다. 세계복음화에 적용 가능한 말씀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요엘2:28-32절입니다. 이것은 성령강림사건에 베드로가 연관시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2:16-17절)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령시대 전반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대부흥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즉 예수님이 예언한 대로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할 것을 예언한 것이지, 정확하게 마지막 때에 세계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부흥이나 영적 추수가 일어날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스가랴8:20-22절입니다.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이것은 교회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부흥과 추수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23절에 보시면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대부흥의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때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즉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사야2:2절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 말씀은 교회시대를 뜻한다는 것과 천년왕국을 뜻한다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통은 교회시대로 보는데, 천년왕국에 적용해도 가능합니다.
4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전쟁이 종식되는 때는 천년왕국 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전에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끊어지고 대부흥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말세징조로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마24:7절) 그래서 위의 말씀은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많은 말씀들이 마지막 때에 대부흥을 암시하는 말씀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잘 보시면 에수님의 재림전에 대부흥이 일어난다는 것, 그것도 전세계 동시다발로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대부흥에 관한 말씀으로 적용하는 것 중에 가장 그럴사한 말씀 한 개를 든다면 이사야11:1-4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과 같이 고형원이라는 분이 이 말씀으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라는 복음송를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재림전에 대부흥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초반부는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으로 시작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나며...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것은 예수님의 삶을 푷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말하는데 바로 예수님이 매시야가 그런 성령의 기름부음 받아 사역한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초림 때에 입니다.(눅4:18-19절, 행10:38절) 그러므로 이것은 초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후반부에는 재림에 상응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6-8절은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4절에 보시면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만인을 죽일 것이며...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 사역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재림때에 일어날 것들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6-8절입니다.
그때에는 재림 때에 일어날 맇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말씀을 재림때나 천년왕국에 관한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끝나고 신천신지의 시대가 오는데 그때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말씀(11:10-14절을 보시면) 신천신제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아닙니다. 천년왕국시대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어쨌던 대부흥에 관한 말씀도 아닌 것입니다.
대략 살펴본 결과 많은 성경들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그런 대부흥과 대추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들어있는가 찾아보면 한곳도 없습니다. 어던 분은 행전3:21절이 그런게 아닌가?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 구절을 영성운동의 대가인 빌 해몬은 재림전에 문물의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성경적인 진리와 사역과 직임의 회복이 있을 것이고, 그 결과 대부흥과 대추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사도들,선지자들과 앞으로 올 하나님의 운동들) 게케스 해긴 목사님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주석 책을 살펴보면 만물의 회복이 재림전이 아니라 재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님도 여기 회복이란 말은 주님의 재림때에 만물이 새롭게 되는 영화를 가리킨다. 라고 했습니다.
이상근 주석가도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실현될 만물의 소생과 성도들의 복락에 참여하는 축복의 시기이다. 라고 합니다.(롬8:19-21,벧후3:13,계21:5절)
먼저 만물의 회복이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성경을 살펴보면 세례요한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마17:11)
이 말씀은 행전3:21절의 말씀과 원어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 때에 만물이 회복되었습니까? 그러므로 행전3;21절에 나오는 만물의 회복이라는 단어의 뜻은 대부흥과 대추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고 했습니다. 과연 재림 전에 부흥이 일어났습니까? 계시록을 보십시오, 거기에 재림 전에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부흥이라는 말은 없고 환란이 일어난다는 말 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말한 “만물의 회복”은 대부흥과는 관련 없는 단어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신다는 말씀을 다른 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는가 하면 잘 보시기 바랍니다.
“회복하실”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을 확증하실 때까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만물의 회복이라는 말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언들의 성취를 가리킨다는 뜻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래서 주석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재림은 어찌되었든 하나님이 시초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온전히 성취되고 나서야 발생할 것이다](하워드 마샬)
그래서 이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면 문법적으로 이것은 사람들의 회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선지자가 말한 회복은 그들의 약속 그 자체가 성취되는 한편 창조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대추수을 나타내는 구절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롬8장에 나온 말씀입니다.
로마서8:19-21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럼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면 간단한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듯은 무엇일까요?
전문주석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더글라스 무)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은 그리스도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14-17절)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난에 처하고(18절) 연약함을 겪기(26절)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별로 하나님의 아들들답게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때는 우리의 진짜 신분을 공공연히 드러나게 할 것이다.]
라고 주석했는데 그것은 재림때 일어날 일로, 요한이 말한 바로 그것입니다.
요일3:1-2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거듭난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된 속 사람에 걸맞게 영화롭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재림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피조물들이 이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립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이 피조무르이 회복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피조물들은 허무한테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피조물이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그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영광을 회복할 때 피조물들도 다시 회복되게 됩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재림을 통해 천지창조 때와 같이 만물이 회복되는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대부흥과 대추수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대부흥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마다 마음 밭이 준비된 곳이면 그때에 일어날 수 있고, 마음 밭이 좋지 않는 곳에서는 영혼들의 구원 또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흥은 마음 밭에 따라 달라집니다. 부흥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는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사명입니다.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부흥이 일어나도 안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사와 사명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 앞에 얼마나 충성했는가가 제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환난 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즉 통과설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일어납니다. 그 천년왕국에 들어갈 백성이 누구입니까?
천년왕국에는 변화 받지 않는 자도 있고, 휴거되어 몸이 영화롭게 변화된 자도 있다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은 하늘에서 신부처럼 단장한 것과 같이 신천신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천년왕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폴 파인버거는 다음과 같이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에 대하여
[휴거와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어야 할 이유는 그래야 천년왕국이 개시되었을 때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되지 않은 채 들어가는 성도들이 생길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점을 좀더 상세히 다뤄보면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신자들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비록 천년왕국이 개시되면 악이 현저히 감소될 것이로되 여전히 죄는 존재한다.(겔43:13-27절/제단의 크기는 이러하니라 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높이는 한 척이요 그 사방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그 가로 둘린
턱의 너비는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래층의 높이는 두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이 아래층 면에서 이 층의 높이는 네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며
그 번제단 위층의 높이는 네 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의 길이는 열두 척이요 너비도 열두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아래층의 길이는 열네 척이요 너비는 열네 척이니 네모 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너비는 반 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너비는 한 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쪽을 향하게 할지니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는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네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그 속죄제물의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성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하게 함과 같이 하고, 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한 마리를 갖추어 속죄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이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하게 하며 드릴 것이요.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곳에는 희생제사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고, 그리고 질병과 사망도 여전히 존재한다고(사65:20절) 말하고 있고, 그리고 또한 집을 짓기도 해야 하며 포도원을 경작해야 한다고(사65:21-22절)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영화로운 몸을 이미 입은 성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이점이 환난 후 휴거론자 들에게는 문제가 되는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휴거와 재림이 단일한 사건의 여러 양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즉 살아있는 의인은 모두 재림시에 휴거되며 또한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51-52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또한 재림시에 부활하여 그들과 함께 주님이 다스리는 왕국에 들어갈 옛 성도들도 영화로운 몸으로 변형되게끔 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악인들은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영원한 심판에 던져지게된다.(마25:31-46절/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런 식으로 모든 의인이 영화로운 몸을 입고 모든 악인은 아예 천년왕국에서 배제된다면 천년왕국 안의 여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서 온 존재들이란 말인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환난 전 휴거론이나 환난 중 휴거론은 환난 후 휴거론이 이 문제에 있어 아무런 설명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 후 휴거론대로라면 그 누구도 영화로운 몸을 입지 못한 채 천년왕국에 들어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의인은 모두 휴거된다. 악인은 거듭되는 심판 속에 모두 멸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어떤 구절이 천년왕국 내에 악인이 존재를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올수 있었을까?]
이처럼 환난전과 환난 중 휴거설을 믿는 학자들은 환난 전이나 환난 중에 휴거가 일어나면 휴거한 사람들과 대환난 때 순교한 사람들이 천년왕국때 왕 노릇하고., 대환난을 통과하며 믿음을 지키다가 지상재림때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천년왕국 백성들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후 재림과 휴거가 일어나는 통과설이 옳다면 지상재림때 준비된 성도들은 다 변화되거나 부활해서 휴거되고 나머지는 전부 진멸될 터언데 천년왕국의 백성은 누가 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직전에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때 모두가 다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재림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63:1-6절입니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같은 전쟁이 계시록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19:11-18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이것이 재림때 일어날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그런데 저도 오래 동안 아마겟돈 전쟁 때에 불신자들은 모두 멸망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상 재림때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간다”고(마25:46절)하였는데 그래서 휴거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전부다 멸망 받을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들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미련한 처녀도 재림을 기다리고 등을 갖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착하고 충성된 정과 악하고 게으른 종(과연 불신자들이 주님의 종인가? 아니다. 그들의 마귀의 종이다.) 양과 염소(불신자들을 염소라고 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지만 반항적이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염소라고 부른다. 또 과연 불신자들이 사랑을 실천하면 구원을 받는가?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열매를 말한다. 그러므로 요일3:10,14-15, 18-19절과 같은 의미입니다.)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교회에 대한 심판입니다. 재림 때 믿는 자들을 미련한 다섯 처녀냐 슬기로운 다섯 처녀냐? 충성된 종이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냐? 양이냐 염소냐? 로 가르는 심판입니다. 그리하여 휴거되느냐 못되느냐? 주인의 즑더움에 참여하느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느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느냐 영원한 불에 던져지느냐? 를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심판일 뿐 교회 박의 모든 불신자들을 포함한 심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들은 재림 때 휴거하는 자들 외에 모든 인류가 멸망당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계19:15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재림때 아마겟돈 전쟁을 하는데 “만국을 치겠고”라고 합니다. 그때 불신자들을 다 죽인다는 것 같은 늬앙스가 보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만국을 친다는 그 뜻은 무엇인가 하면 계19:17-18절에 보시면전인류를 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그러나 16장에 보시면 전 인류가 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16:12-14절입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적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군대를 소집하는데 그들을 진멸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19장에 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19:19절 이하에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무심코 21절의 “그 나머지 말 탄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라는 부분을 보면 전 인유가 죽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머지”는 “이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뒤에 나옵니다. 그리고 19절에 비추어볼 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제외한 나머지 즉 “그들의 군대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때 전 인류가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들과 그리고 그를 따르는 군대들이 멸망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석가는(드웨인 린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시의 군대들은 파멸될 것이나. 그들 나라의 백성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주석가 벨의 주장)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시에 악인은 모두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의인은 모조리 휴거되고 악인은 모조리 멸절된다면 지상의 인구를 격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꼭 재림때에 모든 불신자가 멸절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적극적으로 반항을 시도한 자들만이 멸망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계19:15-18절이나 렘25:31이 제대로 성취될수 있다. 따라서 진리를 거역한 많은 혹은 대다수가 멸절대긴 하지만 여하튼 다는 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재림 때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느 적그리스도의 군대 외에 살아서 천년왕국으로 유입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곧 천년왕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둘째로, 적그리스도의 군대에 가담하지 않는자들은 모두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앞서서 말씀드렸듯이 아마겟돈 전쟁 때 인류가 전부 멸망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년왕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 재림 때 적그리스도의 군대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천년왕국도 일종의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성도들이”나라를 즉 천년왕국을 얻는 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인류 중 구체적으로 어떤 이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백성이 될까요?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세 가지를 통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마태23:39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구절은 어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자들은 대부분 재림때 그동안 예수님을 배척했던 유대인들이 뒤늦게 예수님이 에시야라는 것을 개닫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그런 의미라면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절)라는 바울의 말과 정면 배치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말도 재림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바울이 말한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는 재림 직전까지 마음이 둔해지겟지만 재림 대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구절을 이런 의미라도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랜드 종합주석에 보시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 구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환호하며 불렀던 찬송의 내용이다.(마21:9절) 동시에 예수님께서 종말에 재림하실 때 모든 백성들이 부를 찬송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인정한 것이며 심지어 예수님을 박해한 유대인들조차도 본 구절의 찬송이 그분에게 합당한 것임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심판의 선언 가운데서도 회복에 대한 암시란 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롬11장)]
이처럼 극소수의 학자들의 이 구절이 통한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빈다. 그도 그럴수박에 없는 것이 회개할 기회는 재림전까지도 그 전에는 회개해야만 구원받는 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두에게 재림때 믿지 안는 모든 인류가 멸망 받는다는 생각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진리지만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해당되는 진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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