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 중에는 영혼을 보거나 영혼의 소리를 듣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남들은 못 듣는 소리를 듣다보니 정신분열증이 아닌가 하고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다가 효과가 없자 법당을 찾는 것이다. 분명 정신병적 환청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지만 오직 자신의 귀에만 들리다보니 괴로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남매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남동생이 17세에 의문의 의료사고로 사망한 뒤부터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다. 죽은 남동생이 누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습 뿐만이 아니라 목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오늘 엄마 기분이 별로네. 엄마 데리고 쇼핑 좀 갔다 와." "누나 남자친군 왜 그래? 걔 별로니까 딴 남자 만나."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나타나 수다를 떨고 웃고 즐기다 홀연히 사라지는 남동생 영가 때문에 누나는 한동안 크게 혼란스러웠다. 남동생과 얘기하는 일은 즐겁지만 오직 자기 눈에만 보이니 이러다 혹시 무당이라도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됐다.
걱정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이들 남매의 어머니. 사실 걱정보다는 질투에 가깝다고나 할까. 어머니는 아들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사랑했다. 일찍 남편과 헤어진 어머니는 온 사랑을 아들에게 바친 것이다. 한 마디로 그녀에게 아들은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들이 딸 앞에만 나타나니 왠지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딸이 아들 영가와 대화할 때마다 속으로는 제발 자기 앞에도 나타나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아들 영가는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들의 기일을 앞두고 구명시식을 청했다.
남매의 어머니는 아들 영가와의 교류를 강력히 원했다. 그러나 영가와 교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 영가와 자유롭게 대화하는 딸은 분명 영능력자가 아니다. 영능력자라면 모든 영가가 보여야하는데 딸의 경우, 오직 남동생 영가만 보였다. 이런 현상은 두 사람의 영혼의 주파수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어머니는 아들 영가와 영혼 주파수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엄마가 나를 못 보는 것은 나한테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야." 17세의 아들 영가는 영적으로 상당히 성숙해 있었다. "누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집착하지 않아서 눈에도 보이고 내 목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엄마는 날 너무 사랑해서 볼 수 없어."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너무 강하게 잡고 있어서 편하게 떠날 수 없다며 이제는 자신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아들 영가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잘못했어. 네가 누나 앞에만 나타나고 내 앞에는 안 나타나서 섭섭했는데 그게 모두 내 잘못이구나.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 엄마가 기도할게."
부모는 자식을 먼저 보내면 그리움이 사무쳐 마음에 병이 든다. 남들보다 길게 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자식이기에 더욱 그립고 애틋하다. 그러나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일생이란 영혼이 수없이 경험하는 삶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짧게 끝나는 연극도 있고 길게 끝나는 연극도 있지 않은가. 영혼은 자신의 긴 삶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며 진화해야 하는데, 부모가 죽은 자식을 너무 그리워하면 이생에 미련이 남아 좋은 곳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아들 영가와 교류를 원했던 어머니의 소원은 물거품이 됐지만 대신 무엇이 진정 자신과 아들을 위해 좋은 일인지 깨달았다. 죽은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집착이 아들의 갈 길을 막았다는 사실에 미안해하던 그녀는 구명시식을 통해 '쿨 하게' 아들 영가와 작별하는 방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