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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3 Ⅵ. 結 論
이 논문은 불교전래 이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져온 民間信仰이 불교 전래 이후 어떻게 습합되고 있는가 하는 양상을 『三國遺事』속에 내재된 民間信仰을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았다. 그것이 갖는 한국불교사에서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외래종교인 불교가 도교, 유교 등의 사상보다 민속신앙과 습합관계가 더욱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여러 民間信仰 중 불교와의 입장에서 그 수용의 모습이 두드러진 상관관계가 있는 민간신앙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高麗 이전의 우리 고대 문화와 佛敎史書, 說話集 佛敎信仰을 포함하는 역사에 관한 문헌이나 雜錄的 野書, 野史 등의 여타의 전적들과 차별되게 『三國遺事』에 포함된 여러 민간신앙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民間信仰과의 습합의 양상이 한국불교사와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왜 중요하며 어떻게 연구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외래 종교인 도교, 유교, 불교는 서로 넘나듦을 용인하면서 민간신앙과 습합의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왔으며 그 중에서 불교가 어느 종교보다 습합의 양상이 두드러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 하나의 宗敎思想으로 민간에 자생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土着信仰을 토대로 정착하는 작업이 필요 하였고, 排他性이 없는 가르침이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우리 민족성과 환경에 잘 적응함으로써 우리 민족, 국가, 풍토, 습속에 맞는 불교를 이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불교는 우리 민족문화의 정신이나 물질적인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쳤으니 花郞徒의 主流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충효사상 등 국가의 사상과 국민정신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우리 민간신앙을 민족 신앙으로 승화, 정착시킨 것이 바로 그러한 예에 속한다. 재래의 민간신앙을 민족 신앙으로 승화시킴에 있어서 당시의 民間信仰이 지닌 신비적이고 靈的인 성격과 함께 呪術的 기능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불교가 토착신앙과의 습합을 통해 정착하고자 하는 모습들은 佛敎가 필연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종교관에 基底한 생각위에서 가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민중들의 불교 수용에 있어서 그 습합의 형태는 민간신앙이란 측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민속신앙은 현세의 복락과 구원을 바라는 민중들의 자연발생적인 열망을 담은 신앙체계이고, 이에 반해 佛敎는 정제된 윤리이자 만물의 본질을 규명한 진리구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양자의 習合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일차적으로 우위의 이념체계인 불교가 하위의 신앙체계인 토속신앙을 흡수하며 전개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민속신앙의 요소를 불교 안으로 흡수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상위의 개념이 하위로 흐른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문화이며 사상인 불교가 이 땅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민간신앙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동안의 자연신 숭배의 습속이 불교적으로 정리되고 재래의 신과 신앙이 불교 신앙의 範疇안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도교 역시 민속신앙과 습합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불교는 재래의 민간신앙들을 무시하거나 없애지 않고 이에 불교만이 가진 敎化力과 感化的인 요소를 재래의 민간신앙에 더하여 합리적으로 정리하여 民族信仰으로 자리를 잡게 하였던 것이다. |